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배 전쟁의 끝. >
한성이 처음 몸을 드러내어 가짜 엑스칼리버를 꽂았을 때.
- [신격 기만자(전설)]
- [지배종의 트루먼 쇼 연출자(전설)]
- [월드 클래스 신화 개척자(준신화)]
이렇게 세 개의 업적을 얻었으며.
갤러해드의 검 위에 작은 태양을 만들고 안혜림을 구했을 때.
- [작은 태양 제작자(전설)]
- [아서 왕의 의지(전설)]
- [죽음에서 돌아온 자(전설)]
- [빛의 구원자(준신화)]
이렇게 네 개의 업적을 더 얻었다.
하나같이 전설 이상의 업적들이었지만, 조금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부활]과 [구원]을 더 극적인 상황에 사용했어야 했는데, 더는 시간을 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한성의 힘은 대폭 증가했다.
이 [성배 전쟁]이라는 [초월 신화] 안에서는 ‘빛’과 ‘아서 왕’ 등의 키워드는 큰 힘이 된다. 거기에 [월드 클래스 신화 개척자]라는 업적은 지금 한성이 [성배 전쟁]을 개척해 나가는 것에 더욱 큰 버프를 선사하고 있었다.
“제가 앞장섭니다.”
한성이 검 두 개를 꺼냈다.
해룡의 ‘밤부’와 루시엘의 ‘성검’.
지저 세계의 지배종 중 80% 이상은 ‘어둠’ 속성을 지니고 있다. 악(惡)은 아니지만, 성검은 어둠에 강하고 밤부는 중립이다.
일단 상성으로 밀릴 일은 없다는 것.
한성은 앞으로 쇄도했다.
검은 유체. 유광(有光)의 존재가 꼬물거리며 한성에게 달려든다. 한성과 간극(間隙)이 좁혀지자 유체는 기다란 촉수와 가시를 쏘아냈다.
지저 세계에서도 가장 단단하다고 알려진 [흑금강석]으로 이루어진 놈이다.
콰과과광!
한성이 밤부를 휘둘러 그의 강체(剛體)를 부쉈고 성검을 휘둘러 재생을 막았다. 동시에 바닥 전체에 마법진을 생성했다.
“네놈은 생포다 이 자식아.”
이런 아까운 걸 그대로 죽일 수 없었다.
지저 세계에서도 쉽게 만날 수 없으며, 만난다 하더라도 결코 쉽게 죽일 수 없는 지배종. 하지만 초월 신화를 걷고 있는 한성에게는 그저 한 끼 식사일 뿐이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지저 세계 1층에서 대기하고 있던 성시연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한성 경호팀]이 한성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정면에서 가장 강한 한성이 타격하고.
뒤에서 따르는 경호팀이 한성을 보호한다.
“이 미친 새끼.”
성시연이 툭 내뱉었다.
“살아 있다고 했잖아.”
“그걸 영혼 상태로 말하면 누가 걱정을 안하냐!”
“살아왔으면 됐지.”
“개 같은 자식.”
“······미안.”
“빨리 가기나 하자.”
꼭 이렇게 한성이 사과해야 멈춘다. 그래도 뭐라고 하진 못한다. 막상 친구가 죽어서 영혼으로 나타나서 다짜고짜 해야 할 게 있다고 하면 누가 화가 안 날까.
“그 정도는 우리 선에서 가능하겠지.”
안톤이 검은 오라를 뿜어대며 말했다.한성은 앞으로 나아가며 작전을 설명했다.
“작전은 미리 말했던 것과 같습니다.”
지금 지저 세계는 텅 비었다.
오직 갤러해드의 검을 뽑기 위해 모든 지배종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빈집털이.
하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각 층에 문지기와 잡몹들은 있을 겁니다.”
지금 그가 느끼는 [초월 신화]의 힘은 상상을 초월할 거다. 안 그래도 인류에서 손꼽히는 강자였는데, 지금은 그 힘이 몇 배로 뻥튀기되어 [신격]과 같은 힘을 지니게 되었으니까.
“문제는 밖으로 나오지 않은 놈들.”
“그런 게 없진 않겠지.”
지저 세계에 자리 잡은 지배종은 셀 수 없이 많다. 분명 그들이 전부 나오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성배를 향해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놈들도 많지는 않다.
“우리는 최단 시간에 성배를 차지합니다.”
한성은 두 검을 들고 달렸다.
뒤로 일행이 뒤따랐다.
최대한 빠르게 빈집털이를 하는 것.
한성의 계획이었다.
* * *
한도석은 헤일렌이 주도한 작전에서 가장 위험하며 중요한 임무를 받았지만, 한도석은 거절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아마존에서 생중계되는 한성의 방송을 쭉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지켰던 후보생들.
그들이 아마존에서 또 다른 위기를 맞이했다.
한도석은 조금의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다.
‘작전을 시작합니다.’
그의 검은 [파천신화공].
천마에게 받은 힘이며, 아직 제1식조차 제대로 펼칠 수 없었으며, 희생이 따라야 제2식을 흉내 낼 수 있었던 강대한 힘.
이젠 달랐다.
신격의 태동으로 한도석이 받는 천마의 힘은 더욱 강해졌고 아마존에서의 신화의 무대는 제3식인 [하늘을 가르는 검]을 완성해줬다.
산을 부순다.
사실 신격에 가까워진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바다를 가른다.
이때부터는 일반적인 물리적 제약을 넘어선다.
그리고 하늘을 가른다.
이것은 단순히 하늘을 가르는 게 아니다. 하늘은 [신격]을 뜻하고 이 지저 세계의 입구는 [신격]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우우웅.
한도석의 육체 위에 2m가 넘어가는 어떤 사람의 형상이 씌워졌다. 오래된 중국풍의 복장을 한 그. 그는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 밖으로 나오는 것 한 번 힘들구나.
천마의 말이었다.
한도석은 말없이 검을 들었다.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저 말할 여유가 없었다. 영혼은 천마에 의해 짓눌리고 육체는 과도한 신격의 향연에 터지기 직전이다.
- 다 내가 부족한 탓이지.
한도석 위에 씌워진 천마가 씨익 웃었다.
그래도 즐겁다는 듯, 한도석이 든 검에 한 손을 가볍게 얹었다.
- 검이 하늘을 가른다는 것은.
그의 검이 위로 치솟았다.
단순한 들기. 그 무엇도 아니었다.
하지만 대기가 요동치며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이한 힘이 그를 휘감았다.
- 세상을 부순다는 말이다.
검이 아래로 떨어진다.
마치, 하늘이 갈라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작은 태양 덕에 환한 세계에서, 짙은 하늘 사이로 새까만 선 하나가 그어졌다. 그것은 한도석의 시선에만 잡힌 게 아니다.
주변의 모두가 그것을 봤으며.
검로(劍路)는 공간을 뛰어넘어 저 위의 무언가를 베었다.
- 으하하하하. 그래, 그거야.
쿨럭.
한도석의 속에서 무언가 역류했다.
하지만 기어이 참으며 검을 끝까지 내렸다.
콰과과과광!
거대했던 하나의 게이트 형상의 동굴이 그대로 무너졌다. 100년 전부터 단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던 입구였다. 그 강대한 지배종의 전투에서도, 신격의 전투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곳.
그게 처음으로 무너졌다.
- 그리고.
천마의 말.
하지만 한도석은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뒤에서 느껴지는 수많은 살기에 몸을 돌렸다.
- 하늘을 부순다는 말의 또 다른 뜻은.
한도석은 검을 옆으로 들었다.
키이잉.
다시 한 번 그 이상한 기운이 검을 휘감고 한도석의 육체에 가득 차 들었다.
- 위에서 고고하게 이곳을 지켜보는 저 썅년들.
콰과과과.
정면에서 바닥을 부수고 대기를 뚫고 쇄도하는 지배종과 신격들. 한도석을 치워버리고 어서 지저 세계로 들어가길 바라는 놈들.
- 신격들을 벤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도석은 눈을 감았다.
검은 좌에서 우로 대기를 베었고.
공간을 벴다.
그와 동시에 끝에 무언가 베어지는 감각이 손바닥을 타고 척추로 흘렀다. 하나, 둘, 십, 백, 천. 한 번에 그 많은 무언가 베어졌다.
- 하하하하하. 아직 약하긴 하나, 내가 제자는 잘 골랐지.
그의 앞엔 수천 개체의 존재가 반 토막 난 채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전신은 탈력감에 물들었고 천마의 형상은 덧없이 사라졌다. 베어져 바닥에 떨어졌던 수천의 지배종은 더욱 기세를 뿜는 지배종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한도석은 다시 검을 들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검으로 손잡이를 쥐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이대로 쓰러질 생각은 없었다.
그때, 누군가 한도석의 어깨를 짚었다.
“내가 인간의 편에 설 줄은 꿈에도 몰랐지.”
“그래도 나쁘지 않지 않은가? [초월 신화]의 주인공 편이 되어 보다니.”
에프엘과 갈라윈이었고.
뒤로는 이아인이 허공에 절대 온도를 뿜어내는 하얀 공을 만들며 앞으로 걸어나왔다.
“잡담은 그만하고 저것부터 처리하자.”
이아인이 정면으로 하얀 공 몇 개를 날렸다.
그러자 넓은 평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 * *
진훈은 지배종이 뒤덮은 하늘을 바라봤다. 한성이 등장하고 안혜림이 검을 쥐자마자 [성배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알람이 울렸다.
그리곤 모든 지배종과 신격이 지저 세계로 향하기 시작했다.
밀물이 오면 썰물이 오듯.
지상의 모든 생명체가 지저 세계로 향했다.
지저 세계의 입구는 무너졌다. 하지만 지저 세계의 입구를 복구하기 힘들다고 해도 이들은 [신격]이다. 조금의 시간만 있다면 복구는 쉽다.
원탁의 기사.
진훈을 포함한 친구들과 기존 영웅들은 자연스럽게 안혜림의 위치를 파악했고, 그게 지저 세계 안쪽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본능적으로 그들도 지저 세계의 입구로 향했다.
가는 길이 어렵진 않았다.
모두 미친 듯이 입구로만 향하고 있었기에.
오히려 원탁의 기사들을 앞질러 가기도 했다.
헛웃음이 나왔지만, 어이가 없어 끝까지 달렸다.
그곳엔 이미 아카데미 강사이자 [하늘을 부수는 악동]이라는 이명을 지닌 ‘천마’와 계약한 한도석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언제 왔는지 모를 화룡족의 로드 에프엘, 붉은 귀 엘프의 족장 갈라윈, 빙조의 여왕인 이아인까지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다들 합류한다.”
이안이 자연스럽게 원탁의 기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그들도 안다.
그래 봤자 이곳으로 향하는 지배종들을 막을 수는 없다. 확연한 전력 차이 아무리 [초월 신화]의 보조를 받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아군은 신화의 주인공.
적은 엑스트라.
그런 신화의 재현에서 오는 강한 개연성이라도 어쩔 수 없는 전력의 차이. 개개인의 전력도 그렇게 많은 차이가 나는 데, 숫자까지 압도적이다.
하지만 지저 세계의 입구를 지키는 이들은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우리의 역할은.”
이안이 입을 열었다.
절반이 사라진 원탁의 기사가 그의 입만을 바라봤다. 원수였던 드몽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왕과 성배의 구도자에게 시간을 주는 것.”
이안과 드몽은 아직도 한성이 ‘아서 왕’에게 선택받은 줄 안다. 뭐, 상관없었다. 원래 세상은 사실보다 그렇게 보이느냐가 더 중요하니까.
그가 검을 들었다.
아직 하늘엔 작은 태양이 떠 있다.
원탁의 기사가 든 검에선 빛이 뿜어진다.
“이곳에서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
마지막 이안의 말에 모든 기사가 검을 들고 달려나갔다.
* * *
그 모든 상황은 생중계되고 있었다.
한성이 태양을 만들고 안혜림을 구하기 위해 부활한 것부터 한도석이 입구를 부수고 수천의 지배종을 벤 것까지.
- 한성 뭐임. 그래서 죽었다는 거야?
- 살아났다는데, 그럼 부활인 건가?
- 에이, 설마. 처음부터 안 죽은 거 아니야?
- 한성느님이 부활하셨다!
- 태초의 빛을 만드시고!
- 원탁의 기사도 한성에게 존경을 표하잖아!
- 한성님이 부활하셨다!
- 안혜림을 구하고!
- 미친ㄷㄷ 거의 광신도 아님?
- 물타기 ㄴㄴ
- 이건 물타기 수준이 아닌데?
거의 광신도나 다름없었다.
한성의 [나는 관종이다]가 극성으로 펼쳐지고 있었으며 죽음과 부활. 그리고 안혜림을 구한 것까지 모든 게 완벽한 화면으로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뒤이어 한도석을 지키기 위해 에프엘, 갈라윈, 이아인이 도착했다. 그들은 어마어마한 무위로 지저 세계로 가는 입구를 확실하게 지켜나가기 시작했다.
- 쟤들은 처음 등장할 때부터 마음에 들었어. 뭔가 착하게 생겼잖아?
- └ 아까는 한성 죽였다고 난리를 치더만?
- 살아났으면 됐지 뭐.
- ㅋㅋㅋㅋㅋㅋㅋ진짜 저것들 다 설정 아니야?
- 아니야! 우리 한성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셨어!
- 에프엘은······ 지금 한성팀 도와주니까 인정.
- 싫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지금 쟤 없으면 우리팀 무너짐.
- 엇. 안 그래도 밀릴 거 같은데?
- 지배종들은 왜 이렇게 뭐가 많은 거야?
- 헐, 지원군이다! 진훈이랑······ 원탁의 기사들이야.
- 근데 그래 봐야 인원이 없음.
- 얼마 못 버틸 것 같은데?
- 근데 저 위에 시간 뭐임?
그들이 보는 생중계 화면 왼쪽 위에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지저 세계의 입구를 막을 때부터 시작된 저 시간은 60분에서 거꾸로 줄고 있었다.
- 벌써 30분이나 지났는데.
- 저게 0 되면 어떻게 되는 거임?
- 혹시 무슨 시간인지 아시는 분?
- 아니, 설마 저 시간 동안 버텨야 한다는 건가?
그러는 와중에 한도석은 리타이어되었으며 에프엘, 갈라윈, 이아인 등도 현격하게 밀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온 원탁의 기사도 마찬가지였다.
- 이러다 30분 다 못 채우고 밀리겠는데?
- 저게 도대체 뭐야. 그보다······.
- 어? 저거 뭐야. 수송기들?
- 지원군인가.
- 제현 그룹이다! 그 한성이 소속된 곳 아니야?
- 수백 대가 넘는데······.
- 미친ㄷㄷ 지원군 맞네. 저기 뛰어내리는 영웅들 봐.
제현 그룹의 로고가 그대로 박힌 361대의 수송기는 지저 세계 입구를 중심으로, 방어 전선 뒤로 지원군이 내리기 시작했다.
한 번에 수백 명이 내렸고.
그들은 내리자마자 방어선에 합류했다.
- 미친, 정연의 정예전투마법 부대다. 특수 타격대도 있어!
- 저건 흑연 문양인데? 거의 천 명 아니야?
- 언더월드도 있어. 대부분 용병인데 못해도 A등급 이상에 S등급도 섞여 있는 부대임.
- A등급도 이제 옛 말임. 예전의 A등급은 거의 다 S등급으로 올랐을 테니까.
총 4,500명의 정예 지원군은 밀리는 전선을 한 번에 복구했다.
하지만 메인은 그게 아니었다.
방어선 세 곳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거대한 마력의 파동이 전선을 휩쓸었다. 최상위 격이 준동하고 있었다.
- 미친, 한구본 직접 왔는데?
- 개쩐다.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인간이길래.
- 우리나라 3대 왕이잖아. 아마존 3대 왕에 전혀 안 밀려!
- 미치게 강하네. 근데 저분들이 어떻게 지원 온 거냐?
- 원래 한성이랑 좀 친했음. 예전부터.
방어선은 안전을 찾아갔다.
한국에서 온 세 명의 왕은 에프엘, 갈라윈, 이아인. 아마존 시장의 세 왕에 전혀 꿀림 없는 무력을 보여줬다. [초월 신화]의 도움도 있었지만, 그들은 신격의 격동에 의해 더욱 강해졌으니까.
왼쪽 상단에 있는 시간은 점점 0으로 수렴되어 갔다.
- 0이 다 돼간다.
- 도대체 뭐지? 개긴장됨.
- 막, 우리가 지는 시간은 아니겠지?
3.
2.
1.
0.
모든 시간이 소모되었을 때.
지저 세계의 입구가 자연스럽게 열렸다.
화악.
그곳엔 이한성이 서 있었다.
한 손에 [성배]를 들고.
그는 입을 열었다.
『 전쟁은 끝났다. 』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성배 전쟁]이 이토록 빠르게 끝날지 말이다.
< 성배 전쟁의 끝.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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