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57화
“존 지부장님, 게이트 출구가 열렸습니다!”
드디어 온 미국이 걱정하며 주시하던 S급 게이트가 공략이 완료되어 출구가 열렸다.
게이트 주변을 통제하며 모두가 헌터들의 무사 귀환을 위해 믿지도 않는 신을 찾으며 기다린 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다.
며칠은 걸릴 거라 생각했지만 다행히 강원도 때와 마찬가지로 보스 몬스터를 바로 찾아내는 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중상자가 있을 겁니다. 모두 준비하세요.”
아무리 SSS급 헌터가 참여했다지만 존은 S급 게이트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고, 특히나 그 용병왕의 안하무인인 성격은 더 잘 알고 있었다.
‘미국 헌터들을 버리고 오지만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존은 긴장하며 제발 한 명이라도 더 살아 있길 바라며 게이트를 두 손 모은 채 쳐다보았다.
하지만…….
“대체 왜 나올 생각들을 안 하는 거야?”
게이트 출구가 열린다면 5분 내로 헌터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S급 게이트에 꿀이라도 발라 놨는지, 아니면 게이트 안이 너무 좋아 살림이라도 차리려 작정했는지 30분이 지나도 헌터들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비상사태입니다. 당장 상부에 보고하세요!!”
그의 머릿속에는 보스 몬스터를 간신히 처치하고 전원 사망, 이라는 최악의 사태가 상상 되고 있었다.
미국의 헌터 협회 직원들도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굳은 표정으로 여기저기 바쁘게 전화를 돌렸다.
대체 어떤 말부터 상부에 보고해야 하나.
존이 거의 울먹이고 있을 때 주변에서 환호성과 함께 헌터들이 차례로 출구를 빠져나왔다.
“여러분……!”
“존 협회장님, S급 게이트 공략 완료되었습니다. 사망자와 부상자는…… 없습니다.”
길리안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무사 생환을 알려 왔다.
하지만 그는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소식에 정신이 나갈 듯이 기뻐 길리안의 표정이 굳어 있는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역시 길리안 헌터님, 당신은 우리 미국의 영웅입니다!”
“영웅이라…… 제가 감히 그런 칭호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군요.”
존이 길리안이 씁쓸하게 중얼거리는 것을 듣지 못한 채 체통도 지키지 못하고 임시로 지어진 게이트 앞 막사로 뛰어가고 있는 사이 공략대 헌터들에게 다른 헌터들과 직원들,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재빠르게 다가왔다.
“길리안 헌터님! 이로써 두 번째로 S급 게이트를 공략하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축하드립니다! 심지어 전원이 무사하다니! 이는 다시없을 공략일 겁니다!”
미국의 헌터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이 출구에서 남은 한국 헌터들도 나타났다.
자리가 없어 미국 헌터들을 인터뷰하지 못한 다른 기자들도 슬금슬금 한국의 길드장들에게 다가갔다.
“천상 길드장님, 미국의 시민으로서 이렇게 발 벗고 나서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혹시 게이트에 참여하게 되신 이유를…….”
“자유 길드장님, 게이트 공략에 특별히 어려운 점이 있으셨나요?”
“아레스 길…… 아,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강준하의 카메라 부시는 솜씨는 익히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의 주변은 마치 8서클 배리어가 쳐진 듯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자신의 가족인 헌터를 찾는 목소리, 수십에 달하는 기자들의 웅성거림이 울려 퍼졌다.
S급 게이트라는 재앙을 부상자 하나 없이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감으로 모두가 즐거워하며 떠들고 있었다.
그때였다.
“씨발, 왜 이렇게 시끄러워.”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라고 했던가.
게이트를 막 빠져나온 진이 다짜고짜 조용히 욕을 지껄였다.
본인 딴에는 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워낙 촘촘히 밀집해 있던 게이트 앞이었는지라 그의 말을 알아들은 모두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뭐지? 하던 거 마저들 해. 왜 갑자기 이렇게 조용해져?”
축제 같던 분위기를 가볍게 말아먹은 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아무렇지 않게 사방을 헤치고 걸어간다.
감히 그 앞을 막을 수 없다는 듯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앞길을 조용히 터 주었다.
‘SSS급이잖아. 인터뷰 하고 싶다…….’
‘근데 강준하 헌터처럼 카메라가 터지는 게 아니고 내가 터질 것 같다.’
누가 봐도 신경질적인 그 모습에 등 뒤만 바라볼 뿐, 차마 개미 새끼 한 마리도 그를 방해하려 들지 못했다.
* * *
[홍: ㅋㅋㅋㅋㅋ 다들 이거 봄? -링크: SS급 게이트 나오자마자 용병왕 한마디.avi-]
[각성자 커뮤니티]
제목: SS급 게이트 나오자마자 용병왕 한마디.avi
조회 수: 413,556
영상 첨부: “×발, 왜 이렇게 시끄러워.”
-SS급 게이트를 최단 시간으로 14시간 만에, 그것도 전원 생존에 부상자도 없이 공략대 이끌어 놓고 처음으로 하는 말 ㅋㅋㅋㅋㅋㅋㅋㅋ
-용병왕이 용병왕 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더니…….
-우리야 익-숙하지만 외국 놈들 저 SSS급 대체 뭐냐고 떡실신 하는 중.
└순순: 싸가지 진짜 뭐임ㅋㅋㅋㅋ 국가 차원에서 지원 간 건데…… 외교고 나발이고 망했다.
└블루마틴: 근데 그 와중에 오히려 겸손하지 않은 게 멋있다는 반응도 몇몇 있음…….
└걔네는 이런 거 처음 보는 거니까…… 그치만 우린…… 매일…….
└아이디진짜몇글자냐고: 슬슬 청학동이라도 보내서 예의범절 교육이라도 시켜야 되는 거 아니냐ㅋㅋㅋㅋ
└고양이가세상을구한다: 대체 누가 보낼 수 있어? 청학동 다 때려 부수고 나올 듯.
└왈왈왈: 인정…… 이쯤 되면 그냥 우리가 용병왕한테 맞추는 수밖에 없다.
└단짠단짠: 그래도 모두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네. 솔직히 용병왕 아니었으면 S급 게이트 다치지도 않고 돌아오진 못했을 듯.
[영원: ^^;; 뭐 결과가 중요하지요……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마법최고: 맞아요! 드라이어드 만났을 땐 진짜 죽는 줄……. 저 그때 이후로 마력 회복 물약은 쳐다보기만 해도 구역질 나요.]
[초코짱: 나도 갈 걸…… 재밌었겠다. ㅠㅠ]
[가을하늘: 홍현민 헌터님, 1랭크 채널에 제발 이런 건 들고 오지 마십시오…….]
[홍: 어쩔.]
[세하세하: 길드장님……. 그만…… 제발요……. 죄송합니다, 박신우 헌터…….]
[진우주최고최강위대한형님: 형님을 음해하려는 악독한 무리가 틀림없습니다!! 형님, 제게 맡기시면 제가 커뮤니티 글 삭제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SS급 게이트에서 나온 뒤 헌터들의 편의를 위해 미국 협회 측에서 제공해 준 호텔 스위트룸에서 쉬고 있는데, 쓰잘데기 없는 채팅들이 보인다.
저놈의 1랭크 채널은 게이트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쉬지도 않고 울리네.
혹시나 해서 켜 본 채널 채팅장에는 역시나 영양가 없는 정보들로 가득했기에 미련 없이 시스템창을 닫아 더 이상 보이지 않게 했다.
“자유 부길드장도 참 고생이야…….”
아마도 자유 부길드장의 대부분 일정은 홍현민의 주둥아리를 막는 데 쓰일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데 침실에서 아렐리아가 날아온다.
“[마왕님, 티타니아에 대해서는 정말 말 안 해 주실 거예요? 분명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 같았는데?]
딱히 설명을 안 할 생각은 없었는데.
호텔로 이동할 때부터 시끄럽게 떠드는 아렐리아를 계속 무시하고 있었더니 한동안은 조용히 하다가 내가 샤워를 마치고 나올 때부터 계속 이 모양이었다.
“그걸 설명하기 전에 일단 이것부터.”
인벤토리를 열어 요정계에서 얻었던 요정왕의 왕관을 테이블에 꺼내 놓았다.
[요정왕의 왕관[??]: 요정족의 왕이 된 자가 가질 수 있는 왕관. 고대 요정계의 초대 요정왕이 요정수의 가지를 엮어 만들었다고 한다.
6개의 종족이 가진 모든 왕관을 모은다면 신에 필적할 만한 힘을 얻게 된다고 한다. <보유한 왕관: 1/6 요정계의 왕관>]
“[이건…… 요정왕의 왕관? 티타니아가 어쩐지 이상하게 굴더니…… 역시 마왕님! 그 짧은 시간 동안 요정계를 파괴하고 온 것인가요? 대단하세요!]”
‘파괴까지 하고 온 것은 아니지만 그 비슷한 것을 할 뻔하긴 했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는 아렐리아의 기대를 지켜 주기도 할 겸, 꽤 긴 설명을 해야 하기에 귀찮은 말도 아낄 겸 대답 없이 그녀의 매끈한 뒤통수를 쓰다듬어 주었다.
“요정왕이 되었더니 왕관을 주던데. 요정왕이라는 칭호도 얻었고. 그런데 아무리 칭호 쪽을 찾아봐도 마왕 칭호는 없어서 말이야. 아마 시스템상으로 왕관을 가져야 정식으로 부여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왕관이라…… 확실히 마왕의 성에 그런 것이 있었던 것 같네요. 전대 마왕은 챙기는 걸 귀찮아해서 어딘가 창고 구석에 처박아 놨던 것 같고…….]”
“결국 왕관이 없어 마족들은 나를 마왕으로 여기고 있지만 반쪽짜리 마왕이 된 셈이지.”
“[반쪽짜리라니요! 어떤 찢어 죽일 놈들이 그런 소릴 한단 말인가요? 제가 모조리 도륙을……!]”
“그런 건 아니고…… 하여튼 왕관이 마왕성에 있다면 그걸 가져와야겠네. 직접…… 가야 하나…….”
말을 흐리며 아렐리아 쪽을 슬쩍 봤다.
‘그렇다고 내가 갈 순 없는 일이니까.’
차원문은 자동문마냥 쉽게 오고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마계까지 다녀오려면 대체 어느 정도 고생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내 의도를 읽은 눈치 빠른 그녀는 의욕에 가득 차 신나게 말을 했다.
“[아,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다녀올까요? 왕관에 손대는 것은 무례이긴 하지만 마왕님만 괜찮다면요. 전에 마왕성 창고에 있는 아티팩트들도 원하셨으니까 그것도 가져오고요!]”
“마왕이 아닌데도 마왕의 왕관을 쉽게 들고 올 수 있는 건가? 그게 가능하면 나야 좋지만…….”
마왕의 왕관을 아렐리아가 소유하게 되면 다음 대 마왕은 아렐리아가 되는 건가?
하긴, 그게 가능했으면 지금의 마계에는 새로운 마왕이 탄생하고도 남았겠지.
발록이 나를 잡겠다고 지구로 넘어올 일도 없었겠고.
“[마족들은 그 왕관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는지도 몰랐을 거예요. 역대 마왕들도 그닥 신경 쓰지 않아 했기에……. 저조차도 마왕님께서 알려 주셔서 방금 그 필요성을 알았는걸요.]”
“인간인 나와 마족인 그들은 마왕이 되는 시스템이 다를 수도 있겠지.”
“[그럼 바로 가져올게요! 며칠 걸리지 않을 거예요! 이곳의 시간으론 고작 몇 시간…….]”
“아, 그거. 시간의 비율이 변경됐다는 알림이 뜨던데. 여기와 마계의 시간은 똑같을 거야.”
“[네? 그런……. 아, 설마 요정왕이 되시면서 시간의 축이 변경된 건가요?]”
“그래, 뭔가 아는 게 있나?”
내 말에도 그녀는 곰곰이 무언가 생각하며 대답이 없었다.
한동안 고민에 집중하더니 결국은 포기한 듯 무릎에 내려앉는다.
“[글쎄요, 확실한 건 뒤틀린 시간의 축이 돌아왔다는 것밖에 모르겠네요.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해요.]”
뒤틀린이라, 기존이 잘못된 시간이었다는 건가.
미간을 찌푸리고 이 현상에 대해 나도 고민해 보았지만 역시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하여튼, 그럼 좀 걸리겠네요. 일단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요.]”
“그럼 부탁하마.”
“[네!! 그동안 쉬고 계세요!]”
그렇게 아렐리아가 마계로 돌아갔다.
아무리 금방 온다 호언장담했지만 마계 대공 자리가 그냥 누군가에게 맡겨 두면 알아서 굴러가는 자리도 아니고.
영지도 둘러보랴, 밀린 업무도 본다면 최소 일주일은 걸릴 것이다.
그녀가 떠나고 혼자만 남은 호텔 방 안에는 적막감이 떠돈다.
“……조용하군.”
……라고 얘기하자마자 문밖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진 헌터님, 계십니까?”
‘지금 타이밍에 나를 찾아올 사람은 없을 텐데.’
저녁에는 S급 게이트를 무사히 공략한 것을 기념하는 파티가 열릴 예정이다.
아마 지금쯤 공략대에 참여했던 헌터들은 휴식을 취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터.
의아해하며 문을 열자 그곳에는 낯이 익은 한국 헌터 협회의 직원들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