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제국군 본대(2)
웨이브로 공작.
그 이명(異名)은, 파랑의 검사.
검에 대해 잘 모르는 나였지만, 기본적인 궤(軌) 정도는 알고 있었다.
마법에 주력의 개념이 있는 것처럼.
검술에도 각기 추구하는 방향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중, 쾌, 유, 변, 환으로 대변되는 검술의 묘리였다.
무거움의 중(中)이 극에 달한 자는 태산마저 짓이기며.
쾌(快)로 정점을 찍은 검사는 소리가 닿기도 전에 적의 목을 벤다.
개중에서도 눈앞의 웨이브로 공작은 부드러움의 유(柔)로 검술의 극의에 오른 사내였다.
“오거라.”
“……!”
고저가 없는 목소리가 고막을 때린다.
곧 눈앞에서 망망대해가 펼쳐졌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역시, 제국 출신의 마스터들은 하나같이 괴물들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최소 블레어 마탑주 급…….’
…아니, 느껴지는 기세만으로는 그 이상이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지금은 마법사가 아닌, 기사가 득세하는 시대였기에.
‘자신만만하게 나섰는데… 잘못하면 질 수도 있겠는데?’
자연스레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 순간,
- 내가 해도 된다.
“……!”
메시지 마법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제노스가 예의 무표정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뿐인가?
옆의 루나는 아예 걱정을 얼굴 가득 드러낸 채 초조하게 서 있었으니.
내 체면을 생각해 차마 나서지 않는 눈치였지만, 조금만 밀려도 금세 끼어들 기세들이었다.
‘…해보자.’
이대로는 안 된다.
자존심이 있지.
명색이 사령관으로서의 첫 출진이 아닌가?
파지지직!
이내 상념을 털어낸 내가, 양손으로 새하얀 스파크를 만들어냈다.
“…호오?”
직후, 웨이브로 공작이 짤막한 감탄사를 터뜨렸다.
내 생각을 눈치챈 것이겠지.
지난 3년간 스승님 밑에서 단련해 온 나는 안다.
기사들이 수련하는 마나 연공법에도 ‘속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파랑의 검사 웨이브로 공작.
그의 첫인상은 드넓은 ‘바다’였다.
바다하면 물.
즉,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의 상성은 뇌전이다.
“…훗. 과연 또 어떨지.”
스팟!
순간, 웨이브로 공작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내 눈이 ‘흡’ 치켜떠졌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움직임만 보면, 물이 아니라 스승님의 바람과 비견될 정도였다.
쾌검수가 아님에도 쾌검수를 능가하는 검술을 구사하는 능력자.
우르르르르릉!
그의 검은 부드러웠다.
또한 무거웠다.
내리긋는 검로는 번개와 같았으며.
때로는, 정상이 보이지 않는 거산(巨山)과도 같았다.
유, 중, 쾌.
무려 세 가지 묘리를, 한 번의 휘두름으로 완벽히 녹여낸 괴물.
주르륵.
일 초를 수십 등분으로 쪼갠 찰나의 찰나.
시간이 멈춘다.
오직 나만의 시간이 정지해 가고 있음이다.
나는 검사가 아니다.
지금 눈앞에서 짓쳐들어오는 검에 반응할 신체 능력 따위는 없었다.
다만,
‘내게는 마법이 있다.’
다른 누구보다 자신 있는, 나만이 해낼 수 있는 일.
느려진 시간은 타임 스토퍼 계열의 7써클 마법이었다.
허나, 이걸로는 부족하다.
눈에 보인다고 반응할 수 있는 종류의 힘이 아니었으니까.
서걱!
“……!”
순간, 무언가를 갈라내는 소음과 함께 내 시간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쩌어어어어어엉!
한 박자 늦게 이곳으로 당도한 루나가 검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쇠와 쇠가 맞부딪히고, 사방으로 불똥이 튄다.
“세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웨이브로 공작과 검을 맞댄 루나가 비명과도 같은 고성을 내질렀다.
내 신형이 천천히 모로 쓰러져 가고 있었기에.
허나, 상대의 얼굴은 오히려 당혹감으로 가득했다.
“흠…….”
쩌어어엉!
단숨에 루나의 검을 쳐낸 웨이브로 공작이 연신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가 너무 허망하게 쓰러졌기에?
아니.
그는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방금 벤 인영(人影)은, 내 실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8써클에는 실로 신기한 마법들이 다수 존재합니다. 그야, 사람들에게는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힘들이 대다수이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
루나와 웨이브로 공작의 시선이 동시에 홱 하고 돌아갔다.
어느새 10여 미터 이상은 거리를 벌린 내가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캐스팅 시간이 조금 필요했거든요. 덕분에 무사히 마쳤어, 루나.”
“아…….”
이어지는 내 말에 루나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쾅!
반대로, 웨이브로 공작은 지체 없이 땅을 박찼다.
이전과는 비할 바조차 되지 않는 속도로.
전투에서 무지(無知)만큼 위험한 영역도 또 없었으니까.
그는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허나, 늦었다.’
내 입가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어느새 상대의 검이 코앞까지 접근해 있었지만.
나는 단지 그것을 향해, 가만히 손만을 펼쳐 보일 뿐이었다.
우우우우웅!
박동하는 심장의 써클에서,
“무한의 굴레, 인피니티 다크니스(Infinite Darkness)”
“……!”
이윽고 ‘뭉클!’ 솟아난 검은 기운이 웨이브로 공작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
콰아아아아아앙!
“……!”
천지를 울리는 어마어마한 굉음에 레베카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지금 막, 왕도의 남문(南門)이 뚫리고 말았다.
“우와아아아아아!”
“폐하께서 성문을 베셨다!”
그 위명도 자자한 십이월들은 단 한 명도 나서지도 않았다.
고작 일개 마스터인 황제.
그 하나에게 남문을 빼앗긴 것이다.
“어찌, 어찌 이럴 수가…!”
국왕은 앵무새라도 되는 건지, 또 ‘이럴 수가’만 반복하고 있었다.
아예 ‘이럴무새’라는 별명을 붙여줘도 좋을 듯싶다.
더하여, 위기는 시작에 불과했다.
“리비아인들이여, 뭣들 하는가!? 이러면 애써 내가 준비해 온 히든카드도 쓸모없지 않겠나?”
“히든카드…?”
마나가 가득 담긴 황제의 목소리에, 레베카의 눈이 점차 크게 뜨여졌다.
성벽 맞은편의 하늘 위.
그곳에 오롯이 떠 있는, 웬 로브인들이 그제야 시야로 들어왔다.
잠시 미간을 찌푸린 채 그쪽을 바라보던 레베카가 곧 헛숨을 들이켰다.
“서, 설마… 마탑주?”
단 두 명의 로브인이었다.
허나, 그들의 실체는 세간에도 잘 알려진 얼굴들이다.
조합의 마탑주 간다르 테이들러.
그리고 소환의 마탑주 레이나 더글린.
친 제국 성향의 마지막 남은 두 마탑주가, 모두 리비아에 도착했다.
무엇보다, 저 두 마탑주는…
그르르르르르륵!
“……!”
상상과 동시에 우려가 현실이 됐다.
일순, 하늘 위를 뒤덮는 새까만 그림자.
무수한 하피 떼가 허공을 활강한다.
그뿐인가?
형상은 분명 비둘기의 외형을 하고 있으면서 일반적인 크기보다 수십 배는 더 거대한 괴물 비둘기도 더러 보였다.
전자는 레이나 더글린의 능력이었고.
후자는 간다르 테이들러의 농간이었다.
제국의 대군을 상대할 여력도 없건만, 저런 빌어먹을 마수들까지.
“…방법이 없어.”
결국, 레베카는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문자 그대로, 방법이 전무했다.
지금 리비아에는 제국군에 대항할 힘이 존재하지 않았다.
“끝이야…….”
레베카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 순간, 성벽 아래에서 병들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치는 아버지의 모습이 알알이 틀어박혔다.
“……!”
허나, 더 큰 절망은 이제 시작이었다.
“아, 아버지!”
직후, 레베카가 뾰족한 비명을 내질렀다.
어느새 검을 그려 쥔 황제가, 아버지의 코앞까지 당도해 있었기에.
“골드런 공작. 맞지?”
“황제…!”
그의 앞에는 이미 시신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물론 그 대부분이 리비아 군의 것이었다.
한데도, 황제는 지친 기색조차 없이 아버지를 향해 다가선다.
“안 돼요! 안 돼…!”
레베카가 입을 틀어막았다.
주변에 기사들이 몇몇 보였지만, 저들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황제는 그만큼 괴물이었으니까.
다만, 위기는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펄럭! 펄럭! 펄럭!
순간, 레베카가 흠칫 몸을 굳혔다.
언제부터였을까?
따갑게 느껴지는 시선에 그녀가 시선을 들어 올렸다.
곧 외형만큼은 상당한 미녀인 반라의 하피와 눈이 마주쳤다.
그것은 실로 매혹적인 미소로 레베카를 굽어봤다.
“아…….”
레베카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 즉시,
쐐애애애애애액!
미소를 머금고 있던 하피가 살기를 드러냈다.
레베카가 저도 모르게 질끈 두 눈을 감았다.
이리 허무하게 죽을 운명이었다면, 세타 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나 다 해놓는 건데…
“……?”
허나, 아무리 기다려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후 레베카가 슬며시 눈을 뜨자,
휘오오오오오오!
“……!”
머릿결을 살랑이며 한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헉!”
레베카가 다시금 헛바람을 들이켰다.
예의 하피는 여전히 그녀 앞에 멈춰 있었다.
다만,
서거거거거걱!
“……!”
얼마 못 가, 하피는 문자 그대로 조각 조각나고 말았다.
곧이어 마물에 가려져 있던 반라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왔다.”
“다, 당신은…?”
레베카는 언젠가 그를 본 적이 있었다.
그녀의 비상한 머리는, 금세 사내의 이름을 떠올렸다.
“8월의 검사…?”
“예쁜 아가씨, 인사는 나중에 하자고.”
쾅!
직후, 어깨 위에 걸쳐 놓은 검을 단단히 붙잡은 에이스가 땅을 박찼다.
레베카의 시선이 곧장 뒤를 쫓았다.
바로 그가 향하는 곳에 검을 치켜든 황제가 서 있었다.
“나는 이대로 체크 메이트를 노려야 하니까!”
“……!”
한 박자 늦게, 시원스러운 육성이 그녀의 귀청을 파고들었다.
***
꾸득, 꾸드드득.
지금 내 눈앞에, 웬 거대하고 새까만 구체가 자리해 있었다.
제아무리 웨이브로 공작이라도 당분간 이 안에서 탈출은 불가능할 터였다.
하여, 나는 곧장 고개를 위로 향했다.
“…….”
사방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그 제국군들조차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예의 검은 구체를 내려다보기 바빴다.
“활들 내리시죠?”
나는 마나를 담아 고함쳤다.
물론 병들은 활을 거두지 않았다.
사령관의 부재 시 대처 방안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을 리는 없고.
설마하니, 그 웨이브로 공작이 이리될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겠지.
“지, 진짜 이렇게 끝난 거라고?”
“당분간은. 뭐, 웨이브로 공작의 능력이라면, 아마 일주일도 안 돼서 탈출할 수 있을지도. 하니, 우리는 그 전에 리비아에 도착해야지.”
“뭐야. 그럼 처음부터 이걸 노린 거라고?”
“응. 이런 데서 시간을 빼앗길 수는 없으니까. 아마 진심으로 맞붙었다면, 나도 목숨을 걸어야 했을걸?”
“아무튼 죽은 건 아니라는 거잖아!”
“며칠은 까딱없다니까 그러네.”
내 설명에도 실비아는 불안감을 채 감추지 못했다.
유리나는 거기서 한 술 더 떴다.
“가, 갑자기 쏘면 어떡하지?”
“…걱정하지 마. 지금의 나라면,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을 테니까.”
곧 내 눈이 주변을 둘러봤다.
사방이 협소한 기다란 골짜기.
역시 매복으로 몰살당하기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엄폐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런 한정된 공간에서 쏟아지는 화살의 비에 대응할 방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허나, 반대로 얘기하면…
“쏴! 쏴라아아아아아아아아!”
“……!”
순간, 골짜기 내부로 한줄기 고성이 울려 퍼졌다.
쐐쇄쇄쇄쇄쇄쇄쇄쇅!
시위가 놓아지고, 강철의 비가 하늘을 뒤덮는다.
무려 수만 명이 동시에 쏘아내는 화살.
심지어 그것들은 하나같이 우리가 있는 중심부에 집중됐다.
우려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긴장하고 있던 유리나가 단숨에 ‘화르륵!’ 불꽃을 만들어냈다.
허나, 그녀보다 내가 더 빨랐다.
이미 내 마나는 주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으니까.
써클에서 뭉텅 빠져나간 기운은 곧, 직경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막을 형성했고.
티티티티티티티팅!
쏟아지는 화살의 비는, 단 하나도 그 막을 뚫어내지 못했다.
“세, 세상에…….”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튕겨 나가는 은의 실선.
그 지고한 경지에, 생성해 낸 불꽃조차 잊고 유리나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
어느새 여유로운 미소를 입가에 매단 내가 그녀를 돌아봤다.
“막는 거, 가능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