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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55화 (55/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55화

절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티타니아.

그녀는 쉴 새 없이 조그마한 입술을 달싹거린다.

“이게 무슨……. 요정수를…… 파괴한다니…….”

하지만 정작 내가 듣고 싶은 말은 해 주지 않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생에 다시 없을 개똥 같은 뻥카를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시인 것마냥 자신만만하게 들고 있는 나에게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긴 시간처럼 느껴진다.

‘젠장, 빨리 처리하고 공략대 놈들 뒤치다꺼리 하러 가야 되는데…….’

당혹스러운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내가 급작스럽게 사라진 지도 두세 시간은 족히 지났을 시점인지라, 우왕좌왕 헤매고 있을 공략대 놈들이 심히 걱정되었다.

점점 초조해지는 상황이지만 그녀의 입장도 이해가 되긴 한다.

하긴, 타락한 세계일지언정 나름 멀쩡하게 지내다가 웬 강도가 나타나서 집문서와 땅문서를 다 내놓으라고 하면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가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나는 친절하게 도움을 주기로 결정했다.

“<극의의 일격>!”

그건 바로, 말이 아닌 몸소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요정수가 파괴될 수 있다는 막연하기만 한 상상.

그 상상을 좀 더 현실성 있는 장면으로 만들어 주는 작은 친절이랄까?

[스킬 <극의의 일격>이 놀랄 만큼 정확한 지점을 공격합니다! 50회 공격 보너스, 해당 대상 공격력 +50%…….]

콰앙-!!

요정수가 아까보다도 더 큰 굉음과 함께 흔들거린다.

달려 있던 열매도 진동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씩 떨어지고 있었다.

“<극의의 일…….>”

“그만!!”

‘됐다!!’

절규하듯 울부짖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씰룩거리는 입가를 애써 고정한 채 가능한 차가운 눈초리를 유지하며 그녀와 눈을 응시한다.

명백한 공포와 불안을 담고 있는 눈빛.

다행히 사기 행각이 걸리진 않은 듯하다.

폭력을 이용한 협박질은 내 특기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해 보는 거라 잘 안 될까 싶었는데…….

역시나 제대로 먹혀들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온 요정계를 없애려 하다니…… 말도 안 되는…….”

“말이 되고 안 되고는 내가 판단해. 그깟 요정계, 어차피 너희 요정족들에게나 중요한 곳이지 나에게는 하등 가치가 없다.”

“과연 인간답게 이기적이기 짝이 없군요. 모든 차원계는 태초의 균형 아래 존재하거늘, 그걸 지탱하는 한 차원계를 멸망시킨다면 다른 곳들은 무사하리라 봅니까?”

시오스를 파괴해 그 균형을 몸소 깨려 했던 당사자가 중얼거린다.

물론 그들이 인간 전체를 없애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은 소수의 인간이 남아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대륙에 머무르는 몬스터들을 상대하며 살아남기엔 그들은 너무도 약할 테니 앞으로 다가올 멸망을 기다리는 일밖엔 하지 못하겠지.

“적어도 너희 손에 농락당하는 것보단 낫겠지.”

그녀는 입을 다물며 이를 악문 채로 나를 바라본다.

이젠 피해자 행세를 하는 그녀와 입씨름하는 것도 지쳐 간다.

“이만하면 내 의지는 모두 전해진 것 같은데. 왕의 자리를 넘기든가, 요정계의 멸망이든가. 이만 선택할 때야, 요정 여왕 티타니아.”

“……알겠습니다. 하지만 약속해 주실 것이 있습니다. 요정왕이 된다 하여도 새로 태어나는 요정들이라면 모를까 기존에 있던 요정들은 반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잘 타이를 테니 앞으로 저희 요정족들은 부디 건들지 말아 주세요.”

“왕 된 자로서 그럴 리가 있나? 나름 왕 자리는 경력직이기도 하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요정왕은 처음이지만 아스티란에서 대륙을 통일한 대제까지 2백 년 넘게 왕이었던 나였다.

그리고 멸망하기 직전인 이곳에 머무르며 요정왕 노릇 할 맘은 없었다.

왕 자리를 물려받고 기존처럼 티타니아에게 모든 것을 맡길 예정이다.

일명 바지사장이라고도 하지.

바쁜 일이 지구에 잔뜩 있는데 요정계에서 낭비할 시간은 없으니까.

“그럼 다 끝난 건가? 너의 인정을 받고 요정왕이 되는 건 오래 걸리는 것인가? 뭘 하면 되는 거지?”

도끼를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다가갔다.

싫은 기색을 숨기려 하지 않는 그녀가 대놓고 한숨을 푹푹 쉬며 나를 쳐다본다.

마치 벌레라도 보는 시선이다.

“당신 같은 자를 요정왕으로 섬겨야 한다니…… 정말 끔찍하군요.”

“나도 딱히 섬김받을 생각 없으니까 피차일반이군. 여기서 왕이랍시고 이래라저래라 할 생각 없으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도록. 볼일만 끝나면 바로 지구로 돌아갈 생각이다. 큰일이 없다면 평생 다시 마주칠 일도 없을 테고.”

“그건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티타니아가 그나마 희망이 보인다는 듯 전보다는 훨씬 풀린 표정으로 가볍게 손가락을 퉁긴다.

곧 작은 빛이 휩싸이고, 그녀의 손에는 풀잎과 나무줄기로 엮인 듯한 모양새의 왕관이 들려 있었다.

“요정계의 왕이 지닐 수 있는 왕관입니다. 형식적이긴 하지만 다른 종족계들과 마찬가지로 이걸 가져야 진정한 왕이 되는 것이죠. 아, 당신은 이미 마족의 왕이니 마계의 왕관도 가지고 있겠지만요. 모양은 조금 다르겠지만.”

마왕을 잡자마자 드랍된 아이템을 줍기도 전에 바로 귀환해 버렸던 나에겐 금시초문이었다.

‘마왕에게도 왕관이란 게 있었나?’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마왕을 처치하였던 당시의 상황을 곰곰이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짜내 보아도 내 인벤토리에도, 그리고 마왕이 죽은 자리에도 저런 왕관 따위는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로써 두 종족의 왕이 되셨네요. <예언>은 틀리지 않았군요. 이왕 이렇게 된 것, 어서 다른 종족들의 왕도 되시길 바랍니다. 이미 우리는 한 배를 탄 셈이 되었으니…….”

그때 잡은 게 마왕이 아니었나,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까지 해 봤을 때였다.

티타니아는 천천히 다가와 내 머리에 왕관을 씌워 주었다.

‘이로써 요정계도 완료한 건가.’

갑자기 요정족 고유의 기운이라고 생각되는 강력한 마력이 내 안으로 천천히 흡수되었다.

청량한 숲 내음과 함께 어딘가 기운 없지만 맑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그대가 이번에 요정왕이 된 자군요……. 무수히 많은 시간을 <예언>에 따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요정계를 지탱하는 요정수. 인간이지만 요정족의 왕이 된 그대를 환영합니다. 잘못된 선택을 한 나의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세요…….]

“요정수라고……? 아니, 그보다 기다렸다는 건 대체……!”

[모르는 것도 당연합니다, <예언>은 당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심지어 티타니아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순리대…… 로…….]

“설명을 더 해야 할 거 아니야!! 요정수!! 야, 이 자식아!!”

이번에도 또다시 나오는 <예언>.

이쯤 되면 지겨울 정도였지만 점점 정보의 조각들이 모인다.

특히 내가 처음 아스티란에 떨어졌을 때부터 들어왔던, 인간이 왕이 되리라는 <예언>이 사실은 몇백 년 전 수준이 아니라 더 오래되었다는 것.

무언가 많이 알고 있는 요정수의 말을 더 듣고 싶었지만 아무리 외쳐 봐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꽹과리까지 치고 간 요정수에 짜증이 나 미칠 지경이었다.

‘이거, 더 도끼질하면 열 받아서라도 다시 튀어나오지 않을까?’

요정왕으로 하면 안 되는 미친 생각까지 해 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도 고요하게 있는 요정수가 ‘아, 죄송합니다. 제가 설명이 부족했군요.’ 하며 사과를 하진 않을 것이다.

내가 길길이 날뛰며 요정수 욕을 지껄이자 티타니아는 놀란 듯 말한다.

“요정수의 말을 들으셨단 말입니까? 그가 다시 말을 하다니, 3백 년 만입니다……. 타락해 가는 우리를 원망해 버린 줄 알았는데……. 정말 다행입니다. 아직 희망은 있었군요…….”

티타니아가 요정수에게 다가가 손을 얹어 감동한 듯 연신 감사합니다, 라며 중얼거렸다.

남이 속이 타들어 가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에 빠져 있는 그녀를 보자 끊었던 담배가 마려워 온다.

‘하, 그래도 어쨌든 목표는 달성인가.’

나는 아직까지 내 머리에 씌워져 있던 왕관을 신경질적인 손짓으로 들어 올려 확인했다.

[요정왕의 왕관[??]: 요정족의 왕이 된 자가 가질 수 있는 왕관. 고대 요정계의 초대 요정왕이 요정수의 가지를 엮어 만들었다고 한다.

6개의 종족이 가진 모든 왕관을 모은다면 신에 필적할 만한 힘을 얻게 된다고 한다. <보유한 왕관: 1/6 요정계의 왕관>]

‘등급이 표시가 되지 않는다고? L급 아티팩트는 가볍게 누를 정도로 좋은 아이템인가?’

하지만 그런 것치곤 별다른 능력치가 없어서 의아하던 차에 <1/6>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역시나 마계의 왕관은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채워지지 않은 듯했다.

그나저나 이걸 다섯 개나 더 모으라고 대놓고 아이템창 설명에서 외쳐 대고 있는 것이…… 엄청나게 신경 쓰인다.

신에 가까운 힘을 얻든 말든 우선 각 종족의 왕이 될 생각이긴 했지만 계속해서 여섯 개 종족의 왕을 하라고 등을 떠미는 듯한 시스템에 신경질까지 났다.

‘그렇게 억지로 하라고 안 해도 그깟 종족들의 왕, 할 생각이었다고.’

일단 가지지 못한 마계의 왕관도 돌아가자마자 아렐리아에게 물어봐야겠다.

마계 4대 공작이기도 하니 잘 알겠지.

내 것임이 분명하지만 가지지 못하면 억울해서 잠도 못 자는 성격이기에 바로 마계에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라고 들들 볶아 댈 셈이었다.

“티타니아, 거기서 궁상 그만 떨고 다 끝났으니 날 다시 시오스로 돌려보내.”

“궁…… 상……. 이제 요정계를 대표하는 요정왕이 되었으니 좀 더 위엄 있는 말투를…… 하…… 됐습니다. 빠르게 돌아가시는 건 저도 좋지만 아직 왕으로서 계승은 덜 끝난 상태입니다. 보아하니 얼마 걸리진 않겠지만 주변에 떠 있는 마력을 다 자신의 것으로 만드셔야 완료가 됩니다.”

그녀의 말대로 내 주변에는 아직도 초록빛의 마력이 은은한 풀 내음을 풍기며 내 몸으로 계속해서 흡수되고 있었다.

“아, 이거? 그럼 이렇게 하면 되겠네.”

마력의 흡수가 느리다면 기존에 있던 걸 비워 내면 되겠지.

내가 힘을 쓰자 가지고 있던 마력들이 흩뿌려진다.

그와 동시에 공기 중에 떠다니던 요정의 마력이 빠르게 내 안으로 들어온 것이 느껴졌다.

티타니아를 쳐다보자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위대한 업적! 인간의 몸으로 요정왕이 되는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칭호 <요정왕>을 얻습니다.]

[<요정왕>: 모든 요정족들의 왕이자 요정계의 지배자, 요정수의 수호자에게 주어지는 칭호입니다. 요정족 친화력 +100% 마력 +200% 지력 +200%]

요정족 친화력은 모르겠지만 능력치로 따지면 꽤 괜찮은 칭호를 얻었다.

이 정도면 스킬이 봉인당한 지금 상태에선 다음에 <검은 탑>이든지 다른 종족과 전투를 할 때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시간 아깝지 않은 보상이다 싶어 기분이 좋아지려는데 시스템 메시지가 끊이지 않고 울렸다.

[<퀘스트: 왕의 길>이 활성화됩니다.]

[<왕의 길>-(1)

-요정계의 왕: 달성

-마계의 왕: 미달성

-천족의 왕: 미달성

-수인계의 왕: 미달성

-거인계의 왕: 미달성

-정령계의 왕: 미달성]

[지금부터 차원계를 관통하는 시간의 축이 변경됩니다.]

[모든 차원계의 시간이 동일하게 흘러갑니다. 지구의 1일은 타 차원의 1일과 같습니다.]

‘시간의 축? 그럼 앞으로 아스티란의 시간은 지구와 같다는 건가.’

차원을 넘나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언젠가 한 번은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아스티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지구와 동일하게 시간이 흘러간다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지구에 귀환했을 때부터 흘러온 시간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부터라도 이렇게 된 게 어디인가.

내심 돌아갔을 때의 아스티란이 내가 아는 곳이 아니게 될 것이라는 불안이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스킬 <요정수의 가호[L]>를 얻습니다.]

[요정왕의 권한으로 요정계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스킬 <요정계의 문>[L]을 얻습니다.]

<요정수의 가호[L]: 일주일에 1번, 요정수의 위대한 가호를 부여받을 수 있습니다. 1시간 동안 공격력 +100% 방어력 +100% 상승. 발동 즉시 1회에 한해 최초로 받는 공격을 상대방에게 돌려줍니다.>

‘……이건 시간이 아깝지 않은 정도가 아닌데?’

요정계의 문 스킬은 그렇다 치지만 요정수의 가호라니.

내가 가진 최강의 스킬 중 하나인 <절대 방어>와 비견되는 스킬이다.

내 거지 같은 운도 끝나고 드디어 화려한 앞날이 기다리는 건가??

스킬 설명을 보며 귀 끝까지 올라가려는 입술을 씰룩이며 있는데, 사랑스러운 시스템 메시지가 무언갈 더 주려는 듯이 다시 울렸다.

허참, 뭘 더 줄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갑자기 시스템 보상이 후해진…….

[요정수의 수호자, 요정왕으로서 요정수와 동기화 중…….]

[현재 요정계는 타락한 상태입니다. 요정왕으로서 요정족의 특성 <타락>을 이어받아 능력치가 30% 하락합니다.]

“씨발??”

이게 무슨 엿 같은 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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