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4화
제4편 자, 한 번 느껴 보거라
삼송의 [하얀 늑대]는 [한국 대학교]와 계약을 맺었다.
유능한 영웅을 일부 과목의 강사로 파견하고 한국 대학의 경비 일부를 책임지며 몇 개의 첨단훈련장. 그러니까 엄청나게 비싼 훈련장을 몇 개 지어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학생과 가까워지고 홍보를 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젠장. 어디라고?”
“109동입니다. 건물 한 층이 먹혔습니다!”
이한나는 한국 대학교의 경비 책임자를 맡았다.
다른 팀장의 추천도 있었지만, 이한나가 직접 지원한 것도 있었다. 그녀가 지닌 ‘감’이 이곳에 있어야 한다고 외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첫날부터 생기다니.
이한나는 대원들과 함께 109동 건물로 이동했다. 이곳엔 신입생 300여 명이 전부 있었다. 50명씩 6반으로 말이다.
“저, 저건 뭐야……!?”
“저도 모르겠습니다.”
한나의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은 끔찍했다.
무엇인지 모를 보랏빛 살덩이가 꿈틀대며 건물의 한 층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살덩이에서 솟아나는 이상한 괴수들은 침을 질질 흘리며 벽을 타고 안쪽으로 진입 중이었다.
두두두두두.
자동차로, 그리고 헬기로 지원군이 도착했다.
아직 모두 신격이 없는 보통 영웅 정도의 수준에 불과했지만, 이곳은 판도라가 아니다. 이 정도면 충분한 전력이어야 했다.
하지만.
“이능이 안 먹힙니다!”
“중력도, 염력도, 속성 공격도 아예 먹히질 않습니다!”
“마력은 먹힙니다! 검과 마법이 잘 통하네요.”
“젠장! 재생력이 엄청나요. 괴수만 죽여도 다시 살아납니다.”
“저 건물을 감싸고 있는 게 본진 같습니다!”
하지만 한 층을 전부 감싸고 있었던 살덩이가 건물 전체로 퍼지기 시작했다. 잘 먹히는 것 같던 마력 공격도 사실상 제자리였다.
살덩이의 재생력은 엄청났으니까.
“이대론 답이 없어.”
토르의 진전을 이은 이한나다.
한나는 다른 영웅을 뒤로 물렀다. 건물 안쪽의 학생들이 다칠 것 같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었지만, 더는 안 된다. 이제는 직접 움직여야 했다.
이능이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신의 능력이다.
하나의 권능이라는 뜻.
파지직.
하얀 전류가 한나의 몸과 망치를 이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한나를 그런 한나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중에서 유일하게 온전한 신격에 올라 지구에서도 미약하게나마 비천한 신격을 유지할 수 있는 플레이어다.
파지지지직.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곳곳에서 번개가 흐른다.
한나는 망치를 빙빙 돌렸다.
그리고 그 망치는 마치 하나의 발전기가 된 것처럼 점점 거대한 전기를 만들어내었다.
콰직.
한나의 발이 바닥을 박찼다.
그녀의 몸은 허공에 붕 떠서 건물로 향했다.
그것을 보고 위기를 느낀 것인지 괴수들이 달려들었다. 수십 마리가 넘어가는 숫자. 하지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에 한나에게 닿지 못했다.
후우우웅!
돌아가던 망치가 보랏빛 살덩이에 닿았을 때.
콰과과과광!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와 망치에서 발출한 번개가 충돌해 폭발했다.
굉음과 함께 세상이 하얗게 터졌다가 암전되었다.
“후욱, 후욱.”
한나는 거친 숨을 내뱉었다.
건물을 감싸던 보랏빛 살덩이의 절반이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다, 다시 재생되고 있어!”
“미친!”
“도대체 정체가 뭐지?”
보랏빛 살덩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재생되고 있었다. 한나는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말도 안 돼.”
권능도 이능으로 분류되는 것일까? 아니다. 그렇다면 저렇게 손상이 갔을 리도 없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분명히 이 권능은 마력과 정신력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인데.
그래, 만약 이 힘이 문제가 아니라면.
“안에서부터 공략해야 하는 걸까.”
그게 맞는 걸지도 모른다.
저런 재생력.
아무런 에너지원 없이 되는 게 아니다.
겉이 아니라면 안쪽에 어떤 ‘핵’이 있을 거다.
“아무래도 학생들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겠군.”
그렇다고 밖에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
저 살덩이가 퍼지는 것을 막고 밖으로 나오는 괴수를 제거한다. 그리고 안에서 학생들이 빠져나오기를…… 기도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 * *
한성은 뒤에서 학생들의 무위를 감상했다.
몇몇 이능 능력자는 가운데 몰아넣고 마력을 사용하는 마법사와 검과 창사 등이 전면에 섰다.
보통 학생이 아니다.
하긴, 이곳의 모두 그냥 능력만 얻은 게 아니다.
모두가 판도라라는 세상에서, 끊임없는 전투와 위기 속에서 얻은 능력이라는 거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이 와도 크게 당황하거나 본신의 힘을 끌어내지 못하는 이들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나 능숙하게 전면에 탱커, 뒤로 마법사 등 보조, 중간에 근접 딜러가 끼어든 포메이션을 짰다. 그리고 그들은 괴수를 막고 공격하며 뒤로 빠지는 것까지 유기적인 전술 행위까지 보여주었다.
‘생각보다 대단하네.’
단연 눈에 띄는 이들이 몇 명 있었다.
가장 앞에서 자기 키만 한 거검을 휘두르는 안진희. 뒤쪽에서 쿼드 캐스팅으로 괴수의 발을 붙잡고 공격까지 해대는 어린 남성 한 명. 그리고 이능이 통하지는 않지만, 마력을 폭발시키며 시선이라도 끄는 이민성.
이들 모두 판도라에서는 비천한 신격에 닿았을 거다.
몇몇 눈을 끄는 이들이 더 있었다.
‘세상엔 천재들이 참 많아.’
이한성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았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300명 중에 세 명도 아니고 50명 중에 세 명이다. 게다가 조금 커트라인을 낮추면 대번에 10명까지 늘어난다.
콰과광!
밖에서 강한 충격이 있는 모양인지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하지만 안쪽에서 보이는 살덩이엔 아무런 손상도 없었다.
“흠.”
한성은 생각했다.
‘공략’을 해야 한다. 이능도 통하지 않고 마력으로 상대해도 저런 재생력을 가졌다. 그렇다면 보통은 본체가 있어야 맞다. 그것도 이 안쪽에.
정말 최악의 상황은 이 안쪽이 아닌 하늘 어딘가. 혹은 근처 건물에 숨어있는 거겠지.
‘하긴, 그러면 밖에서 어떻게든 찾아내겠지.’
이 학생들을 보니, 한성이 이들을 너무 낮게 봤던 것 같다. 밖에도 분명 유능한 플레이어들이 많을 거다.
“악! 미친!”
진희가 한쪽 팔을 물렸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줄줄 흘렀다. 뒤에서 마법으로 급하게 치료했지만, 근력이 뚝 떨어졌다. 날카롭던 그녀의 검이 한층 무뎌졌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마력은 떨어지고 상처는 늘어간다.
그런데 저것들은 줄어들 기미도 보이지 않으며 나갈 수 있는 틈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일단 여기선 나가야겠군.”
한성은 검을 꺼냈다.
스르릉.
그러자 다른 이능 능력자들이 한성을 바라봤다.
“괜히 움직이지 마!”
“맞아. 이능도 안 통하는데, 방해된다고.”
“우리가 짐이 될 순 없어!”
“이능이 그냥 안 통하는 게 아니야. 이 안에서는 이능을 일으킬 수도 없어!”
다들 한마디씩 했다.
참, 어떻게 이렇게 똑똑할 수 있는 거지?
경험이 많은 것인가.
한성도 방금 전에야 알았다. 저것들이 이능이 안 통하는 것도 있지만, 이 안에서는 이능을 전혀 일으킬 수가 없다.
이능도 없고 마력도 없는 이들은, 평범한 일반인일 뿐인 거다.
이 상황에 적에게 아무런 데미지를 줄 수 없는 자신들이 움직이면 오히려 폐가 된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판단했다는 거다.
절대 자기들이 다칠까 두려워서가 아니다.
저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분이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냉정해지고 싶지만, 지독한 무력감에 화가 난 것이다. 다치더라도, 죽더라도 달려들어 적 하나를 끝낼 수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 녀석들, 마음에 드네.’
판도라에서는.
그러니까 게임이었을 때의 판도라는 이기적이고 편협하고 악(惡)에 가득 찬 놈들이 많았다. 게임이었기에 그랬던 걸까. 아니면 이곳에 있는 학생들이 특이한 걸까.
저벅, 저벅.
한성은 그렇게 말하는 학생들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섰다.
‘아무래도 함께하고 싶어진 거 같네.’
“오빠! 뭐해요! 뒤로 빠져!”
“야! 이한성! 당장 이리로 안 와?”
진희와 이민성이었다.
저놈은 어린 게 어디 감히 반말인가.
뭐라고 해주고 싶었지만, 당장은 아니다.
웅웅.
사방에서 소리쳤지만, 한성은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다. 그래, 검 관련된 이능은 어차피 없다. 그렇다고 마력을 쓸 수도 없는 상황이니, 검술로만 이놈들을 베면 되는 것 아닌가.
‘그 정도면 딱히 의심을 받지도 않겠지?’
옆에 있던 진희가 한성에게 달려들었다.
한성에게 괴수가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희 앞에서 괴수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한쪽 옆구리를 내어주고 한성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것이었다.
‘뭐야, 이런 친구들이 있으면…….’
스걱.
한성은 진희에게 한발 뻗으며 검을 한 번 휘둘렀을 뿐이다.
‘여길 쉽게 생각할 수가 없잖아.’
또 다른 소중한 사람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폭.
진희는 자연스럽게 한성에게 안겼다.
“몸 다치는 걸 쉽게 생각하지 마.”
“이게 무슨……?”
투두두두둑.
한성에게 달려들던 괴수, 진희의 옆구리를 물어뜯으려던 괴수, 주변에 있는 괴수들까지. 총 8마리의 괴수의 목이 떨어져 내렸다.
“아직 안 끝났어. 전투 대열 흐트러뜨리지 마.”
한성은 진희를 떨어뜨려 놓으며 작게 소리쳤다.
그러자 학생들은 닫히지 않던 입을 닫으며 검을 고쳐 잡고 마법진을 띄웠다.
“선봉은 내가 뚫을 테니까, 잘 따라와.”
“오빠……!”
“하고 싶은 말은 나중에.”
진희는 입을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성은 검을 들었다. 다시 만들어져 들어오는 괴수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진희와 같은 검과 창사들이 이능 능력자와 마법사들을 감싸듯 섰고, 너무 넓지 않게 한성 뒤로 줄을 섰다.
가장 먼저 한성이 강의실 문을 나섰다.
그곳에 다섯 마리의 괴수가 눈을 빛내며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한성이 한발 뻗으며 휘두른 검에 모조리 사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도대체 어떻게…….”
그 모습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던 진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마력은 없다.
게다가 이능은 안 통하는데, 한 번 휘두른 검. 그것도 그 검이 다섯의 괴수를 관통하는 모습이 보였으면 모른다. 그런데 그저 휘두를 뿐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그런데 다섯 괴수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게 검술인가?
아니다. 이런 게 검술일 수 없지 않은가.
“눈으로 보려 하지 마.”
한성이 진희에게 말했다.
다시 몇의 괴수가 달려들었다. 하지만 또 한 번 한성의 같은 검격에 목이 떨어졌다. 세 번째 본 거다. 그런데도 안진희는 눈에 제대로 담지도 못했다.
“대기에 떠도는 마력의 흐름을 느껴.”
그리 어려운 건 아니다.
검으로 대기에 떠도는 마력의 흐름을 바꿔, 검의 충격력과 예기를 사방으로 전달하는 것으로…….
“무슨 그게 개 풀 뜯어 먹는 소립니까. 대기에 마력을 어떻게 느껴요!”
“이게 어려워?”
“어렵고 말고가 아니라, 불가능한 거 아니에요?”
“상당히 재능이 없는 편이구나.”
한성은 진심이었지만, 진희는 그냥 놀리는 것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옆에서 진희가 노발대발했지만, 한성은 가볍게 무시했다.
한성은 기감을 멀리 퍼뜨렸다.
이 안에 핵이 있는지 찾기 위함이다.
“저기군.”
다른 학생이 그렇게 말하는 한성을 바라봤다. 한성이 바라보는 곳은 그저 복도 중간이었다. 보랏빛 살덩이로 꽁꽁 싸매져 있는 곳. 그곳까지 가는 길엔 수십 마리의 괴수가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저기가 이 살덩이의 핵이 있는 곳이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아요?”
진희만 입을 열었지만, 주변에 있는 다른 학생도 궁금한 눈치였다. 자신들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더욱 그런 것이겠지.
“그냥 알지.”
“뭘 어떻게……!”
한성은 진희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저 한 발을 뻗었다.
그러자 한성의 몸은 이미 수십 마리의 괴수를 지나, 핵이 있다던 보랏빛 살덩이를 가르고 있었다.
“뭐, 뭐야……?”
말이 안 된다.
아니, 마력도 사용하지 않는데 저게 가능할 리 없지 않은가.
이능을 끌어 올릴 상황도 아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