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35화
콰앙!!
주먹이 하늘을 갈랐다.
순간 허공에서 찢어지는 듯한 파공음이 퍼져 나간다.
[실피드! 내 바람의 딸아!! 아이고!!]
푸드덕-
동시에 옆에 있는 비둘기의 퍼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부터 조금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정령신이었다.
쿵!!
“끼에엑!”
복부를 얻어맞은 실피드가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힘겨워 보이는 상태와는 다르게 눈빛은 여전히 형형하다.
지금껏 두들겨 맞은 지도 꽤 한참 지났는데, 버티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정령왕이라 맷집이 좋은가.’
그래 봤자 시간문제에 불과할 뿐이다.
실피드는 처음과는 달리, 지금은 반격조차 하지 못했다.
슬슬 정신을 잃을 때가 된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적개심 가득한 눈동자를 마주하며 다시금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이제껏 꽂아 넣은 공격 중 제일 묵직한 소리가 들려온다.
제대로 들어간 주먹이었다.
실피드는 이번만큼은 버티지 못하고 크게 비틀거렸다.
[헉!! 그건 피했어야지!]
그 모습을 본 정령신은 안절부절못하며 어쩔 줄 모른다.
내가 없었다면 당장 그녀에게 달려가고도 남았을 만큼, 서글픈 목소리였다.
“대체 너는 누구의 편인거냐.”
아까부터 쫑알대는 정령신이 슬슬 거슬리기 시작한다.
나는 하던 공격을 멈추고 그의 날갯죽지를 잡아들었다.
[당연히 정령…… 이 아니고 그대의 편이지!]
살벌한 내 표정을 읽은 비둘기가 금세 꼬리를 내린다.
상황 판단하나는 제법 빨랐다.
“네가 그리 아끼는 실피드와 나란히 무덤에 묻히고 싶지 않다면,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다.”
[아니, 소멸시키지 않기로 약속하지 않았나!]
“물론 잊지는 않았어. 다만, 계속 이따위로 행동한다면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지.”
[……크윽, 알겠네…… 그래도 조금 살살해 주면……]
콱!
비둘기의 몸통을 강하게 움켜 쥐었다.
옥죄여오는 손아귀의 힘에 정령신이 움찔한다.
그저 협박이 아님을 깨닫고, 그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이제야 조용하군.’
나는 다시 실피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녀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공중에 떠 있던 마나가 실피드를 중심으로 다시금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물론 그 힘은 미약했으나, 나를 의아하게 만들기는 충분했다.
‘분명 공격할 만한 기운은 없을 텐데.‘
힘겨워 보이는 표정이지만 눈빛은 지독하다.
마치 생명을 유지하는 마나까지 모조리 끌어내는 듯했다.
[차라리 그냥 기절해 버리지…… 실피드, 대체 왜 그러는 것이냐!]
비둘기가 다급하게 중얼거린다.
그조차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크르륵…….”
나는 날뛰기 직전인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여태껏 나와 눈을 마주치던 눈동자는 다른 곳을 향해 있다.
그 시선의 방향을 쫓자, 곧 그녀가 내 손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확히는 나에게 아직 잡혀 있는 정령신이었지만.
‘그러고보니 아까와는 반응이 달라진 것 같은데.’
분명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정령신이고 나발이고, 무작정 나를 향해 덤벼왔다.
그 공격을 피하느라 정령신도 이리저리 움직였어야 할 정도였다.
<타락>으로 완전히 정신을 놓았기에 그 정도야 예상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왜? 지금 와서 달라질 만한 일은 없었는데.’
설마 내 착각인가.
혹시나 싶은 마음에 다시 손에 힘을 주었다.
[꾸엑!!!]
“크륵!!!!”
실피드의 눈이 당황한듯 크게 떠진다.
그리고 또다시 쏟아지는 분노 어린 시선.
당장이라도 나를 찢어 죽이고 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공격해 오지 않았다.
“허?”
생각보다 상황이 재밌게 돌아가는데.
나는 비둘기를 몇 번씩이나 쥐어짜며 실피드를 쳐다보았다.
그때마다 그녀는 움찔거리며 눈알을 굴린다.
[윽!!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참다못한 정령신이 소리를 꿱 지른다.
나는 그의 몸뚱이를 휙 들어올렸다.
“뭔가 느끼는 게 없는가?”
[대체 무엇을???]
“미쳤다던 정령왕이 너만 애타게 보고 있지 않나. 그것도 하던 공격마저 멈추고.”
그제서야 그는 실피드와 잠자코 눈을 마주한다.
몇 초 간의 정적 후.
비둘기는 부리를 크게 벌리며 경악했다.
“크륵…….”
[실, 실피드?? 정신을 차린 건가???]
“완전히는 아니지만, 조금은 돌아온 것 같더군. 아직 봉인이란 건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데.”
[그럴리가……]
그는 혼란스러운 듯,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까짓 구타 몇 번 당한다고 미친놈이 제정신으로 돌아올 리는 없다.
박민호를 봐도 그랬다.
단연코 그놈은 전 차원을 통틀어 내게 제일 많이 얻어맞은 놈이다.
헛소리를 늘어놓는 즉시 주먹이 날라갔으니까.
과거에 죽기 직전까지 팬 것도 여러 번.
요즘은 조금 나아졌다지만, 그래도 박민호는 여전히 철이 없는 편이었다.
‘주먹이 마법도 아니고, 상태 이상을 풀어내는 효과는 없을 텐데.’
물론 마법같이 화려한 주먹질은 내 특기지만.
다시 정령신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정령왕을 <타락>에서 풀어내는 방법은 마나가 풍부한 장소에 가두는 것.
자세한 건 듣지 못했지만, 많은 마나를 흡수할수록 제정신이……응?
“비둘…… 아니, 정령신. 분명 정령왕을 돌려놓기 위해서는 마나가 필요하다고 했지?”
[그것도 아주 강력하고 순수한 마나가 필요하지. 웬만한 드래곤은 엄두도 못할 만큼의 힘이. 그러니 그대의 스킬도 각성 시켜 준 것이 아니던가.]
“마나라…….”
나는 서서히 주먹을 쥐었다.
약간의 기운을 불어넣자, 손 전체는 마력으로 인해 푸른빛이 넘실거린다.
여태까지 실피드를 비명지르게 했던 힘이었다.
[그래, 다시 일을 시작할 셈이지? 더이상은 보기도 힘겨울 정도야. 차라리 빨리 끝내주게.]
“아직 둘이나 남았는데, 엄살은.”
[하……그렇군. 아직 정령왕이 둘이나 남았었지……]
그는 결국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실피드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마주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퍼억-!!
재차 주먹을 움직였다.
실피드는 움찔거리기만 할 뿐, 그대로 공격에 노출되었다.
이제는 반항마저 포기한듯 조금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끼에엑…….”
“조용히해라. 지금 잔뜩 집중하고 있으니.”
주먹에 들어가는 힘을 최대한 뺐다.
하지만 마나는 최대한 많이.
아까와는 정 반대의 공격 스타일이었다.
‘아직은 그냥 추측이지만…….’
예상이 맞다면 슬슬 효과가 올 터.
그저 한참을 말없이 주먹질에 열을 올렸다.
한 삼십분쯤 흘렀을까.
실피드의 풀려 있던 동공에 초점이 서서히 돌아온다.
‘……진짜 효과가 있는 건가.’
“크르륵……!!큭!?”
잠자코 얻어맞던 그녀가 공중에 팔을 허우적거린다.
살기만 가득했던 얼굴은 당혹으로 물들어 있었다.
“크윽!! 잠,잠깐!!!”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공중에 울려 퍼진다.
나는 하던 공격을 멈추고 그녀에게서 한발자국 물러났다.
그러자 내가 있던 자리를 채우듯, 비둘기가 서둘러 날아왔다.
[……실피드!!???]
“……정령신님……?”
[오오…..나의 딸아, 괜찮느냐??]
“모, 모르겠어요, 윽……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크르르-”
아직 좀 모자랐나.
또다시 가래 끓는 소리를 내는 실피드에게 다가갔다.
퍽!!!!
[아이고!!]
재차 얻어맞은 그녀의 눈동자가 다시금 또렷해진다.
매 타작이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이다.
‘역시 내 가설이 맞았군.’
나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감동적인 재회를 하던 정령부녀는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특히나 실피드는 거의 기절할 듯한 낯짝이었다.
“……설마, 제가 저 인간의 주…… 먹으로 정신을 차린 건가요?”
[크흠, 큼! 물론 내가 생각은 방향은 아니었단다.]
“방법이야 어찌되었던 간에, 결과만 좋으면 된 것 아닌가.”
심지어 이건 그가 제시한 방향보다 빠르고 확실했다.
말이 봉인이라지만 정령왕들이 언제쯤 제정신을 차릴지 기약할 수도 없다.
재수없으면 십 년쯤은 우스웠을 테고.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나와는 다르게, 그들은 영 떨떠름해 보인다.
“미친 소리 같지만 저렇게 자신감 있게 말하니 설득력이 느껴지네요…….”
[……사실 맞는 말이긴 하지.]
“음, 그래요. 어쨌든 큰 신세를 지긴 했으니까요.”
그녀는 빙긋 웃더니 사뿐히 날아온다.
그리고는 거리낌없이 나와 거리를 좁혔다.
‘뭘 하려는 거지.’
서서히 실피드의 얼굴이 다가온다.
적의는 없어 보이기에 우선 잠자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쪽-
[바람의 정령왕이 축복의 인사를 전합니다.]
[7일동안 바람 속성 저항력 +500%]
순간, 그녀의 입술이 볼에 스치듯 닿았다 떨어진다.
부드러운 하늘빛 머리카락은 어깨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인상을 와락 구기고 실피드를 쳐다보자, 그녀는 한쪽 무릎을 굽히며 인사를 한다.
마치 고위 귀족 여인을 보는듯, 완벽하게 우아한 자세였다.
“감사합니다.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영원히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겠죠.”
“고마움의 표시는 물질로 오가는 게 좋다만.”
“그건 걱정 마세요.”
그녀는 머리에 쓰고 있던 끈장식을 건넨다.
군데군데 조그마한 구슬도 엮인 물건이었다.
일단 건네받자, 손에 닿는 즉시 빛이 터져 나온다.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의 왕관을 획득하였습니다.]
매듭 모양의 끈은 서서히 모양을 바꾼다.
그리고는 곧 날렵한 곡선의 은빛 왕관이 완성되었다.
이제 남은 왕관은 세개인가.
‘갈 길이 멀군.’
정령신에게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는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린 채, 나와 실피드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고맙네, 인간이여. 정말 고마워. 이리 멀쩡한 실피드를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이런, 울지마세요. 그동안 힘드셨나 보네요.”
[널 마나가 가득한 공간에 가둬 놓을 생각을 했단다. 그것도 아주 긴 시간 동안……]
그는 급기야 고해성사라도 할 기세이다.
그러나 점점 축축해져 가는 비둘기와는 반대로, 실피드는 씁쓸하게 웃는다.
“……틀린 생각은 아니네요.”
그녀는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린다.
내내 띄우고 있던 미소는 깨끗하게 지워진 채였다.
“부탁이 있어요, 다음 정령왕님. 저를 부디 정령신께서 말하신 공간에 가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