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54화
“다 아는 방법이 있지.”
아렐리아가 설명해 주기로는 각 차원계의 왕이 되는 방법은 종족마다 특성이 너무 달라 본인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전대 마왕을 죽임으로 마왕의 자리를 얻을 수 있는 단순무식한 마계의 법칙과는 다르게 요정왕은 죽음으로 얻을 수는 없는 자리였다.
“하…… 그것까지 알고 있다니. 맞습니다, 마왕. 당신은 절대 요정계의 왕이 될 수 없을 겁니다.”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한다.
확신에 찬 어조에서 나는 답답함마저 느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요정이 아니면 요정왕이 되지 못하는 건 아닐 테고. 결국 다 방도가 있다는 소린데, 시간문제라 생각하지는 않는가?”
“……요정족이 아닌 자가 다음 대 요정왕이 되는 방법은 오로지 전대 요정계의 왕의 인정뿐. 내가 당신을 인정하고 자리를 물려주는 일 따위는 죽어서도 없다는 걸, 잘 아시지 않나요?”
그녀는 파리한 낯으로 비웃듯 말한다.
요정 여왕의 인정이라…… 과연 지금의 나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예언>이 있었다 하여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죠……. 어차피 내가 인간을 인정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을. 왜 우리는 그때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이렇게 타락해 버렸는지…….”
그녀는 계속 중얼거리며 과거에 대한 후회를 이어 간다.
이미 넋이 나간 듯 눈에는 초점이 없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나 역시 덩달아 심각해진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녀를 회유할 수 없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그냥 죽일까.’
이미 살아 있는 요정은 몇 없다.
허나 시오스를 파괴하고 지구마저 넘보는 자들이다.
내가 왕이 되지 못한다면 없애 버리는 게 맞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간다고?’
물론 티타니아를 죽이고 지구로 돌아가 신중하게 다른 전략을 짜 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무슨 방법이라도 생기긴 하겠지.
하지만 요정계가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오고 싶다고 올 수 있는 곳도 아니다.
나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우연에 우연을 거듭한 결과물.
‘이런 행운을 그냥 놓친다면 호구다.’
가만히 머리를 굴려 보았다.
분명 무언가 방도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끊임없이 각종 변수를 생각해 보았다.
“내가 레일라라는 요정을 죽여도? 만약 살려 준다면 어떤가.”
“하…… 당신이라면 그런 말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당신은 우리 모두를 죽일 것 아니었나요? 요정계의 왕 자리는 절대 줄 수 없습니다!”
‘티타니아를 죽인다 하면 요정왕은 공석이 될 텐데…… 이상하군.’
각 종족의 차원계는 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차원계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마계의 마왕성, 요정계의 요정수와 같은 고대의 신이 내려 준 장소도 필요하지만 왕의 존재도 필수로 알려져 있다.
단순히 종족들을 이끄는 자리가 아닌, 차원계 자체를 지탱하는 자리인 것이다.
곰곰이 생각하며 빤히 티타니아를 쳐다보는데, 쓸데없이 당당한 눈빛이 거슬렸다.
‘이건, 분명 아직 내가 모르는 게 있다.’
소멸조차 각오하여 의연한 기색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수상하다.
저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눈이다.
“그래? 그렇게까지 말하니 일단 모조리 죽여 버리는 수밖에 없네.”
겁이라도 줄 겸 검에 마력을 가득 담아 옆에 있던 요정수를 향해 휘둘렀다.
콰앙-!!
신이 직접 관여했다는 요정수답게 물론 이 정도로는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요정수 본체의 사정일 뿐.
내 공격에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 반쯤 썩은 요정 열매가 거세게 흔들렸다.
“안 돼!!”
‘……응?’
생각보다 협박의 수위가 센 걸까.
티타니아는 요정수를 쳐다보며 비명을 질렀다.
의아한 마음에 나 역시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아니, 요정수가 아니라 요정 열매를 보는 건가.’
“요정 열매만은 안 돼……!!”
나지막이 중얼거리던 그녀가 갑자기 입을 다문다.
그러면서 나를 슬쩍 보는 게 자신이 방금 한 소리를 못 들었길 바라는 눈치이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그녀의 말로써 이제야 확신을 얻게 되었다.
‘새로 태어나는 요정이 맺히는 열매라…….’
시들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요정 열매를 맺고 있는 요정수에 시선이 박힌다.
어차피 모든 요정을 모조리 없애는 건 불가능 한 일이지만 일단 지금 달려 있는 열매만이라도 모조리 부숴 버린다면……?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게 정답인 듯 당당하던 그녀의 얼굴이 이제는 하얗게 질려 간다.
“저거, 다 없애 버린다면 어때? 앞으로 태어날 요정조차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참 궁금해지네.”
씨익 웃으면서 커다란 요정수로 천천히 다가가자 사색이 된 티타니아가 나를 급하게 쫓아온다.
무기를 쥐고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요정수를 올려다보았다.
“하! 역겹도록 잔인한 마왕 같으니라고!! 하지만 당신 생각대로는 절대 되지 않을 겁니다! 지금의 요정들은 없앨 수 있을지언정 요정수가 파괴되지 않는 이상 우리는 계속해서 열매를 맺으며 태어날 테니!!”
“이거, 지금 시들어 가는 중 아니었어? 굳이 건드리지 않아도 조금 지나면 죽어 줄 거 같은데.”
누가 봐도 요정수는 오늘내일하고 있었다.
손쓰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훌륭한 땔감이 되어 버릴 것 같은 상황.
하지만 티타니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발끈하여 소리친다.
“감히 요정수를 욕되게 하지 마세요!! 시들어 있지만 결코 죽지는 않을 겁니다!! 요정수는 나무의 형태이지만 요정계 그 자체. 당신이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하여도 한 차원을 파괴하긴 힘들 겁니다, 오만한 마왕이여. 이제 알아들었으면 그만 순순히 돌아가세요!!”
사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아무리 나라도 신이 아닌 이상 하나의 차원을 멸망시키기는 힘들 것이고, 또한 그렇게 하는 방법도 몰랐다.
“……!”
그때 무언가가 내 머리를 퍼뜩 스쳐 지나간다.
요정수가 요정계 그 자체이며 차원을 지탱하고 있다. 반대로 요정수가 없어진다면?
모두가 미친 소리라며 고개를 흔들겠지만 내 머릿속에는 지금 상황과 비슷했던 일이 떠오른다.
‘게이트 안의 <벽>도 게이트라는 공간을 지탱하고 있었지.’
“인벤토리.”
[파괴왕의 도끼[SSS]: 고대 미궁을 지키고 있던 괴물, 미노스의 황소가 지니고 있던 도끼입니다. 신의 금속이라 불리는 미스릴로 만들고, 고대의 주술사가 축복하였습니다. 공격력 + 50% 증가, 힘 + 50% 증가.]
시오스에서 드라이어드들에게 미친 듯이 휘두르던 도끼를 꺼냈다.
동시에 상태창을 열어 장착되어 있던 칭호를 슬쩍 쳐다보았다.
[<나무 학살자>: 숲을 푸르게, 푸르게! 하지만 그런 문구와는 정반대의 생활을 하고 있는 당신! 진정한 자연의 파괴자입니다! 그동안 죽인 나무들을 위해 오늘은 한 그루의 나무를 심어 보는 게 어떨까요?]
<나무 학살자: 나무를 베어 낼 때 공격력 +100% 증가, 도끼 속성 장착 시 +200% 증가.>
내가 무기를 바꿔 들자 긴장했지만 의아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티타니아.
하지만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은 채 잠자코 지켜보고 있는 그녀의 시선이 느껴졌다.
“대체 뭘 하려는 작정이죠!?”
“글쎄, 궁금하면 일단 지켜나 보라고.”
개의치 않고 상태창의 <나무 학살자> 칭호를 반복해 읽어 보았다.
여전히 내 신경을 박박 긁어 대는 듯한, 재수 없는 설명이다.
‘이거, 나무잖아? 그리고 나에게는 도끼가 있고.’
“<극의의 일격>!”
대뜸 도끼를 휘둘러 요정수를 갈겼다.
웬만한 건물만큼 커다란 두께를 자랑하는 요정수는 물론 흠집 하나 나지 않았지만, 나는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어 본 적이 있었기에 묵묵히 스킬 <극의의 일격>을 계속해서 쓰며 도끼질을 했다.
“감히……! 당신의 스킬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그까짓 도끼로 요정수를 베어 넘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제야 내가 하려는 행동을 눈치챈 듯 그녀는 나에게 험한 소리를 퍼부어 댄다.
잔뜩 화가 난 듯했지만 굳이 나를 막아서려 하진 않았다.
어차피 헛짓거리한다는 눈치이다.
그래도 좀 긴장해야 할 텐데. 나는 허튼짓을 하는 놈은 아니란 말이지.
“<극의의 일격>!!”
“시간 낭비로군요. 무식한 건 알았지만 멍청하기까지……. 이런 자에게 우리가 패배한…… 헉!?”
소리 지르던 그녀가 눈을 부릅뜨고 요정수를 쳐다본다.
“이런 거 처음 보지?”
도저히 상처 하나 낼 수 없을 것 같았던 요정수에 누가 봐도 내 공격으로 인한 자국이 남았다.
티끌만 한 자국이지만 그조차도 티타니아를 당황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될까 싶었는데 진짜로 가능하네.’
시스템의 벽도 허물어 버린 나다.
어차피 그 벽도 시스템이라는 신이 만들어 낸 것이고, 이 요정수도 고대 요정신이 빚어낸 산물.
아예 불가능하다면 모를까, 한번 성공해 봤던 일인지라 내 행동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놀라서 그대로 굳어 버린 티타니아를 뒤로하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끼질을 이어 갔다.
[스킬 <극의의 일격>이 놀랄 만큼 정확한 지점을 공격합니다! 10회 공격 보너스, 해당 대상 공격력 +10%…….]
[스킬 <극의의 일격>이 놀랄 만큼 정확한 지점을 공격합니다! 20회 공격 보너스, 해당 대상 공격력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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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드러나는 요정수의 속살이 보인다.
겉만큼 단단하진 않은지 움푹 파이는 부분이, 공격을 할 때마다 처음과 비교가 안 되는 속도로 커져 간다.
그와 동시에 <극의의 일격>이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점점 공격력 퍼센트가 늘어 간다.
공격이 먹혀 들어가는 게 확연하게 보이고 있었다.
도끼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더욱 들어간다.
그때 갑자기 티타니아가 신명 나게 도끼질을 하고 있던 내 팔을 덥석 잡아 왔다.
“그만 하세요!! 요정수를 상처 내는 짓은……!! 아니, 요정수가 파괴될 수도 있는 거였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럴 수가……. 아아…… 신이시여…….”
약한 힘으로 붙잡아 왔지만 굳이 뿌리치지 않고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내 눈빛에 절망한 티타니아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레일라를 껴안은 채 스르륵 주저앉는다.
“요정왕의 자리가 탐이 난다 하지 않았나요? 얻지 못하니 기어이 모두 부숴 버릴 셈입니까!?”
“그깟 왕 자리, 요정계 차원이 멸망하면 굳이 얻지 않아도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인간이지만 파괴를 일삼는 건 마족과 다를 바가 없군요! 그렇지만 생각대로 될 것 같습니까? 당신이 먼저 지쳐 나가떨어질 게 분명합니다!”
티타니아가 악을 쓰며 소리쳤다.
지친다라. 물론 다른 사람들이라면 그렇겠지.
나는 끈기라면 어디서 꿇리지 않았다.
다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기에 최대한 담담한 어조로 말을 했다.
‘우선 기선 제압이다.’
“참고로 난 시간이 굉장히 많아. 인내심도 많고. 300년 넘게 빌어먹을 아스티란 대륙에서 굴러먹었는데…… 며칠이고 도끼 휘둘러 대서 요정수 넘어가게 하는 건 쉬운 일이지.”
개소리였다.
사실 절대 쉬운 일도 아니며 시간도 많지 않았다.
‘제기랄, 제발 좀 넘어와라…….’
사실 빨리 시오스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속으론 똥줄이 타고 있는 상태였지만 내색하지 않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무뚝뚝해 보이게 분위기를 잡았다.
이미 모든 전의를 상실해 버린 티타니아는 내 말의 진위 여부를 따질 수 없을 만큼 정신이 피폐해 보인다.
그걸 의식한 채 나는 허세를 가득 담아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