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또 다시 사신교(1)
진리의 저장소를 떠나 우토에 도착한 둘. 그들이 우토의 하늘을 날아서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을 때, 뉘헬이 김창훈에게 말했다.
“그런데 정말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뉘헬의 말에 김창훈이 말했다.
“무슨 말이야?”
“동맹. 우리와 지구의 동맹은 어떻게든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세계까지 모두 끌어들이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불가능한 이유는 없지. 서로 이익만 맞으면 되는 거야. 물론 사신교 같은 놈들은 동맹으로 받아들일 수 없지만 그 이외의 이들이라면 가능성이 있지. 당장 에트린 제국만 해도 나는 동맹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하거든.”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군.”
“거기 황제를 내가 만들어 줬어.”
“흠?”
뉘헬이 놀라자 김창훈이 웃으며 말했다.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말이지. 그러니까.”
김창훈은 현 황제인 에메랄드가 자신과 만나고 그녀가 어떻게 황제가 되었는지 그 과정들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자 뉘헬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그 정도라면 에트린 제국까지 동맹을 맺는 것은 생각보다 더 수월하겠군.”
“그러니 문제없다는 거다. 오히려 다른 곳들이 문제지. 우리하고 너희, 그리고 에트린 제국. 이 세 곳의 세력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
“흠. 내가 말했던 것들 기억하고 있나? 이 우토에 있는 이들 중에서 매우 위험하다고 한 이들.”
“물론 잘 기억하고 있지. 그러니까 지금 그 위험하다고 한 이들 중 한 곳을 확인하기 위해서 가는 거잖아.”
지금 이들이 향하는 곳은 지구의 베이스캠프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 사신교가 있던 곳이다. 세리스의 말에 사신교에서 무슨 짓을 또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김창훈은 일단 이곳부터 들려서 확인을 하고 지구로 갈 생각을 한 것이었다.
“사신교는 그대의 힘에 의해서 한 번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하지만, 다른 곳은 아니지 않은가? 그곳은 어떻게 할 건가? 그들은 사신교와 다르게 나올 거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사신교보다 더 상대하기 까다로울 거다.”
“그렇겠지. 그놈들은 사신교처럼 미친 광신도 집단이 아니라 그냥 야망이 큰 이들이니까. 분명 뮤 제국이라고 했었지?”
“그들의 세계에 있는 대륙의 이름이 ‘뮤 대륙’이라고 하더군. 그리고 그 대륙을 완전히 정복한 제국이란 의미로 이름을 뮤 제국으로 바꾸었다고 들었다.”
“잘 알고 있네.”
“그들은 야망이 넘치지. 하지만 힘은 그 야망만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와 만났을 때, 그들은 우리의 지식을 탐냈다. 그리고 나름 대가를 지불하기도 했지. 우리의 원칙은 그대도 잘 알고 있지?”
“물론이지.”
“그들에게 얻은 지식은 나름 쓸모가 있었다. 그들의 역사도 나름 재미있었지. 우리는 거기에 맞는 값어치의 지식들을 건네주었다. 그러던 중 일이 벌어졌지.”
“일?”
“그래.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굉장한 지식을 노래하면서 우리의 지식 일부를 먼저 달라고 하였지. 그리고 우리는 설마하는 생각을 가지고 거래를 하였다. 일부를 미리 건네주었지. 그리고 그들은 그 일부의 지식을 받고 그대로 입을 닦았다.”
“사기 당했군.”
“그래. 그 이후로 우리는 철저하게 먼저 지식을 받는 것으로 움직였다. 우리가 가진 지식의 위험성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지. 오만하다고 할 수도 있었으나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세리스에게 이야기 들은 적이 있다. 너희들이 사기 당했고 거기에 따른 보복도 했다고.”
그 말에 뉘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뮤 제국은 우리에게 최초로 사기를 친 자들이고 우리가 우토에서 누군가를 향해서 노골적으로 무력을 사용한 것 또한 그들이 최초였다.”
“그들을 멸망시키지는 않았지? 멸망시켰다면 나에게 뮤 제국을 조심하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 우리는 야만인들이 아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등가교환을 추구한다. 우리의 지식을 몰래 빼냈으니, 그 지식만을 회수하려고 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지. 그래서 상당히 큰 전투가 벌어졌다.”
“그 전투에서 너희가 승리했고?”
“그렇다. 뮤 제국에 확실한 타격을 주고 경고도 확실하게 하였지. 만약 그 과도한 욕심과 야망을 버리지 않고 지금과 비슷한 일을 우리들에게 벌인다면 너희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우리는 그 이후로 그들과 아주 작은 접촉도 하지 않았다. 동시에 좀 더 폐쇄적으로 움직이게 되었지.”
“너희들이 다른 세계의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지 않는 이유가 그놈들이었군.”
“그렇지.”
뉘헬의 말에 김창훈은 다시 한번 뮤 제국이란 자들의 위험성에 대해서 생각해야 했다. 그들은 그야말로 정형적인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열강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신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힘의 논리만 돌아가며 무조건 자신들이 옳고 자신들의 행동은 모두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었다.
‘동시에 세계를 정복한 것을 넘어서 이제는 이곳 우토마저 점령하고, 나아가 다른 세계마저 점령하려고 하고 있지.’
그야말로 욕심이 끝도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어떻게 보면 다른 그 누구보다 상대하기 쉽기도 했다.
저들이 어떤 자들인지 알고 있는 이상 에트린 제국이나 진리의 탐구자들과 상대할 때와 다르게 지구의 여러 정치인들이나 국가의 정상들과 이야기할 때처럼 철저하게 정치의 영역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되었으니 말이다.
‘이 부분은 나중에 프로즌에게 맡겨야겠어.’
정치 쪽 이야기에서 김창훈은 우수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는 힘으로 다른 이들을 찍어 누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실천했지 정치를 통해서 주고받고 한 것은 없었다.
오히려 김창훈은 뮤 제국과 같이 힘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전부 다 이루었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뮤 제국과 궁합이 잘 맞는다고 할 수도 있었으나 서로 다른 세력이라는 점에서는 반드시 충돌할 수밖에 없는 사이이기도 했다.
“음?”
잘 가던 김창훈은 허공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뉘헬도 같이 멈추어서 말했다.
“왜 그러는가?”
“아무래도 세리스의 말이 맞는 것 같은데?”
“세리스 님의 말씀이? 그 말은.”
뉘헬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사신교가 다시 세력을 꾸린 것인가?”
“그래.”
멀리서 느껴지는 너무나도 짙은 죽음의 기운. 그것을 느낀 김창훈은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와서 죽음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서 천천히 걸어갔다.
죽음의 기운이 풍기는 곳에 가까워지자 뉘헬도 죽음의 기운을 느꼈는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전보다 더 독해졌군. 아무래도 그대에게 당한 것이 상당히 충격적인 모양이야. 제대로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군.”
짙은 죽음의 기운 속에서 김창훈은 ‘살의’를 느낄 수 있었다. 뉘헬의 말대로 자신들을 공격하고 자신들의 교주를 죽인 자를 죽이겠다는 강한 의지가 죽음의 기운 속에 담겨 있었다.
“뉘헬, 만약 내가 이것도 다 처리한다면 다음에는 더 독한 놈들이 나올까?”
“광신도라고 부를 수 있는 미친 자들에 대해서 내가 확답을 하는 것은 웃긴 것이지만,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그대는 저들의 종교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존재들과 상징물을 철저하게 파괴했으니까. ‘죽음의 신’ 또한 그대를 좋아하지 않겠지.”
“그런가.”
그리고 김창훈과 뉘헬은 걸음을 멈추었다. 검은색 죽음의 기운이 뭉쳐서 이루어진 검은색 안개가 짙게 깔린 영역이 보였다.
“저기로군.”
“어떻게 할 건가?”
“어떻게 하기는, 예전에 했던 그대로 해야지. 미리 말하지만 조심하는 것이 좋을 거야, 뉘헬. 저놈들이 더 독해진 만큼, 어떻게 나올지는 나도 예측이 안 되니까. 자신의 몸은 스스로 지키자고.”
“이번에도 좋은 것을 보겠군. 기대하겠네.”
그 말에 김창훈은 뉘헬에게 한 번 웃어 보였고, 검은색의 안개를 향해서 나아갔다. 검은색 안개는 마치 김창훈을 집어 삼키려는 듯이 슬금슬금 움직였다가 사방으로 퍼지며 김창훈을 그대로 집어 삼켰다.
김창훈은 자신의 사방에 가득한 죽음의 기운에 미소와 함께 말했다.
“안 그래도 최근에 천마기를 계속 압축하느라 천마기의 양이 많이 줄어들었는데, 여기서 다시 보충 좀 해야겠군. 저번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잘 먹도록 하지, 사신교.”
그리고 천마기공이 움직인다. 김창훈의 주변에 바람이 휘몰아치며 검은색의 안개를 이루고 있는 죽음의 기운이 일제히 김창훈의 몸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독하군. 확실하게 이 새끼들 이를 악문 모양이야. 내가 교주를 죽인 것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나 보군.’
예전에 흡수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강한 죽음의 기운을 느끼며 김창훈은 감탄하면서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잘하면 천마기 능력치 좀 올릴 수 있겠군.’
김창훈은 그런 생각을 하며 죽음의 기운을 흡수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흡수하였다. 그러자 검은색의 안개가 사라지고 검은색의 안개로 인해서 보이지 않았던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심각하군.”
전에도 대지가 죽어 있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심했다. 대지가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그 위에 살아 있는 생물은 단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생명체의 흔적마저 없었다. 전에 있던 죽어 버린 나무의 흔적도, 힘없던 풀의 모습도 없다. 그냥 검은색의 흙만이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본 뉘헬은 조심스럽게 접근하여 땅을 살펴보고는 말했다.
“앞으로 이곳이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몇백 년은 족히 걸리겠군. 대지의 생기가 아예 존재하지 않아.”
부스러지는 흙더미가 바람에 흩날리는 것을 보던 뉘헬은 김창훈을 바라보았다. 김창훈도 심각한 얼굴로 주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지하게 모든 이들이 힘을 합쳐서 사신교의 세계를 공격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뉘헬.”
김창훈의 말에 뉘헬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우리가 최대한 중립에 있다고 하지만 이건 선을 넘었지. 우리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니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여러 세계들과 동맹을 맺는 것에 속도를 좀 내야겠어. 사신교를 완전히 근절하지 않는 이상 이놈들은 또 이런 짓을 할 테니까. 그것도 어쩌면 계속 더 강해질 수도 있겠어.”
“가능성은 농후하다. 죽음이야말로 이들의 힘이니까. 그리고 만약 싸운다면 단번에 끝내야 한다. 오래 끌면 무조건 우리가 불리할 거다.”
“물론이야. 다른 이들은 나서지 않고 나와 같은 힘을 가진 이들만 나서도록 해야지. 소수 정예로 부순다. 그 편이 가장 희생자가 적고 가장 효과적일 거야.”
천마기공으로 흡수할 수 있는 죽음의 기운을 모두 다 흡수한 김창훈은 몸 속을 도도하게 흐르는 천마기에 끝까지 저항하는 죽음의 기운을 느꼈다. 하지만 천마기는 그런 죽음의 기운을 힘으로 제압하며 결국 모두 천마기로 바꾸었다.
천마기의 양이 확실하게 늘어난 것을 느끼며 김창훈은 뉘헬을 향해 말했다.
“자, 그러면 계속 가자고. 여기 온 이상. 다시 한번 이들을 토벌해야겠어.”
“그러지.”
그렇게 사신교의 중심을 향해서 다시 한번 나아가는 김창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