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졸업(1)
내기에서 승리한 이후로 김창훈은 더 이상 박임로와 대련을 하지 않았다. 내기가 끝났기 때문이다.
거기에 24시간 알아서 천마기공이 천마기를 축적시켜 주고 있으니 김창훈은 예전과 다르게 다른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고 요즘 들어 그가 집중하는 것은 바로 근접 전투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얻는 일이었다.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격투만으로 그는 매일 같이 여러 교사들과 대련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상대는 B등급 헌터. 아무리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강하다.
당연히 김창훈은 연패의 나날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여러 교사들에게 대련을 부탁했다.
그런 김창훈의 열정에 교사들 또한 기뻐하며 함께 어울려 주었다. 그렇게 3학년을 지나, 4학년이 되었고 이제는 졸업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었다.
4학년의 중간, 기말시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졸업시험이었다. 대한 헌터 학교의 졸업시험은 간단하면서도 어려웠다.
바로 진짜 ‘던전’으로 가서 10일 동안 생존하는 것이다. 헌터 생활을 하면서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홀로 던전에서 표류하는 것이다.
홀로 던전에 남아서 그 던전에서 한정된 자원들을 가지고 10일간 살아남는 일은 당연히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걸 성공하면 1명의 헌터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이것이 졸업시험이 되었고. 동시에 이 졸업시험을 한 번에 통과하는 경우는 50%가 넘지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낙제점을 받은 이후로 다시 시험에 도전하여 10일을 버텨내고 졸업에 성공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도전했는데도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다면.
졸업을 코앞에 두고 학교에서 강제 퇴학이 조치가 이루어졌기에 4학년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신경을 쓸 일일 수밖에 없었다.
‘옛날 생각나네.’
회귀 전의 김창훈이 막 4학년이 되었을 때. 그는 이 졸업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 1년 동안 철저하게 준비를 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번에 합격을 하지 못하여 낙제점을 받았고 다시 한번 재시험을 통해서 겨우겨우 정말로 아슬아슬하게 졸업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달라야지.’
지금까지 모든 것이 좋았다. 1학년부터 모든 시험에서 단 한 번도 1등을 놓치지 않았고 교장인 박임로로부터 직접 가르침도 받았으며 박임로의 입에서 졌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성장했다.
지금 당장도 어떻게든 자신을 모셔가지 못해서 안달이 난 기업들이 많았고 그들이 내민 조건은 과거 그가 꿈도 꾸지 못했던 조건들이었다.
‘졸업시험까지 앞으로 남은 시험은 3개. 이 3개만 잘 마무리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정말로 회귀 전과 완전히 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그래도 그는 더 변화하고 싶었다.
회귀 전에 자신이 했던 모든 일들을 최고의 결과로 바꾸고 싶었다. 대한 헌터 학교 수석 졸업은 그 모든 일들의 시작에 불과했다.
“마지막까지 힘내자.”
스스로에게 그렇게 다짐하며 김창훈은 도서실로 향했다. 중간시험을 대비하기 위해서 잠시 교사들과의 대련은 나중으로 미루고 공부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 * *
4학년 중간시험과 기말시험. 이 두 가지 시험에서도 김창훈은 1등을 차지했다. 그 사실에 모든 이들이 당연하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만큼 김창훈은 4학년이지만 다른 학생들과는 격이 다른 힘을 가지고 있다고 모든 이들이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김창훈을 영입하기 위한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도중에 경쟁이 과열되지 않도록 대한 헌터 학교에서 나서서 정리해 주지 않았다면 정말로 엉망이 될 정도로 말이다.
“이 정도면 졸업시험은 문제없다.”
자신 있게 말하는 김창훈. 하지만 그럴 이유가 있었다.
[이름: 김창훈
특성: 천마지체.
힘: 64
민첩: 63
체력: 67
지능: 51
천마기: 73]
총합 능력치 318. B등급 헌터가 되기 위한 최소 능력치 합인 300을 넘었다. 거기다가 그를 더 자신 있게 해 주는 것은 역시 천마신공이었다.
천마군림보 3중첩을 천마기 소모 없이 무한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어지간한 던전의 몬스터들은 그냥 바로 압사 시킬 수 있었다.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으로 졸업시험을 통과한다.”
대한 헌터 학교 역사에 몇 안 되는 기록이지만 단순히 10일 생존이 아니라 던전 자체를 클리어한 뒤에 던전에서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경우에도 졸업시험에 통과한 것으로 간주한다. 10일간 생존하는 것보다 던전을 클리어 하는 것이 보다 더 확실한 생존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무리해서 던전을 클리어하려고 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졸업시험으로 배정되는 던전은 그렇게 간단한 곳들이 아니다.
‘각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던전들이 배치가 되지.’
여기서 사용하는 것이 각 학생들의 모든 능력치 총합이다.
헌터의 등급을 나누는 척도라고 봐도 무방한 이 능력치 총합을 이용하여 각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수준에서 홀로 클리어가 불가능한 던전을 시험 장소로 결정한다.
그럼에도 클리어를 한다면 학생이 대단한 것이니 칭찬해 줄 만한 일이다. 그러나 당연히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렇기에 던전을 클리어하여 졸업시험을 통과한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왕 하는 것 최단 기록을 세운다.”
김창훈이 가야 할 던전은 이미 정해졌다. 무려 B등급 몬스터인 오우거들이 서식하는 던전이었다.
학생들이 갈 수준의 던전은 절대로 아니었지만 김창훈이 너무 뛰어나다는 이유로 대한 헌터 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졸업시험 던전으로 B등급 던전이 선발되었다.
심지어 이 던전에 함께 들어가는 교사는 본래 한 명이어야 하지만 김창훈의 특수성을 생각해서 총 6명의 교사들이 함께하기로 하였다.
물론 다른 학생들과 같이 졸업시험이 치러지는 10일 동안의 던전 안에서의 생활은 단 1초도 빠짐없이 모두 촬영될 것이다.
혹시 모를 던전 안에서 학생과 교사가 작당모의를 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서 취해진 조치였다.
“내일이 기다려지네.”
해가 바뀐 2020년 1월 1일 밤. 김창훈은 내일 있을 졸업시험을 기대하며 잠이 들었다.
* * *
2020년 1월 2일 수요일 아침. 김창훈은 거의 4년 만에 학교에서 벗어나 던전에 같이 들어갈 교사들과 함께 차를 타고 졸업시험으로 배정된 던전의 입구에 도착했다.
푸른색으로 일렁이는 포탈을 보며 김창훈은 학교에서 제공해 준 기본적인 장비들을 착용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 안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다.”
교사들 중 한 명이 김창훈에게 이야기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졸업시험을 시작하도록 하지. 카메라 촬영 준비 되었나요?”
“예. 모든 카메라가 지금 녹화 중입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김창훈 학생의 졸업시험을 시작한다. 던전으로 입장.”
교사의 말에 김창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던전에 들어갔고 뒤를 이어 교사들이 던전에 들어왔다. 던전의 안은 밖과 다르게 한겨울이 아니라 봄 날씨였다.
울창한 숲의 어딘가에 들어 온 김창훈은 조용히 주위를 살펴보며 말했다.
“그러면 지금부터 제가 앞장서서 가겠습니다.”
“우리는 없는 사람이니 알아서 움직이면 됩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도 금지입니다. 시험은 시작되었으니까요.”
“예.”
그리고 김창훈은 천천히 숲을 걸어 다녔다. 이곳에는 오우거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오우거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아래 등급의 몬스터들 또한 살고 있다. 단지 이곳에서 나오는 최고 등급의 몬스터가 오우거일 뿐이었다.
‘그것도 확실한 정보는 아니지만.’
던전은 아예 하나의 또 다른 격리된 공간이다. 그리고 던전에 나타나는 몬스터가 강하면 강할수록 던전의 내부 공간은 넓어진다.
‘B등급 몬스터가 나타날 정도라면 거의 서울시 정도 되는 크기지.’
서울특별시와 비슷한 면적을 가진 B등급 던전. 이렇게 넓은 면적이라면 살아남는 것이 쉬울 것 같지만, 사방에 있는 몬스터들로부터 살아남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던전을 없애기 위해서는 던전의 ‘핵’이 되는 몬스터를 제거해야 했으니 등급이 높은 던전일수록 헌터들은 장기간 머무는 것을 각오할 수밖에 없었다.
‘주위에 느껴지는 기운들은 자잘한 건가?’
천마기공이 24시간 쉬지 않고 운기되어서인지 아니면 높은 천마기 능력치 덕분인지 모르지만 김창훈의 감지능력은 매우 뛰어났다.
이 또한 회귀 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성장하여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그를 중심으로 한 300m 안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고 또 어디에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흠, 거리를 상당히 두고 따라오시네.’
약 10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교사들은 김창훈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최대한 시험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거리를 벌려 둔 것이겠지만 조금 신경에 거슬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저긴가?”
상당한 힘을 가진 것으로 추측되는 생명의 기운. 그곳으로 천천히 향하자 김창훈은 죽어 있는 ‘오크들’을 먹고 있는 ‘트롤’을 발견할 수 있었다.
4m 정도 되며 청록색의 피부를 가진 이족보행 몬스터. 트롤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엄청난 회복능력으로 C등급 몬스터들 중에서 잡기 까다로운 것으로 유명한 몬스터였다.
그렇기에 헌터들이 트롤을 잡을 때는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서 목을 자르거나 머리를 부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사냥법이었다.
“천마군림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김창훈의 주변에 있던 땅이 움푹 파이며 풀들과 나무들이 무형의 힘에 짓눌린다. 그리고 그 영향은 트롤에게도 적용되었고 트롤은 자신을 찍어 누르는 무거움에 인상을 찌푸리며 포효하였다.
왜 이렇게 몸이 무거운지는 몰라도 그 원인으로 추정되는 존재가 바로 자신의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보.”
한 번 더 발동된 천마군림보. 그러자 김창훈을 향해서 달려들던 트롤의 몸이 앞으로 쏠리며 트롤이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땅바닥을 짚었다.
몸을 일으키기 위해서 노력해 보지만 트롤의 몸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마지막.”
3중첩의 천마군림보가 발동됨에 따라서 트롤의 몸이 완전히 무형의 힘에 짓눌리며 마치 프레스 기계로 누른 듯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피와 내장이 사방에 퍼졌다.
그러자 김창훈은 천마군림보의 사용을 해제하였다. 이것으로 그는 한 가지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B등급 이하의 몬스터는 내 상대가 아니다.’
천마군림보의 힘에 다시 전율하였고 그리고 이 어마어마한 힘을 무한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며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되는 천마신공에는 경외감이 들었다.
‘천마기만 올리면 된다. 그러면 다 해결된다.’
기승전 천마기.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더 확고하게 확인한 김창훈은 트롤의 시체를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