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력이 폭발한다(feat.약물남용) >
한성은 한숨을 푹 쉬곤 시선을 카메라로 향했다.
일단은 영상이 먼저다.
“여기까지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속성 부여’였습니다.”
찰칵.
- 이번 섬네일도 상당히 괜찮습니다. 아이템 정보를 감정해 섬네일에 추가하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좋았어. 언제 어디서든 컨텐츠 생각을 버리지 않는 게 튜버의 기본 소양이지.”
좋은 영상을 하나 뽑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바로 이거다.
이 빌어먹을 게임에 갇혔을 때부터 풀이 죽어 있었다.
‘역시 튜버는 튜브를 해야지.’
이제야 사는 맛이 좀 나는 것 같다.
삶의 의미, 삶의 활력소. 한성에겐 튜브가 그런 일이다. 재미도 있고 평생 했던 일이기도 했으며, 돈과 인지도까지 얻을 수 있는 일.
“우와, 우와. 이거 어떻게 한 거지?”
성시연은 환한 표정으로 단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한성을 보며 생긋 웃는 모습도 보여준다.
전 플레이에선 그녀를 전장에서만 마주쳤었다.
‘항상 사람 죽이는 장면만 봐 왔었는데.’
그것도 혐오스러울 정도로 완벽하고 철저하게 죽이는 모습이었다. 살귀(殺鬼)였고, 악마 그 자체였다. 그랬기에 아군이었어도 무서웠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예쁘긴 엄청 예쁘다.
하얀 피부에 흑발. 거기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음에도 붉은 입술. 길쭉한 팔다리와 완벽한 비율. 그 무엇도 빠지는 게 없었다.
‘어떤 변태들은 성시연에게 들이대다 꽤 죽었었지.’
컨텐츠를 만들려고 했던 건지, 그저 욕심을 채우려고 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확실한 건, 성시연의 호감을 샀던 튜버는 없었다는 것.
‘이상해. 너무 이상해.’
이렇게 예쁜 여자가 호감을 보이는데 섬뜩한 이유는 뭘까. 엮이면 안 된다는 생존 본능인 걸까. 아니면 저 웃음 속에 담긴 살기 때문인 걸까.
진짜로 살기가 느껴진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살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캐릭터이기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 있었다.
한성은 부르르 떨며 이동했다.
이후, ‘유령’으로 분류되는 마력형, 영체형 몬스터가 줄줄이 나왔다. 난이도가 상승해서 그런 것인지, 확실히 한성이 아는 정보보단 어려웠다.
아마 보통 플레이어였으면 몇 번은 죽거나 포기했을 정도.
하지만 한성은 달랐다.
이미 마법으로 정점을 찍었던 사람이다.
그것도 [직접 발현]으로 말이다.
이 [세상의 끝]에선 플레이어가 마법을 배우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큐브’와 같이 시스템을 이용해 ‘스킬’처럼 익혀 사용하는 것. 숙련도를 올리고 능력치를 올리면 알아서 마법의 수가 늘어나고 강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비주류’인 만큼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상태창의 [고유 능력], [특수 능력], [특성]은 개수의 한계는 없지만, 개수가 늘어날수록 숙련도를 올리고 ‘각성’이나 ‘진화’하는 게 배는 어려워진다.
‘즉, 성장의 한계가 뚜렷하다는 뜻.’
그렇기에 한성은 처음엔 마법을 스킬처럼 익혔지만, 추후엔 마법을 직접 배우며 마법을 보조할 [이능]을 최대한 끌어모으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렇게 한성이 ‘마법’ 관련 이능이 전혀 없음에도 마법을 쉽게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 플레이를 보고 마법을 배우는 이들이 많아졌지.’
마법을 배운 후에, 새로운 캐릭터로 다른 루트를 탄다.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 그런 플레이를 즐기는 사람을 ‘고인 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슬슬 다 왔다.”
한성과 일행은 몇 총 세 시간 동안 보스룸 코앞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모두 지쳤다.
난이도가 생각보다 높았다. 게다가 중간중간 속성석까지 만들면서 왔기에 자잘한 상처가 꽤 많았다. 거기에 바닥난 체력과 마력까지.
한성은 미리 준비해 온 포션을 꺼냈다.
“뭐가 이렇게 많아?”
“일단 체력하고 마력. 그리고 정신력 회복부터 하자.”
마력, 체력, 정신력 회복. 그리고 각종 버프까지 대략 봐도 1억은 될 법한 양과 질의 포션이었다.
“오, 이한성. 원래 돈 많았냐?”
“많긴, 어찌어찌 번 거 다 턴 거야.”
그 말에 성시연이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얘 진짜 이상하네. 원래 이런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정말 오류가 아닌가 깊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었다.
“걱정말고 마셔, 우리가 하나씩 보스만 잡으면 수십 배는 더 벌 거야.”
바로 다음이 보스방이다.
“포쉘. 변종 구울이야.”
“구울?”
한성의 말에 얜 샤를이 되물었다.
“응, 한 10년 전? 투기장에서 탈출한 구울이라는 정보가 있는데, 아마 B등급. 성장했다면 A등급까지 될 수 있어.”
원래 B등급이어야 한다. 하지만 난이도가 상승하면 ‘각성한’이라는 말이 붙었기에 A등급까지 나올 수 있다는 추측이다.
한성은 중요한 정보 몇 가지만 알렸다.
이 이상은 이상하게 생각할 여지가 있다.
“이번에도 내 오더에 따라줬으면 좋겠어. 정말 자칫 잘못하면 우리 모두 끝날 수 있으니까.”
한성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모두 각종 버프 포션을 들이마시곤 보스방으로 입장했다.
고오오오.
입장과 동시에 서늘하며 거친 기운이 느껴졌다.
정면엔 밝은 회색의 피부를 지닌 2m의 구울. 발가벗었지만, 생식기가 전혀 없었고 얼굴은 사람보다 1.5배는 긴 모양이 굉장히 기괴했다.
순간, 구울과 한성 사이의 마력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피해!”
한성은 허리, 골반, 무릎을 통해 발바닥으로 마력을 방출하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콰직.
작은 소리였다. 하지만 한성이 서 있던 지름 3m 정도가 매끈하게 사라져 있었다.
그렇다. 구울의 능력은 [공간 관여].
그리고 이 파괴력이라면 A등급이 확실했다.
* * *
[이능]의 위계(位階)는 현상계에 끼치는 영향의 크기와 개연성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세상의 끝]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이능’이 존재한다. 그중에 최상위 티어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이능은 ‘공간’, ‘시간’, ‘중력’이다.
[공간 관여]
공관 관련 전체 ‘이능’ 중에서도 중상위, ‘특성’으로 분류된다. 그런데도 잠재력이 S등급으로 책정되었다는 건 공간 관련 이능이 그만큼 희귀하고 강하다는 뜻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 지배]라는 공간 관련 능력 중 최상위 ‘이능’으로 성장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친.”
그런 [공간 관여]로 A등급까지 성장한 변종 구울이다. 수십 초가 지나지 않았을 때, 보스방 바닥 수십 군데는 매끈한 구형(球形)으로 파여 있었다.
성시연은 어둠에 숨어 피해 다녔고 얜 샤를은 가장 뒤로 물렸다.
그러기 위해선 한성이 구울의 시선을 끌어야 했고, 종이 한 장 차이로 구울의 공격을 피해야만 했다.
[귀진진영보]
귀신의 움직임을 본 따 만들어진 보법의 하나. 예전 무협 게임에 빠졌을 때 배웠다. 물론 이곳에서는 ‘무협’ 설정은 굉장히 간소하고 ‘이능’에 치우쳐 있기에 한성이 아는 무공을 그대로 뽑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육체’와 ‘마력’으로 흉내는 가능하다.
덕분에 지금까지 버텼다.
또, 아무리 이능이 ‘마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대기(大氣)엔 마력이 존재한다. [마력 지배]로 인한 완벽에 가까운 마력 감지 능력으로 공격 경로를 예상했기에 가능했던 일.
하지만, 그것도 더는 무리다.
‘이대론 안 돼.’
아직 한 번의 공격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성시연도 몇 번이나 기습하려 했지만, A등급은 그리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다른 몬스터로 따지면, 트위 헤드 오우거에서도 최상급. 아룡이라 불리는 바실리스크도 A등급이다. 거기에 하급 리치도 A등급이라는 걸 생각하면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도 다행이었다.
다행인 건, [정보 열람]으로 확인한 구울의 능력치가 정신 쪽으로 편중되어 있다는 것.
“헤일렌, 카메라로 찍고 있지?”
- 네, 확실하게 찍고 있습니다.
“옅은 실드라는 거, 저런 공격이면 한 번은 막을 수 있나?”
헤일렌은 잠시 계산하는 듯하더니, 대답했다.
- 딱 한 번. 가능합니다.
역시 이능 계열의 실드다.
웬만한 마법으로는 0.1초도 버틸 수 없었을 거다.
한성은 시스템 상점을 열었다.
인지도 포인트는 생각보다 많이 모였다. 튜브에 올린 영상의 도움이 컸다. 거기에 세르게이의 댓글로 유입된 구독자도 꽤 있다.
“중급 마력 링거 세 개, 중급 체력 링거 하나 구매.”
이것만은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한 방을 준비하려면 지금의 마력 능력치로는 어림도 없었다.
둥실.
허공에 생성된 새파란 마력 링거 세 개가 한성의 뒤로 가더니 오른쪽 목의 동맥, 왼쪽 겨드랑이의 정맥, 오른쪽 골반을 지나는 동맥에 꽂혔다.
마지막 하나의 체력 링거는 입으로.
“자, 스샷 하나 찍고.”
찰칵.
한성과 구울의 대치 장면. 그리고 한성이 링거로 도배한 전신샷까지 몇 장을 찍었다. 당연히 양팔을 살며시 들어 올려주는 건 필수.
‘이번 제목은.’
[마력이 폭발한다.(feat. 약물남용_진짜 죽을 뻔함.)]
일련의 과정은 구울의 공격을 피하면서 해낸 것. 한성은 항상 튜브 영상을 찍을 때, 한계 이상의 집중력을 발휘하곤 했다.
관심받을 생각에 흥분 상태에 돌입했다.
이한성이 현실 튜브 시절에 가졌던 별명은 ‘변태 관종’이다.
“헤일렌, 실드!”
잠시 움직일 수 없을 거다.
지이잉.
헤일렌의 실드가 생성되었다.
탁.
링거의 입구가 열리고 과도한 마력이 한성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아.
마치 폭포가 쏟아지듯 한성의 혈관, 근육, 신경을 휘젓기 시작했다. 동시에 체력 링거가 내상을 치유한다.
극한의 고통.
신음이 흘러나온다.
“끄으윽.”
콰아아앙!
헤일렌의 실드가 변종 구울 포쉘의 공격을 막아냈다. 처참하게 깨지며 주변까지 박살 났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한성은 대기의 마력까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
한성을 중심으로 마력의 폭풍이 불어닥친다. 무형, 무색의 가공되지 않은 마력이지만, 파지직 거리며 파란 스파크를 만들 정도의 초고농도 마력이다.
한성은 그 모든 마력을 컨트롤했다.
육체에 차곡차곡 쌓기 시작하니 거칠게 요동치던 마력의 파장이 잠잠해지기 시작한다.
번쩍.
한성이 눈을 뜨자, 동공에 파란 광채가 흘렀다.
그 많은 마력을 온전히 몸에 받아들였다는 뜻.
찰칵.
역시 헤일렌, 알아서 섬네일 하나 남겨준다.
한성은 발을 내디뎠다.
턱.
그의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파직.
그가 서 있던 자리엔 거대한 크레이터만 남았다.
한성은 이미 변종 구울을 지나쳤고, 그가 보이고 나서야 뒤로 갈 곳을 잃은 대기가 한성이 지나온 경로로 몰려들며 굉음을 만들어 냈다.
변종 구울 포쉘이 다급하게 공간을 짓이겨 ‘공간 왜곡’으로 이루어진 실드를 생성했다.
하지만, 이미 그때는 한성의 검이 지나간 후였다.
콰과과과.
뒤늦게 소리가 전달되었고.
스걱.
변종 구울의 목엔 실선이 그어졌다.
툭.
데구르르.
동시에, 압력밥솥에서 수증기가 뿜어지듯 한성의 몸에서 마력이 푸시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바로 주저앉고 싶었지만, 카메라를 의식하며 버텼다.
스릉.
바바리안의 검을 털곤, 검집에 집어넣었다.
자, 여기까지.
털썩.
“아이고 죽겠다.”
다리에 힘이 풀린 한성은 뒤로 누워버렸다.
“한성! 괜찮아?”
공간 관련 ‘이능’은 단순한 ‘마법’은 그냥 씹어 버린다. 그 공간 자체의 마력까지 먹어버리기 때문이다. 헤일렌의 실드가 버텼던 것은 ‘이능’이기 때문이고 한성의 검에 썰린 이유는, 미처 반응도 못 하게 그어버린 덕분.
어찌 되었든 클리어에 성공한 것이다.
“나, 조금만 쉴게.”
마력 링거는 뺐다. 그렇게 마력을 썼음에도 반 이상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몸에 마력을 받아들이는 건 좋지 않다.
대신, 체력 링거는 목에 꽂아놨다.
속 자체가 뒤집혔다.
마력의 과도한 사용한 혈관과 신경 등에 손상을 줬고, 육체의 과부하는 근육, 뼈, 인대를 거의 짓이기듯 만들었기 때문이다.
‘며칠은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겠네.’
“샤를, 시연아. 아무것도 만지지 마. 아마 마법적 함정이 꽤 있을 거야.”
“그건 걱정하지 말고! 몸이나 챙겨.”
“······우린 아무것도 한 게 없네.”
5분 정도 쉰 한성은 일어설 수 있었고 보상을 챙기기 시작했다.
< 마력이 폭발한다(feat.약물남용)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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