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79화
쿠쿠쿠쿠쿵-!!
천장이며 벽에서 무수히 많은 돌이 떨어져 나온다.
들어왔던 통로는 이미 막혀버려 빠져나갈 길조차 없다.
하지만 나와 아렐리아 둘 다 생매장 따위를 걱정할 그저 그런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곧 시작될 드래곤과의 전투를 기대하느라, 치밀어 오르는 흥분감을 눌러 참기 힘들 정도였다.
“[마왕님, 우선 여기서 빠져나가죠.]”
아렐리아가 텔레포트를 사용하자, 발 밑에는 작은 마법진이 떠오른다.
어두침침했던 공간은 금세 방금 전 밝은 야외로 변했다.
어느정도 거리가 있는 곳으로 이동한덕에, 우리는 쿵쾅거리며 사방을 파괴하고 있는 드래곤을 적당한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끔찍하군요. 저렇게까지 <타락>이 진행된 존재는 처음 봐요.]”
그녀의 감상평처럼 드래곤의 몰골은 처참했다.
눈부시게 반짝였을 푸른 비늘은 탁하다 못해 검푸른 빛이고, 몸 전체가 <타락>으로 뒤덮여 보기만해도 불길한 느낌이었다.
눈동자 또한 며칠동안 밤을 새 버린 폐인마냥 퀭했다.
차라리 네크로맨서가 살려낸 본 드래곤이 더 생기 넘칠 지경이었다.
모습만 드래곤일 뿐, 이미 지상 최강의 종족다운 자존심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제대로 미쳤군.”
머리에 꽃 하나 장식해 주면 딱 어울릴 꼴이었다.
지금도 놈은 광룡이라는 명성처럼 미친듯이 땅을 파헤치고 있었다.
주변 따윈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는지, 꽤나 가까이에 있는 우리의 인기척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여기서 냄새가 맡아졌는데……]
그는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이상한 소리를 한다.
이 차원에 알이 돌아온 게 분명하다느니, 냄새가 풍긴다느니 하는 말들이었다.
과연 개코를 지니고 있는 드래곤다운 발견 방식이다.
하지만 영 위엄 없는 모습에 절로 헛웃음이 나온다.
아렐리아조차 그 모습이 질리는지 넌더리를 진저리를 쳤다.
“[이성이라고는 조금도 없어 보이는데요. 과연 이 몸뚱이가 알에서 깨어난 헤츨링이란걸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확실히 저 상태라면 불가능해 보이긴 하는데…….”
그래도 저 정도 알에 대한 집착을 보니 시도해 볼 가치는 있어 보인다.
나는 날개를 팔랑거리는 아렐리아를 덥썩 집어들었다.
“[마왕님……아니죠……?]”
눈치 빠른 그녀가 쥐어짜는 목소리를 낸다.
설마설마하는 표정도 함께였다.
워낙 불안해 보이기에, 그녀에게 안심하란 뜻으로 두어 번 토닥여 주었다.
“[역시 마왕님이 저를 보낼 리가-꿱!!!!]”
잔뜩 힘을 준 손을 풀스윙으로 휘둘렀다.
목표는 드래곤이 있는 주변이었다.
아렐리아는 괴상망측한 소리를 내며 점차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진다.
퍽-
공중을 날던 아렐리아가 철푸덕 쓰러진다.
드래곤의 콧잔등 바로 위였다.
스스로 감탄할 정도로 정확한 배달 솜씨였다.
[……이게 뭐……]
“[마왕니이이이임!!!!!]”
아렐리아의 비명은 미친 드래곤도 돌아보게 할 만큼 처절했다.
잠시 멈칫한 에우로델과 울부짖는 아렐리아 사이에서 묘한 기류가 흐른다.
‘과연 알아볼까.’
나는 팔짱을 낀 채 가만히 그를 주시했다.
혹시 모를 사태가 벌어진다면 당장 아렐리아를 마계로 강제로 귀환시켜야 하기에 긴장의 끈은 놓지 않은 상태였다.
[……작고 검군……동족의 냄새가 나……그리고 마기도……]
“[으……]”
그녀를 살펴보는 커다란 눈알이 희번득거린다.
백탁으로 하얗게 물들어버린 동공은 옛날에 본 공포 영화를 떠올리게 할 만큼 괴기스럽다.
하지만 과연 저게 <타락>으로 인한 영향만 있는걸까.
이미 미쳐 날뛰던 정령왕들을 본 뒤라, 끊임없는 의구심이 생긴다.
‘뭔가 이상한데. 본능밖에 남지 않아서 간단한 의사소통도 못하던 정령왕과는 좀 달라.’
드래곤이라는 종족 특성상 <타락>이 정신까지 미치지는 않는 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물겨운 재회 현장을 좀 더 지켜보았다.
잠시의 정적이 흐른 후.
그는 천천히 얼굴로 손을 뻗는다.
그리고 아렐리아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래도……그 아이가 맞군. 확실해. 하지만……영혼이 담겨 있어. 왜지?]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혼란이 가득 담겨있다.
아렐리아는 어쩔 줄 몰라하며 내가 있는 방향을 슬쩍 쳐다본다.
이 상황 좀 수습하라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상관없겠지. 빌어먹을 맹약은 알을 지키라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그 상태야 어떻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후우-
드래곤은 크게 한숨을 쉰다.
그러더니 아렐리아를 천천히 끌어안는다.
하지만 그 행동에 애정 같은 건 조금도 섞여 있지 않았다.
인상을 찌푸리며 천천히 놈을 관찰하는데 이상한점이 눈에 띄인다.
‘눈알이……멀쩡해진 건가.’
분명 앞을 볼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뿌옇게 물들어 있던 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본래 가지고 있던 옅은 푸른빛이 감돈다.
그 안에 담긴 시선도 또렷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놈은 점점 제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심지어 어디론가 가려고 하는듯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저 이러다가 납치당할 것 같은데요!?]”
이상하게 돌아가는 분위기를 느낀 아렐리아가 기겁한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어하는 마음이 여기까지 느껴진다.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고 있는 그녀를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렐리아는 날개를 퍼덕거리며 재빨리 드래곤의 앞발에서 벗어난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당황한 그가 멈칫하는 사이.
그녀는 내가 있는 방향으로 쏜살같이 날아온다.
“[마왕니임! 이건 너무하셨어요! 얼마나 답답했는지 아세요? <타락>때문에 몸이 썩어가는지 악취도 심하고-]”
하지만 그걸 놓칠 드래곤이 아니었다.
놈은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로 빠르게 접근한다.
“젠장, 피해!”
대지를 박차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하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거대한 그림자가 아렐리아 뒤에 드리운다.
콱!!
“[꺄악!!!!]”
다행히 공격할 마음은 없는지 아렐리아는 바닥에 쓰러질 뿐, 생채기 하나 없다.
그러나 곧바로 기절했는지 그녀는 둥그런 배를 까고 눈을 감은 상태였다.
[……일행이 있었나.]
곧바로 도착한 나를 향해 드래곤이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내 눈동자는 아렐리아에게 줄곧 박혀 있었다.
“시력은 멀쩡한가 보군. 내 것이니 돌려받았으면 좋겠는데.”
말이 끝나마자마자 드래곤의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대체 뭐 하는 짓거리지.
의중을 알 수 없어 미간을 찌푸리는데, 그는 크게 폭소한다.
[큭, 크크크크, 크하하하!!!! 돌려달라고?? 크하하!!!!]
그렇게 한참을 웃던 놈이 순식간에 입을 다문다.
고요히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는 광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이제서야 렌, 그 빌어먹을 개자식의 맹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돌려달라? 내 그놈을 찢어 죽이기 전까지는 그러하지 못한다.]
“……렌? 잠깐, 그 골드 드래곤 렌 말인가?”
미친 드래곤 입에서 그보다 더 미친 말이 튀어나온다.
여기서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한 존재의 등장에 잠시 머리가 지끈거린다.
‘대체 그 자식은 여기저기서 뭘 하고 다녔던 거지?’
나이 먹었으면 가만히 노후도 좀 즐기고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 늙은 몸뚱이로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그가 이쯤 되면 경이로울 정도였다.
[호오? 놈을 아는가? 인간주제에 아는 것이 많군. 하지만…… 그런다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
놈의 눈동자에 잠시 이채가 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이미 나를 적으로 간주한 그가 천천히 마나를 끌어올린다.
“성격이 급하군.”
좀 이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제대로 된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역시 물리적인 영향도 필요한 법이다.
‘한 방에 끝낸다.’
여유롭게 대적할 상대는 아니었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으면 섭섭한 <마신의 가호>를 사용했다.
순식간에 터질 듯한 힘이 육체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드래곤은 조금 뒷걸음을 친다.
그 역시 나를 만만하게 여길 수 없다 판단한 듯했다.
그래 봤자 도망치는 것 외에는 별 다른 수가 없을 테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손에 익숙한 검을 불러냈다.
“폭렬의 페르아렌 <귀환>.”
페르아렌을 드래곤 눈알에 쑤셔 넣은 뒤 처음 사용하는 <귀환> 스킬이었다.
하지만 응당 눈 앞에 소환되어야 할 검은 없고, 뜬금없이 시스템 메시지가 튀어나온다.
[<귀환>실패.]
[현재 폭렬의 페르아렌은 차원계:<별의 무덤>에 있습니다. 또한, 드래곤 <니케>에게 공격을 가하고 있는 중입니다. 니케의 생명이 다하면 자동으로 귀환하게 됩니다.(현재 드래곤 <니케>의 남은 생명력:3.34%)]
미간이 와락 구겨진다.
놈이 아직도 눈에 박혀 있는 검과 함께 <별의 무덤>에 처박혀 있는 모양이었다.
‘대체 그건 왜 아직도 뽑지 않고 있는 거지.’
어쩔 수 없이 인벤토리에 있는 다른 무기를 살펴보았다.
[……뭘 하는 거지? 항복할 셈인가.]
그 와중에 잠자코 기다려 주는 그의 친절함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나마 성검이 제일 괜찮아 보이는군.’
천신이 직접 제작했다는 무기라면 드래곤의 공격에도 충분히 버틸 수 있을 터.
재빨리 검을 손에 쥐자 역시나 성검은 잘게 떨며 온 몸으로 싫은 티를 낸다.
[혹시나 했건만, 역시 내게 대항하려 하는 건가. 감히 미천한 필멸자 주제에……]
“내가 할 말을 대신하는군. 대화는 나중에 하고……일단 좀 맞자.”
[건방진 녀석!!!!]
놈은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친다.
그러나 <마신의 가호>로 인한 효과 덕분에 드래곤의 표효 따윈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대로도 충분히 대등한 싸움이 될 터.
하지만 만약 여기에 <거인신의 가호>까지 사용하면 어떨까.
치밀어 오르는 호기심을 이겨 내지 못하고, 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거인신의 가호>”
우우웅-!!!!
콰직-!
스킬을 사용함과 동시에 온몸의 근육이 꿈틀거린다.
파괴적인 힘은 발을 딛고 있는 대지마저 부숴버린다.
‘큭…… 역시 신의 가호인가.’
더이상은 흘러 넘치는 힘을 참을 수 없다.
나는 예고도 없이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