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재앙(大災殃)급 메인 퀘스트. >
한성과 성시연은 잔상뿐이지만, 루시퍼를 잡았다. 한성의 눈앞에 시스템 문구들이 주르륵 올라왔다. 성시연도 똑같은 상황인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 업적을 이뤘습니다!
- [루시퍼 신화의 태동을 경험한 자(역사)]
- [악(惡)과 선(善)의 협공(역사)]
- [죽음을 베고 일어선 의지(역사)]
- [루시퍼의 악(惡)을 벤 자(전설)]
- [루시엘의 성검을 소유한 자(전설)]
- [루시퍼의 신화를 잇는 자(준신화)]
한성이 얻은 업적들이었다. 역시 [신화]에 닿았을 때나 도전하는 히든 퀘스트다웠다. 몇 번이고 죽을 뻔했지만, 둘은 성공했고 죽음에서 일어선 상황까지 업적이 되었다.
- 이 세계관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 수많은 신격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 몇몇 신격이 당신에게 의지를 표명하려 합니다.
- 인지도 포인트 20,000이 상승합니다.
- [신화의 태동]이 갱신되었습니다!
- 아주 먼 과거에서부터 내려온 거대한 신화의 태동이 시작됩니다! 그 중심에는 플레이어 ‘이한성’이 존재하며 앞으로 모든 행보에 [신화]가 깃들 것입니다.
- 업적 :
* 역사 등급 : 11/20
* 전설 등급 : 8/7
* 신화 등급 : 3.5/5
- [전설] 등급 업적이 필요 치에 닿았습니다.
- 아직 [역사] 등급 업적이 부족합니다.
- [신화] 등급 업적이 당신의 격을 선도합니다.
- 당신은 온전한 [전설]에 닿았습니다.
- 앞으로 당신의 전설을 토대로 신화에 도전합니다!
한성은 전신에서 끓어 오르는 격을 느낄 수 있었다. 전 회차에 신격에 다다랐던 한성이었기에, 감격할 정도의 격은 아니었지만,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도달한 격이었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한성은 성시연을 바라봤다.
그녀도 격을 얻은 듯, 육체를 뒤덮는 아지랑이가 주변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최소한 온전한 [역사] 등급의 격을 가질 수 있었고 [전설]을 걷는 중인 것 같았다.
게다가 그녀는 악마의 마검을 얻었다.
그녀는 [마왕의 전설]을 걷는 중일 거다.
계약한 신격도, 종속된 신격도 없는 완전히 혼자인 [마왕]이라, 한성은 전 회차에서도. 그 어떤 영상에서도 그런 존재를 본 적이 없다.
성시연은 전무후무한 존재가 될 거다.
한성의 옆에서 말이다.
* * *
[비기]라는 것은 이능과 마력 응용 등. 본인 스스로의 고유 기술들을 엮어 하나의 ‘필살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진훈이 만들었던 마력 무기는 그런 비기의 일종이었다.
“그것은 마력이 기반이 될 수 있고, 이능이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남들이 쉽게 파훼할 수 없으며, 누군가 예측할 수 없는 숨겨진 기술. 그러면서 단 한 순간에 전세를 역전할 수 있는 그런 기술.”
그게 바로 비기다.
한도석은 자신의 검에 마력을 불어 넣으며 입을 열었다. 1위부터 50위까지 모인 최상위 후보생들이 숨을 들이켰다.
“제 알려진 비기 중에 하나입니다.”
한도석은 유명하다.
비록 S등급에 불과한 영웅이지만, 그는 강하다. 아카데미에 십 년 이상 묶여 있었기에 업적이 부족한 것뿐이다. 경지와 기술이 깊이로만 따지면, 검성에 비벼볼 정도는 된다.
그의 검은 붉게 달아올랐다.
키이잉.
무언가 찌르는 소리가 주변을 훑었다.
한도석은 그 검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그러자 붉은 선 하나가 하늘에 닿아 일자로 그어졌다. 그 선에 닿은 것은 그 상태로 잘려나갔다. 널찍한 공터를 가득 메운 타격용 대리석, 몇몇 마법 결계······ 그리고 하늘의 구름까지.
구그그긍.
야외였기에 가능한 일.
후보생들은 입을 떡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게 제가 20년 전에 개발한 비기입니다. 아, 다들 제 나이 아시죠? 아마 그때가 20살 때였을 겁니다.”
그 말에 몇몇 후보생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한도석은 유명했다.
15살 때, 검에 관한 이능이 발견되었고 17살 아카데미 후보생이 되었을 때 업적을 얻고 C등급의 능력치로 [천마]와 계약하게 되면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그는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검은 땅과 아마존을 오갔다. 그렇게만 계속 돌아다녔으면 그는 분명 SS등급을 뛰어넘어 전설을 기록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카데미에 남기로 했다.
서울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테러 때문이었다.
그때 소중한 친구를 잃었고 아카데미의 일부를 잃었었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아카데미에 남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결국 강사가 되었다.
그가 없는 아카데미는 너무 약했다. 강하다는 이들, 재능 있다는 인재들은 모두 밖으로 나갔으니까.
이 모든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아마 한성과 이정현 마도사 정도지 않을까 싶다.
“이 기술은 천마에게 배운 검술을 응용한 겁니다. 당연히 그 검술보다는 위력이 떨어지죠.”
한도석은 어차피 [파천신화공(破天神化攻)]을 완전히 사용할 수 없다. 업적에 의한 ‘격’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도석은 그것에 영감을 얻었다. 당연히 다른 기술이라고 하지만, 이 정도의 위력을 지닌 비기는 아무나 만들 수 없다.
그런데 이걸 20살 때 완성했다.
하여튼 천재는 천재다.
잃어야 했던 한쪽 팔까지 그대로 있는 상황이니, 나중에 분명 큰 도움이 될 거다.
“그런 게 비기입니다. 이번에 진훈 후보생이 만들었던 마력 건틀렛도 하나의 비기가 될 수 있죠.”
한도석이 진훈을 바라보자 진훈이 부끄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인다.
“자, 이 시간에는 스스로 비기를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할 겁니다.”
한도석의 말이 끝나고 후보생들은 친한 친구들끼리 모이기도 하고 홀로 마력을 끌어 올리거나 이능을 사용해보기도 했다.
“한성! 너는 어떻게 하게?”
진훈이 다가와 물었다. 한성 곁으로는 자연스럽게 진훈, 한별, 세르게이, 나디아, 안혜림, 얜 샤를 등이 모였다. 약간 어색하지만 최이명도 은근히 곁에 있었다.
하얀이는 한성 옆에 딱 붙어서 손을 들었다.
“저는 무기를 잔뜩 모을 거예요! 그게 비기가 되는 거죠!”
하얀이는 언제나 그 생각을 하는 듯했다. 하긴, 하나에 빠지면 헤어 나오질 못한다.
한성은 대답도 안 했는데, 친구들끼리 ‘비기’에 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디아가 슬쩍 옆으로 다가왔다.
“오, 오랜만이네?”
나디아는 세르게이와 항상 붙어 있었기에 한성과도 함께였지만, 서로 대화는 거의 하지 않았다.
물론, 다른 친구들과는 잘 어울렸다.
특히 안혜림과 얜 샤를. 그리고 세르게이까지는 ‘절친’처럼 보였다. 옛 도도한 나디아의 성격은 어디론가 가버린 것인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그건 아니었다. 안혜림, 얜 샤를, 세르게이가 그녀를 잘 받아주고. 은근히 잘 맞는 성격 덕분이었다.
한별과는 친해지지 못하는 게 그 증거랄까.
그중에서도 나디아는 한성을 가장 어려워했다.
“······오랜만은, 엊그제도 봐 놓고는.”
“뭐, 그렇지. 그게······.”
나디아가 무슨 말을 꺼내려 할 때, 옆에서 하얀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아빠! 나 무기! 무기 만들어 주세요!”
“······갑자기?”
“응, 아빠가 쓰던 그 광선검? 그 비기를 담은 무기!”
한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긴, 비기를 무기에 담는 건 불가능한 게 아니다. 한 번 검을 휘두를 때 전신에 가동한 마법진을 검에 새겨 넣으면 되니까.
거기에 블랙 키리윰을 통째로 사용하고 최상급 마력석을 박아 넣으면 못할 것도 없다.
그렇게 만들면 무슨 등급이 나올까.
“괜찮은 생각이긴 한데.”
한성은 하얀이에게 나중에 만들어 준다고 하곤 생각에 잠겼다.
[비기]라는 것은 무엇일까. 마법만으로 만든 것? 그것은 비기라고 할 수 없다. 당연히 본인이 쓰는 것 외에 무기에도 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능과 조합한다.
한성의 이능 중 가장 활용도가 높은 것은 공간과 시간의 이능.
‘인지도 포인트는 충분한데.’
공간과 시간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선 ‘중력’이 필요하다. 인지도 포인트는 최대한 모아 놓는 게 좋다. 깨지 못할 헬 난이도급 퀘스트가 오면 모조리 쏟아부어야 하니까.
하지만 벌써 4만 정도 쌓인 포인트에서 1만 정도는 써도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중력’ 정도는 나올 것 같았다. 한성은 행운이 만렙이니까.
좋다.
한성은 [중력]을 구하기 위해 시스템 상점에 들어갔다.
오늘 제대로 된 비기 하나를 만들어야겠다.
* * *
나디아는 말이 끊겨버린 한성을 조용히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원래 한성이 본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른 누군가에겐 항상 부드럽고 다정하지만, 본인에게만큼은 항상 쌀쌀맞았으니까.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디아는 그런 한성을 떠날 수 없었다.
세르게이와 친해서?
아니다. 한성 곁에 있기 위해서 세르게이와 친해진 거다.
아니면, 그때 말했던 [양산박] 관련 이야기 때문에?
그것도 아니다.
나디아는 다시 한성을 돌아봤다.
뭔가 묘한 느낌이다. 게다가 성시연이라는 애인같은 친구도 있지 않은가. 둘이 서로 친구라고 하지만, 여자의 눈엔 그것뿐이 아니라는 게 보인다.
‘······내가 무슨 상관이지.’
나디아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오늘 전해야 할 말이 있는 것뿐이었다.
‘아버지가 찾아온다고 했는데.’
나디아가 한성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나디아의 아버지에게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황혼의 용살자]인 양산박의 그에게 다시 도전할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 말하라고.
나디아는 그 말을 듣고 경악했다.
그 이야기를 아는 사람도 극히 적었으며, 아버지에게 그런 말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지도 못했다. 거기에 양산박과 인맥도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때, 나디아게 그 이야기를 전했을 때. 아버지는 분노했다. 얼굴이 붉게 물들어 푸들푸들 떨었을 정도로. 나디아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처음 봤다.
나디아도 정확한 이야기는 모른다.
그녀가 아는 건 아버지의 한쪽 눈을 앗아갔으며, 검은 땅을 떠나게 된 결정적인 사건에 [황혼의 용살자]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 정도였다.
그런 아버지가 그에게 전하라고 했다.
아카데미에 찾아가겠다고, 그리고 그와 싸울 수 있게 해 달라고.
나디아는 한성의 작업이 끝나길 기다렸다.
때마침 한성과 눈이 마주쳤다.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지금도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말하는 게 낫다.
“무슨 할 말 있어?”
“응, 아버지가 직접 만나서 이야기 하고 싶대.”
한성은 움찔 떨었다.
“날?”
“응.”
한성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는 세계 최고의 창사다. ‘창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경지가 높았고 [전설]의 격을 지닌 세계 십선(十善)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의 한성은 그와 대적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무슨 일로?”
“그때 네가 말했던······ 그와 겨루고 싶다고.”
“······.”
한성은 생각보다 빠른 진행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본래는 앞으로 2년이나 3년 후쯤 생겨야 하는 이벤트였으니까. 한성도 그 정도를 생각해서 뿌려 놓았던 떡밥이었다.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만약, 아카데미가 반쯤 무너져 검은 땅에 가지 못했었다면 지금쯤 그에게 죽을 걱정을 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그가 단 한 번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는 것이고 그가 지닌 [밤부]라는 ‘전설’ 등급의 무기 또한 한국에 들어온 적이 없다는 거다.
그게 무슨 문제냐고?
러시아엔 극히 드문 ‘용’이라는 개체가 한국엔 꽤 많다. 그중에 [동해(東海)의 해룡(海龍)]이 있다.
‘대나무를 영어로 밤부라고 하지.’
그렇다.
그가 지닌 [밤부]라는 무기의 재료는 [만파식적] 설화에 나오는 그 대나무다. 죽어서 동해의 해룡이 된 ‘문무왕’과 하늘의 신이 된 ‘김유신’이 합심해 보냈다는 설화가 있는 그것.
창신이 가진 [밤부]라는 전설 등급의 무기는 바로 그 대나무로 만든 것이었고, 그것은 동해의 해룡을 분노하게 만들면서 퀘스트가 발동한다.
이게 히든 퀘스트이긴 한데, 메인 퀘스트로 바로 연계되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은 아무리 봐도 [대재앙(大災殃)] 등급의 ‘메인 시나리오’로 가고 있었다.
‘미치겠네.’
최소 앞으로 5년 정도는 있어야 나오는 대재앙급 퀘스트.
대재앙이라는 등급이 붙는다는 건 단순하게 어렵다는 뜻만이 아니다. 전국적인 피해가 예상되며, 제대로 막지 못할시 메인 캐릭터는 물론이고 그 지역의 생명체 대부분이 죽을 수 있다는 뜻인 거다.
말 그대로 대재앙.
“너희 아버지······ 검은 땅으로 바로 갈 생각은 없으신가?”
“······너에게 먼저 확인하고 싶다고.”
“내가 러시아 가도 되는데.”
“······이미 출발하셨을 텐데.”
나디아가 왜 그러냐는 눈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한성은 그것에 반응해 줄 여유가 없었다.
‘그래, 첫 번째 회피 루트는 실패다.’
어떻게 하든 회피할 순 없을 거다. ‘운명’이라는 이름의 ‘시스템’이 이 퀘스트를 몰고 오는 거니까. 지금까지 한성이 얻은 ‘인지도’와 주변 인물의 ‘성장도’가 이 대재앙을 가져오는 거다.
한성은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이 미친 난이도의 퀘스트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까. 난이도가 높은 만큼 보상은 높다. 그리고 그 보상을 더욱 높게 하는 건 한성의 운과 능력에 달렸다.
한성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참에 순수 용혈을 얻어 볼까······.”
어쩌면 좋은 기회일 지도 모르겠다.
이참에 네 번째 메인 시나리오도 완벽하게 공략한다면······ 한성은 완전한 [신화] 등급의 업적을 얻고 신화를 완성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한성은 [비기]부터 완성하기로 했다.
그래야 승산이 있으니까.
“나디아, 창신은 언제 도착하시지?”
“······지금쯤 도착하셨을걸?”
“······?”
“아아, 지금 당장 만나자는 건 아니고. 다른 일이 있어서······.”
그때.
쿠우우우웅.
아주 먼 곳에서부터 거대한 힘이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젠장할.”
이 정도면 정말 [행운]이 만렙인지, [악운]이 만렙인지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았다. 도저히 이런 전개가 ‘운’이 좋다고 할 순 없지 않은가?
< 대재앙(大災殃)급 메인 퀘스트.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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