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57화
“지하 감옥이요?”
어리둥절한 파렌을 향해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자 그는 재빨리 걸음을 옮긴다.
집무실에 왔을 때처럼, 비밀 통로를 얼마나 헤맸을까.
그가 작은 철문 하나를 열자 이끼 냄새 가득한 지하 감옥이 나온다.
“범죄자들을 가두는 밖의 감옥이라면 모를까, 왕궁의 감옥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확실히 창살 안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파렌이 텅 비었다고 자신할 만했다.
하지만 통로의 끄트머리.
그곳에서는 웬만한 자는 눈치채지 못할 만큼 미세한 마나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너, 네 삼촌이라는 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삼촌이요? 음, 사실 제가 태어나고 자랄 때까지 삼촌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알게 된 것은 최근 일이고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그때서야 이야기해 주셨는데…….”
그는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르는지 표정이 어두워진다.
“아버지가 아직 수왕이 되기 전, 큰 사고를 일으키셔서 수인계에서 쫓겨나셨다 하시더군요. 제가 알기로도 삼촌은 바르시엔 대륙에서 어렸을 때부터 떠돌아다니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때……인간들의 노예로 산 시간도 꽤 길었다고 했고요.”
잘못으로 쫓겨나긴 개뿔.
분명 가둬 놓았지만, 어떤 방식으로 감옥에서 빠져나왔을 것이다.
당연히 수인계에서는 머무를 수 없고 추적이 거의 불가능한 바르시엔 대륙으로 도망쳤을 테고.
카이론은 때를 기다린 것이다.
아슬란을 무너트리고, 다음 수왕을 차지할 수 있을 만큼 자신과 세력이 강해질 때를.
‘그놈의 눈에는 이쪽이 완전히 악당이겠는데.’
사랑받는 차기 수왕, 그리고 매일 죽음과 싸워온 그의 형제.
그야말로 눈물겨운 서사다.
하지만 너무나도 뻔하다.
왕은 권력의 정점에 있는 존재.
그까짓 어두운 사연쯤은 다른 왕족들에게도 널리고 널려 있다.
이제와서 동정심이 생기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만, 복잡한 남의 집구석 사정에 끼어든게 귀찮을 뿐.
“너도 참…… 쯧.”
“예?”
“아니, 되었다.”
파렌이 알게 되면 충격 받고도 남을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하며 느낀 바가 있다.
이 녀석은 생각보다 감수성이 여리다.
분명 삼촌이란 자를 안타깝게 여길 게 빤했다.
‘어차피 앞으로 놀랄 일은 쌔고 쌨다.’
굳이 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될 사실이다.
벌써부터 멘탈을 땅에 처박을 수는 없었다.
“우선 이것부터 읽지.”
이걸 읽다 보면 자연스레 모든 짐작을 할 수 있겠지.
내가 방금 그랬듯이.
파렌에게 아까 가져온 책을 던져주었다.
그는 답답한 얼굴로 조심스레 책표지를 살펴본다.
그 와중에 불만 한마디 내뱉지 않는 게 나름대로 기특했다.
“조금 뒤로 물러서는 게 좋을 거야.”
간단한 경고를 한 후 검을 고쳐 잡았다.
마나가 흘러나오는 벽.
척 봐도 각종 결계 마법이 숨겨진 걸로 보인다.
들고 있던 검에 마나를 강하게 불어넣었다.
콰앙!!!!
“헉!? 스승님!?”
“내가 한 말 잊었나? 책이나 읽고 있어라.”
내 말에 파렌은 말없이 자리를 잡고 앉아 종이를 넘긴다.
나는 그를 뒤로한 채, 무너진 벽돌 사이를 헤집고 들어갔다.
‘보물 창고 보호도 이보다는 덜 하겠군.’
앞에는 푸른 빛을 띄우는 철문이 보인다,
아만다티움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물질이 고작 문으로 사용되다니.
고작 감옥의 문짝 따위로 사용하기에는 과분하다.
콰직-
문을 통째로 뜯어 내었다.
그리고 몇 걸음 걷자, 다시 문이 나타난다.
‘대체 카이론은 여기를 어떻게 빠져나온 거지?’
물론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맨손으로 떼어 내는 중이지만,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문은 견고하고 결계 마법은 고대의 것.
그것도 최소 8서클 이상으로 보인다.
사실상 SS랭크 이상의 헌터가 두어 명은 와야 간신히 탈출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내부의 조력자? 아니면 진짜 숟가락이라도 들고 십 년 넘게 땅굴을 판 건가.’
터무니없는 생각이지만 왠지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얼굴만 봐도 보통 독해 보이는게 아니었으므로.
그렇게 별별 생각을 하며 기계처럼 계속 나타난 문을 한 서너 개쯤 뜯었을까.
안쪽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느껴진다.
“여기인가.”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다.
심지어 감옥 치고는 지나치게 안락하다.
앞을 가리고 있는 거대한 창살이 아니었다면 어느 가정집에 온 느낌이 들 정도였다.
챙강!!!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쇠창살을 베어 냈다.
그리고 천천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곳에 쌓여 있는 빈 그릇들이 보인다.
옆에는 먹다 남긴 음식이 있었다.
척 봐도 상태가 좋지 않은, 묽은 스프와 딱딱한 빵 따위였다.
‘일부러 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였던 모양이군.’
부실하기 짝이 없다.
분명 기력을 빼놓기 위함이었을 터.
미간이 절로 구겨진다.
나 역시 먹는데에는 진심인 한국인이다.
도무지 그냥 넘기지 못할 광경이었다.
“크르륵…….”
그때, 작게 열린 문 틈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린다.
대뜸 다가가 문을 확 열었다.
“크륵!!”
제일 먼저 보인 것은 파렌을 닮은 밀빛 머리카락.
하지만 관리가 되지 않아 잔뜩 헝클어져 있다.
그리고 얼굴을 거의 가린 머리카락 사이로, 샛노란 눈동자가 보인다.
누가 봐도 경계심으로 가득한 눈빛이었다.
“너희군. 그 쌍둥이가.”
뒤에도 비슷한 형상의 수인족이 하나 더 있었다.
딱 보니 남자와 여자 쌍둥이다.
두 명은 모두 긴 쇠사슬로 목줄이 매여 있다.
그 모습이 마치 가축을 연상케 한다.
말조차 못하는걸 보니 사회화는 커녕, 죽지 않을 정도의 의식주만 챙겨준 모양이었다.
“쯧. 수왕이란 놈들이 하나같이 겁쟁이에, 미친놈들이군.”
나이는 열 살 언저리나 되었을까.
작은 몸은 부서질 듯 말라 있다.
무심한 나조차 혀를 차게 하는 몰골이었다.
‘어린 녀석들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저 태어난 게 죄가 될 수 있을까.
쓴웃음이 배어 나온다.
나는 그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크르르르륵-”
쌍둥이들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나를 잔뜩 경계한다.
아랑곳 하지 않고 자세를 낮추며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날이 서있던 표정이 풀려간다.
“크륵?”
“크릉…….”
그렇게 말없이 오 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그들의 눈동자는 서서히 호기심으로 물든다.
나는 손을 들어올려 지저분한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킁!!!”
“이상하게 고아들에게는 약하단 말이지.”
나 역시 고아원에서 자라서 그런걸까.
부모에게 버림받은 사실 자체가 슬프다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같은 처지에 놓인 자들이 마음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귀환 전, 아스티란에 있을 때 수많은 전쟁 고아를 키워 낸 것도 그 탓이었다.
피식 웃음을 지으며 두 명의 머리를 번갈아 가며 쓰다듬었다.
“으르릉…….”
“끼잉…….”
손길이 닿자, 쌍둥이들은 급격하게 안정을 찾는다.
심지어 은근슬쩍 몸을 부비기도 했다.
한참을 그렇게 말없이 그들과 있던 도중.
뜬금없이 시스템 음이 울려 퍼진다.
띠링-
[수인족 쌍둥이가 당신에게 귀속되길 원합니다.]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익숙한 펫창이 떠오른다.
나는 시스템창을 살피다, 쌍둥이와 눈이 마주했다.
경계는커녕, 이제는 완전히 호감이 섞인 눈동자들.
심지어 꼬리는 개도 아닌데 맹렬하게 좌우로 흔들리고 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처음 수왕의 기록을 읽을 때부터 어렴풋이 짐작했다.
내가 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을.
여태껏 거두었던 아스티란의 고아들과 마찬가지였다.
“수락하겠다.”
[현재 수인족들은 이름이 없는 상태입니다. 이름을 지어주세요.]
설마하니 이름조차 없던 건가.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아슬란의 욕을 중얼거렸다.
“……아비라는 놈이.”
“끄응?”
고개를 갸웃거리는 쌍둥이를 보며,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작명에는 영 솜씨가 없는데.’
특히나 타 대륙의 이름은.
뭐, 어쩔 수 없나.
그렇다고 형제인 파렌과 비슷한 이름을 붙여 주긴 싫었다.
“준과 란으로 하지.”
나와 비슷한 외자 이름이다.
간단하니 그럭저럭 부르기도 쉬울 테고.
그들을 향해 슬쩍 웃어 보이자, 쌍둥이는 마치 나를 따라하듯 입꼬리를 들어올린다.
[수인족 준, 수인족 란이 귀속되었습니다.]
[플레이어에게 복종하게 되면서, 쌍둥이 남매에게 걸려있는 강력한 정신계 고대 마법이 흐려지게 됩니다.(현재:1%, 남은 시간:365일)]
‘……고대 마법?’
어쩐지 지나치게 동물의 본성에 가깝다 싶더니.
별 미친 짓거리를 다 해 놓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설명을 보니 천천히 이지를 되찾을 터.
오직 시간만이 해결해 줄 문제였다.
“준……?”
갑자기 남자 쌍둥이가 본인을 손가락질하며 중얼거린다.
고대 마법이 흐려지면서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였다.
“그래, 너는 준. 그리고 너는 란이지.”
“준…… 란…….”
그들은 해맑게 웃으며 이름을 중얼거린다.
그리고 그때.
뒤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왔군.”
“……스승님.”
잔뜩 잠긴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리자 역시나 파렌이었다.
그는 나와 쌍둥이를 번갈아 쳐다본다.
한껏 울다 왔는지 눈시울이 붉었다.
“이게 사자족인지, 개구리족인지 모르겠군.”
퉁퉁 부운 눈두덩이를 보며 놀리자, 그는 다시 왈칵 눈물을 흘린다.
나는 망부석처럼 서있는 파렌의 팔을 이끌었다.
“인사 안 하나? 처음 보는 네 동생들인데.”
“……예. 제……동생들이죠.”
“그래. 이름은 준과 란. 내가 붙여 줬다.”
“……이름까지 붙이다니. 혹시, 스승님께 각인하였습니까?”
그는 각인에 대해 들먹인다.
일명 ‘수인족의 맹세’.
성인이 되지 않은 수인족이 평생에 단 한 번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수인족들이 유난히 노예로 많이 팔리는 이유이기도 했다.
한 번 각인한 상대에게는 무조건적인 복종을 하게 되니.
“맞다.”
나는 덤덤하게 말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파렌의 얼굴은 혼란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무언가 결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스승님이라면 괜찮겠죠. 저와 수인계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더 나을 테고요. 사실, 동생들을 이 더러운 왕궁에 더 이상 남기고 싶지도 않습니다.”
파렌은 떨리는 눈동자로 쌍둥이 남매를 마주한다.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환한 미소를 띄웠다.
“……안녕, 내 동생들.”
그리고 왕족의 비밀들.
그는 듣지 못할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