# 61
11층으로
※주의! 끝 부분에 좀 더러운 묘사가 있습니다. 피하고 싶으신 분들은 ★부터 ☆표시된 부분을 건너 뛰시면 됩니다.
"안, 안녕하십니까. 저는 박, 박건우라고 합니다."
다가온 남성은 한껏 긴장된 표정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실제로 엄청 긴장해서 말을 더듬었다.
"유신후 입니다."
나는 일행을 대표해 나섰다. 처음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나설 생각이다. 이후에는 한바다에게 떠넘겨야지.
"유, 유신후… 요?"
"네."
"서, 설마… 고정 안전 구역의…."
눈치가 빠르군.
"맞습니다."
처음에는 숨길 생각이었지만, 이미 이 꼴이 났는데, 숨겨 봤자다. 그냥 밝히기로 했다.
"아, 감,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뭘요. 저쪽이 저희를 노려서…."
"아, 그, 그것도 감사드립니다."
응?
내가 이상한 표정을 짓자, 박건우는 허둥지둥하며 말했다.
"조, 조건을 까다롭게 정해주신 덕분에, 미,미궁파 놈들이 11층을 점령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저희도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구요. 처음에는 뭐 이딴 조건이 있나 했는데… 나중에는 이게 얼마나 좋은 조건인지 알겠더군요. 감사드립니다."
어느 순간부터 박건우는 긴장이 조금 덜 해졌는지, 말을 더듬지 않았다.
"아, 그거 얘기입니까."
근데 미궁파가 뭐냐 미궁파가. 어이가 없네.
"저놈들이 그 미궁파 라는 놈들입니까?"
"네. 정말 악질인 놈들입니다. 수련자들을 납치해 제멋대로 쓰고 사냥터를 독점, 자신들의 왕국을 만들려는 쓰레기 집단입니다. 납치한 여자는 성노로, 남자는 고기 방패로, 아이들은 심부름꾼으로 쓰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여서 경험치로 만듭니다. 상종 못 할 놈들입니다.
박건우는 그들에게 쌓인 게 많은 듯, 분노를 내뿜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어디 계셨던 겁니까? 아무리 찾아봐도 11층에서는 안 보이시던데…."
"아, 위층에서 사냥하고 있었습니다."
"위층요? 설마 내려올 수 있는 겁니까!?"
"20층 보스 잡으면 11층까지는 내려올 수 있더군요."
"20층… 보스요?"
그는 한껏 기대했던 표정이 무너져 버렸다.
그럴 만 하다. 살펴본 바로는 잠재력 중하 수준의 평범한 사람이다. 여기서 사냥을 하면서 느꼈겠지. 11층을 졸업하는 데만 해도 몇 달이 걸린다. 20층은 요원한 이야기다. 그때쯤이면 11층은 이미 잠식된 후니까. 물론, 그 미궁파라는 놈들과 싸우면서 훨씬 시간이 단축되긴 할 거다. 경험치는 인간이 최고 효율중 하나니까. 그래 봐야 한 층이지만.
그러나 한 가지 눈치챈 사실에 다시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 최근 미궁파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 나는 저 말을 듣자마자 박건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눈치챘다. 그는 우리가 20층에서 내려온, 실력 있는 파티라는 것과 내가 수련자들을 위해 고심해서 고정 안전 구역 조건을 설정했다는 것을 생각해 낸 거다.
그는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놈들의 만행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덩치가 점점 커져서, 저희 자유 연합만으로는 견제하기가 힘든 상황에 처했습니다. 최근에는 최전선에 계시던 분들이 다음 층으로 가는 경우도 잦아져서…. 염치없는 소리인 것은 알지만, 부디, 부디 저희 자유 연합을 도와주십시오!"
박건우는 깊숙하게 고개를 숙여왔다.
최전선에 있는 이들이 다음 층으로 향하는 이유는 두 가지 정도일 거다. 여기 상황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 것과, 앞서 나간 이들과 격차가 커질 걱정에 따라 올라가는 경우.
나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도움을 드릴 수는 있습니다. 물론 저희도 목적이 있기는 하지만, 말씀하신 것이 모두 사실이라면 저들은 상종하기 힘든 이들이군요. 그런 이들이 미궁에서 날뛰게 둘 수는 없습니다."
나는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탑은 오를수록 강해집니다. 저런 이들이 지금보다 강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두렵군요."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왔다.
내 말에 박건우는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며 몇 번이나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
"감사,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만큼 궁지에 몰렸던 상황인 듯했다. 그는 과할 정도로 내게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보는 듯했다.
그런 내게 주하연이 다가와 속삭였다.
"상상 이상으로 불리한 상황인 것 같아요."
"네. 그런 것 같습니다."
고정 안전 구역에 조건을 걸어 줬는데도 이 모양이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우리는 고정 안전 구역으로 안내를 받았다. 애초에 위치를 알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관리자는 나. 원한다면 내부 인원을 모조리 쫓아버릴 수도 있다.
그런 만큼 이들의 본거지인 고정 안전 구역을 내게로부터 숨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정 안전 구역에 들어가자, 자유 연합의 대표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최중헌. 중년의 남성이었다. 기억에는 없는 인간이었다.
그는 박건우로부터 설명을 듣더니 즉시 내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미궁 자유 연합의 대표를 맡고 있는, 최중헌이라고 합니다. 20층에서부터 내려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유신후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어쩐 이유로…."
"저희 파티에서 여기가 이 꼴일 거라고 짐작하신 분이 계시거든요.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다고 하셔서 일단 내려왔습니다."
"이렇게 감사할 데가…."
최중헌은 아직 정의가 죽지 않았다며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정의가 죽지 않기는 무슨. 그냥 필요에 의해 내려왔을 뿐이다.
파티원을 충원해야 했고, 탑의 물이 과하게 썩지 않도록 조정해야 했기에 왔을 뿐.
하지만 나는 겉으로 선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힘이 약할 때는 웅크릴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침 도움을 드릴 기회도 있으니…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돕겠습니까."
나는 여전히 선한 미소를 유지한 상태다.
"이런 분이 남아 계셨다니… 정말, 정말로 다행입니다…."
거북한 분위기다.
나는 고개를 돌려 한바다를 불렀다.
"네. 유신후 님."
한바다는 주변을 보더니 평소와는 다르게 씨 대신 님을 붙여 나를 불렀다.
"서브 관리자로 지정해 드리겠습니다. 안전 구역 조건도 건드릴 수 있으니, 여기 상황에 맞춰 관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전에는 내가 시간이 없어서 조건만 까다롭게 지정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바다가 상주하게 만들면 그만이다.
물 흐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해 놓은 조건이니, 상황이 변하면 그에 맞추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내 말뜻을 알아들은 한바다가 반문했다.
"네. 상황이 변했으니까요. 마음대로 하셔도 됩니다."
미궁을 맡길 건데, 이정도 권한은 줘야 한다.
한바다는 바보가 아니다. 정의감이 뛰어나긴 하지만, 호구는 아니다. 그리 멍청한 사람도 아니니 잘 할 거다. 이미 뒤통수 맞은 경험까지 있으니, 이전보다 더 조심하기도 할 테고.
나연이도 여기 붙이고 싶지만, 그래선 안 된다.
나는 최중헌을 향해 말했다.
"세력도 같은 거 있습니까?"
"…있긴 합니다. 그것은 왜…."
그는 갑작스럽게 한바다에게 권한을 넘기는 내 모습에 조금 경계하는 듯했다.
하긴. 이제까지 자신들이 관리한 미궁을 그대로 뺏기게 생긴 거다. 휘두를 칼을 주운 게 아니라, 주인을 불러들였다는 사실을 깨달았겠지. 물론 불러들이지 않았어도 우리가 온 이상 답은 정해진 상황이지만.
"한바다 씨가 여길 관리하는 동안 저희는 그들을 좀 청소하려고 합니다."
"…무모합니다. 그들은…."
나는 그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뇨. 싸워 보니 알겠더군요. 충분합니다. 걱정 마세요."
내 단호한 대답에 최중헌은 말을 잇지 못했다. 칼자루는 이쪽이 쥐고 있다. 다행히 그는 이런 이익도 없는 연합의 대표를 맡았던 인간답게, 그리 나쁜 사람은 되지 못했다. 우리에 대해 몰라 경계는 하고 있지만, 이대로 가면 어차피 자신들은 끝장이다.
그는 결국 내게 세력도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세력도를 받은 즉시 한바다 파티와는 갈라졌다.
"그럼 이쪽 상황 파악과 관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조심하세요. 신후 님."
"물론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
약 3일.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했다.
자유 연합에는 환호를, 미궁파에게는 절망을 선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었다.
한바다는 내가 이뤄낸 업적을 등에 업고 자유 연합을 빠르게 장악했다.
일부 배신을 하려는 인원이 포착되었고, 한바다는 그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갑작스레 등장한 내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 미궁파에서 잠입시킨 이들이 무리한 대가였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잠입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최근 분위기가 좋지 못해 배신한 이들도 있는 모양이다.
원래 대표였던 최중헌이나 나를 끌어들인 박건우는 다행히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그들은 배신자들을 바라보며 충격을 받은 듯했지만, 그래도 이런 일로 무너지지는 않았다.
충분히 이런 이들이 나올 거라는 것을, 있을 거라고 예상이 가능하긴 했었으니까.
지난 3일간 내가 죽인 인간과 구해낸 인간은 수백에 이르렀다.
그리고 연합을 장악한 한바다는 특유의 앞뒤 꽉 막혔지만, 공정한 일 처리로 제법 호평을 받는 상태.
게다가 내가 관리할 때보다 훨씬 널널해진 고정 안전 구역의 제한 조건에 자유 연합은 환호했다.
그렇다고 호구처럼 놀고먹는 것을 봐주는 타입은 아니라 동시에 원망을 받기도 했지만, 그걸 허용할 정도로 자유 연합이 넉넉한 상황이 아니라 어쩔 수 없기는 했다. 그리고 놀고먹는 이들은 자유 연합 내에서도 경원시하기도 했기에 한바다의 결정에 반발하는 인원은 없었다.
나는 3일간의 청소를 끝내고 잠시 쉬면서 잠재력이 높은 이들을 하나씩 찾아다녔다.
미궁파는 여전히 건재하지만, 나의 등장으로 최근 기세가 팍 죽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미궁파가… 도주를요?"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네. 최근 12층으로 올라가는 이들이 늘어난 것 같더군요."
그들은 11층에서 성장하는 정도로는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일부가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최근 3일간 내가 보인 무력이 그만큼 압도적이긴 했다는 뜻이다.
"고작 3일 날뛰었을 뿐인데…."
한바다는 도대체 3일간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닌 거냐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냥 미궁파 소속이면 하나도 용서하지 않고 베어버렸습니다. 영 좋지 못한 꼴도 많이 봤고요. 그래서 자제가 안 된 것 같습니다."
그냥 자제를 안 한 거지만.
"…확실히 쓰레기들이 맞기는 했어요. 인간 맞나 싶더라고요."
주하연이 나를 옹호했다.
자비 없었던 내 행동에 일행도 동조했다.
그 병신 같았던 나연마저 편안한 죽음을 주는 것이 사치라고 말할 정도.
//★여기서부터입니다.//
박건우가 처음 내게 말했던 것들은 정말 축소해서 말한 거였다. 아니면 그도 이정도 일 줄은 몰랐던 걸지도 모른다. 성노예? 고기 방패? 심부름꾼? 그 정도가 아니었다.
갖고 노는 것 까지는 그래, 그렇다 치자. 강간이나 학살. 그래, 옳은 것은 아니지만, 지구에서도 전쟁터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다.
그런데 몬스터랑 접붙이는 건 뭔가? 탑에서 별의별 꼴을 다 봐온 나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기분이 나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것도 수컷 몬스터를 묶어 놓고는 남자한테 세워서 박지 않으면 잘라버리겠다고 협박하는 것은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사실 탑에서 몬스터와 접붙이는 모습을 보고 발정하는 관음증 쓰레기 새끼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개 또라이 같은 경우는 정말 드물었다. 정말 상대의 정신을 무너뜨리는 데는 아주 효과적이라 나중에 고문할 때 쓰면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이 장면을 본 나연은 그 자리에서 토했고, 어지간한 나도 나서윤이 보지 못하게 막았을 정도다.
탑 하층, 아니 미궁에서 이런 꼴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개 또라이 같은 놈들에게 똑같은 형벌을 선사해 주었다.
같은 남자지만 당하던 놈들이 정말 불쌍했다. …그 외에도 별의별 꼴을 다 봤지만, 생각하기 거북한 것들이 예상 이상으로 많았다.
아직 그리 위층으로 올라간 것도 아니었는데, 벌써부터 이런 창의적인 쓰레기들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여기까지입니다.//
대강 상황을 설명하자 한바다는 되려 표정이 차가워졌다. 그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여긴 진짜…."
"여기뿐만이 아니라 위층까지 청소해야 합니다. 아직 16층까지 올라간 이들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이번 층을 보면 다음 층이 어떤 꼴일지 걱정이 되는군요."
현재는 11층과 12층이 가장 심할 거다.
"…알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직 미궁파 청소가 끝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참 남았다고 봐야 한다. 보름은 더 필요하다. 단지, 저 꼴을 보는 바람에 나연과 남은주의 멘탈에 금이 가 하루를 쉴 뿐. 솔직히 주하연도 조금 힘들어 보였다. 나서윤은 최대한 못 보게 한 덕분에 그나마 나은 상태고.
나는 멀쩡하다. 드물긴 하지만, 저 정도 수위를 처음 본 것도 아니고, 저보다 더한 것도 본 적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쉬기로 한 오늘 하루, 그 시간마저 놀릴 생각이 없었다.
시간이 나는대로 연합을 돌아다니며 재능 있는 이들을 확인했다.
대부분이 하~중 정도의 수준. 중상 이상은 찾기 힘들었고, 상 수준은 정말 드물었다.
'진짜 데려가야 하나?'
나는 연합을 돌아다니면서도 고민했다.
사실, 최상급 잠재력은 하나 찾아냈다. 나서윤을 봤고, 상급이지만 최상급 못지않은 한바다도 발견했다. 내심 미궁에서 최상급 잠재력, 아니면 최상급에서 조금, 아주 약간 모자란 수준의 잠재력을 지닌 이를 하나나 둘 정도는 더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아떨어져 11층에 도착하고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하나의 존재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 문제가 많은 녀석이라 이걸 데리고 가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존재였다.
내가 찾은 최상급 잠재력은, 앞서 말했던 최악의 장소에서 구해낸 아이다.
아이. 그렇다. 아이였다. 성별은 남자.
…8살짜리 남자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