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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한 마법 천재-224화 (225/251)

224화. 제국군 본대(1)

“곧 리비아의 왕도(王道)입니다, 폐하.”

휘하 기사의 보고에, 황제가 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전쟁은 언제나 그를 기쁘게 한다.

그것이 주는 광기가 기꺼웠고.

피와 살육이 튀는 전장은 그가 살아 있음을 실감하게 해줬다.

“적군의 움직임은?”

“이미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제1군이 확실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던 상황이다 보니…….”

“아주 좋군.”

황제는 도리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밟으면 밟는 대로 몰살당하는 개미 떼가 무에 재미가 있겠는가?

이런 반항이라면, 그는 언제나 환영이었다.

스르릉.

직후, 황제가 검을 뽑아 들었다.

예의 기사가 움찔 몸을 떨었다.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분이셨기에.

허나, 그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여전히 최선두를 달리는 백마.

그리고 하늘을 향해 우뚝 솟는 검.

우우우웅!

곧 그 위로 찬란하기 그지없는 짙푸른 마나가 피어올랐다.

오직 마스터의 전유물이라 불리는 힘.

오러.

“리비아의 왕도가 코앞이다!”

직후, 마나가 담긴 쩌렁한 고성이 울려 퍼졌다.

무려 십이월이 셋이나 포함된 전력.

하물며, 오늘을 위해 준비한 히든카드까지 존재했다.

그뿐인가?

두두두두두두두두두!

힘찬 말발굽 소리와 함께 대군(大軍)은 끝을 모르고 뒤를 잇고 있었으니.

본대를 포함하여, 무려 50만 대군.

그에 비해 적군은 고작 10만이 채 되지 않는다.

머릿수만 자그마치 다섯 배 차이.

더욱이 그 50만은 하나하나가 대륙 최강이라는 제국의 병사들이었다.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문제지에 긴장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돌격!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어느새 확하고 가까워진 왕성을 향해 대군이 힘찬 함성을 내질렀다.

***

리비아의 성벽 위.

“…….”

이곳의 분위기는, 가히 초상집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정도였다.

적군의 전력에 대한 보고는 리비아의 수뇌부들도 익히 들었기 때문이다.

“폭발의 검사 파르만 공작, 점멸의 검사 플래르쉬 후작, 마지막으로 광휘의 검사 라포르테 공작까지… 이상 세 명의 십이월이 이번 전쟁에 참전했다 합니다.”

“파, 파르만 공작과 라포르테 공작은 제국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가 아닙니까?”

“…맞습니다, 폐하.”

“어찌 그런…!”

현 리비아의 국왕, 제라 3세의 얼굴 위로 절망감이 깃들었다.

그는 아직 젊었다.

평화기에 태어나 전쟁 경험조차 전무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행동이지만, 당장 수장이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

리비아 군의 분위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라앉아만 갔다.

“레, 레베카 공녀!”

“……!”

순간, 눈치만 살피던 레베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치 뭣 마려운 것 같은 표정이 된 국왕이, 한달음에 이쪽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어, 어떻게 방법이 없겠소?”

“네, 네에…?”

“일전의 그 천재 마법사 말이오. 분명 테라의 이그니스 백작인가 하는 그! 혹, 또 한 번 우리가 도움을 받을 수는 없는 거요? 보아하니 친분이 상당해 보이던데.”

“저 그게, 테라에서 원군이 출진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만…….”

여기서 레베카는 잠시 망설였다.

분명 내뱉는 말에 거짓은 없었으나, 그 원군에 세타 님이 포함됐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으니까.

무엇보다, 엄밀히 말하면 그분은 타국인이다.

자국의 일에 위기 때마다 외부의 도움을 얻는다?

그런 나라는, 설령 이 위기를 넘기더라도 오래가지 못할 터였다.

‘…내 왕국은 이미 내부부터 썩어 가고 있었구나…….’

연이어 떠오르는 상념에 레베카의 입가로 씁쓸한 미소가 번져갔다.

그 표정을 오해한 국왕이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정녕… 정녕 방법이 없는 것인가? 아아, 내 시대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죽어서 조상님들은 어찌 뵈어야 할지…….”

“마음 단단히 먹으시고, 우선은 수성(守城)에 집중하시지요, 폐하. 떨어진 사기는 저희가 끌어 올려 보겠습니다.”

“……!”

그 즉시, 레베카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어느새 두 명의 사내가 왕의 앞에 서 있었다.

한쪽은 이제 마흔이나 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비교적 젊은 사내였고.

다른 한쪽은 척 보기에도 황혼기를 바라보는 백발의 노인이었다.

“그, 그대들이…?”

물론 레베카는 사내들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리비아의 남은 두 마스터였다.

베누스라는 이름을 가진 중년의 사내는, 마스터에 오른 지 10년 차에 접어든 검사였고.

옆의 우그루 공작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마스터의 자리를 지켰다.

햇수로만 무려 30년에 이를 정도로.

“방법들이 있겠소?”

왕이 대번에 눈을 반짝였다.

이에, 두 사내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적의 전략을 그대로 취해볼까 합니다.”

“적의 전략…?”

“며칠 전, 라포르테 공작은 홀로 우리 진영을 향해 돌진했지요. 그때에는 다들 미쳤다며 손가락질했지만… 결론적으로, 그 탓에 적군의 사기가 상당히 올랐습니다. 하여, 저희도 그걸 이용해 볼까 합니다.”

“너, 너무 위험하지 않겠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 했습니다. 하물며, 저들은 저희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겁니다. 자존심이 어마어마한 인물들이니까요.”

가만히 듣고 있던 레베카가 골똘히 생각에 빠져들었다.

두 사내는 ‘일기토’를 말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전쟁에 앞선, 장수들 간의 일대일 대결.

다만, 승산이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세간의 평은 차치하고서라도.

적군에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대륙 제일로 손꼽히는 강자들이니까.

“맡겨주시지요. 평은 평일뿐이라는 것을, 오늘 반드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허어, 그만한 자신감이라면… 알겠소. 내 그대들만 믿겠소.”

“기대에 부응해, 적장의 목을 가지고 돌아오겠나이다.”

일은 미처 손쓸 새도 없이 진행되었다.

곧 두 사내가 성벽 아래를 향해 뛰어내렸다.

높이만 무려 20여 미터를 훌쩍 넘는 고도였음에도, 그들은 조금도 괘념치 않았다.

“…믿어도 되겠지?”

애써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며 레베카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어차피 이대로는 승산이 없었으니까.

이제는 마지막 희망이나 다름없는 두 사내의 행적을 뒤쫓기를 10분여.

- 우와아아아아아아아!

“……!”

마침내, 저 멀리서 대군이 점점이 시야로 들어왔다.

성문 앞에 굳건히 버티고 서 있던 두 마스터도, 그제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

이상 징후는 바로 그때 포착됐다.

두 마스터가 우뚝이 멈춰 섰다.

그리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정면을 바라봤다.

“화, 황제다.”

“……?”

“황제다! 황제가 선두에 있다아아아아아아아!”

“헉!”

직후, 레베카는 너무 놀란 나머지 헛바람마저 들이키고 말았다.

반대편으로 시선을 던지자, 과연 백마를 타고 달려오는 사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저런 미친…!”

레베카가 참지 못하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방금 국왕의 유약한 모습을 봐서 그런지, 충격이 배가된 기분이다.

무려 황제가 직접 선봉을 자처하다니…

“죽인다!”

스팟!

그 순간, 두 마스터의 신형이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 속도가 가히 말을 탄 것보다 더 빨랐기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

한데, 황제는 오히려 백마의 고삐를 더 강하게 틀어쥐었다.

입가에는 진한 미소까지 머금은 채.

홀로 군대를 앞질러, 두 마스터를 향해 질주해 왔다.

숫제, 죽고 싶어 안달이라도 난 사람처럼.

“저, 저, 저, 저, 저…!”

무수한 리비아의 수뇌부들이 당혹성을 토해냈다.

다만, 그런 그들의 얼굴에는 희미한 기대감이 깃들어 있었다.

만약 여기서 황제를 잡는다면, 전세는 급격히 반전될 테니까.

허나…

“…….”

다시 20여 분이 더 흘렀을 때.

성벽 위는 오직 고요한 침묵만이 내려앉았다.

얼굴에는 하나같이 ‘경악’이라는 감정을 가득 새긴 채.

결과가 그만큼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리비아가 자랑하는 두 마스터.

베누스 후작은 채 열 합을 넘기지 못하고 황제의 검에 목이 베였고.

리비아 제일의 검사인 우그루 공작은 양쪽 팔을 모두 잃었다.

그에 비해, 황제는 외부에 난 생채기들이 전부였으니.

이 대 일의 싸움.

심지어 빠르게 거리를 좁힌 제국의 기사들은 참전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신들의 태양을 바라만 볼 뿐.

“말도… 안 되는…!”

믿기지 않게도, 리비아가 자랑하는 두 마스터는 황제 하나조차 감당해 내지 못했다.

***

테라와 리비아의 경계.

“그냥 이전처럼 이능을 발동시키면 안 되냐?”

유리나가 입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그 즉시 내 입이 반응했다.

“이능이 만능인 줄 아냐?”

“아니었어?”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다 옮기냐. 머릿수만 수만인데.”

“일단 핵심 전력들만 이동시키면 되잖냐. 리비아, 지금 많이 위험하다며?”

“…아니. 곧 스승님과 1차 원군이 수도에 당도할 거야. 지금은 최대한 힘을 아끼는 편이 나아.”

위기 때마다 내가 다 해결해 줄 수는 없는 법이다.

무엇보다, 나는 스승님과 페르를 믿었다.

쉬지 않고 달리면 대략 1주.

그 기간이면 리비아의 수도에 당도할 터였다.

나는 내 동료들이, 고작 1주도 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잠깐.”

그런 상념을 이어가고 있을 때, 순간적으로 내 몸이 움찔 떨렸다.

리비아 왕국령으로 진입하는 골짜기를 중간쯤 통과한 상황이었다.

틈 사이로, 하늘만이 겨우 보이는 천혜의 두 절벽.

한데 아까부터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어째 매복하기 딱 좋은 장소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어느새 옆으로 접근한 실비아가 내 말에 동의했다.

잠시 우리가 그러고 있자,

저벅, 저벅, 저벅.

“……!”

곧 웬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골짜기의 반대편.

짙은 안개를 헤치며 한 사내가 천천히 다가서고 있었다.

분명 일면식이 있는 그의 이름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리 올 거라고 예상했다.”

“…웨이브로 공작?”

겉모습은 말끔하게 생긴 미청년.

허나, 그 속은 수십 년 묵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

처처처처처척!

곧 양 절벽 위로 무수한 병력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나같이 손에는 활을 꼬나 쥔 채로.

“…최소 10만.”

실비아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허나, 나는 도리어 자신만만한 미소를 머금었다.

“걱정하지 마. 다 매몰되기 싫다면, 함부로 화살을 쏘아대지는 못할 테니까.”

“그게 무슨 뜻이야?”

“잊었어? 이런 협곡에서, 이전의 내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

그제야 실비아가 눈을 크게 떴다.

그래.

나는 이만한 협곡을 이미 한 차례 무너뜨린 경험이 있었다.

예의 스노비와의 격전에서 말이다.

그걸 아는 이상, 적군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을 터였다.

애당초 웨이브로 공작이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함은, 달리 목적이 있다는 뜻일 것인즉.

“…내가 가지.”

예비대에 남아 있던 유일한 마스터, 몽클레어 후작이 앞으로 나섰다.

허나,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승부로 소중한 전력을 잃을 수는 없었기에.

“아니요. 제가 갑니다.”

“……!”

몽클레어 후작이 대번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뭔… 저자는 검사다. 그것도 제국 출신의 최상위권 마스터란 말이다.”

“웨이브로 공작이 아마 4등이였죠? 제국 내 순위로 말이에요.”

“그래. 더불어, 그 순위의 기준은 제국이면서 이 대륙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저자는 세상에서 네 번째로 강한 검사라는 말이다.”

“그리고 저는, 세상에서 첫 번째로 강한 마법사고요.”

“…뭐?”

“업계 자존심이 있지, 1등이 4등을 상대하는 데 근접전이니 하는 핑계는 좀 없어 보이지 않아요?”

“…….”

일순, 멍청한 표정을 짓는 그를 향해 나는 씨익 하고 미소 지어줬다.

“거기, 파랑의 검사!”

“……?”

대번에 웨이브로 공작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시시한 매복 따위는 집어치우고, 이 자리에서 나랑 한 판 붙읍시다.”

“…뻔한 수작질을 부리는구나. 매복도 엄연한 전략인 것을…….”

“솔직히 제가 무슨 짓을 할지 불안하시잖아요? 그러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이리 직접 나오셨겠죠. 여차하면 단숨에 제 목을 댕겅 날려 버릴 요량으로.”

“…망상은 머릿속으로만 하는 법이다.”

“망상인지 아닌지, 한번 시험해 볼까요?”

우우웅!

직후, 나는 가볍게 마나를 움직였다.

스르릉!

그 즉시 웨이브로 공작이 반응했다.

단숨에 검을 뽑아낸 그가 살기를 드러낸다.

“허튼 짓 하지 마라. 내 검은 네 캐스팅보다 훨씬 빠르다.”

“허튼 짓이 아니라, 저는 지금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기회?”

웨이브로 공작의 반문에,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륙 제일의 마법사를 초장에 사로잡을 기회 말입니다.”

“……!”

찰나, 그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내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그것도 모자라, 성큼 앞으로 발을 내딛기까지 했다.

“혹시 쫄리시는 건 아니죠? 대 제국의 마스터께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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