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198화 (198/251)

198화. 영웅의 길(6)

회의실을 빠져나온 직후.

“샤네르 공작이 저리 나올 걸 예상하고 있었어?”

나는 곧장 뒤따라오는 실비아에게 이리 물었다.

멈칫.

“아니?”

잠시 움찔한 그녀가 이내 어깨를 으쓱인다.

“아니긴. 어쩐지 ‘생각대로 안 될 거라느니…’ 따위의 말을 하더라니.”

“그거야, 샤네르 공작의 제안은 나도 생각지 못했지만, 흘러가는 분위기는 대충 그런 식일 거라 예상했으니까?”

“흘러가는 분위기?”

내 반문에, 실비아가 척하니 손가락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너라는 존재.”

“……?”

“이제 대륙의 그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할 게 확실해졌으니까. 마스터는 물론이고, 소위 말하는 지체 높으신 분들까지도.”

“…….”

“그만큼 네 위상이 대단해졌잖아? 무려 대륙 서열 1위의 마법사시니까.”

답지 않게 나를 치켜세워 주는 실비아였다.

괜히 머쓱해진 내가 무어라 대답하려는 순간,

“동감이네.”

“……!”

새로운 목소리가 중간으로 끼어들었다.

그것도, 내 입장에서는 명백한 불청객이.

“이그니스 백작은 이제 우리나라의 자랑이 아닌가? 나 또한 테라의 귀족이자 한 국민으로서, 진심으로 기꺼운 마음이네.”

실비아 다음으로 가장 먼저 회의실을 빠져나온 인버스 공작이었다.

테라 사람들은 출입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해 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순서였다.

하면, 여기서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

능청스레 미소 짓는 그를, 나는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콧대를 뭉개줄 겸, 여기서 호통이라도 쳐줄까?

‘…아니, 그거야말로 저 인간이 원하는 일일 테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상대의 목적은 이미 명확했으니까.

그는 타국인들 앞에서 나를 깎아내리기로 작정을 했다.

여기서 내가 화를 내면, 대번에 뒤따라 나오는 사람들이 우리를 목격할 것은 기정사실인즉.

그들에게 나는 ‘이렇게’ 보일 것이다.

‘앙심을 품고 달려드는 핏덩이.’

딱 그 정도.

더하여, 정치라고는 조금도 모르는 애송이 프레임을, 보다 확실하게 씌울 수 있을 테고.

물론, 그럼에도 가만히 참고 있을 생각은 쥐똥만큼도 없었다.

“마음에도 없는 말씀은 하지 마시고요.”

“……!”

도리어 더욱 강하게 나갔다.

인버스 공작은 전형적인 하이에나 같은 사내였다.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하고, 강자에게는 몸을 사리는.

그러니까, 지금부터는 누가 확실한 상위의 포식자인지 보여줄 계획이다.

정치를 초월한 절대적인 힘 앞에, 한낱 수작질은 우스울 뿐이라고.

사람은 결국 ‘힘 있는 자’를 중심으로 모이게 된다고.

“인버스 공작. 또 그따위 개수작을 부리신다면, 다음번에는 저도 가만히 참고만 있지 않을 겁니다.”

“고, 공작…? 개, 개수작!?”

내 적나라한 말에 어지간히도 빡이 쳤는지, 인버스 공작의 이마 위로 선명한 핏줄이 도드라졌다.

“앞으로 처신 잘하세요. 그동안은 방치했지만, 지금부터는 내가 지켜볼 겁니다.”

“이, 이놈이…! 나는 공작이다. 설마 네놈이 백작이라는 사실을 잊은 건 아니겠지?”

“뭐, 하극상이라도 말씀하고 싶으신 겁니까?”

“못할 것도 없지! 이 부분은 반드시 폐하께 보고드리겠다. 네가 아무리 그분의 총애를 받고 있다 해도, 국법(國法)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거늘!”

“그럼 그따위 아쉽지도 않은 작위나 계급 따위, 이대로 때려치우면 그만이고.”

“……!”

인버스 공작의 두 눈이 부릅 뜨여졌다.

“그리되면 과연 누가 손해일까? 당장 내가 지위와 국적을 상실했다는 말을 듣게 되면, 이곳에 있는 대부분이… 아니, 전부가 온갖 부귀영화를 약속하며 나를 영입하려 들 텐데?”

나는 모두가 들으라는 듯 목청을 높였다.

때 아닌 불구경에 뒤늦게 구경꾼이 몰려들고 있었기에.

이제야 회의실을 빠져나오기 시작하는 몇몇 외부 인사들이 대번에 눈을 반짝였다.

물론 그 모습은 인버스 공작의 동공에도 똑똑히 틀어박혔다.

“…큭.”

곧 그가 강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쪽을 주려다, 제대로 쪽을 팔게 생겼으니.

“우리 제발 상식선에서 행동합시다. 예?”

어느새 인버스 공작의 코앞까지 다가선 내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그것도 모자라 그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쿡, 찍어 누르기까지 했다.

퍽이나 자존심이 상했는지, 금세 인버스 공작의 얼굴이 잘 익은 토마토처럼 시뻘게졌다.

곁에 선 실비아조차 이런 내 모습에 당황했는지 입만 멍하니 벌리고 있었다.

허나, 내 말은 아직 다 끝나지도 않았다.

“공작님. 한 번만 더 이리 까불면, 친구 아빠고 뭐고 내 손으로 철저하게 망가뜨려 버릴 겁니다. 그 자리도, 가문도요.”

“…….”

잠시 후, 이내 내가 말을 마칠 때까지도 인버스 공작은 입 한 번 뻥긋하지 못했다.

***

한편.

“하아.”

여기, 혼자만의 고뇌에 가득 찬 또 다른 여인이 있었다.

허리까지 기른 흑발을 가지런히 한데 묶은 절색의 미녀.

기실, 현재 테라 내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여인의 이름은 루나였다.

“…대체 나는 무얼 하고 있는 거지?”

그녀는 지금 자책하고 있었다.

평생에 단 한 명.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군’에 대한 기사의 서약까지 맺었건만.

그건 그저 말뿐인 맹세였기에.

이번에도 그녀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제 주군이, 무려 제1마탑주라는 어마어마한 거물을 상대하는데도.

더 중요한 것은, 그런 거물을 세타가 ‘일대일’로 꺾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나라는 존재가 필요할까?”

수련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니, 누구보다 노력했다고 자부한다.

아직은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루나는 이미 완숙한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섰기에.

허나, 부족했다.

이걸로도 턱없이 모자랐다.

앞으로 상대해야 할 적은, 마스터조차 목숨을 걸어야 할 상대들이었기에.

“…하면, 나는 지금 목숨을 걸고 있는가?”

자문자답.

스스로에게 물어봤지만, 대답은 ‘부정’이었다.

목숨을 걸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정보를 미리 알아내 그를 따라나섰어야 했다.

충분히 그럴 능력도 있었다.

그간의 행보를 보면, 앞으로의 행동을 추측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으니까.

실제로 그녀는 테라 제일의 ‘정보 길드’까지 이끌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도…

“…자책은 이걸로 충분해. 중요한 건, 똑같은 실수는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거지.”

순간, 한없이 흔들리던 루나의 동공이 굳건하게 자리 잡았다.

뒤처지지 않는다.

떨어지지 않는다.

설령 스스로의 능력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이제는 언제나 함께할 것이다.

날이 나갔다면 등으로 맞서면 그만이고.

일개 검으로조차 부족하다면, 고기 방패가 되어 주군을 지킨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사의 길.

“그러니까, 이번에는 놓치지 않아. 절대로.”

이윽고 루나의 발걸음이 한 곳으로 향했다.

가야 할 곳은 명확했다.

지금 바로, 루나는 ‘주군’을 만날 것이다.

***

인버스 공작과의 실랑이 직후.

나는 그 길로 곧장 스승님을 찾아 나섰다.

예의 샤네르 공작의 제안에 대한 조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블레어 던 마그마르가 사망했다는 소식은, 지금쯤 제국의 귀에도 들어갔을 것인즉.

다시 말해, 나머지 친 제국 성향의 마탑주들도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일 터였다.

“왔냐?”

스승님은 홀로 방 안에 앉아 계셨다.

그간 고민이 많으셨는지, 일견 음영마저 드리운 얼굴을 하시고선.

“연합군에서 뭐라든?”

“분열된 열두 마탑을 하나로 통합하랍니다.”

“……!”

찰나 눈을 크게 뜬 스승님이 곧 피식 웃음을 터뜨리신다.

“말로는 뭔들 못할까? 너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는 하고?”

“또다시 큰 싸움에 휘말리겠지요.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열에 열, 남은 마탑주들은 최우선적으로 저부터 죽이려 들 테니까요.”

“됐고, 그걸 알면서 그딴 소리를 듣고만 있었냐?”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위험이 클수록 돌아올 이익도 큰 법 아니겠습니까?”

“그 리스크에 네 목숨까지 걸려 있으니 문제지.”

“걱정하지 마세요. 저들이 저를 노려오기 전에, 제가 먼저 칠 생각이니까요.”

움찔.

그제야 스승님이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당신은, 한없이 요동치는 동공으로 내 눈을 직시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입니다. 그러니까, 도와주세요.”

“……!”

“마탑이라는 조직 자체에 은원이 계신 스승님과 페르. 두 분이 저를 도와주신다면, 나머지 잔당들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쎄…….”

순간, 말끝을 흐리던 스승님이 묘한 표정을 보내오신다.

“그보다, 철이라도 들었냐? 왜, 평소대로 혼자 망둥이마냥 미쳐 날뛰어보시지. 말도 없이.”

“그간 속 썩여서 죄송했습니다. 아니, 지금도 죄송합니다.”

“갑자기?”

“그냥… 이전부터 꼭 드리고 싶은 말이었는데,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요.”

그 말대로였다.

그동안 나는 무엇이든 혼자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겨왔으니까.

거기에 딱히 이유랄 것은 없었다.

그저 지금까지 나는 혼자였으니까.

아니, 혼자라고 생각했으니까.

가족이라고는 한 명도 없었고, 그나마 가족이라 부를 만한 유일한 존재조차 허무하게 잃었다.

그때부터 나는 철저하게 혼자가 되었다.

어쩌면 내가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멀리했을지도 모른다.

다시는 그처럼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다만, 세상사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고 했던가?

조금도 의도치 않았지만, 어느 순간 내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있었다.

친구들도, 스승님도, 다른 동료들도.

그 모두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줬다.

제 목숨까지 걸며 사지로 따라나서 주는 이도 있었고.

한데도 나는 그들의 감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입으로는, ‘다시는 내 사람을 잃지 않겠다느니’ 하는 맹세까지 해대면서.

내게 그 사람들이 소중하듯.

그 사람들에게도 ‘나’라는 존재가 귀하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마침내 내가 다시 돌아왔을 때, 그들의 표정은 아직도 뇌리에 또렷이 각인되어 있었으니까.

“…징그럽다, 임마. 그냥 평소처럼 행동해.”

“역시 그렇죠?”

나는 짐짓 코밑을 쓱, 하고 훔쳤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앞으로라도 잘하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각설하고, 셋으로 남은 마탑주들… 아, 프레이 던 마그마르. 그 제자 놈도 있었군. 걔까지 잡는다?”

“네.”

“그 이후에는?”

“안 그래도 회의에서 그 내용도 있었는데요.”

잠시간 뜸을 들이던 내가 이내 스승님과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그리곤 목소리에 힘을 가득 주고,

“제가 마탑을 먹을 겁니다.”

“……!”

이리 당당하게 외쳤다.

한데, 의외로 스승에게서는 큰 반응이 없었다.

“…그러니까, 내 제자가 마탑주가 된다?”

“…네? 아, 예. 그 말씀대로입니다.”

“지금과 같은 열두 마탑주도 아니고, 통합된 마탑. 그곳의 초대 수장이 네가 된다는 거지?”

“넵.”

“…….”

내 대답에,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던 세논 스승님은 이내 씨익 미소를 지으셨다.

“…그거 진짜 재미있겠는데?”

그제야 내 입가도 완연한 호선을 그렸다.

“그렇죠?”

“암. 내 제자라면 그 정도 야망은 있어야지. 짜식, 내가 확실하게 밀어주마. 이번에야말로 합법적으로 미쳐 날뛰어 봐.”

“우쓰! 감사합니다.”

한차례 기합성을 내지른 내가 직각으로 허리를 숙였다.

“그래서, 언제 출발할 건데?”

다만, 이어지는 물음에는 도리어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남자는 자신감.

내친걸음이라 했다.

“바로 지금요.”

하여, 나는 단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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