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외전 20화
“왜 그러지?”
“아… 아니….”
“보통 하기 전에 대화와 설명과 약관을 이야기해 주지 않나?”
길드원이 당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원래 대장장이들은 남의 장비를 받아서 수리할 때 그냥 해주지 않았다.
-대장장이님. 여기 검 좀 수리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하기 전에 명심해 두셔야 할게, 아주 낮은 확률로 내구도가 내려갈 수가 있습니다.
-아니 대장장이인데 그런 실수를 하면 안 되지 않….
-싫으면 다른 곳 가시던가. 다른 곳도 다 똑같아요. 나는 양심적이니까 설명해 주는 거지.
-…알겠어요.
-이해하셨으니 됐습니다. 잠깐. 이거 내구도가 생각보다 낮군요. 그러면 이야기가 달라지는데요. 파괴될 수도 있습니다.
-파괴는 너무하잖아요!!
-아. 어디까지나 그럴 수도 있다는 거죠.
-대체 어떻게 실수를 해야 아이템이 파괴….
-내구도를 이렇게 낮게 쓰니까 그렇죠. 진작 수리를 했어야지. 어쨌든 전 말씀드렸으니 다른 사람한테 갖고 가도 됩니다. 나중에 괜히 책임지라고 하지 마세요.
-크윽…!
사전에 ‘내구도 내려가거나 각종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몇 번이고 다짐을 받는 것이다.
대장장이들도 어쩔 수 없었다.
워낙 진상이 많았으니까.
아무리 침착한 플레이어라 하더라도 반 년 동안 퀘스트 깨서 얻은 장비가 눈앞에서 박살 나면 멱살 잡지 않고서는 힘들었다.
그나마 수리니까 이 정도지 강화면 대장장이들도 훨씬 더 강하게 경고했다.
-진짜 강화를 하시겠다고요?
-…네!
-정말요? 진짜? 강화가 뭔지 아시죠? 지금 몇 번 강화된 상태인데 여기서 더 강화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십니까?
-아, 알고 있으니까 빨리 진행해요!
-여기서 더 진행할 경우, 실패하면 운이 좋아야 본전만 날리는 거고 운 나쁘면 장비도 날아가는데….
-알고 있다니까! 더 겁나잖아!
-어. 이 사람 보게? 화내는 거 보니까 안 되겠습니다. 가져가세요.
-화, 화를 낸 게 아니라 시간을 끌어서….
-안 그러면 나중에 강화 실패했을 때 나한테 화풀이할 거 아닙니까? 가져가세요!
-아오!
너무 심할 정도로 대장장이들은 사전에 길게 설명하곤 했다.
자기가 칼 맞기는 싫었으니까.
그러나 눈앞의 미친 대장장이는 달랐다.
받고 1초 만에 바로 작업 시작!
“알고 온 게 아니었나?”
태현은 자리에 모인 길드원들을 이상한 놈들 쳐다보듯이 보았다.
이 정도 되는 장비를 모으고, 이 정도 되는 강화 재료를 모았는데, 강화 실패 확률이나 실패 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모르고 왔다고?
바보들 아니야?
“모르는 게 아니라! 강화가 뭔지는 당연히 알지!”
“그런데 왜?”
“…이게 그래도 사전에 설명을 듣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잠깐, 앞에 보고 작업해!!!”
“앞에 보고 작업하세요!!”
길드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대화하느라 눈치를 못 채고 있었는데, 대장장이 놈이 이쪽으로 시선을 돌린 채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온 정신을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다른 이야기까지 하면서 시선을 돌리고 있다니.
‘자기 장비 아니라고 저러는 거야!?’
‘이래서 대장장이 놈들은…!’
땅, 땅, 땅, 땅-!
“안 보고 작업해도 별 차이 없을 텐데.”
“차이 있어! 차이 있다고!”
“집중해!”
길드원들은 다급하게 말했다.
원래 목적은 여기 이 미친 대장장이와 친해지는 것이었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게 눈앞에서 저런 광경을 보니 가만히 있기 쉽지가 않았다.
태현은 계속 망치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설마 강화 실패했다고 책임을 물으려는 건 아니겠지.”
“우… 우리를 뭘로 보시고요? 절대 그런 짓은 안 합니다.”
길드원들은 정색했다.
그런 짓은 양아치들이나 하는 거지 절대 그들이 할 만한 짓이 아니었다.
“말했듯이 시선을 여기에 두든 저기에 두든 작업에는 별 차이가 없다.”
[강화가 성공합니다!]
[<멸망한 왕국의 한손검>이 강화됩니다!]
[재료가 소모됩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
말하는 사이 밝은 빛과 함께 강화가 성공했다. 그러나 길드원들은 태현에게 정신이 팔려서 보지 못했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집중하지 않으면 실수가 있을 수도 있는 게 사람이잖습니까.”
“난 이제까지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다.”
“…….”
“…….”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는 대장장이의 모습에 길드원들은 할 말을 잃었다.
이제까지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되나?
계속 망치를 두드리고 금속을 녹이는 등 온갖 과정이 필요한 게 대장장이 직업이었다.
어떤 대장장이 랭커라도 과정에 실수를 안 할 수는 없었다.
그 실수를 적게, 최대한 피해 없게 커버하는 게 실력이었지.
“아 예….”
“그, 그러시군요.”
-야. 저 대장장이 약간 이상한 놈 아니냐?
-아니 실력은 확실하잖아.
-아무리 실력이 확실해도 그렇지 저건 허언증 같은데.
-그래도 만든 아이템은 대단하긴 한데….
-실수 안 하는 게 그렇게 힘들어?
-불가능이지. 너 우리 길드 대장장이한테 저 소리 해봐라. 쌍욕먹어.
길드원들이 수군거리는 동안에도 태현은 묵묵히 작업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물었다.
“몇 번 강화하면 되지?”
“예?”
“몇 번 강화하면 되냐고.”
“일… 일곱 번?”
-미쳤냐?!
-장비 부숴먹으려고 작정했냐!?
-아무리 선물로 주려고 해도 그렇지 일곱 번은 너무하잖아!!
김현아가 무심코 던진 말에 길드원들은 깜짝 놀라서 말렸다.
일곱 번 강화라니.
지금 길드 창고 내에 일곱 번 강화에 성공한 아이템이 단 한 개밖에 없었다.
사실상 그냥 ‘부서질 때까지 강화해 보세요’에 가까운 말인 것이다.
아무리 대장장이의 호감을 사고 싶어도 그렇지 일곱 번까지 강화하면 된다니….
“다 했다.”
“예?”
“다 했다고.”
태현은 아이템을 내밀었다.
<일곱 번 강화된 멸망한 왕국의 한손검>
“…….”
“…….”
“…????!?!?!?!?!”
길드원들은 충격에 놀라서 기절할 뻔했다.
일곱 번이라는 횟수도 놀라웠지만 그걸 이렇게 갑자기 꺼냈다는 점이 더더욱 그랬다.
언제 한 거야?
“언제 하신 겁니까?!”
“바꿔치기 한 거 아니야?!”
“아까 우리가 드린 장비 맞아! 바꿔치기를 어떻게 해!”
“잘못 나온 거 아닌가? 이름이 바뀐 거 아닌가???”
그러나 몇 번을 확인해도 장비는 똑같았다.
정말로 일곱 번 강화된 것이다!
“이… 이건….”
“내가 써도 되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길드 재산이지!”
“그, 그렇긴 한데… 그렇긴 한데…!”
길드원들이 충격에 빠져서 떠드는 동안 태현은 바로 다음 장비 작업에 들어갔다.
“잠시만요! 잠시만요!”
“작업하는데 집중하라고 하지 않았나?”
태현의 질문에 길드원들은 화들짝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물론 태현은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대장장이는 옆에서 떠들든 화살이 날아오든 마법이 날아오든 언제나 집중할 수 있어야 했다.
물론 다른 대장장이들은 거기에 공감하지 않겠지만….
땅, 땅, 땅, 땅-
다시 시작된 수리와 강화 작업.
그제야 길드원들은 태현의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5초도 지나지 않은 사이에….
[수리가 완료되었습니다!]
[완벽하게 수리된 장비의 내구도가 일시적으로 증가합니다!]
[……]
[……]
“!”
‘수리가 끝났다?!’
아까는 떠드느라 못 봤는데, 지금 보여준 밝은 빛은 분명 수리 완료의 빛이었다.
남들은 몇십 분이 걸리는 작업을 그냥 몇 초 만에 이렇게 끝내버린다고?
다른 대장장이들이 봤다면 뒤집어졌을 일을 성공시켰음에도 태현은 멈추지 않았다.
바로 다음 작업에 들어갔다.
-지금 강화하고 있는 거야!?
-강화하고 있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아까는 몰랐지만, 지금 두드릴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밝은 빛들은….
강화 성공할 때마다 나오는 빛이 분명했다.
너무 빨리, 너무 쉬지 않고 작업해서 눈치를 못 챈 것이다.
보통 대장장이라면 강화 한 번 성공할 때마다 ‘우오아아어오옷! 성공했습니다!!!!’ ‘제가 이 정도입니다! 생색내는 건 아니고…!’ 같은 호들갑을 떨고, 또 시도할 때마다 ‘후. 들어갑니다. 일단 기도 좀 하고… 아, 좀 기다려보세요! 그냥 한다고 이게 무작정 되는 줄 아십니까! 다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을 받아야!’ 같은 호들갑을 떨 텐데….
이 대장장이는 무슨 귀찮은 숙제를 해치우듯이 꺼내서 두드리고 강화하고 끝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실패하는 게 없었다.
“다 됐다. 가져가도록.”
“…….”
“…….”
-우리가 잘못봤다.
-진짜 데리고 가야 해…!
-어떻게든 데리고 가자!!!
아까 ‘대장장이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같은 반응을 보였던 길드원들의 표정은 180도로 바뀌었다.
무조건 스카웃하고 말겠다!
* * *
“정말 감사합니다. 대장장이님.”
길드원들은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갖고 온 장비들이 전부 다 일곱 번 강화에 성공한 것이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결과물이었다.
판온에 알려진다면 대장장이들이 모두 몰려와서 비법을 알려달라고 이마를 땅에 박을 수준!
“스킬 올리려고 한 거니 고마워 할 필요 없다.”
태현은 무심하게 말했다.
희귀한 아이템과 희귀한 재료.
남의 걸 빌려서 스킬에 사용한 만큼 이득이었다.
그러나 이미 콩깍지가 제대로 낀 길드원들은 그 모습에 감탄했다.
‘저게 장인이지!’
‘무뚝뚝한 모습이 더 믿음직스럽지 않나?’
갖고 온 장비를 모두 최대치에 가깝게 강화를 해준 대장장이였다.
어떤 거짓말을 해도 다 믿음직스럽게 보일 지경이었다.
“그래도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이렇게 일곱 번 강화를 숨쉬듯이 성공시키다니… 다른 대장장이들은 따라오지도 못할 겁니다.”
“다른 대장장이들은 일곱 번 강화를 못 하나?”
“예?”
“몰랐군.”
“…!!”
길드원들은 경악했다.
자기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다니….
“대, 대체 비결이 뭔가요? 직업? 희귀 스킬?”
“야. 넌 왜 그런 걸 묻고 그래.”
질문에 같은 길드원이 타박했다. 무례한 질문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장장이는 순순히 대답했다.
“스킬.”
“역시…! 희귀 스킬인가요!”
“아니. 대장장이 기술 스킬 레벨.”
“…….”
“…??”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대장장이의 모습에 길드원들은 당황했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걸로 강화 일곱 번을 숨쉬듯이 성공시킬 수 있다면 다른 대장장이들은 왜 못하는 거지?
“다른 대장장이들도 대장장이 기술 스킬 레벨 높지 않나요?”
“그런데 실패하면 안 높은 거겠지.”
“…….”
오만한 말이었지만 길드원들 중 어느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눈앞의 대장장이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었다.
“그… 여기. 이 장비, 선물로 받아주십시오.”
길드원들은 서로 상의를 끝낸 다음 아이템을 내밀었다.
오늘 태현이 강화를 끝낸 <일곱 번 강화된 멸망한 왕국의 한손검>이었다.
정말 눈물나도록 아까웠지만 이 대장장이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라면 충분히 투자할 수 있었다.
“선물인가?”
“예. 받아주십시오! 오늘 해주신 것에 비하면 소소한 선물이지만….”
정말로 소소한 선물이었던 게 분명했다.
왜냐하면 미친 대장장이는 그 선물을 받자마자 자기 재료를 꺼내더니 다음 강화를 때려버린 것이다.
[강화를 개시합니다.]
[난이도가…]
[……]
그 거침없는 모습에 길드원들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