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서운 신입생들. >
[전설의 신입생]이라는 히든 에피소드는 쉽게 생기지 않는다.
한성처럼 빠른 성장으로 세계의 재앙을 일찍 끌어오면서, 아카데미가 무너지지 않게 지키며 메인 캐릭터가 90% 이상 살아남아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상당히 하드한 난이도를 지니기도 했다.
잘하면 ‘메인 캐릭터 성장’ 혹은 ‘새로운 인재 영입’. 두 가지를 모두 얻을 수 있지만, 잘못하면 ‘아카데미 붕괴’ 및 ‘메인 캐릭터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한성!”
멀리서 진훈이 손을 번쩍 들었다.
옆에는 역시나 한별이 서 있었는데, 의외로 세르게이와 나디아까지 함께 있었다.
최근 한 달을 함께 돌아다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넷에 한성까지. 총 다섯이 아카데미를 걷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혜림과 얜 샤를까지 붙었다. 길성현은 없었지만, 그놈은 어쩔 수 없었다.
싸울 땐 길이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여했던 거니까.
‘참, 이런 그림이 나오다니.’
메인 캐릭터 대부분이 멀쩡히 살아있는 것도 대단했지만, 모두 상상 이상으로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좋았다.
성시연이 함께 할 수 없는 건 아쉬웠지만.
“이번에 신입생하고 편입생 들어오는 거 알지?”
“응. 재미있을 거 같아.”
“난 그거 때문에 아카데미에 다시 온 거야. 네가 온다는 이유도 있었고······ 원래 검은 땅으로 갈까 했는데.”
세르게이가 먼저 대답했고 뒤로는 진훈이었다.
진훈은 가장 중요한 과거의 일부를 기억해냈다.
한별을 처음 만났을 때, 진훈은 ‘악마로 변해버린 천사’인 어머니를 기억에서 잃었다는 것. 자신이 완전한 인간이 아닌, ‘악마가 된 천사’의 피가 섞인 혼혈이라는 것까지.
게다가 기억이 돌아왔던 상황은 절망스러웠다.
어머니가 진훈을 죽이려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운이 좋았어.’
한성도 그 신격이 벌써 나타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만약 검은 땅을 거치면서 [라파엘의 악(惡)을 베는 검]을 얻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한성은 다행히 그 라파엘의 업적으로 아스모데우스의 ‘악’을 제거할 수 있었다. 한성은 그것을 진훈에게 설명했고, 진훈은 선(善)에 치우친 성향답게 고마움을 표현할 뿐이었다.
더욱 강직해지기도 했고 말이다.
“넌 아직 부족해. 알지?”
한성은 진훈의 또렷한 눈동자를 보며 말했다.
진훈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다.
아직 검은 땅을 갈 때가 아니다. 이곳에 모인 친구들 모두는 알 거다. 자신들은 이미 후보생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이번에 새로 들어온 후보생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일 거다.
“아빠아아아!”
멀리서 뿔까지 모두 집어넣은 ‘인간 폼’의 하얀이가 한성에게 달려왔다.
“소개할게. 이번 신입생 중 한 명.”
한성은 친구들에게 하얀이를 소개했다.
“아니, 나이 제한이 없다는 게······?”
“종족 제한도 없는 건가.”
“······우리 경쟁자라는 거네?”
친구들은 각자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하얀이는 한성에게 달려와 안겼고, 신입 실전 테스트를 1등으로 마쳤다고 자랑했다. 물론, [마법] 분야에서였지만 말이다.
“이번 신입 테스트는 분야별로 나뉘었나 보네.”
친구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강의실로 향했다. 그곳엔 한도석 영웅이 기다리고 있었다.
* * *
[무한 경쟁]
아카데미 내에 새로 생긴 규칙이다.
이제 단순한 학원이 아니다.
멸망의 전조와 인류 전쟁의 징후가 세계 곳곳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한국이 입은 피해도 웬만한 국지전 수준이었다.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인류의 멸망을 막아야 하는 거다.
학년을 없애고 나이 제한을 없앤다. 그것은 단순히 제한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신입생이 위 학년을 제치고 올라갈 수 있으며, 능력만 증명한다면 1년도 되지 않아 졸업할 수 있다.
그러면 ‘영웅’이라는 영광스러운 자격을 주는 거다.
[영웅]
그저 이름만이 아니다.
그 자격 하나로 세계 어디를 가나 [귀빈]급 대우를 받으며 세계 어떤 은행에 가서도 수십억을 최저 이자로 대출해준다. 아무런 담보도 없이 [영웅]이라는 자격증 하나 맡기는 것만으로 말이다.
그뿐이 아니다.
‘세계 정부’와 ‘세계 영웅 협회’ 산하의 공기관 및 연구 기관에 1급 보안 자격이 주어지며 모든 편의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정부기관 및 사기업이 주는 혜택과 대우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이 많다. 특정 ‘주(州)’나 ‘국가’에서는 면책 특권을 주기도 할 정도다.
“그 모든 혜택이 주어집니다.”
한도석 영웅은 전과는 다른 피곤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최근 계속되는 전투와 새로운 후보생을 받기 위한 준비로 바쁜 모양이었다.
“누구든, 능력만 있다면 말이죠.”
몇몇은 억울하다며, 불공평하다고 말했다.
자신들은 어렸을 때부터 오래 준비해왔으니까.
하지만 그런 의견은 묵살 되었다. 전쟁이 코앞인데 그런 어린 생각을 받아줄 만큼 아카데미는 만만하지 않았다.
“졸업을 원하고, 영웅을 원하면 강해지면 됩니다. 능력을 증명하고 남들보다 영웅에 먼저 다가가면 되는 겁니다.”
신입생 2,000명. 편입생 1,000명이 들어온다. 본래 있던 후보생 3,000명 정도의 인원에서 30%가 죽거나 크게 다쳐서 아카데미의 교육 과정을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한 숫자인 거다.
* * *
한성은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뭘까 생각했다.
무기? 이능? 업적?
그 모든 것을 얻기 위해선?
“바로 관종 포인······ 아니, 인지도 포인트지.”
튜브의 구독자는 2,000만 언저리에서 멈췄다.
검은 땅으로 간 후로 큰 활동을 안 했기 때문이다. 이것도 게이트 파괴 컨텐츠로 끌어 올린 구독자인데, 전 세계가 전쟁에 준하는 비상사태를 선포한 상태라 튜브 접속자 수 자체가 확 줄었다.
“하얀아.”
“응!”
“우리 재미있는 거 할까?”
“뭐어어?”
다행히도 한성과 하얀이는 같은 반이었다. 다른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반이 달라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새로 들어오는 신입 14명 정도가 추가되는 것뿐. 이번 사태로 14명이 아카데미에 나오지 않았기에 총원은 변함없었다.
“조금만 있어 봐.”
마침, 신입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실전 테스트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결과가 나오고 ‘영웅이란······.’ 기본적인 개론도 끝낸 모양이었다.
요즘 세상이 위험하긴 한 가보다.
여러모로 빠르게 돌아간다.
그만큼 급해졌다는 뜻이겠지.
“이창석. 27살로 5년의 용병 생활, 최근 2년은 아마존에 있었다. 주무기는 ‘검’이며 우리 1-1반으로 들어오는 신입생.”
한도석은 한 명씩 돌아가면서 간단히 소개했다. 하얀이도 중간에 소개되긴 했다.
물론, ‘마법사’로만.
어차피 하얀이를 아는 사람은 아니까. 모르는 사람은 너무 어린 것 아닌가 생각하는 정도였다.
외국인도 꽤 보였다. 몇몇 나라는 아카데미가 붕괴하기도 했기에 한국으로 들어오는 이들이 많았다.
“제임스 딘. 32살로 마탑에서 A등급 마법사 자격을 얻었으며 북극에서 주로 활동한 용병이기도 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위의 두 명이 정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이명. 17살이자 주무기는 너클. 즉, 무투라는 것. 외에는 없다.”
특이사항은 없는 것 같지만, 가장 신경 써야 할 캐릭터다.
소개가 끝나자 퀘스트 창이 올라왔다.
- [히든 퀘스트 : 전설의 신입생]
- 전설의 신입생! 이것은 후보생인가 용병인가. 지금까지 이런 후보생은 없었다. 전쟁의 전조로 인해 아카데미는 인재를 대거 영입했다. 그중엔 순수하게 ‘영웅’ 자격을 노리는 이들도 있지만, [한국 영웅 아카데미]의 ‘붕괴’를 노리는 자도 존재한다.
- 영입할 ‘인재’와 제거할 ‘적’을 찾아라!
“그럼 30분 후에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간단한 실력 검증이 있겠습니다. 모두 준비하고 있도록 합니다.”
한도석은 그렇게 나갔다.
14명은 천천히 빈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그때.
쾅.
이창석이라는 신입이 가장 앞에 있는 책상을 걷어차며 소리쳤다.
“여기 대빵 나와!”
이야, 이 모습을 보게 되다니. 그것도 17살짜리가 모였을 때가 아닌 27살짜리가 17살 사이에 와서 하는 짓이다. 게다가 ‘대빵’이라는 단어라니!
“푸흡.”
그 모습에 누군가 웃음이 터졌다.
저 행동 때문인지 단어 선정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웃어? 누가 웃었어! 이 새끼들이.”
이창석은 아무도 나오지 않자, 누가 웃었음에도 기분이 조금 나아진 것인지 슬쩍 미소가 올라왔다.
한성은 하얀이에게 조용히 말했다.
“하얀아. 이럴 땐 내가 대빵이다! 하고 나가는 거야. 그리곤 수업해야 하니까 조용히 있으라고 따끔하게 혼내줘야 하는 거고. 어때, 재미있겠지?”
“와아. 그런 거야?”
한성의 말에 하얀이는 오랜만에 재미있겠다며 의자에서 내려가 앞으로 걸어나갔다.
“넌 뭐야?”
분야가 달라서 하얀이가 1등을 한 것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니, 이름을 들었어도 얼굴까지 볼 틈은 없었겠지.
“내가 대빵이닷!”
하얀이는 양손을 허리에 얹고 외쳤다.
카랑카랑한 게 헤일렌에게 웅변까지 배운 모습이다. 하긴, 언령 마법을 사용하려면, 말하는 자신감과 발음은 필수니까.
한성은 그 모습에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역시 내 딸이야.”
옆에서 진훈과 세르게이가 걱정된다는 듯 물었다.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래도 아마존에서 활동한 용병이라는데.”
“그러게 아마존에는 ‘지저 세계’도 있잖아. 다른 의미로 검은 땅하고 비견되는 위험한 곳인데.”
한성은 별말 없이 웃었다.
이창석은 다른 후보생들을 쳐다봤다.
그런데 아무도 말리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몇몇은 걱정이 된 것인지 한성이나 진훈을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이창석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뭐?”
“조용히 하고 수업 준비해야지!”
“······읍?”
입이 닫힌다. 저절로 언령이 사용된 것이다.
“자리에 앉아!”
척.
“거긴 땅이고! 의자에 앉아야지!”
이창석은 자기가 차버려 쓰러진 의자에 앉았다. 당연히 의자를 세워 앉은 게 아니라 쓰러진 상태로. 그러니까 바닥에 누웠다는 거다.
“······에휴, 바로. 일어서 봐.”
하얀이는 이창석을 일으킨 다음 의자와 책상을 똑바로 해주고, 다시 앉으라고 했다. 그러자 이창석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자리에 앉았다.
입을 열고 싶었지만, 도저히 열리 지가 않았다.
“······.”
강의실은 정적이 흘렀다.
하얀이는 ‘나 잘했지?’라는 글씨를 써 붙인 것인지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한성에게 다가와 고개를 쭉 내밀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는 뜻이었다.
“잘했어, 우리 딸.”
모두의 시선이 한성과 하얀이에게 향했다.
이런 관심 또한, 짜릿하다.
이 영상의 제목은 [개념 없는 신입생(현직 용병!) 참교육하다!] 정도면 되지 않을까. 섬네일에 ‘하얀이의 용언의 활용법’이라는 걸 살짝 넣어주고 말이다.
* * *
하얀이가 활약하긴 했지만, 신입생들은 이 정도에 기죽지 않는다.
오히려 이창식이라는 놈을 얕보겠지.
30분 후, 한도석이 와서 후보생들을 데리고 체육관으로 이동했다.
“간단한 실력 테스트를 진행한다.”
한도석은 신입생의 실력은 두 눈으로 봤을 거다. 하지만 기존 후보생들은 보지 못했다. 그저 상황이 좋아 들어왔다고 생각할 거다.
게다가 방금 하얀이가 신입생 중 한 명을 아무 말도 못 하게 눌러버렸으니 그 생각은 더 할 거다.
‘아는 놈들도 꽤 있을 텐데.’
하긴 완전한 인간 폼으로 찍은 적이 없긴 했다. 반 인간 폼과는 뿔과 꼬리 정도가 크게 다르고 외모도 조금은 다르다.
아는 사람은 아는 정도랄까.
하얀이가 신입 테스트를 봤다고 해도 모르는 이들이 태반일 거다. 성적도 1등이지만, 시험도 1등으로 빨리 끝내고 나와버렸으니까.
“첫 번째 테스트는 대련.”
한도석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는 첫 번째 대련 상대를 불렀다.
“기존 후보생은······ 진훈. 상대는 최이명.”
한성은 속으로 감탄했다.
‘이야, 재밌겠는데?’
하지만 다른 친구들의 생각은 달랐다.
특히, 진훈과 같이 다닌 친구들.
“와, 처음 상대가 진훈이라니 힘들겠는데.”
처음은 세르게이였고.
“게다가 17살 동갑이잖아. 동갑인데 진훈을 이길 사람이 있을까? 아, 한성 넌 말고.”
얜 샤를이 그렇게 말했다.
뒤에서 조용히 있던 한별이 앞으로 나가는 진훈을 보더니 말했다.
“모르지. 진훈······ 살짝 긴장했어.”
한별의 분석은 항상 정답에 가깝다.
그 말에 세르게이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진훈이 긴장했다고?”
“응. 쟨 눈치가 더럽게 없긴 한데, 강자는 기가 막히게 알아보거든······ 한성을 처음 봤을 때도 저런 눈이었지.”
“아, 진짜로?”
한별도 틀릴 때가 있긴 하다.
그때의 한성은 정말 약했으니까.
“시작한다.”
누군가 그렇게 말했고.
대련장엔 긴장감이 흘렀다.
그리고 동시에,
다다다닥!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피하거나 다른 공격은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서로 코앞까지 닥쳤을 때, 둘은 주먹을 뻗었다.
작은 주먹.
그것은 정확히 부딪혔다.
콰아아앙!
둔중한 충격이 대련장은 물론 체육관 전체를 휩쓸었다. 방심하고 있던 몇몇은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질 정도였다.
고오오.
서로의 기세가 마력과 공명한다.
서로는 알았다.
절대로 쉽게 이길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둘 다 자신이 질 거라는 생각은 없었다.
둘은 다시 부딪혔다.
쾅! 쾅! 콰아아아아!
서로의 주먹과 발에서 나는 소리다. 대련장은 처참하게 파였고 주변을 감싸는 결계는 종잇장처럼 출렁였다. 후보생이라고는 볼 수 없는 대결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성은 씨익 웃었다.
‘멀리 찾아가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네.’
최이명.
검은 땅의 아이이자, 한성이 반드시 영입해야 하는 캐릭터. 선과 악. 지금은 그 어떤 진영에 서 있지도 않지만, 아버지가 악의 신격에 종속되었기에 언젠간 악(惡)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
그것 또한 한성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둘의 대련은 점점 과격해지고 있었다.
대련장의 결계가 버티지 못할 만큼.
한성은 당장이라도 뛰어들어 관심을 받고 싶었지만, 극도의 인내심으로 참아냈다. 원래 주인공은 가장 나중에 등장해야 더욱 극적이니까.
‘아직은 아니야.’
< 무서운 신입생들.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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