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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한 마법 천재-37화 (37/251)

37화. 당신의 희생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었으나,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쿨럭!”

그 증거로, 아즈문 사트리노가 한 움큼이나 되는 핏물을 토해냈다.

가까스로 치명상은 피했다.

허나, 단지 그뿐이었다.

뻥 뚫린 옆구리 사이로, 이제는 새하얀 내장마저 비쳐대고 있었으니까.

이대로라면, 가만히 둬도 과다출혈로 죽게 될 터였다.

“칫. 귀찮게…….”

타닥!

재차 가벼운 몸놀림으로 허공을 휘돌던 레이지가, 이내 암벽을 타고 아래로 질주했다.

그 목표는 분명했다.

어느새 보랏빛으로 물든 그녀의 눈동자는, 줄곧 한 사람만에게 고정되어 있었으니까.

그러나,

쩌저적, 투쾅!

“읏…!”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지는 다시 몸을 띄울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레 암벽의 바닥이 갈라지며, 그 틈으로 튀어나온 바위의 송곳들이 진로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저 노인네가 정말! 시간 없다며.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을 거야!?”

“이미 잡았다.”

“…응?”

딱히 누구를 지칭하여 내뱉은 말은 아니었다.

한데도, 상황은 곧장 그녀의 바람대로 이루어졌다.

이 이상, 더할 나위가 없을 정도로.

주르륵.

“…어느새…….”

역류하는 핏물을 도로 삼키던 아즈문 사트리노가 짧게 신음을 내뱉었다.

그림자가 한 인영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내 그것은 무형의 힘으로 그의 전신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움직이면 죽는다.”

“…….”

“나는 내 손아귀에 들어온 상대는 놓치지 않아.”

아랑곳하지 않고, 조용히 마나를 휘돌리던 아즈문 사트리노가 실소를 터뜨렸다.

허언이 아니라는 듯, 붙잡힌 팔목에서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으니까.

“그렇게 된 거였나? 설마하니 그대가 직접 모습을 드러낼 줄이야.”

“…….”

“검밖에 모르는 제국에서 뜬금없이 조각에 관심을 가진다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허나, 그 뒤에 그대가 있다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야.”

말을 마친 아즈문 사트리노가 시선만 돌려 뒤를 봤다.

그러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정 일색인 복면인이 시야로 들어왔다.

“근 10년 만인가? 대죄여.”

“이만 포기해라. 대지의 마법사.”

아즈문 사트리노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지.”

“……?”

“왜 그러지? 방금 네 입으로 포기하라 하지 않았나.”

“…현명한 판단이다.”

이어지는 상대의 반응에, 아즈문 사트리노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그래. 포기하지. 그까짓 손목.”

“뭐라고…?”

서걱!

“……!”

언제 어느 때나 동요함이 없던 복면인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자신이 도마뱀이라고 착각이라도 하는 것일까?

위기 상황에서의 그 결단력도 놀라웠지만, 설마하니 마나를 이용해 스스로 제 팔을 잘라낼 줄이야!

콰드득! 콰드드드득!

“…큭.”

그와 동시에, 전방위로 덮쳐 오는 대지의 파도로 복면인은 쉼 없이 뒤로 밀려났다.

그래, 그건 말 그대로 성난 파도이자 해일이었다.

쩡! 쩡! 쩌어어엉!

사방에서 몰아치는 암석의 폭풍우를, 복면인은 애병인 쌍검으로 쳐내고 또 쳐냈다.

그러는 한편, 재차 반격의 기회를 노리려 했으나,

터벅, 터벅, 터벅.

정작 당사자는, 더 이상 그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듯 다른 곳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아즈문 사트리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두 사람이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이제 완전히 이성을 잃은 세타와.

“이… 괴물 같은 새끼!”

그런 세타를, 가까스로 막아내고 있는 칠악의 지로시가.

아즈문 사트리노의 걸음이 빨라졌다.

더 늦으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 테니까.

“정신 차리거라! 그러려고 숨겨온 힘이 아니지 않더냐?”

“크르르르…….”

“제어력을 잃은 힘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이대로 생을 마감하고 싶으냐!?”

“크아아아아아아!”

육신의 고통조차 잊은 아즈문 사트리노의 눈빛 사이로, 안타까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세타는 이미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반인반수.

입은 길게 찢어져 날카로운 송곳니가 튀어나와 있었고, 두 눈으로는 새빨간 흉성마저 드러내고 있었다.

그뿐인가?

어느새 몸집 또한 수배는 커져, 입고 있는 옷가지마저 갈가리 찢겨 나가 있었으니.

“이 녀석아… 이게 네가 바라던 삶이더냐? 정녕 이대로 자아마저 빼앗긴 채, 이지를 잃은 짐승이 되고 싶은 게냐?”

“크으으으…….”

“고작 이따위 인생을 위해, 그 긴 세월을 참고 견뎌왔느냔 말이다!”

그제야 상대를 인식한 것일까?

재차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아즈문 사트리노의 외침에, 이윽고 세타의 눈빛이 그쪽을 향했다.

“크르르르…….”

한데, 그 눈에서는 일말의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예의 맹수와도 같은 흉흉한 기세 또한 여전했다.

사나운 맹수가 목표한 먹잇감만 바꿔 놓은 듯이, 그렇게.

사제 사이에, 당장이라도 일이 터질 듯한 일촉즉발의 상황 속.

“내 식사를! 방해하지 말라고!!!!!!!!”

둘 사이로 또 다른 무언가가 끼어든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

거대한 풍선이 있다면 이런 외형일까.

예의 덩어리의 모습을 한 럼프가, 갑작스레 제 크기를 부풀려 간다.

“위험!”

“피해, 지로시!”

눈치 빠른 칠악이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순식간에 집체만 한 크기로 변한 럼프의 주변으로, 어마어마한 마기가 뿜어져 나왔기에.

불-룩!

“세타!”

뒤늦게, 아즈문 사트리노의 단단한 체구가 세타를 덮쳤다.

그와 동시에.

퍼어어어엉! 푸푸푸푸푸푸푹!

럼프에게서 튀어나온 수십, 수백 개의 가시가 마침내 사방으로 비산했다.

***

뚝, 뚝, 뚝.

비라도 오는 것일까?

얼굴 위로, 방울진 무언가가 계속해서 떨어져 내린다.

한데, 눈꺼풀을 들어올릴 수가 없었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으니까.

하물며 전신의 근육마저,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썩을, 아파 죽겠네…….”

“정신이 드느냐?”

“…어?”

“아카데미를 나가면 혼자서도 잘 먹고 잘살 수 있을 거라더니. 그게 설마 이런 뜻은 아니었겠지?”

익숙한 목소리가 재차 귀청을 때렸다.

청각은 멀쩡하고, 이제는 손가락까지 움직일 힘도 생겼는데, 시야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마치 깜깜한 어둠 속에 갇혀 있기라도 한 듯이.

“잘 먹고 잘살 거거든요? 그보다, 온몸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파 죽겠는데, 뜬금없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점차 시야가 돌아온다.

앞을 가린 희뿌연 습막들이 걷혀지고 있음이다.

곧이어, 이내 주변의 풍경들이 알알이 눈에 박혔다.

“……!”

그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내게 다른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었음을.

그저 상대의 커다란 체구가, 내 몸의 절반을 뒤덮고 있었기 때문임을.

“하, 학장 할아버지!”

“소리 지르지 말거라. 지금 아파 죽겠는 건, 다름 아닌 나니까.”

“사, 상처가 왜 이래요!?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세타.”

학장 할아버지의 진중한 목소리에, 내 입이 금세 다물어졌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니, 지금부터 내 말 잘 듣거라.”

“무슨… 말씀이세요?”

“너를 거두고, 나는 단 한 번도 후회를 한 적이 없었다.”

“…….”

“네가 여기저기 사고를 치고 다닐 때도, 그로 인해 모리배들에게 온갖 중상모략에 시달릴 때도. 나는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건강하게 자라준 네게 고마웠다.”

“그런 말씀을 왜 지금 하시는 거냐구요!”

앞으로의 미래가 절로 그려졌기 때문일까?

내 목소리에 조금씩 물기가 스며들었다.

“나 따위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냐고요!?”

“그런 게 부모니까.”

“……!”

“공부를 좀 못하면 어떠냐? 꼴통에 낙제생이면 또 어떠하냐? 그런 너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소중한 자식인 것을.”

가슴이 답답했다.

“살아가는 것에 너무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 말거라.”

또다시, 습막이 앞을 가리려 한다.

“그 의미를 찾기 위해 살아가는 것도, 제법 괜찮은 인생이지 않더냐? 결과적으로, 이렇게 멋진 아비도 만나게 되었으니.”

이분은 다 알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내가 삶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도.

왜 이 모양 이 꼴로 살아왔던 건지도.

“처음 봤다. 네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끅… 끄흑…….”

“아카데미에서는 혹여나 누가 들을까 미처 얘기하지 못한 게 있는데…….”

우웅!

순간, 대기가 가볍게 진동했다.

“진심으로 사랑한단다. 내 아들아.”

흐느낌이 조금씩 멎어 들었다.

내 체내로, 무척이나 따스한 마나가 흘러들어온 직후였다.

“나중에… 학장실 책상 바닥을 한 번 뒤집어 보거라.”

금세 수마에 빠져드는 나를, 살며시 내려놓는 당신의 뒷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사람이 저러할까?

“…네놈들은, 여기서 한 발자국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결연함마저 느껴지는 학장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끝으로, 마침내 내 의식은 완전히 끊어졌다.

***

나는 깊은 꿈을 꾸고 있었다.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동굴 내부.

그곳에, 한 명의 사내가 있었다.

이미 몇 번인가 봤었던.

얼핏 나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꽤나 부드러운 느낌의 미남자가.

- 정녕 하려느냐?

동굴 전체를 가득 메우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사내가 대답했다.

“이미 내친걸음입니다.”

- 라그하일의 선례를 잊은 건 아닐 텐데?

“그는 한 가지 크나큰 착각을 했습니다. 그게 그가 전이 마법에 실패한 이유지요.”

- 우리가 아무리 신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 한들, 혼은 별개의 영역이다. 그건 오직 저 신들만의 권능. 너는 라그하일과 마찬가지로 실패할 것이다. 반드시.

“일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이걸 사랑이나 축복 따위로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단 한순간도.”

- …반드시 해야만 하겠다는 의미로 들리는구나.

“말씀 대로입니다.”

- …….

잠시간의 침묵 뒤, 예의 정체 모를 존재가 말한다.

- 혹여나 성공하더라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될 거다.

“그것이야말로 제가 바라는 바입니다.”

-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는 법. 비루한 생을 전전하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쓸쓸히 죽어가게 될 수도 있다.

“그건 그것대로 운치가 있겠군요.”

- 만약 그 삶에 환멸을 느껴, 뒤늦게라도 돌아오고 싶게 된다 해도…….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제야 존재의 목소리에 체념이 깃들었다.

- …하면, 어디 네 마음대로 한번 해보거라.

“감사합니다, 로드시여. 아참, 그리고…….”

- ……?

“혹시나 저 이후에, 일족의 또 다른 아이가 제 마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잠시 말끝을 흐리던 사내가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정육각형의 모양을 가진, 무척이나 특이한 형태의 목걸이였다.

“이걸 찾으라 일러주십시오.”

- 그게 무엇이지?

“제가 연구한 모든 것들이 담겨 있는 물건입니다.”

- 너 같은 망룡이 또 있을 것이라 보느냐?

“인간 세계에 이런 말이 있더군요.”

- ……?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라고.”

- …….

“이만 가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사내가 이내 몸을 돌렸다.

- 아이리스.

그게 사내의 이름이었던 것일까?

걸음을 멈춘 그가 곧 ‘위’를 올려다봤다.

그러자, 실로 입이 떡 벌어지는 크기를 가진 거대한 생명체가 사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예?”

- 혹 혼의 전이에 성공한 네가, 이번 생의 기억마저 되찾는 순간까지 맞게 된다면…….

“……?”

- …그땐, 내게도 그 삶에 대해 들려줄 수 있겠는가?

사내, 아이리스가 씨익 미소 지었다.

“물론입니다.”

***

다시, 주변의 환경이 허물어져 간다.

어느새 내 눈앞에, 예의 그 미남자가 서 있었다.

“언제까지 퍼질러 자고 있을 생각이지?”

“나는… 당신입니까?”

“아니.”

그리 대답한 사내가, 손가락을 들어 제 자신을 가리켰다.

“나는 일족에서도 이름난 망룡이고.”

이번에는 사내의 손가락이 이쪽을 향했다.

“너는 세타 쿤 이그니스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이 아니던가?”

“모순이군요. 껍데기는 다를지라도, 혼은 분명 하나일 텐데…….”

“생각하는 가치관이 다르다. 주변인들이 다르고, 똑같은 모습을 보면서도 느끼는 감정조차 큰 차이를 보이지.”

“…….”

“완전히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난 두 자아가, 어찌 똑같을 수 있을까?”

“하지만…….”

사내가 고개를 저으며 내 말을 막았다.

“전생 따위에 얽매이지 마라. 가서 네 인생을 살거라. 그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던 일이었으니까.”

“내 인생…….”

“그보다, 시간 다 됐으니 이만 깨어나거라.”

“…아직 묻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이어지는 내 말에, 사내가 쯧 하고 혀를 찼다.

얼굴 위로는 한가득, 네가 그럴 때냐는 표정을 지은 채.

그러면서 내 정신을 번쩍 일깨우는 한마디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하면 그 궁금증을 위해, 네 소중한 존재의 마지막을 이대로 떠나보내려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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