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별의 [왕명] >
한별은 기숙사 옥상에 서 있었다. 서울은 몇 번의 습격을 받았지만, 빠르게 복구했고 꺼지지 않는 서울 밤은 언제나처럼 평화로웠다.
한별은 손아귀에 힘을 쥐었다.
화륵.
투명한 불꽃 위에 검은 오라가 맺힌다. 손에서 뿜어진 [왕명]의 힘. ‘염력’이 성장한 이능이었으며, 일정한 거리 안에서는 절대적인 ‘대상 통제’ 능력을 지닌 강한 이능.
신격과 전투 중에 얻었으며, 이 정도의 힘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쉽게 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진훈은 자신보다 훨씬 강했고 이한성은 말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신입생은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계속 아카데미에 있는 게 맞는 걸까.’
한별은 성장의 한계를 절절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대로는, 다른 친구들과 똑같은 상황에서는 계속 뒤쳐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었다.
그때였다.
멀리 반대편 기숙사 위, 어떤 인영이 보였다.
그는 한별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습관적으로 은신을 위해 마력과 기척을 숨기는 한별이다. 웬만한 고수가 아니면 이 거리에서 한별을 느낄 수 없다.
그 인영(人影)은 순간적으로 수십 개로 불어나더니, 아카데미 곳곳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뭐야 저건?”
한별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봐도 이게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번뜩.
화악.
찰나였다. 저 멀리에서 시선이 느껴졌고 한별은 [왕명]을 발동했다. 반투명한 힘은 한별을 중심으로 반경 10m까지 퍼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소리 없이 코앞까지 다가온 인영에선 수십 가닥의 촉수가 쇄도했다.
키잉.
촉수는 한별이 설정한 영역을 뚫기 위해 기이한 회전과 함께 미증유의 힘을 흩뿌렸다.
한별은 틈을 놓치지 않고 거리를 좁혔다. 상대는 멈칫했다. 거리를 벌리려고 했던 한별이 다가온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아니면 내 정체를 알고 있다는 뜻이거나.’
아주 찰나였지만, 한별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한별의 손은 대상의 머리로 향했고 촉수들이 한별의 손을 감싸는 동시에 몸을 돌려 피하려 했다. 하지만 한별의 손에는 극한(極限)의 진동을 형성하는 왕명의 힘이 있었다.
파삭. 파삭.
수 개의 촉수는 힘없이 흩어졌다.
그는 움직임을 바꾸어 뒤로 무르려 했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한별의 영역이었다.
턱.
등에 무언가 닿아 길이 막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땐, 이미 한별의 손이 그의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낸 후였다.
하지만.
대상은 먼지로 화했다.
“뭐야?”
그리곤 사방에서 수십 개의 인영이 한별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별은 당황하지 않았다. 아까 한 명이 수십 명으로 불어난 걸 봤었으니까.
화륵.
[왕명]이 발현되었다.
왕명이라는 이능은 염력도 아니고 언령 같은 것도 아니다. 처음 이 이능을 얻었을 때, 느낀 것은 일정 거리 안에서 한별이 끼칠 수 있는 ‘절대적인 영향력’이었다.
그것이 무엇이냐.
‘위로!’
왕명의 공간 안에 진입한 이들은 허공에 붕 떴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마력을 이용해 바닥에 다시 붙었으며 몇몇은 마법을, 몇몇은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것들은 한별에게 닿지 못했다.
마법은 방향을 바꿔 다른 적에게 날아갔으며, 내려치던 검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갈랐다.
‘힘의 방향을 바꾼다.’
중력의 방향을 바꾸고 마법과 검의 경로를 바꾼다. 그것은 한별 자신의 영역 안에서 발현되는 힘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것은 [왕명]이 지닌 ‘영향력’이라는 것에 ‘일부’였다.
하지만 그게 만능은 아니다.
한별은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며 하나하나 철저하게 제거하기 시작했지만, 곧 한계에 다다랐다. 상대는 생각 이상으로 강했고, 그들은 밖으로 도움도 청하지 못하도록 결계까지 친 상태였다.
* * *
한성은 늦은 새벽, 검술 훈련장에 혼자 있었다.
한성은 전 회차 끝자락에 [신격 사냥꾼]이라는 업적과 이명을 얻으며 신격을 사냥하고 있었다. 그때의 주무기는 한성이 개조한 [역행 마법]이었다.
그 덕분에 마법으로 결말을 본 것이고.
하지만 그것으론 역부족이었다. 몇 번이고 사망을 겪었고 가진 많은 것을 잃기도 했다. 이번엔 그런 죽음이 있으면 안 된다.
그래서 생각한 게 검을 쥐는 것이었다.
한성은 틈틈이 검술 훈련을 했고 마력 지배를 이용한 마력 응용으로 일전 다른 게임에서 쓰던 검술을 흉내 낼 수 있었다.
지이잉.
한성은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었다.
이게 무협 세계관에서 봤던 [검강]이라고 볼 수는 없다. 검기를 크게 늘린 정도랄까. ‘마력’을 어마어마하게 응축해 뽑아 올린 것뿐이다.
아무래도 검강에 비하면 손색이 있을 수밖에 없다.
세르게이는 가짜가 아닌 진짜 오러 블레이드의 단서를 얻은 정도였으며, [소드 마스터]라는 지고의 경지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지금 한성은 세르게이와 ‘검’으로 붙으면 이길 수 없다.
“······내가 너무 그 세계관을 따르려 했나.”
잘 생각해보면, 빠르게 성장한 이유가 무협 세계관을 겪었던 것이고, 막힌 이유도 무협 세계관을 너무 맹신한 것에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한성은 검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애초에 이건 ‘내공’과 다르다. 이 세계관의 검사는 ‘무공’이나 ‘내공’ 따위는 없다. 마력을 어떻게 응용하고 활용하느냐. 그것이 얼마나 수준 높은 경지에 오르느냐가 관건이다.
한성이 아는 전 회차의 세르게이가 한 말이 있다.
[마력 회로라는 게 있어. 마법 회로와 비슷한 육체의 마력이 흐르는 길이지. 검을 사용하는 가문은 모두 나름의 회로를 구성하는데, 내가 봤을 땐, 한성 네가 사용하는 마법 회로는······ 웬만한 상위 검술 가문에 꿇리지 않는 정교함과 안정성을 가졌어.]
세르게이는 마법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기존의 마법을 한성의 입맛에 맞게 개조했으니까. 오랜 시간 연구했고 수많은 실전을 겪으면서 수정된 회로들이었으니까.
그리고 한성은 그것에 자부심이 있다.
우우웅.
한성은 전신에 마력을 끌어 올렸다.
웅후한 마력은 한성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푹 적셨다. 그 마력은 한성이 쥔 검까지 이어졌다. 오러 블레이드는 만들지 않았다.
‘절삭력은······ 얇아야 한다.’
괜히 SF 영화에서 최강의 검이 광선검으로 나오는 게 아니다.
마력을 세밀하게 조종한다. 전 회차였다면 종장에 다가가야 가능했던 컨트롤을 [마력 지배] 하나로 완벽하게 해내고 있다.
가느다란 선을 만들어 검 날에 씌웠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것을 반으로 가르고, 또 가르고, 또 가른다. 한성의 컨트롤로도 더 이상 자르지 못할 만큼 계속 갈랐다.
한성의 머리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머리카락을 수십 조각으로 갈라 육안으로도 쉽게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얇기.
아주 얇다. 만약 이게 단단하다면 돌이든 강철이든 두부처럼 잘라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거의 ‘광선(光線)’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아무것도 못 한다.
이것도 한성이니까. 한성의 [마력 지배]니까 만들 수 있는 얇기인데, 이걸 유지하고 단단하게 만든다? 불가능할 것만 같다.
‘난 마법을 가장 잘한다.’
그래, 굳이 마법을 회피할 이유는 없다.
그 생각과 동시에 한성의 몸에는 마력 회로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발, 무릎, 허벅지, 골반, 척추, 목, 어깨, 팔, 손까지. 그것은 하나의 공정이었다.
얇은 마력의 ‘광선’을 제조해내는 과정.
‘이제 힘을 빼도 유지가 된다.’
그래, 회로란 이런 거다.
정신력과 수많은 계산으로 유지해야 하는 무언가를 자동으로 해결해 주는 것.
한성은 그 위에 또 하나의 회로를 덧씌웠다.
이번엔 ‘융합’이다. 얇기는 변하지 않고 농도를 덧씌우는 작업. 당연히 쉽지 않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까. 이미 한계에 다다른 농도인 거다.
여기에 마력을 추가하면 옆으로 삐져나온다. 그 말은 기껏 줄였던 얇기가 두꺼워진다는 것이다.
‘억지로 누른다면?’
이번엔 압축 공정이다.
번쩍.
환하게 빛나는 마력은 한성의 몸에 또 하나의 회로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회로를 겹치는 건 상당히 위험하며 아주 어려운 작업이다.
하지만 한성이 누구인가.
한성은 단 하나의 누락과 충돌 없이 회로를 구성해 냈다.
마력을 압축하고, 그 압축한 마력으로 하나의 트러스를 구성해 낸다. 하나의 건축술이다. 무언가를 베기 위해선 그만한 강도가 있어야 하니까.
‘입자가 있긴 할 텐데.’
모든 ‘힘’은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 우주를 구성하는 4대 힘은 하나의 ‘끈’으로······ 하여튼, 그것은 현대 물리학일 뿐이다.
이 게임에 그게 구성되어 있는지는 모른다.
한성의 능력으로도 알 수도 없었고.
한성은 다시 집중했다.
우웅. 우우웅.
한성은 비슷한 과정으로 육체에 직접 회로를 입히기 시작했다. 한성이 유용할 수 있는 무한에 가까운 마력을 이용해 [검강]을 뛰어넘는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가공, 압축, 분류, 회전, 생성, 진동 등의 마법 회로 수십 개를 하나의 공정으로 만들었다.
위이이이이잉.
아주 작은 소리다. 이것조차 한성이 소음 방지 마법을 걸지 않았기에 나는 소리. [마력 광선]이 생성되며 가공되고 압축되며 회전과 진동을 내는 소리.
한성의 검은 하얀 빛으로 찬란히 빛났다.
그리고, 한성은 그 검을 옆으로 그었다.
“······.”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성은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미, 미친. 공간을 갈랐어?”
방금 분명히 느꼈다. 허공이 갈라지며 갈 길을 잃은 시공간은 하나의 ‘혼돈’을 만들어냈고 그 공간에 있던 ‘마력’들이 절삭 되었다.
이건 한성도 처음 보는 현상이었다.
‘격’이라는 게 ‘신격’에 이르면 시공간을 가르고 폭발시키며 무효화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도 마력을 절삭하는 건······ 못 봤다.
못한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
신격이 그것을 해야 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흐음.”
잘하면 멋진 폭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아니, 그것보다 이창석이 지닌 [마력 절삭]이 이런 느낌일까?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 발견일 수도 있겠다. 한성은 마법을 몇 개 올려 베어 봤다.
당연하게도 마법은 쉽게 베어졌고, 그 뒤로 공간까지 베어졌다. 출력을 한 단계 내리자 공간에 상처가 나는 정도가 되었고 한 단계 더 내리자 시공간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이거는 또 마력이 안 잘리긴 하네.”
그래도 대단하다.
한성은 반대 손으로 훈련용 검을 들고 기존의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 서로 부딪혀 보기로 했다.
스걱.
뎅강.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무언가 베는 느낌이 전부였는데 검은 반으로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아니, 두 단계나 낮춘 건데?”
이거 상상 이상의 기술을 만들어 버린 것 같았다.
그때 연락이 왔다.
“길이현씨?”
한성은 스마트 워치로 통화했다. 길이현이 알리스의 둥지 근처에서 거대한 탑을 발견했다는 이야기였다.
- 아마 많은 기업과 길드에서 공동 발굴을 하자는 요청이 있을 겁니다. 아무리 31번 구역에 편입되는 과정인 ‘알리스의 둥지’라고는 하지만, 그들이 쉽게 소유권을 내주진 않을 거니까요.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죠.”
알리스의 둥지는 오래전 제현 그룹의 소유였다. 아니, 둥지가 있던 땅 자체가 말이다.
알리스가 그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검은 땅에 영역을 넓히려던 제현 그룹은 큰 타격을 입고 검은 땅을 벗어나야 했고 말이다.
그래서 이 탑에 길장현과 그의 부모가 말려든 것이다.
- ······아셨군요.
한성은 잠시의 고민 끝에 결정할 수 있었다.
“그 누구도 탑에 접근하지 못하게 합니다.”
- ······제 힘으로는 막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제현 그룹 뿐만이 아니라 세계 영웅 협회나 각국 유수의 길드를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괜찮아요. 이때를 위해서 정연, 흑연, 언더월드에서 [긴급 전력] 요청권을 얻어 놓은 거니까요.”
그것을 드디어 쓸 때가 왔다.
그들은 31번 구역이 습격당했을 때나 사용할 거라 생각하고 별생각 없이 줬을 거다. 그 정도는 쉽게 감당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탑을 위해 사용한다면?
아마 주전력을 철저하게 갈아 넣어야 할 거다.
뭐, 어쩌겠나.
지들이 직접 준 건데.
한성은 고맙게 쓸 의향이 있었다.
* * *
한성은 길이현과의 연락을 끝내고 문득 이상한 기류를 느꼈다. 조용하지만 과격한 전투의 향기. 한성은 마력 지배를 이용해 아카데미 내의 마력 흐름을 관찰했다.
“저긴가.”
아주 조용한 전투다.
양쪽 중 한 곳이 마력이 빠져나가지 않게 철저하게 막고 있다는 뜻이었다.
한성은 마력을 이용해 바닥을 쭉쭉 차고 나갔다. 그곳은 기숙사의 위였고, 한성은 마법을 사용해 위로 솟구쳤다.
그것엔 한별이 있었다.
한쪽 옆구리는 뻥 뚫려있었고 한별은 창자 일부를 손으로 부여잡고 있었다. 전신엔 누구의 피인지 모를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멈춰!”
그리고 그 앞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명의 적이 한별에게 이상한 촉수를 겨누고 있었다.
타이밍 하난 끝내준다.
한성은 지체 없이 쇄도했다.
찰나의 순간 검을 빼 들었으며, 그의 몸 전체에 새겨진 회로가 강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키이이잉.
한별을 저 정도로 만들었다는 건, 상당한 강자라는 뜻. 한성은 온 힘을 다해 일명 ‘광선검’을 뻗어냈다.
그것은 옥상 겉에 설치되었던 결계를 가볍게 갈라내며 시공간을 흐트러뜨렸다. 적은 당황하여 한별부터 죽이려 촉수를 밀어 넣었지만, ‘운’이 좋게도 한별이 옆으로 쓰러지며 촉수는 허공을 갈랐다.
찰나였지만, 한성에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한성의 검은 적에게 향했고, 중간에 있었던 것 같은 수십 장의 실드가 순식간에 썰려 나갔다. 적은 그것에 검이 막힐 줄 알았는지,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그게 그의 마지막이었다.
푸욱.
스거억.
한성은 적 머리에 박힌 검을 사타구니까지 내려그었다.
적은 완벽하게 반으로 갈라졌다.
< 한별의 [왕명]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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