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58화
* * *
쌍둥이들은 우선 요정계로 보내기로 결심했다.
지금 데리고 있기도 뭐하고, 지구도 지금은 그닥 좋은 환경이 아니다.
어차피 일 년 정도는 지나야 제정신을 차릴 터.
그동안은 얼굴만 잠깐씩 비춰도 충분해 보인다.
“파렌. 작별 인사는?”
“……동생들이 있는지도 몰랐던 제가, 무슨 염치로 더 붙잡겠나요? 스승님이 말씀해 주신대로 일년에 한두 차례 보는 걸로 충분합니다.”
파렌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 보인다.
하지만 누가 봐도 씁쓸한 미소는 그의 심정을 짐작케 했다.
“아직 피도 안 마른 애송이가 어른스러운 척하기는.”
동생들을 쓰다듬는 손길에는 미련이 뚝뚝 흘러넘친다.
허나 지금은 그의 말마따나 이별해야 할 때.
나는 피식 웃으며 요정계로 가는 스킬을 사용했다.
[<요정계의 문>[L]: 요정왕의 권한으로 요정계로 향하는 차원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다녀오마.”
“예. 준, 그리고 란. 다음에 또 보자.”
“끼잉…….”
그는 쌍둥이들에게 차례로 포옹을 한다.
그리고 차원의 문을 향하는 우리의 뒷모습을 끊임없이 쳐다보았다.
마치 머릿속에 똑똑히 담아 놓겠다는 듯이.
“어? 요정왕님이다! 얘들아, 요정왕님이 오셨어!”
차원문을 넘으니, 익숙한 요정계의 푸른 초원이다.
도착하자마자 손바닥만 한 요정들이 불나방마냥 달려든다.
“요정왕님~왜 자주 놀러 안 오시는 거예요?”
벌써 요정계 구석구석까지 소문이 퍼져 나갔다.
자고 있던 요정들도 비몽사몽한 눈으로 하나둘씩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그건 티타니아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우아한 금발을 늘어뜨린 그녀가 나와 쌍둥이를 번갈아 보며 미소를 짓는다.
“어머, 웬 어린 아이?”
“마침 잘 왔군. 티타니아, 여기는 준과 란이다. 이 쌍둥이들 좀 부탁하지. 한 일년이면 충분할 거다.”
“저에게 아이들을 맡기신다고요? 아하하하하!”
티타니아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맑은 웃음을 터트린다.
한참을 깔깔거리던 그녀가 경쾌하게 중얼거린다.
“그거 아세요? 이게 요정왕님이 제게 처음으로 한 부탁이라는걸. 그런데 첫 부탁이 육아라니…….”
“그랬던가. 마땅한 곳이 요정계밖에 떠오르지 않아서.”
요정들은 장난치는 것만큼이나 어린 아이들을 좋아한다.
워낙 뇌까지 순수하기로 유명한지라, 비슷한 정신 연령의 친구에게 끌리는 걸지도.
지금도 그들은 쌍둥이에게 주저없이 다가가 여과없이 호기심을 표현하고 있었다.
“얘들아 이거 봐. 여기 보들보들한 귀가 달려있어.”
“이 꼬리는 어떻고? 너무 귀여워!“
“크르릉?”
남매들 역시 싫지 않은 기색으로 요정들과 제법 잘 어울린다.
어느새 머리카락은 그들이 가져온 작은 꽃이며 열매로 장식되어 있었다.
“귀여운 아이들이네요. 걱정 마세요. 저와 요정들이 잘 돌봐 줄 테니.”
그녀는 싱긋 웃으며 나를 다시 차원문이 있는 곳으로 이끈다.
“공사가 다망하신 분이시니, 이만 돌아가셔야겠죠?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잊지 않고 가끔이나마 찾아 주세요. 당신과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즐거우니.”
나는 밝게 배웅하는 그녀를 힐끗 보고, 문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주변 풍경은 다시 컴컴한 지하 감옥으로 변했다.
“다녀오셨습니까?”
고작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그동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는지, 파렌의 얼굴은 사뭇 진중해졌다.
“뭔가 결심한 게 있나 보군.”
“……네.”
긴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씁쓸한 미소를 띄울 뿐.
우리는 말없이 지하를 빠져나왔다.
다시 화려한 수왕의 집무실 안.
의미없이 물건들을 뒤적이는 와중에도 파렌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마음먹은 건 있지만, 아직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건가.’
헌터들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기까지도 멀었다.
그 정도 기다려 줄 여유는 있었다.
‘아직 나도 할 일이 남았고.’
나는 고민에 잠긴 그를 뒤로 한 채, 조용히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 * *
“이놈의 왕궁은 끝도 없군.”
벌써 삼 일째.
규모가 어찌나 넓은지, 이제야 구조가 갈피가 잡힌다.
식당, 연회장. 하다못해 도서관까지.
혹시 숨겨진 무언가가 있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쌍둥이가 갇혀 있던 지하 감옥처럼 엄청난 게 나오지는 않았다.
그나마 큰 수확이라면 SS급 아티팩트 두어 개 발견한 정도.
‘남은 건 보물 창고인가.’
특별한 무언가 있을 법한 장소이다.
마지막의 즐거움으로 남겨 두기 위해, 일부러 들어가보진 않았다.
어차피 내가 수왕이 된다면 나의 것이 될 물건들.
시간이 난 김에 미리 챙겨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이쯤이었던 걸로 기억하는…… 음?’
복도 너머로 인기척이 느껴진다.
분명 내가 왕궁에 아무도 얼씬하지 말라 일렀을 텐데.
얼굴을 와작 구기며 빠르게 그들에게 접근했다.
당장 목덜미를 잡아 올리려는 찰나였다.
“서둘러! 누가 오면 어떻게 하려고 해?”
“오긴 누가와? 카이론이고 파렌 왕자고 한창 관문의 임무때문에 바쁠 텐데. 쓸데없이 이 구석진 곳까지 오진 않을 거야.”
다급한 대화 내용이 들린다.
나는 바로 기척을 죽이고 상황을 살피기 위해 몸을 숨겼다.
“이미 우리 말고도 여럿 다녀갔어. 나도 지금이 두 번째고. 전혀 걱정할 거 없다고.”
젊은 수인족 둘이다.
제법 고급스러운 복장을 걸치고 있는걸 보니 높으신 귀족 자제쯤 되어 보인다.
손에는 웬 열쇠꾸러미를 쥐고 있었다.
‘대체 뭣들 하는 거지.’
달칵-
몇 개의 보안 장치를 푸는 소리가 들려온다.
설마 왕궁의 보물 창고를 터는 건가?
아무리 지금의 왕족들 상황이 복잡할지언정, 이렇게 간 큰 행동을 할 줄이야.
황당하다 못해 이제는 흥미로울 지경이다.
헛웃음을 삼킨 채, 우선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덜컹!
“정말로 열었네. 넌 대체 그 열쇠는 어디서 난 거야?”
“시종장에게 몇 푼 찔러주니까 주던데. 혼자 차지하기에는 너무 과하고, 아마도 동료 몇을 만들고 싶었던 거겠지. 우리야 잘됐지만.”
놈들은 씨익 웃으며 문 안쪽으로 들어간다.
나 역시 그들을 쫓아 보물 창고로 향했다.”
“너무 많이는 안돼. 없어져도 모를 정도만 챙겨.”
이미 와봤다던 그놈은 익숙하게 보석 몇개를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그의 말대로 티나지 않을 만큼 적당한 크기의 보석이었다.
“오늘 카드판 열린다던데, 자네도 갈 거지?”
“당연한 소리를.”
그들은 히히덕거리며 알뜰하게 보물을 담는다.
그 와중에도 입을 놀리는 건 잊지 않았다.
“어차피 파렌 왕자가 수왕이 되면, 잘 구슬려서 이런 보물쯤은 달라고 말할 수도 있을 텐데.”
“글쎄. 동료나 스승으로 누구를 데려왔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카이론을 이길 수는 없겠지.”
“젠장. 그자가 수왕이 된다니? 천박하군.”
“맞는 말이야. 그래도 먼 미래 일은 지금 고민하지 말자고. 오늘도 즐길 일이 한가득이니까.”
“하하! 그래. 이걸로 한 달은 재밌게 놀 수 있겠는데.”
주머니가 묵직해진 그들은 이제 밖으로 나서려 한다.
슬슬 잡아야 할 때.
나는 아직도 열려 있는 문을 닫았다.
쾅!!!!
“헉!? 뭐야? 바람인가??”
두꺼운 철문이 고작 바람 따위에 닫힐 리가.
멍청하다 못해 무식한 소리다.
하긴, 고작 도박판이나 오가기 위해 왕궁 창고를 털 정도라면 이미 앞뒤 분간하지도 못하는 놈들이다.
‘아니면 믿는 구석이 있던가.’
나는 당황해하는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제서야 그놈들은 들켰구나, 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뻔뻔하게 턱을 치켜올린다.
“못 보던 분이군요. 수인족은 아닌 것 같고…… 파렌 왕자님의 동료입니까? 아니면 스승?”
대충 거기까지는 알고 있는가.
왕자놈이니 뭐니 하며, 왕자에 대한 존경심은 내다버렸던 녀석들이 그나마 예의 차리는 시늉은 한다.
하지만 내 구겨진 미간은 도통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쩌겠는가.
이미 죄다 들어 버린 것을.
“귀족이란 놈들이 감히 왕궁을 털어?”
“털다니요? 이건…… 아, 그래. 왕궁 관리비용으로…….”
“관리같은 소리하네.”
결국 나는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놈들은 자기들이 생각해도 개소리라는걸 깨달았는지 슬쩍 걱정되는 기색을 내비친다.
“잠깐! 저희 아버지는 원로의장이십니다! 잘못한 건 알지만, 건드리면-”
건드리면, 뭐.
곤란해질거라는 말 따위를 하려는 건가.
그나저나 원로의장이라면 아까 쥐새끼 수염을 가지고 있던 그놈이군.
어쩐지 개소리하는게 닮았다 싶었다.
나는 심드렁하게 그들을 거꾸로 들어올려, 가진 물건을 모조리 털어 댔다.
와르르-!!
“악!!!”
“이, 이게 뭐하는……!!!”
두 수인족이 피가 몰려 벌게진 얼굴이 될 때쯤.
나는 그들을 내려놓은 후, 검을 꺼냈다.
“허억!!! 검!!!”
“고작 도둑질을 했다고 우릴 죽일 셈입니까!??”
시퍼런 검을 본 얼굴이 사색이 되어 간다.
나는 피식 웃으며 친절히 대꾸해줬다.
“죽이다니, 뭐 그런 살벌한 소리를 하나.”
내가 왕일 때도, 이런 부패한 귀족놈들은 당연하다는 듯 있었다.
특히나 나랏돈을 빼먹었으면 기본 옵션이 사형일 정도로 엄중하게 다뤘다.
당연히 비슷하게 처리해야하는 게 맞지만, 지금은 간단한 경고만 해주기로 결심했다.
‘이놈들로 일벌백계 해야 한다.’
여기서 죽어서는 안된다.
특히나, 이렇게 보는 눈이 없는 곳에서는.
“그, 그래!! 그럼 내가 아버지께 돌아가서 파렌 왕자님을 잘 부탁한-”
휘익!!
“크아아악!!!!”
검을 휘둘렀다.
녀석의 오른손이 금세 주인을 잃고 바닥에 나뒹군다.
옆에서 벌벌 떨며 지켜보던 놈은 이제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헉!!!?? 샤칸!!!”
남의 걱정할 시간은 없을 텐데.
나는 나머지 놈에게도 같은 처벌을 내려주었다.
“아악!!!”
“이만 퇴장할 시간이다, 애송이들아.”
나는 두 놈을 친히 들어올려 창 밖으로 내던졌다.
이정도라면 소문이 단단히 나, 더이상 왕궁에는 얼씬하지도 못할 터.
나중에 모든 일이 마친 후.
파렌에게 손목 잃은 귀족놈들부터 찾아보라 할 셈이었다.
“남은 건 보물인가.”
나는 느긋하게 반짝이는 것들을 인벤토리에 쓸어 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찌나 귀족들이 휩쓸고 갔는지, 생각보다는 그 양이 적었다.
그래도 그럭저럭 입가심은 할 정도.
이제는 돌멩이 하나 남지 않은 보물 창고를 뒤로한 채, 나는 파렌을 찾아 나섰다.
덜컥-
“언제까지 여기에 틀어박혀 있을 셈이지?”
“아……스승님.”
오늘도 역시나, 그는 집무실에 틀어박혀 있다.
하지만 얼굴은 평소보다 밝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깨달았습니다.”
파렌은 뿌듯한 표정으로 말을 한다.
마음에 얹힌 것을 털어냈는지, 한결 후련해 보이는 느낌이다.
“저는 스승님께 수왕의 자리를 드리고 이곳을 떠나려 합니다. 더이상 이 역겨운 왕궁을 마주하기도 힘듭니다.”
멍청한 소리를 더이상 들어주기 힘들다.
나는 바로 그의 등짝을 후려쳤다.
“악!!”
“며칠 동안 고작 생각해 낸 게, 도망이더냐? 별 미친놈을 다 보겠군.”
“스승님??”
“어차피 나도 수인계에 머무를 생각은 없다만. 이곳을 도둑놈들이 들끓게 할 셈은 아니겠지.”
“……물론 왕궁이 어지럽혀질 거라 예상합니다. 하지만 왕궁에 머무르기는커녕, 멀리서 보일 궁전도 너무나 역겹습니다.”
그는 씁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푹 숙인다.
탐탁진 않지만,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수준이긴 했다.
아마도 이곳 자체가 싫어진 거겠지.
그동안 밝은 궁전에서 웃고 떠들며 자랐지만, 지하에는 동생들이 고통받고 있었으니까.
“궁이 문제란 말이지…….”
간단하군.
이정도야 고민할거리도 아니다.
나는 그에게 바로 해결책을 일러주었다.
“철거하지.”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