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외전 19화
원래 대형 길드에 소속된 길드원들은 자기가 하던 짓을 그대로 돌려받으면 당황하는 습관이 있었다.
올칸도 마찬가지였다.
“감히?!!”
“잠. 잠깐. 올칸. 진정해.”
“지금 진정하라고? 팔달란 길드를 우습게 보는 거잖아 저건!”
“이건 너답지 않아. 냉정하게 생각하라고.”
평소에는 냉정하게 판단을 내리던 올칸이, 오늘 이상하게 흥분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자 길드원들은 걱정스러워했다.
물론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기껏 고용한 도동수 놈은 먹튀하고 사라졌고, 웬 미친 대장장이 놈이 깔아놓은 함정 때문에 개고생을 했으니 사람이 저렇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세연의 길드원들과 부딪치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난 냉정하다. 지금 꼬리를 내리면 저놈들이 우릴 어떻게 보겠냐? 그리고 앞으로 사람들은 우릴 어떻게 보고? 게다가 전력만 봐도 우리가 위다. 이런 상황에서 이세연 이름만 보고 뒤로 빼라고?”
올칸이 이렇게 자신감 있게 나올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지금 팔달란 길드는 미친 대장장이 놈을 확실히 잡기 위해서 전력을 대동원했던 것이다.
그에 비해 이세연의 길드원들은 소규모 파티.
부딪치기 시작하면 누가 유리할지는 불 보듯 뻔했다.
“알겠다. 올칸. 네 말이 옳아.”
“이세연이라 하더라도 우리 길드를 함부로 공격하지는 못할 테니까.”
길드원들이 당하면 이세연이 유쾌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팔달란 길드 같은 곳을 함부로 공격하지는 못할 터.
랭커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소리는 우리가 할 소리다. 지금 이세연이 너희를 지켜줄 수 있을 것 같나?”
“됐고. 꺼지든가 덤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공격 시작해!”
올칸의 명령이 떨어지자 팔달란 길드원들은 사방으로 산개했다.
숫자도 많은 만큼 상대 파티를 포위해서 그대로 눌러 버릴 생각이었다.
김현아는 그 모습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지금 숫자 많다고 저러는 거지?”
“아주 웃기는 놈들이야.”
아자르와 게파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세연의 길드원인 그들은 이런 숫자 차이가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개시해.”
[스크롤을 사용합니다!]
[<지옥 언데드 군세>가 소환됩니다!]
[……]
[……]
[스크롤을 사용합니다!]
[<광철 드워프의 골렘 군단>이 소환됩니다!]
[……]
[……]
허공에서 군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데스나이트들을 필두로 한 무시무시한 숫자의 언데드 부대.
곳곳에 배치된 악마들은 사악한 웃음을 터뜨렸다.
-흑마법사들이여, 우리를 불러준 보답으로 적들을 찢어발겨 주겠노라!
-저기 필멸자들이 있다! 찢고 부수고 피를 마시자!
그뿐만이 아니었다.
거대한 덩치를 가진 골렘들이 바윗덩이를 들어 올리며 공격을 시작했다.
쉭!
[바위가…]
꽝!
“이… 이런…!”
팔달란 길드원들은 대경실색했다.
소규모 파티라서 얕보고 있었는데 이런 무기를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이세연도 없을 텐데 이 정도 소환이 가능하다고!?’
물론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소환이 꼭 마법사가 있어야 가능한 것도 아니고, 스크롤이나 아이템으로도 가능했으니까.
하지만 놀라운 건 이런 사소한 싸움에서 스크롤들을 아낌없이 쓸 수 있는 재력이었다.
정말 희귀한 스크롤들은 어지간히 중요한 상황이 아니면 쓸 수 없을 텐데 저렇게 낭비하다니.
대체 얼마나 스크롤들이 많으면?
“올칸!”
“물러서지 마라! 차분하게 처리해!”
“올칸, 후퇴해야 해!”
“닥쳐! 저건 허세일 가능성이 높아! 이세연도 없는데 소환한 언데드 질이 어떻겠나! 답이 나오잖아!”
“아니야! 올칸! 보라고!”
[청색의 데스나이트들이 돌진을 시작합니다!]
[<청의 오오라>가 데스나이트들을 감쌉니다!]
[데스나이트들이 뿜어내는 죽음의 기운이 주변을…]
[스켈레톤 메이지들이 마법을 시전합니다!]
[데스나이트들이 강화됩니다!]
[악마들이 마법을 시전합니다!]
[……]
[……]
쾅!!!
머뭇거리는 사이 데스나이트들이 돌진을 시전했다.
팔달란 길드원들의 전열에 데스나이트들의 돌격이 꽂히자, 길드원들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만큼 데스나이트의 강함이 상당했던 것이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데스나이트의 검이 당신의 HP를…]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
[……]
“모두 피해!!”
“조심해!”
데스나이트들이 푸른 죽음의 검을 휘두를 때마다 길드원들이 터져나갔다.
그 뒤를 따라 언데드 군세들이 파도처럼 몰려들었다.
악마들과 골렘들이 뒤에서 집채만 한 바위를 던지며 날뛰자 길드의 전열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탱커-딜러-힐러로 구성되어서 톱니바퀴처럼 굴러가야 하는데 이렇게 붕괴되면 랭커들이라고 해도 버틸 수가 없었다.
“올칸, 후퇴해야….”
“…두고 보자…!”
올칸과 랭커들도 결국 포기하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대장장이 찾으러 왔다가 엄한 놈들한테 두들겨 맞고 쫓겨나다니.
어마어마한 굴욕이었다.
‘두고 보자! 두고 보자! 대장장이 놈도…!’
‘그런데 저놈들은 여기 왜 온 거야?’
* * *
“꺼졌지?”
“꺼졌네.”
“그래. 가자.”
“그런데 정말 이렇게까지 할 만한 가치가 있어?”
아자르는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물론 팔달란 길드와 싸우는 게 겁나는 건 아니었다.
팔달란 길드는 그냥 흔한 대형 길드 중 하나였다.
길드원들 숫자를 늘리고, 지역을 점령하고, 무작정 사냥만 하면 자기들이 강한 줄 아는 멍청이들.
그에 비해 이세연 밑에 모인 길드원들은 퀘스트를 더 중요시했다.
저런 짓으로 무식하게 레벨을 올리지 않아도 훨씬 더 강해질 수가 있는 것이다.
스킬, 스탯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강해진 강자들만 모인 길드인 만큼 팔달란 길드와의 충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금은 준비 과정이라 길드의 진짜 강함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강함이 알려지는 순간 판온은 뒤집어지리라.
…그런데 지금 김현아는 그런 강자만이 모이는 길드에 웬 대장장이 놈을 스카웃하려고 하고 있었다.
다른 길드원들 입장에서는 조금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뛰어난 대장장이가 있으면 좋긴 한데… 우리는 이미 전속 대장장이 몇 명 알고 있다고.”
“굳이 새 대장장이가 필요하진 않잖아.”
“이 대장장이는 달라.”
김현아는 단호하게 말했다.
“싸움 방식? 물론 잘 싸우는 건 알고 있지만 잘 싸우는 놈들은 길드에도 이미 많은데.”
“그리고 대장장이가 잘 싸워서 뭐 해…?”
김현아는 답답하다는 듯이 길드원들의 말에 대답했다.
“그 잘 싸우는 이유를 생각해 봐! 입고 있는 장비를!”
“아. 그 소문을 말하는 건가?”
그제야 길드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미친 대장장이가 한창 판온을 시끄럽게 만들었을 때 나온 이야기들이 몇 개 있었다.
└대장장이한테 길드가 전멸했다고??
└혹시 그냥 접속해서 가만히 서 있었나요?
└그냥 그 길드들이 거품이었던 거 아닌가?
└아니야. 대장장이 장비가 대단했다고 하더라.
└장비가? 장비야 다 좋지 뭐….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니까.
대형 길드 길드원들도 당연히 장비가 좋았다.
그러나 그 미친 대장장이의 장비는 그런 수준을 뛰어넘은, 판온에서 동급을 찾을 수 없는 수준의 장비라는 것이다.
소문에 따르면 열 번 이상 강화된 장비들을 차고 있다고….
└열 번 이상 강화된 장비들을 차고 있다고???
└개소리가 좀 심한 것 같은데.
└제가 대장장이인데 그건 불가능합니다.
└헛소리 좀 하지 마. 그런다고 너네가 진 게 덜 쪽팔린 게 되냐?
└뭐야. 진 놈들이 변명한 거였어?
“헛소문 아닌가?”
“열 번 이상 강화는 힘들지.”
판온에서 강화는 한 번 추가될 때마다 어마어마하게 난이도가 뛰었다.
재료의 양이 늘어나는 건 물론이고 실패 확률, 실패 시 페널티 등등.
그런 걸 감안했을 때 열 번 이상 강화는 아직까지 대장장이들 중에 본 적이 드물었다.
“물론 과장이 됐을 수도 있겠지만 그 전투력을 봤을 때, 대장장이 중 가장 앞선 강화 스킬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확실히….”
“걸어볼 만하겠군.”
“언니한테 꼭 데리고 가서 선물로 바칠 거야.”
“그런데 그 대장장이, 제안에 응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랬지.”
김현아는 알고 있었다.
미친 대장장이한테 여러 길드들이 제안을 보냈다가 전부 다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를!
“원래 솔로로 뛰는 랭커들이 다 성격이 괴팍하잖아. 하지만 난 설득할 자신이 있어.”
김현아는 앞으로 걸어갔다.
설득에 있어서 특별한 비책이나 협박 같은 건 필요 없었다.
정공법!
김현아는 정성으로 설득할 생각이었다.
“대장장이 안에 있습니까! 잠깐 이야기하러 왔습니다!”
동굴 앞에서 그렇게 소리치자, 잠시 후 태현이 나왔다.
“다른 놈들은 너희들이 쓰러뜨렸나?”
“…!”
아자르는 놀랐다.
대장장이는 길드 안에 있었던데다가 저 길드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니라서 정보를 전해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 번에 정확하게 알아맞힌다고?
‘뭐지?’
“어떻게 안 거지?”
“싸우려고 대기한 놈들이 사라졌으면 그것밖에 없겠지. 이유.”
태현은 고개를 까딱거리며 말했다.
이세연의 길드원들은 잠깐 지나서야 ‘이유’가 온 이유 말하란 소리란 걸 알아들었다.
‘저런 건방진….’
‘참아. 넌 더 했어.’
약간 열이 받긴 했지만, 길드원들은 이해했다.
원래 혼자 뛰는 랭커들은 다 싸가지가 없었던 것이다.
김현아는 매우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인사하며 선물을 내밀었다.
“여기 매우 뛰어난 대장장이분이 계신다고 들어서 찾아왔습니다. 혹시 제작 의뢰를 받으십니까?”
“가능한 거면.”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놈처럼 길드원들 머리통을 부수고 다녔지만, 그렇다고 해서 태현이 전투 직업은 아니었다.
제작 직업은 기본적으로 남들의 제작 의뢰를 받아서 스킬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한창때는 광장에서 허름한 옷 하나 입고 온갖 수리와 강화를 해줬으니….
제작 의뢰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역시.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여기, 이 검들을 수리하고 강화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재료는 저희가 준비해 왔습니다.”
김현아는 대장장이가 뭘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멸망한 왕국의 한손검>, <심해의 날카로운 레이피어>, <하늘의 기운을 머금은 창> 등 여러 희귀한 무기들이 나오고, 강화에 필요한 재료들이 나왔다.
대장장이 입장에서는 눈이 돌아갈 정도의 기회였다.
저런 무기들을 수리하는 것만으로도 스킬 경험치가 쌓이고, 거기에 재료까지 상대가 제공해주다니.
이건 완전 날로 먹는 것 아닌가.
“시작하지.”
그러나 태현은 표정 변화 없이 아이템들을 받아서 챙겼다. 그 모습에 길드원들은 솔직히 놀랐다.
‘내가 아는 대장장이였다면 호들갑을 떨었을 텐데….’
‘이 자식. 되게 무표정하군.’
태현은 동굴 안으로 걸어갔다. 대장간은 안에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김현아와 길드원들은 그 뒤를 쫓았다. 설마 그러진 않겠지만, 대장장이가 받은 아이템들을 갖고 사라질 수도 있었으니까.
“…저, 저놈들은 저기서 뭐 하고 있냐?”
“도와주십시오! 도와주… 컥.”
태현은 붙잡힌 놈을 한 명 더 끝장냈다.
“나가고 싶으면 할당량 채워라.”
“크흑! 크흐흑!”
붙잡힌 팔달란 길드원들은 눈물을 흘리며 다시 제작에 들어갔다.
김현아와 길드원들은 슬슬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진짜 보통 놈이 아니긴 하구나!
땅, 땅, 땅, 땅, 땅!
태현은 바로 대장간에 앉더니 준비 동작도 없이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강화 재료를 부어버렸다.
[강화를 시작합니다!]
“!!”
“저… 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강화를 시작하는 대장장이의 모습에 길드원들은 굳어버렸다.
니 장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