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0화
160화. 피의 신혼여행(2)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앤디와 함께 은빛 물결에서 사람 머리만 한 바닷가재를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럼 언제까지 달마티아에 계실 겁니까?”
“일주일. 그리고 그 후에 지산의 가문에 들를까 한다. 지산이 하도 오라고 해서 말이다.”
“음― 더 길게 있으셔도 되는데 말입니다.”
“더 있고 싶지만. 할 일이 많으니.”
“……이해합니다.”
앤디는 아벨이 지금처럼 여유가 좀 있을 때 자신의 검술을 봐달라고 하려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짧게 있으려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두 사람의 좋은 시간을 방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아쉬운 얼굴이다.
“그런데 앤디. 이젠 너도 결혼할 때가 되지 않았더냐? 여기저기서 자신의 딸을 네게 주려고 할 것 같은데 말이다.”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그 모습을 보고 사나가 놀린다.
“있군요? 그렇죠?”
머리를 긁적인다.
“하하…… 네…… 하하하…….”
아벨이 모르는 척 묻는다.
“국왕 전하께서도?”
긁적이는 속도가 빨라진다. 얼굴도 더 붉어졌고. 멋쩍게 웃으며 말한다.
“하하하하…… 네…… 그래서 아까 저하께서 공주 저하 이야기를 꺼내셨을 때 깜짝 놀랐답니다. 진심으로.”
오히려 사나가 더 놀란 듯이 소리친다.
“진짜였어요?!”
“네…… 하하…… 그렇게 됐습니다…….”
“정말 아쉽네요…… 미스라임에서 같이 살면 정말 좋을 텐데…….”
그는 정말이지 좋은 검사였기에 말이다. 그가 미스라임에 온다면 강력한 마법사들에 비해 약한 검사들에게 엄청나게 도움이 될 것이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하와 함께한다면 저 역시 수련에 도움도 받고 정말 좋을 텐데 말입니다. 저도 아쉽습니다…….”
아쉬워하는 두 사람에게 아벨이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말한다.
“이동 워프가 있는데 뭐가 문제라고. 언제든지 오거라. 함께 수련하고 싶다면.”
아벨의 쿨한 제의에 선물 받은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다.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저하께 지도를 요청하려 했었는데 말입니다! 그럼 저하께서 미스라임으로 돌아가는 대로 제가 찾아뵙겠습니다!”
그런 앤디를 본 아벨은 입꼬리를 올리며 바닷가재의 하얀 속살을 찍어 입에 넣는다.
“그래. 언제든 오거라. 아무튼 그럼 코렌트의 공주와 결혼하게 되겠군.”
“아마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직 확실히 정해진 건 아니지만.”
“만나는 봤고?”
“예전 왕궁 무도회에서 뵙긴 뵀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어리지?”
“어떻게……?”
“나 역시 황궁 무도회에서 본 적이 있다.”
“어리다구요? 그럼 티아라?”
코렌트의 공주들은 사나도 잘 알고 있던 것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한다.
“맞습니다. 티아라 공주 저하십니다.”
“……?!”
“아십니까?”
“알죠! 아주 잘!”
그때였다.
“언니!”
홱― 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작고 어여쁜 소녀가 달려왔다.
“공주 저하! 다치십니다! 천천히 가십시오!”
그리고 호위기사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소녀를 뒤따르고 있었다.
키는 작은 편이었지만 얼굴이 작아 전체적인 균형은 매우 예쁘다고 할 수 있었다. 두 눈이 크고 반짝반짝 한 게 아주 깜찍하고 귀여운 소녀였다.
“티아라!”
달려와 사나의 두 손을 잡는다.
“언니! 언제 오신 거예요?!”
코렌트의 왕가에서 용사 아벨과 사나와 더욱 친분을 쌓게 하기 위해 일부러 보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제 대륙은 아벨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니 말이다. 아무리 국왕이 10인회에 속해 있다 하더라도 인간 최강인 용사 아벨과 가깝게 지내서 나쁠 거 하나 없었다.
시종이 신속하게 자리 하나를 더 세팅한다. 티아라 공주는 세팅된 자리에 앉았다.
“방금 왔어. 그것보다 어떻게 알고 왔어?”
“소문이 쫘악 놨던데요?! 그리고 아까 저도 축하드리려고 줄 서 있었는데!”
“너도 왔었구나. 몰랐어. 미안해.”
“당연히 참석해야죠! 누구 결혼식인데! 오빠들하고 언니들하고 함께 갔었어요!”
입가에 아름다운 미소가 그려진다.
“와줘서 정말 고마워. 그리고 다들 잘 지내지?”
“그렇죠! 다들 잘 지내죠!”
그러면서 음흉하게 사나를 바라본다.
“그런데 언니! 그렇게 우리 오라버니들의 청혼을 거절하나 했었는데! 역시 대륙의 3대 꽃 설화雪華 답네요! 다른 누구도 아니고 용사를 잡다니!”
사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진다.
“무슨 용사를 잡았니? 나는 우리 이이가 처음엔 용사인지도 몰랐어. 아무튼! 소개해줄게. 내 남편이야. 서로 구면이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구면이지. 오랜만이군요. 티아라 공주 저하.”
“오랜만이에요! 아벨 황자 저하! 으으으―! 좋겠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부인을 얻으시고!”
“운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듣기로는 티아라 저하께서도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던데…… 아주 훌륭한 검사와 말입니다.”
뜬금없이 나온 말에 조용히 있던 앤디는 마시던 물을 뿜는다.
푸풋―!
그리고 티아라 공주는 당황해 소리친다.
“네,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앤디도 원망스런 얼굴로 소리쳤다.
“저하! 갑자기 왜?!”
능글맞은 얼굴로 얼굴이 새빨개진 두 사람을 바라본다.
“그래서 여기 온 거 아닙니까?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펄쩍 뛴다.
“그게 아니라! 언니 보러 온 거거든요?! 아까 제대로 못 봐서?!”
발작하는 그녀를 무시하며 바닷가재 속살을 포크로 찍는다.
“뭐 그렇다고 해두죠.”
“아휴―! 그게 아닌데! 정말 미워요!”
사나가 티아라 공주를 달랜다.
“티아라. 참으렴. 여보. 그만해요. 울겠어요.”
“언니! 제가 왜 울어요! 저 다 컸거든요?!”
그 깜찍하고 귀여운 모습에 아벨은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하하―! 아무튼! 저녁 드셨습니까? 뭐라도 좀 드시겠습니까?”
“몰라요! 아무거나 줘요!”
“앤디. 네가 시켜드려라. 네가 좋아하는 거로. 이제 부부가 될 텐데, 공주 저하께서 네가 좋아하는 걸 좀 아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저, 저하!”
“용사가 아니라 그냥 장난꾸러기였네! 아휴―!”
“당신도 참. 애 운다니까.”
“언니!”
기분을 상하게 할 악의적인 농담이 아니었기에 화를 내는 사람도 웃으면서 화를 냈다.
정말 오랜만에 가지는 훈훈한 시간이었다. 서로 호감이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 보니 모임 내내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고 갔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에브니아 대륙의 미래에 대한 화제로 이어진다.
“인간의 주적이었던 마족들이 사라졌으니 이제 진정한 평화의 시대가 오겠군요.”
“이젠 그 누구도 다투지 않는 평화의 시대가 왔으면 좋겠어요. 정말 전쟁이라면 지긋지긋해요.”
평화의 시대에 관해 이야기하자 사나는 살짝 뜨끔해 했다.
반면 아벨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무심히 와인을 마셨다.
“미스라임은 이제 든든하겠군요. 저하와 함께하니 말입니다.”
“맞아요. 저하께서 대륙 최강이니까요. 소문에는 드래곤들도 때려잡으신다면서요? 언니는 정말 든든하시겠어요. 이제 그 성질 더러운 드래곤들에게 시비 걸릴 일은 없겠어요.”
티아라 공주가 부러워하는 얼굴로 아벨과 사나를 바라보며 말하자 아벨이 입을 연다.
“두 나라가 동맹을 맺으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미스라임하고 코렌트가. 안 그렇습니까? 티아라 공주 저하?”
“……?!”
예상치 못한 말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원했고 기다렸던 말이었다.
재빨리 대답한다.
“맞아요! 우리가 동맹이 되면 되죠!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서로 필요하면 도울 수도 있구요!”
물론 아벨도 안 그래도 오늘 말하려고 했었던 말이었다. 이제 곧 미스라임이 아덴과 전쟁을 치러야 했기에 말이다.
앤디에게 하려 했었는데, 티아라 공주가 있었으니 그녀에게 말하는 게 훨씬 더 나았다.
티아라 공주는 자신이 이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다는 것을 천운天運으로 생각했었지만 아벨 역시 마찬가지였다.
“잘 됐군요. 이번에 돌아가시면 국왕 전하께 꼭 전해주시기를.”
“저만 믿으세요!”
그때였다.
누군가가 다가와 대단히 공손히 말한다.
“공주 저하. 이제 돌아가실 때가 됐습니다.”
티아라 공주의 호위기사가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됐음을 알린 것이었다.
“몇 시에요?”
“10시입니다.”
“아…….”
아벨이 붙잡는다.
“조금만 더 있다가 가시죠. 사나 괜찮지?”
“저야. 당연히 좋죠. 조금만 더 있다가 가. 우린 괜찮으니까.”
그렇게 말하자 티아라 공주는 호위기사를 빤히 바라본다.
“들었지?”
“하지만…….”
아벨이 돕는다.
“우린 정말 괜찮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라.”
두 사람이 괜찮다는데 호위기사 따위가 뭐 어쩌겠는가.
“……네. 저하. 그럼.”
예를 갖춘 후 호위기사는 돌아간다.
티아라 공주가 우려스러운 얼굴로 묻는다.
“……근데 정말 괜찮아요? 첫날밤인데…….”
“맞습니다…… 괜히 저희가 너무 귀한 시간을 빼앗는 건 아닌지…….”
앤디도 자신들이 너무 귀한 시간을 빼앗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스러운 얼굴이다.
“괜찮다. 걱정 말아라. 말하지 않았더냐? 여기서 일주일은 있을 거라고.”
사나도 그들의 걱정을 덜어주려 한다.
“솔직히 아직 너무 이른 시간인 거 같아서…… 너무 긴장되거든…….”
티아라 공주는 어렸지만 사나의 말뜻을 정확히 이해했다.
씨익 양쪽 입꼬리를 올린다.
“아암― 그렇죠. 이해해요. 후후― 그럼 우리 동맹 이야기나 좀 더 자세히 해볼까요?”
그래서 다시 이 어린 공주와 동맹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 * *
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자, 더는 참지 못한 그들이 찾아왔다.
“이젠 정말 가셔야 합니다.”
시계를 봤는데 12시였다.
티아라도 이젠 자신이 정말 돌아가야 함을 깨닫는다.
“아쉽지만…… 우리가 오래 있긴 있었네요. 돌아가요. 앤디 자작.”
“네. 공주 저하.”
일어나 예를 갖춘다.
“그럼 두 분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를.”
“다음에 또 봬요.”
두 사람은 그새 친해져 다정스레 나란히 서서 함께 걸어나간다.
아벨은 고개 돌려 사나에게 말한다.
“우리도 이만 들어가자.”
그 말에 그 아름다운 얼굴이 울상이 된다. 이제 곧 아벨이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해서 걱정이 된 것이었다.
“……네. 그렇게 해요.”
대기하고 있던 직원의 안내를 받아 예약된 방으로 들어간다.
들어가자마자 아벨은 검은 야행복으로 갈아입는다. 복면까지 쓰고는 사나에게 말한다.
“사나. 미안하다.”
첫날밤을 제대로 보내지 못하는 것에 서운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사나는 똑똑하고 지혜로운 여자였다.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아니에요. 우리 둘을 위한 일인데요. 그것보다 다치지나 말아요. 제발…….”
사랑스러운 그녀를 살며시 꼬옥 안아준다.
“걱정 마. 널 위해서라도 아무 일 없이 잘 다녀올게.”
“……네…… 조심히 다녀와요…….”
잠시 가만히 안고 있었다.
그녀의 두근거리는 심장과 따뜻한 체온을 느낀다.
‘이해해줘서 고마워.’
그렇게 그녀를 안은 채로 밤을 지새우고 싶었지만 정해진 시간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그녀를 놓아준다.
“…….”
미련이 남을까 봐 곧바로 공간이동 할 포탈을 만든다.
윙―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코렌트의 수도 페르번을 향해 이동하는 아벨이다.
* * *
코렌트의 수도 페르번까지는 반쪽짜리 공간이동이라도 한 번이면 가능했다. 최고 대신관이 있는 위치는 소설에서 쓸데없이 자세하게 묘사를 했기에 걱정이 없었다.
‘저기로군.’
물의 신 에르사의 신전은 역시 허황된 신의 취향답게 엄청나게 크고 화려하게 만들어졌기에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 빌어먹을 새X들은 크고 화려하면 다 좋은 줄 안다니까.’
지구나 여기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수악― 수악― 수악―
에르사의 신전으로 이동하여 역시 가장 큰 건물의 가장 크고 화려한 방으로 이동한다.
그들도 마법으로 침입자를 항시 대비하고 있었지만 아벨이 기운을 없애고 들어가자 잡아내지 못한다.
천혜안으로 투시를 하여 제일 크고 화려한 방을 찾아 최고 대신관이 자고 있음을 확인한다.
시계를 본다.
12시 30분.
‘미스라임도 시작하겠지.’
약속된 시각이었다.
코렌트와 미스라임이 스타트를 끊기로 했다.
수악―
자고 있는 최고 대신관 바로 앞으로 이동해서는.
휙―
망설이지 않고 검을 휘둘러 곧바로 목을 잘랐다.
뚝―
자고 있는 평온한 얼굴 그대로 떨어져 죽었다.
위잉―
곧바로 포탈을 만들어 이번엔 바일의 수도 카르발라로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