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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한 마법 천재-47화 (47/251)

47화. 두 명의 스승

“첫 수업은 ‘육체 단련’이다.”

연무장으로 도착한 내게, 변태 아저씨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예? 육체 단련이요?”

“왜, 뭐? 문제 있냐?”

“혹시… 제가 뭐 하는 사람인지 잊으신 건 아니시죠?”

“그중에서도 네게 가르칠 건 검술이고.”

“거, 검술?”

갈수록 태산이었다.

이 아저씨에게 마법을 배울 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지 않았지만, 그래도 검술은 너무 뜬금없지 않은가?

“내가 운용하는 바람의 힘은, 전부 검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그러니 그 검술을 떼어 놓고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겠지?”

“거기서 꼭 배워야 할 것만 따로 알려주시면 되잖아요!”

“귀찮아. 네 몸으로 직접 경험해 보고, 능력껏 장점만 뽑아다 쓰던가. 그 정돈 이해해 줄 테니까.”

“헐…….”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

딱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거.”

“뭐가?”

“검술도 어느 정도 배워야 한다는 뜻이잖아요. 마법과 검술을 함께 사용하는 거, 무리라고요.”

“옛날에는 가능했어. 그러니까, 마법사들도 써클을 기사와 같은 복부 아래에 만들었을 때 말이야.”

“가능이야 하겠죠. 그럼 그 뒷이야기도 아시겠네요. 홀에 마나를 축적한 이는, 심장에 써클을 형성한 이에게 필패(必敗)한다는 사실이요. 전자인 4써클 마법사가 후자인 2써클 마법사에게 패한 일화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고 있으니까요.”

나는 마법의 효율성 문제를 말하고 있었다.

피를 만들어내는 심장이 마나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 학자들에 의해 증명되었으니까.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마법사들에게 ‘언령’이 가지는 힘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입에서 가까워야 그만큼 캐스팅도 빨라지는 법.

더욱이, 심장만큼 입과 근접한 신체의 장기는 없었다.

“고대 시대에는 꽤나 이름을 날린 마검사들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더라.”

“그런 카더라로, 갓 받은 소중한 제자를 망치시려고요?”

“너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의 마법사들도 심장이 아닌 홀에 써클을 만들었거든.”

“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고대의 마법사들이, 심장이 아닌 홀에 마나를 만들었다고?

단언컨대 그런 얘기는 처음 들었다.

“…아니, 지금도 있나?”

“무슨…?”

“너도 만나보면 자연히 알게 될 거다. 그 열두 명의 괴물들을 말이야. 너 같은 애송이가 직접 본다고, 그 미묘한 흐름을 눈치챌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순간 말을 잇던 상대가 멈칫 했다.

“…아니지. 멀리 갈 것도 없이, 여기에도 있잖아?”

“불민한 제자는 스승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으니, 조금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불민한 제자는 설명을 듣기 전에, 스승의 명부터 따라야 할 것 같은데?”

“명이요…?”

“지금 바로 시작하라고. 팔굽혀펴기 400개, 윗몸 일으키기 400개, 턱걸이 100개, 마지막으로 요 뒷산 가서 산악구보 3km 뛰고 돌아오도록.”

“……!”

“내가 지켜볼 거다. 농땡이 부릴 생각은 하지 말고.”

절로 내 고개가 발딱 치켜 세워졌다.

“마법사가 그런 걸 대체 왜 해야 하는데요? 그냥 아까 설명이나 계속해 주시던지요!”

“마법사가 이런 거 하지 말라는 법은 있냐? 꼬우면 네가 스승하던가.”

누군가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그였다.

곧이어,

“오늘이 다 지나기 전에, 차라리 내가 낫다는 걸 깨닫게 될 거다.”

“무슨 뜻이에요?”

“내 다음은 우리 대장이잖냐.”

움찔.

순간 불길한 표정을 짓는 나를 보며, 상대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넌 이제 진짜 죽었다.”

***

오전의 그 지옥 같던 시간도 쏜살같이 흘러가고.

변태 아저씨와 달리, 금발 아줌마는 의외로 나를 자신의 개인 집무실로 불러들였다.

“앉아.”

“네.”

“꼴이 말이 아니네? 그새 에이스에게 제법 많은 걸 배웠나 봐?”

“…….”

땀에 흠뻑 쩔은 나는, 그저 말없이 치만 떨어댈 뿐이었다.

“씻고 올래? 내가 그 정도 배려심은 있거든.”

“…아니요. 어차피 또 굴러야 할 거, 가르침 다 받고 씻겠습니다.”

“그래? 네 뜻이 그렇다면야. 근데 내가 너한테 가르칠 건 육체적인 부분과는 거리가 먼데?”

“지금 바로 씻고 올까요?”

이어지는 상대의 말에, 순식간에 태도가 돌변하는 나였다.

왜 오후도 당연히 육체 단련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했을까?

척 보기에도 눈앞의 아줌마…

아니, 존경해 마지않는 스승님께서는 육체파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감사합니다. 스승님!”

“고작 하루밖에 안 됐는데, 스승님이라는 말이 썩 자연스럽게 나온다?”

“응당 그래야지요. 에이스 님과 달리, 제 눈앞에 있는 분은 대륙의 살아 있는 전설이 아니십니까?”

“…큭! 속 보이는 아부는. 좋아. 본격적인 수업에 앞서, 스승이 아닌 인생 선배로서 충고부터 해줄까?”

“충고요?”

“지금부터는 아무도 믿지 마라. 설령 네가 전설 속 9써클 대마도사라도, 뒤통수에는 눈이 없는 법이거든.”

다른 사연이라도 있는 것일까?

무언가 상당히 뼈가 있는 듯한 말이었다.

곧바로 묻고 싶었으나, 이번에도 스승님이 한발 더 빨랐다.

“그럼, 이번에는 문제를 하나 내볼까?”

“……?”

언제는 씻고 오라더니.

의아한 표정을 짓는 나를 향해, 스승님은 곧 목각 인형 두 개를 꺼내 보였다.

“여기, 두 명의 마법사가 있다. 둘 모두 화염계 마법사이고, 클래스 또한 같은 3써클이야.”

“음…?”

“그런 둘이 서로를 향해 파이어 볼을 날렸다고 가정하자. 결과는 무승부일까?”

“그야…….”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아닐 거다.

결과가 무승부라면 구태여 이리 물어보지도 않을 테니까.

그리 생각하고 대답하려는 순간.

“물론 아니겠지?”

…이럴 거면 물어보시지나 말던가.

스승님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너도 알다시피, 마법은 그리 단순하지 않아. 써클과 주력 외에도 승패를 결정짓는 다른 수많은 요소들이 있지. 가령, 수식의 연산능력. 둘 중 누가 더 빨리 계산을 끝내고 마법을 쏘아 보냈느냐에 따라 결과 또한 판이하게 달라진다. 마법을 상대보다 빨리 펼쳐 냈다 함은 ‘거리’를 선점했다는 뜻이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가속’의 이점 또한 이쪽으로 가져오게 되는 것이니까.”

“이해했습니다.”

“또, 마법에 대한 이해도도 있어. 오늘날 마법을 조각조각 해체시켜, 제 나름대로 분석하고 발전시키는 무수한 마법사들이 존재한다. 같은 화염계열이라도 폭발계니 연소계니, 여러 학파들이 생성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그중에서도 내가 가르칠 건 마나의 ‘불순도’를 걸러내는 방법이다.”

“그게 뭔가요?”

“그런 말은 들어봤겠지? 불순물이 없는, 보다 순수한 마나일수록 마법의 위력은 배가 된다고.”

“아… 들어봤습니다.”

“일반적인 마법사의 마나 불순도는 평균적으로 약 30에서 40퍼센트. 이름 깨나 날린다는 1,000위 이하의 마법사들은 대략 15퍼센트 가량이다. 나는 네 수준을, 최소 10퍼센트 미만으로 떨어뜨릴 생각이고.”

그게 가능한가?

너무 쉽게 얘기해서 당연히 가능할 것도 같다.

허나, 여기서 궁금증이 생겼다.

“한 가지 질문 드려도 될까요?”

“말해.”

“그럼, 스승님은 몇 퍼센트신데요?”

“나?”

곧 손가락을 들어 제 자신을 가리킨 스승님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나한테는 딱히 의미 없는 질문이기는 한데…….”

“……?”

“굳이 표현하자면, 0.1퍼센트 정도?”

***

다시 해가 완전히 떨어진 저녁.

“미친, 미친…!”

내 입에서 쉼 없이 욕설이 터져 나왔다.

지금 내 몰골은, 문자 그대로 거지꼴이나 다름없었다.

심신 안팎으로.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는 온몸의 근육들보다, 가만히 있어도 터져 나갈 듯한 뇌가 더 고통스러웠다.

할 수만 있다면, 머릿속을 통째 끄집어내고 싶을 정도로.

속은 있는 대로 울렁거렸고, 그로 인해 벌써 수십 번은 위 속의 내용물들을 게워내야 했다.

한데도 상태는 전혀 나아질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우욱… 살아보면 공부가 제일 쉬운 거라고? 개소리야.”

10가지 공식을 대입해야 간신히 풀 수 있는 연산 문제를 그 자리에서 100문제 정도 풀어내면 이런 느낌일까?

특히나 자칭 순수함의 결정체라는 스승님…

아니, 그 마녀 할망구의 마지막 말은 더 가관이었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가볍게라며. 이게 가볍게면 시발, 무거운 수업은 대체 어떤 거길래?”

사아아아!

순간 줄기차게 욕설을 뱉어내던 내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레 내가 아닌 다른 이의 마력이 느껴졌으니까.

혹시 아니겠지…?

그리 생각하며 떨리는 눈초리로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

우웅! 우우우웅!

“……!”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그 진원지는 다른 외부에 있지 않았으니까.

“아공간 주머니…?”

곧이어, 내 품안에서 무언가가 불쑥 튀어 나왔다.

고작해야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가죽 주머니와.

“이, 이건 학장 할아버지 건데?”

그 안에서 딸려 나온, 환하게 빛나는 작고 둥그런 물체가.

예의 마력의 진원지는, 그곳에 있었다.

***

어둠이 내려앉은 고요한 숲.

남북으로는, 대지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상처를 품고 있는 그곳에서.

덥석!

갑작스레 누군가의 손이 상처를 비집고 튀어나왔다.

누군가 이 장면을 본다면, 절로 소스라칠 정도로 무섭고 기괴스러운 광경일 것이다.

마치 무덤에서 다시 재림한 언데드처럼.

그렇게 땅 아래에서 ‘사람’이 등장했으니까.

“…….”

어느새 지상으로 완전히 빠져나온 손의 주인은, 곧장 통신용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마나를 한껏 머금은 그것은 곧 환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 어… 대공?

얼마 지나지 않아 무척이나 매혹적인 여인의 얼굴이 수정구 위로 떠올랐다.

- 사, 살아 있었던 거야!?

“…서큐버.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 뭐? 시간이고 뭐고, 대체 지금 어디야?

“…나도 몰라. 하지만…….”

잠시 말끝을 흐리던 인영이 곧 주변을 훑어봤다.

원래 새빨갛던 눈동자는 이제 피를 연상케 할 정도로 검붉게 변해 있었다.

“…내 마지막 기억과 그리 멀지 않은 장소 같군.”

- 아직 테라 왕국이라는 거지? 아리에나 영지의?

“아마도.”

- 지금 바로 데리러 갈게. 만나서 얘기해!

인영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예의 그 핏빛 눈동자를 다시 주변으로 옮겨갔다.

비단 시선뿐만 아니라, 이제는 양발의 걸음까지도.

“누, 누구…!?”

쉭!

순간 인영의 허리춤에서 무언가가 번뜩였다.

직후의 일은, 실로 놀라웠다.

푸화아아아아악!

단 한 번의 칼질이었다.

한데, 썩은 볏짚처럼 순식간에 목을 잃은 시신들이 무너져 내렸다.

근처를 배회하던.

빛을 따라 움직이던, 스물이나 되는 테라의 병력들이 단번에 몰살을 당한 것이다.

스으윽.

방금 학살극을 자행한 인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제 복면을 벗은 인영이 태연하게 검에 묻은 핏물을 닦아냈다.

그와 동시에, 오물로 범벅이 된 새하얀 머릿결이 출렁이며 떨어져 내렸다.

- 실력은 여전하잖아…?

“나중에 만나서 얘기해 주지. 그보다, 사람 하나에 대해 알아봐 줘야겠어. 최대한 빨리.”

- 급한 일인가 보네. 알았어. 그게 누군데?

“이름은…….”

잠시 미간을 찌푸린 채 무언가를 고민하던 인영이 말을 이어 나갔다.

“…세타 쿤 이그니스. 나이는 십대 중반. 현 테라 아카데미에서 생활하는 생도. 그리고…….”

찰나, 소름 끼치는 예의 혈안(血眼)이 스산하게 빛났다.

“…죽은 아즈문 사트리노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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