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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 소설 속 먼치킨-153화 (153/178)

제153화

153화. 접촉(1)

“오늘은 지금 이 연회 말고는 다른 일정이 없습니다. 하지만 내일 당장 정오에 황제 대관식이 치러질 예정이니, 미리 준비들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리고―”

황제 대관식까지는 모두가 짐작하고 있었기에 그리 큰 충격은 아니었지만, 이후 이어지는 일정들은 과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었다.

레이첼 아이테르너스와의 결혼식.

대관식이 끝나자마자 레이첼과의 결혼식을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급하군.’

급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할 정도로.

‘타티스에게 선택받았음에도 불안한가 보군.’

그러니까 이렇게 서둘러 아이테르너스의 피를 얻으려 하는 거겠지.

레이첼이 신의 뜻으로 아덴의 이스마일과 이혼했다고 듣긴 들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결혼을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황제 대관식 직후 바로 진행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다음 날 진행 되는 일정도 충격적이었다.

‘철혈황후鐵血皇后.’

다음 날 이어서 제국의 실질적인 주인이라고도 여겨졌던, 철혈황후라고 불렸었던 다이나 황후의 참수형이 거행됐던 것이었다.

그녀는 현재 하베츠의 상태를 보고 정신이 돌아버렸다고 들었다.

‘인과응보인가.’

하베츠와 철혈황후는 둘 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들이었다.

그동안 다른 사람의 피눈물을 흘리게 했으니 이젠 그들의 차례였다.

‘당연히 이뤄질 일이 이뤄진 것뿐. 아무튼 그나저나 할 말 다했으면 어서 끝냈으면 좋겠는데.’

돌아온 용사들을 위해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지만, 대부분이 너무 지쳐있어 과연 먹을 게 입으로 들어갈 수 있을는지 걱정되던 상황이었다.

최고 대신관이 그러한 것을 알고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모두에게 반가운 이야기를 꺼낸다.

“다들 피곤하신 듯하니, 연회는 이쯤에서 끝내는 게 어떠십니까? 폐하.”

크리스찬은 그 물음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허락한다.

“폐하께서 허락하셨으니 그럼 이만 돌아가셔서 쉬셔도 됩니다.”

드륵― 드륵―

드래곤이었던 에디린과 비트칸은 그 말을 듣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응?”

그런데 좀 이상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이 두 사람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의아하다는 얼굴로 아벨에게 묻는다.

“안 가?”

에디린의 천진난만한 물음에 아벨은 한숨을 푹 내쉰다. 그들도 이제 인간이 되었으니, 그들에게 인간의 예법을 가르쳐야 함을 깨닫는다.

“폐하께서 일어나셔야지 일어나죠.”

아벨은 황좌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오히려 정의로운 크리스찬이 황제가 된 것에 어느 정도 만족해하고 있었다. 타티스가 선택했다고 하니까 그게 좀 걸려서 그렇지.

크리스찬에게 거리낌 없이 폐하라고 지칭하는 아벨을 다들 조금은 놀란, 의심하는 눈으로 바라본다.

‘뭐지? 저렇게 쉽게?’

‘진짜야?’

‘가식인가? 음……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황좌에 관심이 없다더니. 사실인 건가?’

다들 아벨이 황좌에 욕심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테르너스 피가 아닌 다른 피가 황제가 된 것에 반감이 있을 거라고도 믿었었고.

그 싸한 분위기 가운데 에디린과 비트칸은 아벨의 말에 불평불만을 터트린다.

“쳇! 인간들은 이게 문제야 문제!”

“허락하지 않았느냐? 돌아가도 된다고.”

물론 그러면서도 자리에 앉는다.

아벨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기에.

“얼굴 좀 풀어! 알겠으니까!”

“흠흠…… 뭐 그렇다면야.”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아벨은 몸을 돌려 크리스찬에게 사죄를 한다.

“휴― 인간의 예법을 잘 몰라서 말입니다. 이해해주시지요.”

크리스찬은 애초에 그들이 뭘 하든 신경 안 쓴다는 것처럼 대답 대신 그저 자리에서 일어난다.

“…….”

처걱― 처걱― 처걱―

그리고는 걸어나가는데, 피에 젖은 그의 진홍빛 중갑옷의 소리가 연회장에 울려 퍼진다. 그가 나가자 아이작 백작부터 시작해 최고 대신관, 캐서린 황비, 레이첼, 줄줄이 일어나 따라 걸어나간다.

그렇게 졸졸 따라 나가던 최고 대신관이 느닷없이 예언자 그리스에 앞에서 멈춘다.

아주 공손히 예를 갖추며 그녀를 부른다.

“그리스에 경.”

“네. 최고 대신관님.”

“잠깐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드릴 말씀이 있어서 말입니다. 매우 중요한.”

그 대단히 공손한 청을 그리스에는 생긋 웃으며 받아들인다.

“알겠어요. 그러도록 하죠.”

그런 후 함께 연회장을 나갔다.

아벨은 그리스에를 데리고 가는 최고 대신관을 주시했다.

‘저 음흉한 새X가 뭘 하려고.’

저렇게 대놓고 앞에서 데려가다니.

이것에 대해 정말 피곤하지만 상의를 하긴 해야 할 것 같았다.

“휴― 피곤하겠지만 우리도 계획을 좀 세워봅시다.”

“그래. 저 새X들도 뭔가 듣긴 들었나 보다.”

“그러게 저렇게 급한 거 보니. 쯧쯧―”

아벨은 다른 이들에게도 말한다.

“모두 함께 가시죠. 할 이야기도 있고.”

다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대답한다.

“알겠어요.”

“좋아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무리 피곤해도 모두 아벨과 함께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오히려 권유를 안 했으면 서운해했을 것이다.

그들의 즉각적인 대답에 아벨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각자 방에서 간단히 정비하고 제 방에서 모이는 거로 하죠.”

* * *

최고 대신관이 그리스에에게 요청했지만 두 사람만 모인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만 만날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그 자리에는 새로운 황제 크리스찬과 그의 아비 아이작 백작도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그리스에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순진한 얼굴로 함께 모인 세 사람에게 물었다.

사실 크리스찬은 이 비밀스런 모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묻지 않고 그저 가만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본다.

그녀에게 직접 요청한 최고 대신관이 입을 연다.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지혜의 신 에크네의 화신체이시기에 뵙고자 요청하였습니다.”

그의 말에 그녀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크리스찬과 아이작 백작을 둘러본다.

그리고는 잠시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최고 대신관을 바라본다.

최고 대신관은 그 의아한 눈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이 입을 연다.

“괜찮습니다. 폐하께서는 정의의 신 타티스께서 드디어 선택하신 그분의 화신체이시니 말입니다. 그리고 아이작 백작은 늦게 선택된 화신체를 돕기 위해 타티스께서 보내신 사자이고 말입니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

“후후― 놀라시는 것 보니 그것까지는 아직 듣지 못하셨나 보군요.”

순순히 인정한다.

“……네. 그것까지는 듣지 못했어요.”

“이해합니다. 그리스에 경께선 마족들과의 전투 때문에 정신없으셨을 테니 말입니다.”

이해한다는 최고 대신관의 말에 감사함을 표한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네. 맞아요. 솔직히 마물과 싸우느라 정신이 너무 없었어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크리스찬은 두 눈을 번쩍인다.

화신체化身體.

타티스의 대리인이라 할 수 있는 최고 대신관이 그녀는 지혜의 신 에크네의 화신체, 자신은 정의의 신 타티스께서 드디어 선택한 화신체라고 말한다.

아버지 아이작 백작은 그가 자신을 도우라고 보내신 사자라고 하고.

딱히 감정의 동요가 없는 아이작 백작의 얼굴을 보니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타티스의 화신체라고?’

크리스찬도 자신의 몸에 무언가 변화가 생겼다고 느끼긴 했었다. 하지만 완벽하게 그 상황을 파악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 때문이었군.’

화신체가 무얼 뜻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자신이 신에게 선택받았다는 것은 확실한 듯했다.

그때 최고 대신관이 입을 연다.

“맞습니다. 그래서 뵙자고 했습니다. 우린 한 편이니 말입니다.”

“…….”

하지만 그리스에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보이지 않는 눈으로 최고 대신관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압니다. 에크네께서 어떤 생각이신지.”

이번에도 깜짝 놀라 순진무구하게 묻는다.

“정말요?”

피식― 입꼬리를 올린다.

“네. 에크네께서는 다른 신들의 생각에 조금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 대답에 알면 자신을 왜 불렀냐는 듯이,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본다.

“맞아요. 솔직히 에크네께서는 다른 신들과는 그 뜻이 달라요. 그래서 그분들께 항상 이야기 하지죠. 적당히 좀 하자고.”

맞장구를 친다.

“맞습니다. 적당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아시지 않습니까? 주신 아그네스와 다른 신들의 뜻은 결코 양립될 수 없음을.”

“음― 그럼 계속해서 지금처럼 행동하면 주신 아그네스에 의해 에브니아에서 쫓겨나겠다는 것도 알고 있겠네요?”

“그러니 힘을 합쳐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함께 주신 아그네스에 대항해 이겨내야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게 회의적인 얼굴이다.

“과연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요? 그는 모든 것들을 창조한 창조주이신데 말이에요.”

좀처럼 그리스에가 그 뜻을 함께할 것 같지 않자.

쿵―!

대뜸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절까지 하며 소리친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에크네의 화신체이시여!”

순식간에 울먹이는 얼굴이 된 그는 그녀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겠다는 듯이 비장하기까지 했다.

최고 대신관은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비굴함만이 그녀를 설득할 유일한 방법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안쓰럽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는 그녀를 봤을 때 분명 통하고 있었다.

“…….”

그녀 입장에선 그와 딱히 친분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에크네의 전우戰友 타티스의 눈과 귀로써 화신체가 없었던 오랜 기간 동안 그가 대신 고생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저 오랫동안 고생한 늙은 몸으로 자신의 발아래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다니.

오죽 다급했으면 손녀 같은 자신에게 저렇게 X신처럼 굴다니.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동정심이, 그 주체할 수 없는 쾌락 섞인 욕망이 무럭무럭 솟구쳐 올라 그리스에는 일단 들어보기로 한다.

“……말씀하세요. 일단 들어보도록 하죠.”

‘됐어!’

그녀가 불쌍해 보이는 이들을 결코 외면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결과였다.

‘하지만 부족해!’

쿵―!

그래서 쐐기를 박기 위해 머리를 바닥에 찍는다.

마치 머리가 깨질 듯이 강하게.

쿵―! 쿵―! 쿵―!

계속해서 머리를 찍어대며 간청한다.

“미래를 보아주시길 간청하겠습니다! 앞으로의 제국과 에브니아를!”

하지만 그리스에는 돌연 깊은 한숨을 내쉰다.

휴―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

그때 아이작 백작이 미간을 찌푸리며 묻는다.

“역시 아벨과 맹세의 마법을 한 건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그래서 전 그분에게 해를 끼칠 정보를 드릴 수 없어요. 하지만 여러분들은 그분께 피해가 갈 정보를 원하는 거잖아요?”

빠드드득―

아이작 백작의 입에서 분노가 담긴 소리가 흘러나왔다.

또 그놈의 맹세의 마법이란 말인가.

그 빌어먹을 맹세의 마법에 얼마나 발목을 잡힐 것이란 말인가.

위압적인 눈빛으로, 아벨에게 쏟을 분노를 대신 그리스에에게 쏟아내며 명을 내린다.

“……좋다. 그렇다면 말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말하라.”

아이작 백작은 화신체라는 존재에 대해 확실히 잘 모르고 있었다.

만약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결코 이러한 불경스러운 태도들을 보일 수 없을 것이었다.

최고 대신관은 깜짝 놀라 혹여나 자기가 다 만들어 놓은 판을 깰까 봐 불경한 아이작 백작에게 뭐라고 하려는데.

씨익―

최고 대신관의 우려와는 달리 그리스에는 아이작 백작의 대경할 무례에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예쁜 미소를 짓는다.

“알겠어요. 뭐 그런 거라면.”

어떤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스에는 아무렇지 않게 미래를 보기 위해 신과의 접촉을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웅―!

그녀 주위에서 새하얀 광채가 내려왔다.

그 빛은 이 어둡고 비밀스런 곳에서 더욱 은밀함을 더해주는 신비로운 빛이었다.

‘아름답군.’

또한 아름다운 빛이었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가히 신의 은총이라 볼 수 있을 듯한 그러한.

그 신령한 빛이 그녀를 휘감다가 결국에는 그녀의 동공 없는 백안白眼에 스며든다.

수아아아아아―

그녀의 백안이 잠깐 감겼다 떠졌는데 그 하얀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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