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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은 만렙이다-72화 (72/200)

< 진입 >

그 어떤 누구도 이맘때 명계를 연 자는 없었다. 아무리 빠른 이도 최소 5년이 지나서 열었으니까. 그때는 이런 현상이 없었다.

[명계화]

명계와 현실의 경계선이 사라지는 현상.

전 회차에서 30년 차였을 거다. 그때는 이미 많은 이들이 명계를 오갔던 시기. 그러던 어느 날, 이런 [명계화]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검은 땅의 하늘이 벌어지고.

칠흑의 물감이 하늘과 땅을 적시기 시작한다.

귀곡성(鬼哭聲)과 함께.

명계에 남아있던 ‘백’들이 인간계로 내려온다.

그들은 육체가 없었다.

하지만 검은 땅엔 오랜 시간 쌓여온 육체가 수없이 많았다.

“끼이이이기기기!”

“키키킥! 키키킥!”

바로 지금처럼.

하늘은 이미 검은 물감으로 가득했고 사방엔 형체가 없는 ‘백’들이 날아다니며 땅에 묻힌 ‘육체’를 찾아다닌다.

“다들 이곳에서 벗어난다.”

“잠깐! 세르비체는!”

안톤이 한성의 팔목을 잡았다.

“포기하지 않아요. 반드시 살립니다.”

“······알겠어. 믿어볼게.”

한성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에 안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이런 대규모 명계화는 지금의 한성으로는 막을 수 없다.

하늘엔 셀 수도 없는 ‘백’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바닥에선 오래전 죽어 묻혀 있었던 마계족 혹은 인간의 육체가 드러난다. 이미 뼈만 남은, 뼈도 제대로 남지 않은 것들은 검은 마력으로 덧씌워져 있다.

전력을 가늠하자면······.

이대로 마계족의 영역으로 돌진하면 50%는 뺏어올 수 있을 것 같은 어마어마한 양과 질이었다.

“후퇴하면서 최대한 버텨줘야 해.”

“얼마나 멀리?”

성시연이 물었다.

“언제든 단번에 저 구멍으로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내가 타이밍을 만들 거야. 그때, 모두 저곳으로 들어간다.”

“······최대 5km 정도일까.”

“전 못 도와줍니다. 다른 곳에서 가야 하니까요. 그럼 그 반은 될 겁니다.”

한성은 하늘을 바라봤다.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양산박의 [하늘의 성]

“온다.”

성시연이 그렇게 외치며 마기를 끌어 올렸다. 길쭉한 두 개의 뿔이 솟아나고 날개가 펴졌다. 기다란 꼬리도 살랑거리며 올라온다.

“모두 방어 포지션으로!”

헤일렌이 외쳤다.

그녀는 이제부터 [용의 기사단] 단장이다. 이미 세르게이에게 받은 검술 인공지능으로 업그레이드된 상태. 뒤로는 15개체의 구울과 16개체의 블랙 와이번 구울이 있었다.

“버티면······ 버티면 들어가서 구할 수 있는 거지?”

안톤이 다시 한 번 물었다.

“네, 반드시.”

“알겠어. 무조건 버틴다.”

“저도 최대한 빠르게 돌아올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한성은 공간 조종을 사용해 31번 구역으로 돌아갔다.

*  *  *

“미친 이게 뭐야.”

이지훈은 지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누가 명계를 열었단 말인가. 양산박에서도 명계로 들어가는 작은 구멍 만드는 게 한계인데······.

“뭐해, 이지훈. 바로 전투 준비해.”

뒤로 권용덕이 바쁘게 장비를 착용하며 걸어왔다. 이지훈도 정신을 번쩍 차렸다.

“오케이~ 오랜만에 뛰어 보겠구만.”

이지훈은 마력을 흩뿌렸다. 그러자 벽 한쪽에 걸려있던 투구, 갑옷, 건틀렛, 완드 등등 모든 장비가 몸으로 날아와 달라붙었다.

“지금 양산박, 여기에 상주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최대한 방어 위주로 전투한다. 40분이면 모두 모일 거니까. 그때, 명계를 닫거나······.”

“닫을 수 없다면?”

“[하늘의 성]을 움직인다.”

안 되면 도망가자는 이야기다. 어쩔 수 없다. 명계로의 구멍을 닫지 않으면 검은 땅이 위험하겠지만, [하늘의 성]을 잃을 순 없으니까.

그때였다.

창으로 보이는 성 앞에 누군가 내려왔다.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그는 능숙하게 [하늘의 성] 결계를 뚫고 들어왔다. 해체한 게 아니라 특정 패턴을 사용해 들어온 거다.

양산박 내부의 인물이라는 것.

“자, 잠깐.”

이지훈은 안절부절못했다. 권용덕의 뒤로 숨으려고도 해보고 투구를 옆으로 돌려 얼굴을 가려보기도 했다.

“뭐야? 아는 사람이야?”

“당연하지! 전 산장지기야. 도플갱어 킹!”

“진짜? 설마.”

권용덕도 그를 안다. 몇 개월 보지는 않았지만, 그의 격은 상상 이상이다. 저 정도의 나약한 소년이 그 일리 없었다.

“멍청한! 도플갱어 킹은 격도······!”

“도플갱어?”

이지훈은 입을 닫았다. 권용덕도 놀란 모습이다. 전혀 기척이 없이 이곳까지 이동한 것이다. 마력의 유동도, 대기의 떨림도 없이 말이다.

“이지훈.”

“네, 넵! 산장지기님!”

“누가 그렇게 부르라고 했나.”

“죄, 죄송합니다. 그게······.”

한성은 곧게 선 모습이었다.

두 다리를 일자로 만들어 뒤꿈치를 붙이고 한 손은 뒷짐을 진다. 그리고 남은 한 손으로 넥타이를 올린다.

이게 바로 전 산장지기 [도플갱어 킹]의 자세였다.

‘으아, 뻐근해라.’

안 하던 자세를 하고 있으니 좀이 다 쑤신다.

하지만 호랑이 굴에 들어온 이상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혹부리는?”

“하늘 섬 손상된 거 고치러 나갔습니다. 20분이면 돌아올 겁니다.”

이지훈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지만, 권용덕은 한껏 의심하고 있었다. 아마 전 산장지기의 무서움을 잘 모르고 워낙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 그렇다.

“난 제페토한테 간다. 밑에 저것들 수 좀 줄이고 있어.”

“알겠습니닷!”

이지훈은 바로 대답하고 밖으로 튀어 나갔다. 더는 한성 앞에 있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권용덕은 계속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아무리 도플갱어 킹이라고 하지만, 격이 터무니없이 낮다. 육체 능력치에 비해 말도 안 될 정도로 높다고 하지만, 전 산장지기라고 하기엔······.

“계속 그렇게 보고 있을 건가?”

“······아닙니다.”

권용덕은 몸을 돌리면서 망치를 휘둘렀다. 가볍게 등에 이는 모습이었지만, 눈앞에 선 이의 격으로는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속도.

후우웅!

하지만.

그 자리엔 이미 그가 없었다. 망치가 지나간 자리, 아래서 한성이 상체를 들어 올려 권용덕을 바라봤다.

“······.”

“······죄송합니다.”

권용덕은 속으로 안심했다.

그리고 감탄했다.

‘격이라는 것까지 이렇게 철저하게 속일 수 있다니. 게다가 이걸 이렇게 쉽게 피한다고?’

권용덕은 슬쩍 웃으며 밖으로 향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산장지기가 될 수 있는 거구나, 그런 이상한 오해를 하면서 말이다.

“······.”

한성은 잠시 그곳에 서서 있었다. 마치 밖으로 ‘백’을 상대하러 가는 둘을 지켜보는 것처럼.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한성은 방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정신을 놓은 상태였다.

‘진짜 X 될 뻔했네.’

정말 우연이었다. 권용덕도 뒤를 도는 상황이었고, 마침 바닥에 떨어뜨린 ‘단추’가 보여 후딱 주웠다.

그런데 그 사이에 머리 위로 망치가 지나가다니.

한성은 만렙에 다다른 [운]을 향해 기도했다.

“아, 이럴 시간 없지.”

한성은 제페토의 연구실로 향했다. 한성이 기억하는 그대로다. 복도, 휴게실, 벽에 새겨진 회로 신경망까지.

‘다행이다.’

한성이 아는 것과 다른 게 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특히 이 ‘성’으로 들어오는 결계를 여는 ‘패턴’은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한성이 아는 건 지금으로부터 5년은 후의 패턴이었으니까.

다행히 같은 패턴이었다.

한성은 제페토의 연구실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했다.

제페토의 안목까지 속일 수 있을까. 그는 SS등급의 정보 열람 이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한성은 EX등급. 그걸로 걸릴 일은 없다.

하지만 그는 전 산장지기와 오래 지냈다.

‘······그가 아는 산장지기는.’

끼익.

문이 열렸다.

한성이 연 게 아닌, 안에서 열린 거다.

“밖에 서서 뭐 하고 있어! 왔으면 들어와야지.”

“······오랜만입니다.”

“그렇게 무작정 나가더니, 이렇게 갑자기 온다고? 또 뭔 생각인지.”

다행히 바로 의심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한성은 거의 ‘메소드’ 연기로 전 산장지기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보다, 무슨 일이야.”

“블랙 키리윰 구해왔습니다.”

“어디, 꺼내 봐.”

한성은 인벤토리에서 블랙 키리윰을 꺼냈다. 이것은 전 산장지기가 가진 ‘아공간’으로 착각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10kg 정도 되나?”

“정확합니다.”

“이걸로 뭘 하려고?”

“광학 주포 좀 사용하겠습니다.”

“아직 완성도 안 됐어! 블랙 키리윰 있다고 바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그걸 모르는 녀석도 아닐 텐데.”

“그래도 몇 번은 쓸 수 있지 않습니까.”

“에끼! 딱 세 번, 세 번 쓰면 ‘포신’이 날아가. 그걸 또 언제 다 만들어?”

“그래서 10kg 가져오지 않았습니까. 딱 세 번만 씁시다. 블랙 키리윰 정기적으로 가져다 바칠게요.”

“······그걸로 뭐 하게.”

“명계······ ‘백’ 좀 날려버려야겠어요.”

“그걸 왜?”

“구할 게 있습니다. 간 김에 명계도 닫고 오고요.”

한성은 정말 완벽하게 연기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제페토는 한성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너.”

“······.”

“아니구나.”

한성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  *  *

안톤은 사력을 다했다.

‘백’이라는 것들은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조금만 방심하면 몸에 달라붙어 육체를 빼앗으려 하고 바닥에서 기어 나온 시체들은 어마어마하게 강했다.

검은 땅에서 마계족과의 전쟁만 100년이다.

하늘에서 ‘포자’라는 게 떨어지고 세계 각지에 게이트가 열린 게 올해로 딱 100년째 되는 해라는 말이다.

그동안 이곳에는 셀 수도 없는 마계족과 사람이 죽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강자다. 마계족과의 전쟁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인간의 무력도 전성기였다.

[왕(王)]이라 불리는 정연의 한구본, 흑연의 소이연과 같은 사람이 그때는 널리고 널렸다고 했다. 그 말을 누구도 쉽게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안톤은 믿는다.

지구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시기다. 살아남기만 해도 업적 수십 개가 쌓이는 그런 시대였다는 거다. 물론, 살아남았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다행인 건, 격이 없는 육체뿐이라는 거지.’

그리고 그것들은.

“구시대의 유물일 뿐!”

콰아아앙!

안톤은 격을 개방했다.

바닥에서 올라와 안톤의 발목을 잡던 것들, 앞에서 다 썩어 빠진 입으로 달려들던 것들, 하늘에서 안톤의 육신을 빼앗으려 달라붙던 것들.

모두 한 번에 나가떨어졌다.

하늘에서 빛이 떨어진다.

[오벨리스]의 힘이다. 블랙 오크의 신격은 처절한 전투와 이런 압도적으로 밀리는 상황을 더욱 좋아한다.

그리고 그에 맞춰 더 강한 힘을 빌려준다.

“으아아아아!”

안톤은 턱이 두 배는 벌어질 정도로 소리쳤다. 그의 몸은 1.5배까지 커지며 근육은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마기와는 다른 ‘어둠의 마력’은 안톤을 감싸 안았고 그를 중심으로 작은 토네이도를 만들어냈다.

콰과과과과!

눈앞에 달려오던 귀족급 마족의 사체가 안톤의 검에 갈려 나갔고 위에서 떨어지던 블랙 바실리스크의 사체가 반으로 잘린다.

안톤은 바닥에 검을 내려쳤다.

쾅! 콰아아아아!

그 충격파는 바닥을 가르고 전방 수백 미터까지 뻗어 나가며 수천의 사체를 정리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이었다.

이게 SS등급 용병의 힘이었으며, 악의 신격에 종속된 이들의 힘이었다. 그리고 처절한 전투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오벨리스의 힘이었다.

끼야아아아!

활약은 안톤만 하는 게 아니었다.

헤일렌이 이끄는 [용의 기사단]이 하늘을 가르며 적을 부수고 있었다. ‘백’은 구울의 몸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은 블랙 와이번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사체로 올라온 언데드만 해결하면 된다. 물론, 그들만으론 조금 부족했다. 아직 잠재력을 완전히 개방한 구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옆에는 성시연이 있다.

그녀는 소름 돋을 정도로 아름다웠으며 강했다. 마왕의 몸을 가지고 여러 신격에서 살아남은 업적들로 범벅된 그녀는 하나하나가 S등급에 달하는 언데드를 깔끔하게 태워버렸다.

“검은 가시.”

성시연이 개화한 이능 중 하나.

바닥에 깔린 ‘어둠’ 모든 곳에서 가시가 돋아난다.

콰직. 콰그그극!

그 가시는 ‘어둠’이 가진 힘에 반응한다.

마기, 마력, 어둠의 마력은 모두 성질이 다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기와 어둠의 마력 모두 ‘어둠’이라는 거고, 이곳에서 성시연은 그 어떤 곳에서보다 강하다는 거다.

하지만 상대는 너무 많았다.

“······젠장, 이대로는 가망이 없어.”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는지는 모른다.

성시연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곳엔 명계화가 시작된 구멍에서 쏟아져 나오는 ‘백’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바닥에선 끊임없이 언데드가 올라온다.

이걸 어떻게 해결하라는 말인가.

기이이이잉.

상상할 수 없는 막대한 마력의 유동.

그것은 하늘 높은 곳 어느 지점이었다.

아주 작았던 푸른 빛은 점점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그 유동에 바닥이 흔들리고 하늘에 있던 ‘백’들이 후두둑 떨어질 정도였다.

지이이이이잉!

푸른 빛줄기는 하늘을 가르듯 명계의 어둠을 반으로 뚝 자르더니, 그 입구 안으로까지 들어가 버렸다. 그 빛은 하늘을 뒤덮은 수만의 ‘백’을 모조리 태워버렸다.

그 순간.

띠링.

기다리던 신호가 울렸다.

그들 손목에 차여진 스마트 워치에 도착한 문자다.

- ㄱㄱ

간단한 문자.

하지만 모두 알아들었다.

저 푸른 빛은 한성이 날린 거고, 우린 명계의 입구로 향해야 할 때인 거다.

< 진입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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