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146화 (146/251)

146화. 폐하를 구출하라(1)

해방군의 지휘부가 새롭게 구성되었다.

임시 사령관은 인버스 공작의 직계 핏줄인 크리스 론 인버스.

그 바로 아래에서, 실비아와 루나가 보조한다.

이건 작위의 고저와는 무관했다.

당연히 백작 이상의 고위급 귀족들은 대번에 펄쩍 뛰었다.

고작 스물 안팎의 핏덩이들이 군의 수뇌부라 함은, 결국 그들도 아랫사람의 명을 따라야 한다는 뜻이니까.

허나,

“그래서. 군을 그리 잘 이끌어 주셔서, 지난 3년간 해방군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습니까?”

“…….”

이런 내 비아냥거림에, 체면을 차리려던 귀족들은 금세 수그러들었다.

그리고, 현재.

레이브 성 3층의 전(前) 영주 집무실에서 우리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 폐하를 구해낼 자신이 있는 거지?”

“글쎄. 해봐야 알겠지.”

“…만약 성공만 한다면, 작금의 전세는 순식간에 뒤집을 수 있을 거야. 전쟁 명분을 이쪽에서 틀어쥐는 거니까.”

반란군이 완전히 승기를 잡은 이런 상황에서도, 극소수지만 중립을 자처하는 귀족들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한데, 무려 왕이 이쪽에서 몸 성히 모습을 드러낸다면…….

중립 귀족들을 모두 아군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더 나아가, 왕국 전역에서 폭동이 들끓을 것이다.

비록 카이클 공작의 평판이 나쁘지 않다고 하나, 멀쩡한 제 왕을 갈아치우고 쿠데타로 정권을 뒤집은 세력 따위를 백성들은 인정하려 들지 않을 테니까.

“…나도 확언을 듣고 싶다.”

그때, 잠자코 지켜보던 루나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내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확언?”

“그래. 만약 네가 폐하를, 공주님을 구해낼 수 있노라 대답한다면 나는 너를…….”

“…….”

흑색으로 반짝이는 루나의 두 눈이 묘한 열기를 뿜어냈다.

곧이어,

“…평생의 은인으로 모시겠다. 지금에 와서 솔직하게 하는 말이지만, 처음 공주님이 그리되셨을 때 나는 자결까지 생각했으니.”

“……!”

대번에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기에는 나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실비아와 크리스, 거기에 유리나까지 함께였다.

“…….”

나는 루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사란 제 목숨보다 명예를 중요시하는 족속들이니까.

모시는 주군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은, 기사에게 있어 다른 무엇보다 크나큰 불명예이자 수치였다.

루나의 성격상, 그 현실을 끝끝내 받아들일 수 없었겠지.

“…루나 틴 론지에. 그건 불가항력이다. 네 잘못이 아니야.”

크리스가 딱딱한 얼굴로 위로를 건넸다.

그 말대로.

반란군의 기습은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감행되었다.

궁 내 왕족들은 반나절이 채 지나기도 전에 모두 사로잡혔다.

때마침 루나는 잠시 궁 외부로 출타를 나가 있던 상황이었다.

카이클 공작이 대단한 이유였다.

그는 무섭도록 계산적이고 치밀했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은밀하게 왕궁 내부에 자기 사람들을 포섭해 나갔으며, 호위가 가장 약해지는 그 찰나에 과감하게 일을 벌였다.

무엇보다, 반란 이전까지 카이클 공작은 ‘국왕파’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현 왕정에 우호적인 인물이었다.

이런 전후 정황들을 모두 종합해 봤을 때.

결국 그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보다 완벽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확언할게. 반드시 폐하를 구해내겠다고.”

“믿겠다.”

크리스에게는 대꾸도 하지 않던 루나가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비록 입꼬리만 살짝 올라간 옅은 웃음이었지만, 언제나 포커페이스인 루나의 표정을 생각하면 상당히 유의미한 변화였다.

“…….”

왜인지, 크리스의 얼굴이 씁쓸하게 변해갔다.

다만, 내 머릿속은 이미 앞으로의 계획들로 가득했다.

“작전은 소수로 진행할 거야. 머릿수가 많아봐야 발각될 가능성만 커져서 실패하고 말 테니까.”

“그럼 나도 참여하지.”

루나의 대답에,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그쪽은 실비아랑 같이 새롭게 태어난 우리 군을 수습해야지. 크리스 경을 잘 도와주라고. 내 스승님들도 곁에서 보조해 줄 테니까.”

“…하면, 내가 네 조력자들을 선별해 줘도 되겠나?”

“엉?”

“내 기사단원들 중에 입이 무겁고 몸이 날랜 몇몇 이들이 제법 있다. 그 일 개 조라면 네 마음에도 분명…….”

안 될 말이다.

얘는 아까 뭘 들은 거야?

작전을 수행할 인원은 소수여야 한다니깐.

“기사 일 개 조는 최소 열 명이잖아. 그렇게까진 필요 없어.”

“그럼 그중에 몇 명만이라도…….”

“마음은 고마운데, 생각해 둔 사람들이 이미 있어서.”

“……!”

순식간에 주변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그, 그게 누군데?”

유리나가 ‘혹시…?’ 하는 표정으로 내 쪽을 빤히 쳐다봤다.

왜 눈빛에서 묘한 기대감이 내비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리나도 제외다.

은밀한 작전을 수행하기에 불꽃은 너무 화려하거든.

“나와 세디스. 그리고 바이커 정도? 아마 그 정도면 충분할 거야.”

***

레이브 성 1층의 대회의실.

어느덧 그 넓은 공간에는 단 두 사람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공작 각하, 정말 이대로 물러나실 생각이십니까?”

친 인버스 공작파이자, 오랫동안 그의 가신으로 살아온 브룩 백작의 물음이었다.

가스레인버가 공작가 제일의 검이라면, 그는 공작가 정점에 있는 마법사였다.

나이는 고작 40대 초반에 불과했으나, 그 경지는 이미 6써클 유저에 이르러 있었으니까.

기실 인버스 공작이 큰 그림을 그려 놓으면, 거기에 채색을 입히는 것도 브룩의 일이었다.

실질적인 해방군의 두뇌가 그라는 뜻이다.

한데, 하루아침에 그 자리를 내어놓게 되었으니.

브룩이 지금 느끼는 황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것도, 대상은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하찮은 애송이들이었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전쟁이 장난이냐며 당장에라도 호통을 치고 싶지만…….’

브룩이 힐끗, 정면을 바라봤다.

정작 당사자인 주군은 아무런 생각이 없으신 듯하니.

‘…제길.’

순간, 질끈 입술을 깨문 브룩이 이내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공작 각하. 혹 직접 나서기 뭣해서 이러시는 거라면, 차라리 제가…….”

“범은 때를 기다릴 줄 아는 법이다.”

“……!”

찰나, 브룩이 눈을 크게 떴다.

“그 말씀은…?”

“일단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두지. 왜 그런 말도 있다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받는다고.”

“…….”

만약 요 며칠, 일련의 과정들을 목격하지 못했다면 ‘과연’ 하고 고개를 끄덕였겠으나.

브룩은 그러지 못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작가 전체가 치욕을 당하는 모습을 이미 목도했기에.

“…그래도 저는, 공작가가 이대로 우습게 여겨지는 일만큼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젊은 시절의 청춘을 모두 바친 공작가였다.

그런 공작가가, 지금은 아군이 대패한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다.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허락만 해주시지요. 그저, 제 주제나 깨우치도록 주의만 주겠습니다. 아주 약간의 주의 말입니다.”

“…….”

주군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나는 회의적이다.

그런 속마음이 그대로 겉으로 드러나는 듯했다.

‘대체 그 녀석이 무엇이기에…….’

직후, 브룩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무렵,

“…마음대로 하거라.”

“……!”

마침내 기다리던 대답이 들려왔다.

회심의 미소를 지은 브룩이 힘차게 고개를 숙였다.

“절대로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

“으으음…….”

나지막한 신음과 함께 레이지가 정신을 차렸다.

곧 차갑고 딱딱한 바닥이 느껴졌다.

절로 으슬으슬 몸이 떨렸다.

“정신이 드나?”

“……!”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써드 문이었다.

한데,

“너, 팔이…?”

아직 흐릿한 시야 속, 레이지의 눈이 점차 크게 뜨여졌다.

무언가 허전해 보이는가 싶더니, 써드 문의 오른팔이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살수가 사지 하나를 잃었으니.

이는 은퇴를 생각해야 할 정도로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탈출 중에 당했다. 루나 틴 론지에라고 했던가? 어린데도 상당히 강하더군.”

그녀의 눈빛을 느낀 써드 문이 제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잇는다.

“세컨드 문에게는 따로 이곳의 위치를 알려뒀다. 아마 늦어도 오늘 저녁이면 도착할 테지.”

“…미안. 내가 너무 자만했어.”

써드 문이 픽, 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됐다. 어울리지 않게 무슨…….”

“…이런 상황에서 미안하지만, 부탁이 있어.”

“부탁?”

“…그 전에…….”

직후, 품 안에서 빈 양피지 한 장을 꺼낸 레이지가 무언가를 휘갈겼다.

그녀는 아직 복부에서 묻어나는 피로, 혈서(血書)를 쓰고 있었다.

“…됐다. 이걸 퍼스트 문에게 전해줘. 아마 너희 추락하는 달이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을 줄 거야.”

“…너.”

“표정이 왜 그러실까?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일이잖아?”

“…고맙다.”

써드 문이 선선히 양피지를 건네받았다.

하위 달이 아무리 스러져도 퍼스트 문이나 세컨드 문이 건재하다면, 조직은 언제든 일으켜 세울 수 있다.

이건, 거기에 날개를 달아줄 물건이나 다름없었다.

“…쿨럭!”

바로 그때, 몸을 일으키던 레이지가 시꺼멓게 죽은피를 토해냈다.

새하얀 내장이 섞여 있는 것이, 척 보기에도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괘, 괜찮나?”

“…난 괜찮아. 그것 말고, 아까 내가 말한 부탁. 들어줄 거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거야.”

“말해라. 이런 몸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해주지.”

생긋 미소 지은 레이지가 또다시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통신용 수정구다.

문제는,

“이 수정구. 2황자 전하와 대화할 수 있는 직통 연락 수단이야.”

“뭣…!?”

“내가… 좀… 힘들어서… 고작 이 정도 마나를 일으킬 힘도 없거든. 그냥, 딱 한마디만 전해줄래?”

“무슨…?”

아무래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그걸 느낀 레이지가 한 마디씩, 필사적으로 말을 마친다.

“내가 대공을, 미친 듯이 보고 싶어, 한다고…….”

***

영주 성을 빠져나와 홀로 국경 지대로 향하던 나는,

“…역시 순순히 당하고만 있을 위인들이 아니지.”

꽤나 성가신 일을 겪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꼬장꼬장하게 생긴 중년 사내가 앞길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마음이 급한데, 하물며 그는 내 복장을 뒤집어놓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토해냈다.

“나는 브룩 백작이다.”

“…….”

“길게 얘기하지 않겠다. 공작님의 실수는 인정한다. 허나, 그건 아무런 대내외적인 효력이 없는 사적 약속이다.”

“그래서요?”

“공작님이 사령관의 직에서 물러나시는 건 그렇다 쳐도, 네놈들 같은 핏덩이들이 무슨 자격이 있지?”

“자격은 무슨…….”

“이쪽에는 지난 3년간 군을 위해 희생해 온 무수한 동지들이 있다. 그 대부분이 너희보다 연장자이며, 사회적인 지위 또한 높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중 가장 높은 이가 사령관을 대신하는 것이 옳다.”

“…….”

“고작 자작. 그것도 가작위인 크리스 녀석 따위, 군 내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제는 신물이 났다.

하여, 나는 곧장 손가락을 까딱였다.

“아, 됐고요. 꼬우면 덤비세요.”

“…뭐?”

“내가 마음속으로 혼자 결심한 게 있거든요?”

말을 마친 내가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더 이상 노인네들끼리 설쳐 대는 꼴은 좌시하지 않겠다고요.”

“이놈!”

“보니까 6써클 유저? 그 정도쯤 되시는 것 같은데, 저한테는 어림도 없으니까 덤빌 거면 마음 단단히 먹으셔야 할 거예요.”

“……!”

순간, 거짓말처럼 사내가 입을 다물었다.

상대의 경지를 정확히 꿰뚫어 본다.

그 말인즉, 최소 나는 그보다 상위의 실력자라는 뜻이니까.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 나는 확실하게 실력 행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냥, 당신 수준은요.”

우우웅!

한순간, 써클이 거칠게 요동쳤다.

그 즉시,

“…헉!”

털썩!

무형의 기운이 사내를 옥죄였다.

그는 참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일대의 중력을 수십 배로 늘리면서 내 마나를 약간, 야주 약간만 흘려준 결과물이었다.

몸소 겪는 건 처음인지, 사내의 얼굴은 이미 완전히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 같은 핏덩이한테도 그리 무릎 꿇을 수준. 딱 그 정도라고요.”

“……!”

“그러니까, 더 깝치지 말고 찌그러져 있어요. 콱 뭉개 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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