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55화 (55/251)

55화. 초월의 마탑(2)

외모만 보면 아카데미 생도들보다도 어려 보이는, 많이 쳐줘야 십 대 초반이나 되었을 법한 사내아이였다.

그것도 도화지를 연상케 하는 깨끗한 피부에 양 볼 가득한 홍조.

커다란 눈망울이 어우러져 극강의 귀여움을 자랑하는 녹금발 미소년 말이다.

물론, 최소한 마탑 내부에서 이 외모에 속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얼마나 지랄 맞은 성격의 소유자인지는, 이곳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에.

“야, 뒤질래?”

“……!”

“너 뉘 집 자식이냐? 내가 아무리 나이를 못 먹었어도 네 애비 애미만큼은 잡수셨을 건데. 뭐 어린애? 창자를 뽑아다 줄넘기를 해버릴라.”

“…딸꾹!”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욕지거리에 토끼 눈을 뜬 유리나가 이내 딸꾹질까지 해대기 시작했다.

쯧.

그러게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갈 것을, 왜 남의 콤플렉스를 건드려선.

“평소 성질머리 같았으면 그냥 콱! 밟아버리는 건데. 반가운 이름을 들어서 한 번은 참아준다.”

“죄, 죄송합니닷!”

“그래서, 너희 같은 핏덩이들이 빛의 마녀와는 무슨 관계냐?”

상대의 물음에, 이제는 나설 차례라고 생각한 내가 슬그머니 손을 들어 올렸다.

“제가 답변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래, 거기 평범하게 생긴 곱등이.”

“초월의 탑주님께서 말씀하신 분은 제 스승님이십니다. 옆에 있는 애는… 친구구요.”

“친구?”

“네.”

순간 상대가 고개를 갸웃했다.

“너네 그렇고 그런 사이였냐?”

“네?”

“여자 곱등이 쪽은 그래도 반반하게 생겼는데, 보는 눈이 영 꽝이구나? 저런 못생긴 곱등이가 뭐가 좋다고…….”

“…….”

나에 대한 상대의 첫인상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이 얼굴을 하고 못생겼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지.

“…가만. 그것, 가면이었냐?”

“…….”

“제법… 아니지. 이런 시건방진 놈을 봤나. 감히 내 앞에서 얼굴을 숨길 생각을 하다니.”

허나, 역시 상대는 그 위명도 자자한 초월의 마탑주였다.

신체 변형 마법이 일정 궤도에 오른 지금도, 그는 단번에 내 실체를 꿰뚫어 봤으니까.

물론 여기까진 예상한 범위 내였다.

“이건 사정이 있습니다.”

“어이, 음흉한 곱등이.”

어느새 나를 부르는 상대의 호칭도 미묘하게 달라졌다.

“예?”

“올해 몇 살이냐?”

“열아홉입니다.”

“열아홉? 생각보다 어린데…….”

내 ‘가짜 얼굴’을 유심히 살피던 그가 곧 툭 내뱉듯 중얼거렸다.

“옆에 여자 곱등이도 그렇고, 그 나이에 벌써 5써클 마스터란 말이지?”

“……!”

이에, 유리나가 참지 못하고 기함을 터뜨렸다.

“5, 5써클? 진짜?”

“이거 갈수록 가관이네. 너는 친구라면서 그것도 몰랐냐?”

“후, 후천적 마나 각성자가 그렇게 대단한 거였어요? 불과 아카데미 때만 해도 1~2써클을 왔다 갔다 하던 애인데, 고작 3년 만에 5써클 마스터라니…?”

“이건 또 뭔 소리냐? 후천적 마나 각성자라니?”

“얘도 초월의 마탑주님과 같은 후천적 마나 각성자거든요.”

“뭐…?”

찰나, 나를 바라보는 상대의 두 눈 사이로 기묘한 빛이 일렁였다.

“네가?”

“…일단은 그렇습니다.”

“어쩐지. 이러면 또 이해가 되지. 보면 볼수록 내 신경을 자극하는 네 내면의 마나. 그게 무엇인지 콕 집어 설명하기가 힘들었거든. 하기야 그러니 그 마녀가 제자씩이나 만들었겠냐 마는.”

“…….”

“그래, 후천적 마나 각성자라… 친우의 제자만 아니라면, 당장에 해부해서 연구라도 해보는 건데. 아쉽구만.”

섬뜩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상대를 향해, 내가 물었다.

“세논 스승님의 친우 분이셨습니까?”

“아니면 내가 너 같은 곱등이를 왜 만나냐? 시간만 아깝게.”

“하면,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부탁?”

내 말을 따라 중얼거리던 그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착각하지 마라. 건방진 곱등아.”

“…….”

“친우의 제자면 뭐, 내가 네 할아버지라도 되는 마냥 반갑게 손이라도 맞잡아줄 줄 알았냐?”

애당초 그런 건 기대하지도 않았다.

상대의 괴팍한 성격은 이미 스승님께 익히 들어왔으니까.

그래서 그가 미쳐 환장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도박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가까운 친우 분들에게는, 달리 도박의 마법사라고까지 불리실 정도로요.”

움찔.

그 순간 거짓말처럼 상대가 움직임을 멈췄다.

“…이놈은 간이 큰 건지, 겁대가리를 상실한 건지.”

“저랑 내기를 하나 하시지요.”

“뭐?”

“제가 탑주님을 찾아온 이유이기도 한 만큼, 이쪽의 조건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던 그가 허락의 의미로 오만하게 턱짓했다.

“재미는 있으니까 들어는 봐주지.”

“만약 제가 이긴다면, 탑주님의 권한으로 저를 마탑의 ‘보고’에 출입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아? 건방지고, 웃기기까지 한 곱등이였네. 마탑 역사상 외부인이 보고에 발을 들인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거늘, 뭐가 어쩌고 저째?”

“허나, 마탑 역사상 가장 위대하신 탑주님의 능력이라면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보았다.

누가 봐도 아부성 다분한 그 말에, 상대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것을.

“그렇다 치고. 반대로 내가 이기면?”

“제가 아는 어느 드래곤의 레어에 대해 알려 드리겠습니다. 물론, 그건 아직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백색의 정보입니다.”

“……!”

이 놀라운 발언에, 나를 제외한 두 사람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뭐라고…?”

***

제9상업지구 중심가에 위치한 식당.

그곳 1층 한구석에서 나와 유리나가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냐?”

“되는데, 드래곤 레어에 관한 것만 빼고.”

“쳇. 쩨쩨한 놈. 어차피 그 얘긴 기대도 안 했다. 말고, 얼굴은 왜 끝까지 숨기는 건데?”

“귀찮은 일은 피하고 싶으니까.”

“결과적으로, 마탑주와의 만남에선 의도한 바와 반대가 된 것 같은데? 괜히 성질만 건드렸잖냐.”

“아니. 의도한 대로야. 결과적으로 내 얼굴에 신경이 집중되었으니까.”

“뭔 헛소리래.”

순간 똥 씹은 표정이 된 유리나가 미간을 좁혔다.

“솔직히 말해 봐. 이번에도 뭐,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뙇! 하려는 것 아니냐?”

“아닌데.”

“안 보던 사이 영웅 병이 더 심해지셨네. 야 너, 얼굴만 믿고 설치다가 훅 가. 정신 차려. 뭐 얼마나 잘생겨 먹으셨기에 그러는지는 또 모르겠다만.”

제가 말하고도 민망했던지, 잠시 뒤 유리나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어쩌자고 그런 내기를 다 한 건데?”

“뭐가?”

“설마 네가 정말로 마법 대전에서 우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고작 5써클 마스터 수준으로.”

“글쎄, 해봐야 알겠지?”

“아서라. 당장 나도 너랑 똑같은 5써클 마스터인데, 현실적인 목표는 4강이다. 아까 들었지? 올해 마법 대전은, 실력 있는 명문가의 마법사들이 대거 참가할 거라는 거.”

유리나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 괴팍한 노인네(?)는 내 기라도 죽이려는 양, 올해 참가자들의 면면을 줄줄이 읊어줬으니까.

파동의 마법사가 있는 트라오레 가문의 장남부터, 모래의 마법사가 있는 에이젠 가문의 차남까지.

같은 경지라도 상위 1,000위 이내의,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마법사들이 특히 올해 마법 대전에 대거 포진해 있었다.

더불어, 여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 또한 알려줬는데,

“근데 그 인간. 그 이유라는 건 대체 왜 끝까지 알려주지 않은 거지?”

“친절을 베푸는 건 거기까지라는 거겠지.”

“에잉, 배배 꼬인 인간 같으니라고. 하여튼 고위 마법사들 중엔 정상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말이나 꺼내질 말던가.”

“…….”

딱히 부정할 생각은 없었기에, 어깨를 으쓱여 준 나는 무심코 위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총 4층으로 이루어진 건물 내부는 층고가 그리 높지 않아 바로 위층의 대화까지 다 들릴 정도였는데.

“얘기 들었어? 올해 마법 대전 호성적자들에게는, 황제 폐하께서 직접 포상을 내리신다며?”

“엥? 기사 대전도 아니고, 제국과 관련도 없는 마법 대전에 황제께서 왜 돈을 쓰신대?”

“일종의 후원이겠지.”

“후원?”

“그분의 인재 사랑이야, 대륙 전체에 이미 파다하지 않나? 이럴 때 좋은 인상을 심어두면 혹시 알아? 감명받은 당사자가 황제께 충성이라도 맹세할지.”

“일리 있는데?”

관심사가 같았기에, 언젠가부터 나와 유리나는 위쪽의 대화에 청각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럼 그 얘기도 들었어?”

“무슨 얘기?”

“현 마법사 유망주 1위. 테라 왕국의 제노스 델 카이클도 이번 마법 대전에 참가할 거라는 소문.”

“그게 정말이야?”

그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나와 유리나의 시선이 딱 하고 마주쳤다.

그리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방금 누구라고?”

***

제11마탑 최상층.

초월의 탑주와는 달리, 무척이나 화려하게 꾸며진 어느 방.

“소식은 들었다만, 설마하니 네가 정말로 이리 찾아올 줄이야.”

“…….”

“너라도 관심은 가던 모양이구나. 황제 폐하께서 직접 하사하신다는 그 상이.”

“…….”

“올해 마법 대전에는 특히 폐하께서 관심이 많아. 하기야 네게도 좋은 기회겠지.”

일견 깐깐해 보이는 중년 사내의 말에, 금발의 잘생긴 청년이 나지막이 답했다.

“전쟁이 임박했다는 뜻이겠지요.”

“……!”

“마법이 가장 필요한 순간은, 누가 뭐라고 해도 그때뿐이니까요.”

순간 예의 중년 사내가 미간을 찌푸렸다.

“제노스 델 카이클. 쓸데없는 억측이다.”

“…….”

“설령 전쟁이 일어나든 그렇지 않든, 너는 네 할 일만 잘하면 된다. 일을 어찌하길래, 그만 한 우세를 점하고도 여태 내전을 종식시키지 못하고 있는 거지?”

“…죄송합니다.”

“쯧. 이래서 근본 없는 약소국 출신 놈들은…….”

한참이나 혀를 차던 중년 사내가 재차 말을 잇는다.

“다른 생각할 틈이 있으면, 하루빨리 내전에서 승리할 궁리부터 하거라. 안 그래도 뜬금없이 마법 대전에 참가한다는 네 소식에, 모두가 불편해하고 있던 참이니.”

“…그래서입니다.”

“뭐라?”

순간 반문하는 중년 사내를 향해 제노스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폐하께 꼭 받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만 약속받으면, 내전은 단숨에 종식시킬 수 있을 겁니다.”

“……!”

***

건물 1층과 2층이 식당이라면, 3층과 4층은 여행자들을 위한 숙박 시설이었다.

하여,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올라온 나는 곧장 미뤄왔던 일을 행했다.

아이리스의 목걸이.

그 두 번째 조각을 해제시키는 일 말이다.

‘처음만큼 실망이 크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첫 번째 조각에는 온전히 힘을 숨기는 방법과 전생의 극소수 기억들만이 잠들어 있었다.

3년 전 그 당시에는 어찌나 허탈하던지.

눈앞의 조각들만 해제하면 당장에 드래곤에 필적하는 힘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나로서는, 한숨밖에 안 나왔다.

허나, 오늘의 일로 확실해졌다.

소득이 없지 않았다.

오히려 상상 이상이었다.

과연 드래곤의 지식이라고 해야 할까?

비록 얼굴은 들켰을지언정.

대륙 최강자 중 하나인 초월의 마탑주조차 내 ‘진짜 경지’는 꿰뚫어 보지 못했으니까.

이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사건이었다.

본 실력의 3할은 숨기라는 격언도 있듯.

상대의 방심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 크나큰 무기가 되곤 했으니까.

‘이 안에 잠들어 있는 건, 무려 드래곤과 관련된 지식들이다.’

지금껏 다른 조각들은 해제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본능이 알려줬으니까.

지금 건드리면 죽는다고.

허나, 지금은 아니었다.

우우웅! 달칵.

이미 경험해 본 일이었지만 아직도 놀라웠다.

내 마나에 반응해, 육각형의 한 면이 천천히 열려가고 있었으니까.

내가 곧 그 내부로 시선을 두자.

화아아악!

“……!”

새하얀 빛 무리와 함께, 이윽고 알 수 없는 새로운 지식들이 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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