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9화
169화. 그냥 다 죽어라(4)
수악―
두려움에 떨고 있던 보초들은 무시하고, 단숨에 그들을 넘어 천혜안으로 파악한 최상급 무인들이 있는 천막으로 순간이동 한다.
파지지지지직―!
성검 유게네스에 다시 뇌기를 집중시킨다.
적들에게 굳이 자신을 감출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아벨은 용사의 무구 풀 세트를 착용한 상태였다. 심지어 망토마저 백색으로 맞췄기에 그 검은 공간에서 유일하게 빛이 난다.
“뭐야?! 무슨 일이야?!”
꼴에 최상급 무인들이라고 벌떡 일어나 나온다.
“아벨?!”
아이작 백작도 마찬가지였고.
아벨은 다른 무인들은 무시한 채 놀라 두 눈이 빠질 것만 같아 보이는 아이작 백작에게 순간이동이 아닌 비행마법으로 날아갔다.
마치 충분히 대비하라고 선심 쓰는 것만 같이.
그래도 너 따윈 충분히 죽일 수 있다는 것만 같이.
그 의도가 너무 뻔히 보여 아이작 백작도 눈치채고 말았다.
“……감히……!”
분노에 휩싸인 그는 아벨을 당장에라도 찢어 죽일 듯이 바라본다.
그 모습을 본 아벨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는다.
‘훗― 아이작, 나를 배신한 너의 어리석음을 탓하거라.’
파지지지지지직―!
흉흉한 전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대단히 크고 화려해 보이는 황금으로 만든 천막을 쓰는 아이작 백작에게 날아가며, 한껏 뇌기 어린 아우라를 펼쳐내는 아벨은 마치 새하얀 정오의 태양같이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유게네스에도 그 어느 것보다도 짙은 황금빛으로 물들 정도로 계속해서 뇌기 어린 오러가 축적되고 있다.
그 뇌기 어린 오러가 오로지 한 사람, 아이작 백작을 향하고 있었으니.
“아아아베에에엘―!”
아이작 백작은 평소 그 체면을 중시하던 성격과는 달리 아벨의 이름을 적의를 담아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마력장벽을 최대한으로 펼친다.
위잉―!
그리고 함께 미리 준비해둔 마법진과 마도구들을 발동시킨다.
순식간에 수십 개의 견고한 벽들이 생성되어 그를 뒤덮는다.
‘역시 교활해.’
그 어느 곳보다 자신의 천막에 좋은 방어 마도구들을 잔뜩 설치해 둔 것 같았다. 대드래곤용으로 방어막을 친 것 같았다.
‘소용없다고.’
하지만 아벨의 강함은 드래곤을 훨씬 뛰어넘었으니.
물론 그럼에도 아이작 백작의 얼굴은 자신에 차 있었다.
아벨의 공격을 자신은 100번이면 100번 다 막을 수 있다는 그런 얼굴이다.
그 얼굴에 아벨은 미간을 구긴다.
‘그 역겨운 얼굴을 짓뭉개주지.’
아벨은 저 거지 같은 아이작 백작의 얼굴을 당장 똑바로 고쳐주기 위해 유게네스에 마력을 최대치로 주입한다.
“……?!”
점점 주입되는 마력을 보며 아이작 백작은 더는 자신 있는 얼굴을 할 수 없었다.
그 얼굴을 보며 아벨은 세르지와 함께 자신과 앞으로의 미래를 그리던 그때가 떠올랐다.
‘멍청한 놈.’
한때는 같은 편이었지만 그가 먼저 배신한 것이다.
‘배신자에게 결코 자비란 없다.’
한 번 배신하면 앞으로도 계속 배신할 것이다.
‘그냥 죽어라.’
다른 말 할 것 없다.
변명할 기회를 줄 필요도 없고.
파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아벨이 계속해서 성검 유게네스에 마력을 주입하자, 더는 담을 수 없을 엄청난 양의 뇌기 어린 오러가 모여들어 있었다. 그 오러가 마치 하늘을 찔러 가를 것만 같았다.
“……이건…… 도대체…….”
그 자신 있던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한 것이었다.
부들부들부들―!
부정하고 싶지만 그도 깨닫기 시작했다.
제 생각이 얼마나 허튼 생각이었는지.
“그, 그래도! 그래도! 넌 우리를 이길 수 없어!”
그가 발악하며 두려움을 지우려고 할 때, 이제 더는 유게네스에 오러를 담을 수 없게 됐을 때, 그때 아벨의 검이 아이작 백작을 향해 내리쳐진다.
신뇌전마검新雷電魔劍
제6식
징벌懲罰
뇌신의 거대한 기둥이 하늘에서 대역죄인을 향해 내리찍는다.
콰콰콰콰콰콰콰콰―!
차차차차차차차창―!
마치 유리창이 깨어지는 것과 같은 소리와 함께 수십 장의 마력장벽이 검은 하늘에 아름답게 반짝이며 사라져 간다.
“아안돼에에에에에에―!
순식간에 사라져 가는 마력장벽들을 바라보며 아이작 백작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모든 마력장벽이 깨어졌다.
그런데 아벨이 내리친 뇌신의 징벌은 처음과 전혀 변함없는 굳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이 아름다운 빛의 향연 가운데 울려 퍼진다.
그 빛의 향연 속에서 아이작 백작의 모습도 새하얗게 물들어 사라져 간다.
“……?!”
다른 무인들은 혹시나 했었는데 역시나라는 참담한 얼굴이다.
아벨의 압도적인 무위를 잘 알고 있었음에도 이번엔 다르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한 자신들의 생각을 저주한다.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그 단 한 방에 그토록 오랫동안 제국에서 절대자로 군림하던 자가 바퀴벌레 터져 죽듯이 하찮게 죽었다.
마치 몸에 돋는 발진처럼 두려움이 그들에게 엄습한다.
그때 누군가가 아이작 백작이 두려움을 이겨내려고 발악한 것처럼 발악하며 소리친다.
“고, 공격해! 가만히 있지 마! 공격하라고! 젠장할!”
죽은 아이작 백작을 불쌍해할 시간 없었다.
이제 곧 자신들 차례인 것이었다.
아벨이 자신들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그땐 늦었다. 조금이라도 살려면 그들이 먼저 움직여야 했었다.
피슝―! 피슝―! 피슝―!
마법사들이 먼저 마력광선을 쏘았다. 그리고 곧바로 검사들이 검을 들고 오러를 두르고 달려든다.
‘늦어.’
하지만 그들 역시 마지막 발악일 뿐이었다.
위잉―!
절대방패 파니츠가 우선적으로 그들이 쏜 마력광선을 막아낸다.
콰콰콰콰콰콰콰―!
그리고 이어지는 검사들의 필사적인 검격 역시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막아낸다.
파니츠의 존재 때문에 아벨은 아무 걱정 없이 유게네스에 오러를 다시 집중시킨다.
우우우우우우웅―!
파지지지지지직―!
이번에도 유게네스에 뇌기 어린 오러를 더는 담을 수 없을 만큼 담았을 때.
귀하디귀한 최상급 무인들에게 그에 걸맞은 비기를 선물해 주기로 한다.
신뇌전마검新雷電魔劍
제5식
전해電海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아름다우면서도 무시무시한 전류의 바다가 그 화려한 천막들과 그 천막들의 주인들을 휩쓴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사, 살려줘! 아아아아아악―!”
그렇게 한 방에 현재 모여 있던 최상급과 상급 무인 3분의 1을 없앴다.
비명을 지르며 어떻게 해서든 전류의 바다에서 빠져나오려는 그 비참한 모습은, 마치 신의 진노에 휩쓸린 것만 같아 보였다.
“……?”
이제 나머지도 없애려고 하는데, 그때 마력포와 구속구 같은 마도구들이 준비됐다는 걸 깨달았다.
구속구와 같은 마도구들은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대드래곤용 마도구로써 드래곤들을 잡을 때를 위해 각국에서 만들어 놓은 것들이었다. 다름 아닌 오직 아벨을 위해 준비해둔 것이라 하겠다.
파지지지지지지직―!
우우우우우우우웅―!
한 번 더 휩쓸기 위해 유게네스에 뇌기를 모은다.
그리고 공격할 대상이 있는 곳으로 순간이동을 한다.
수악―
순간이동 하자마자 검을 횡으로 휘두른다.
신뇌전마검新雷電魔劍
제5식
전해電海
파지지지지지지지지직―!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다시 한 번 무인들을 향해 전류의 물결을 흘려보내는데, 최상급 무인들은 막을 생각보다는 도망갈 생각부터 한다.
죽어라 도망가며 다급히 목 놓아 소리친다.
“쏴라! 어서 쏴!”
때마침 마력포들과 구속구들의 준비를 마쳤다.
우웅―! 우웅―! 우웅―! 우웅―!
피식―
예상 못 했던 게 아니었다.
‘소용없다.’
소용없다고 비웃던 그때 먼저 구속구들이 발동한다.
‘이참에 보여주지. 왜 소용없는지.’
네놈들은 순간이동만 없애도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순간이동 따위는 없어도 됐었다.
사사사사사사사사사사사사삭―!
아벨의 주위로 거미줄처럼 마력줄기들이 뻗어졌다.
휘릭―! 휘릭―! 휘리리릭―!
구속구들이 펼쳐지자, 아벨은 마치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처럼 몸이 칭칭 감겨 확실히 움직이기가 조금 불편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아벨이 붙잡힌 듯하자 누군가가 희망에 찬 목소리로 소리친다.
“쏴라! 이제 아벨은 끝이다!”
그 외침을 시작으로 마력이 충전된 마력포들이 쏘아진다.
펑―! 펑―! 펑―! 펑―! 펑―! 펑―!
마력포탄들이 줄기차게 날아왔다.
아벨은 오른팔로는 절대방패 파니츠로, 왼팔로는 용골검을 소환해 대비한다.
쩌쩡―!
일차적으로 파니츠로부터 엄청난 한기가 뿜어져 나가 얼음 방어막을 만들었다.
번쩍―!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그 얼음 방어막에 수십의 마력포탄이 박아댔는데, 엄청난 굉음과 섬광이 뿜어져 나와 아벨이 당하고 있는 건지 막아내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쏴라! 계속 쏴! 분명 효과가 있다!”
효과?
웃기고 있네.
이때를 위해 생각해둔 검술이 있었다.
수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벨은 일차적으로 막혀 약해진 마력포탄들의 마력을, 이차적으로 용골검으로 흡수하며 엄청난 마력을 모아 재생산시킨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이번엔 아벨의 마력으로 만든 오러가 아니었다.
순수하게 적들의 마력으로 만든 오러였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 그 오러의 색이 조금 탁해 보이긴 했었지만 그들을 죽이기엔 전혀 상관없었다.
‘이제 됐군.’
이제 충분히 모인듯했다.
오랜만에 흑풍흡검의 비기를 쓰기로 한다.
흑풍흡검黑風吸劍
제5식
지옥地獄의 호흡呼吸
자신들이 쏜 마력포로 모은 마력이 순간 용골검에서 검게 물드는 걸 바라본다.
아벨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소름 끼치는 호흡들이 그들의 귓가에 불어오자 온몸에 소름이 쫘악 서는 걸 느낀다.
너무 소름 끼쳐 몸을 움츠리는데.
촤아아아아악―!
음산한 지옥의 검은 숨결이 지나쳐갈수록 그들의 몸이 반으로 잘려 죽어 나갔다.
“아아아악―! 사, 살려줘!”
앞에서 죽어 나가는 무인들을 보자 뒤에 있던 무인들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기보다는 뒤돌아 죽어라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도망쳐! 어서 도망치라고!”
“아벨은 괴물이야…… 인간이 아니야…….”
구속구로도, 마력포로도 어쩔 수 없었다.
아벨을 대적하는 것의 결과가 죽음뿐이라는 것을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이제 깨달았나?’
그렇게나 봐왔으면서 이제야 아벨의 그 미친 재능과 강함을 깨달은 저 멍청함이 신기하다.
‘너희들은 무슨 수를 써도 안 돼.’
다시 한번 확신을 할 수 있었다.
그것들이 인질을 잡지만 않으면 무슨 수를 써도 자신에게 안 된다는 것을.
화신체들 모두와 최고 대신관들 모두가 와도.
‘비트칸을 보내놓긴 잘했어.’
비트칸을 왕궁에 보내놨다 보니 확실히 안심이 됐었다. 화신체가 접신을 하면 비트칸도 어쩌지 못하겠지만, 하지만 그는 에이션트 드래곤 출신이었기에 신기한 것들을 많이 갖고 있었다.
‘그밖에 없어. 화신체를 막을 존재는.’
아마 지금 미스라임의 왕궁은 그의 마도구들로 도배가 되어 있을 것이다. 혹여나 있을 화신체의 기습을 막기 위해서 말이다.
‘혹시나 막지 못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에 대비해 왕궁이 화신체에 의해 습격을 받게 되면 아벨에게 곧바로 연락이 오게도 해두었다.
그러니 연락이 오면 공간이동 마법으로 이동해 충분히 그들을 막을 수 있었다.
‘이곳에는 내가 있으니.’
사나가 있는 히튼도 크게 걱정은 없었다.
에디린도 많은 마도구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검사를 선택했기에 이제 마법은 예전만큼 쓸 수 없겠지만 그래도 가지고 있던 마도구들과 그녀의 검술로 아벨이 다시 돌아갈 시간은 벌어줄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인질’이라는 약점을 완벽하게 없앴다고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