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792화
“정말 써도 되나?”
“그래! 지금 스킬 가릴 때 같아 보여?!”
“하지만 아군이….”
“아군 좀 죽을 수 있지!”
“…….”
“…….”
같이 휘말려 들어온 랭커들은 이세연을 질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역시 누가 네크로맨서 아니랄까 봐….’
‘네크로맨서들은 다들 저런다니까.’
판온에서 네크로맨서 직업은 그 직업의 강력함과 별개로 인기가 조금 떨어지는 편이었다.
일단 마을이나 선 성향을 가진 NPC들은 네크로맨서를 보면 ‘으악 네크로맨서다! 무덤 지켜!’ 같은 반응을 보이고….
그리고 플레이어들도 네크로맨서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앗. 네크로맨서님. 파티에 참가하셨군요.
-네. 반가워요.
-우리 앞으로 같이 잘 해봐요. 이번 던전이 조금 어렵지만 네크로맨서님까지 오셨으니까 같이 할 수 있을 거예요.
-피해! 피해! 광역기 날아온… 망했다.
-네 명 로그아웃… 망했네요. 돌아가죠. 던전 실패한 듯.
-네? 왜죠?
-네 명 로그아웃… 당했으니까요?
-괜찮아요. 로그아웃 당한 김에 네 분 언데드로 일으켜서 전력에 추가하면 되겠네요.
-…….
-…….
기본적으로 네크로맨서는 적군이 죽어도 아군이 죽어도 시체를 활용 가능한 만큼 이득인 직업이었다.
머리로는 저게 맞는 플레이란 걸 알아도 자기 죽었는데 자기 시체 일으켜서 아군으로 쓰고 있는 걸 보면 ‘저 저 미치광이 마법사 놈 같으니’란 말이 절로 나오기 마련.
지금 굶주린 혼돈에게 끌려 온 랭커들은 이세연의 모습에 이제까지 만나온 또라이 네크로맨서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맞잖아! 내 말 틀려?!”
“아, 아뇨. 맞죠.”
“이세연 선수 말이 맞습니다!”
원정대 랭커들은 동의했다.
사실 지금 뭐라도 쓰긴 해야 했으니까.
“알겠다. 쓴다.”
“잠, 잠깐. 마음의 준비를…!”
태현의 말에 랭커들은 기겁했다.
나름 판온에서 손꼽히는 랭커들이었지만 태현의 스킬은 아직도 좀 무서웠다.
뭐가 나올지 몰라서 더 무서운 감이 있었다.
아군 제물, 아군 자폭 등등 판온에서 한 명이 하나만 갖고 있어도 흉악한 스킬을 혼자서 여러 개 갖고 있으니….
대체 뭘 쓰려고?
그러나 태현이 꺼낸 건 아주 평범한 폭탄이었다.
철컥!
“?”
‘으응?’
랭커들은 폭탄을 굶주린 혼돈에게 던지는 태현을 보고 당황스러워했다.
물론 태현의 폭탄이 판온에서 손꼽히는 위력을 갖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준비에 따라 가공할 위력을 내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오늘 본 굶주린 혼돈의 가공할 힘과 비교한다면 태현이 지금 던지는 폭탄 하나는 좀 초라하게 느껴졌다.
‘저걸로 되….’
[아키서스의 신성폭탄이 폭발합니다!]
[전설 기계공학 스킬로 인해 추가 효과가…]
[……]
[……]
꽈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굶주린 혼돈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무시하고 들어오기에는 너무 강렬한 충격이었던 것이다.
꽝, 꽝, 꽝, 꽝-!
<전설적인 폭탄 소환>
전설의 경지에 도달한 기계공학자는 의념만으로도 폭탄을 불러옵니다
[<전설적인 폭탄 소환> 스킬을 시전합니다!]
만약, 정상적인 제작에 투자한 기계공학 대장장이가 전설 스킬을 찍었다면 조금 달랐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기계공학 스킬은 태현의 핵심이 바로 폭탄이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래서 전설 스킬을 찍은 태현에게 폭탄 관련 스킬을 보상으로 내주었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굶주린 혼돈이 비틀거립니다!]
[폭발이 중첩되어서 커집니다!]
[굶주린 혼돈이 장막의 힘으로 폭발을 막아냅니다!]
몇 대 얻어맞은 굶주린 혼돈은 폭발을 방어하기 위해 분리된 차원에서 힘을 끌어왔다.
굶주린 혼돈이 삼켰던 영혼들이 앞에 나타나 태현의 폭탄을 막으려고 했다.
“<기계장치의 주인>!”
<기계장치의 주인>
부서진 기계공학 관련 아이템들을 조종해서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전설 기계공학에 도달하고 나서 받은 새로운 보상.
네크로맨서가 시체를 부활시켜서 데리고 다니듯이, 기계공학자에게 기계공학 관련 아이템을 다시 부활시킬 수 있는 강력한 스킬!
촤르르르륵-
태현의 스킬 시전과 함께 아까 부서진 고대 제국의 토끼 동상이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분리된 차원을 따라 들어온 토끼 동상의 잔해가 다시 전투 태세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키서스의 신성폭탄>이 다시 모양을 갖춥니다!]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아키서스의…]
[……]
“…!”
태현은 터져나간 폭탄들이 다시 모양을 갖춰서 일어나는 건 예상하지 못했다.
[카르바노그도 놀랍니다!]
“가라! 터뜨려!”
태현은 놀랄 시간도 없었다. 전설 기계공학 스킬로 일어난 아이템들이 굶주린 혼돈을 쓰러뜨리기 위해 달려들었다.
굶주린 혼돈이 불러낸 적들을, 고대 제국의 토끼 동상이 앞발로 후려 날렸다.
[전설 기계공학 스킬로 인해 고대 제국의 토끼 동상이 더욱더 강력해집니다!]
토끼 동상 위에 올라탄 태현은 전설 기계공학 스킬로 더욱더 강력하게 버프를 불어넣어 주었다.
사납게 덤벼오는 굶주린 혼돈을 상대로 부서지든 말든 맞받아치는 토끼 동상은 장엄하기까지 했다.
‘아…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홀린 듯 보고 있던 랭커들도 다시 무기를 뽑았다.
하도 싸움이 흥미진진해서 자신들도 모르게 정신을 놓고 보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공격해!”
“무조건 뚫고 밖으로 돌아가야 한다! 뚫릴 때까지 아끼지 말고 스킬 쏟아부어!”
이세연이 이끄는 언데드 군단들이 공간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본 드래곤은 물론이고 어비스 나이트, 둠 나이트들이 사방에서 뛰쳐나와 굶주린 혼돈에게 창을 찔러넣었다.
물론 아무리 강력한 언데드 몬스터들이라 하더라도 굶주린 혼돈 상대로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한 번 공격을 넣고 쓰러지더라도 그걸 각오하고 퍼붓는 총공격!
[폭발이 더욱더 거세집니다!]
[폭탄을 연속적으로 사용해서…]
[언령 스킬로 인해 폭탄의 위력이 더욱더 강해집니다!]
[전설 검술 스킬이 폭발의 힘을 또 한 번 더 강하게 만듭니다!]
[폭발의 위력이 미칠 듯이 강해집니다!!]
“…어어어??”
“어????”
오죽 폭발의 위력이 살벌해졌으면 공격에 집중하던 랭커들도 정신이 번쩍 들 정도였다.
처음에 던진 폭탄만 해도 위력이 살벌했기에 거기서 더 증가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건 오산이었다.
토끼 동상 위에서 폭탄들을 조종하며 싸우던 태현의 공격은 더욱더 강해지고 살벌해지고 있었다.
폭탄이 폭발하고 아직 그 폭발이 다 가시지 않을 때 추가로 폭탄을 던져놓고, 전설에 도달한 화술 스킬을 사용해서 언령으로 증폭까지 시도했다.
전설 기계공학, 전설 화술 스킬을 갖고 있기에 가능한 콤보였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전설 검술 스킬까지 활용해서 폭발을 한층 더 강하게 이끌었다. 폭발 검술을 익힌 데다가 전설 검술 스킬 경지까지 도달했으니 수월한 일이었다.
전설 기계공학+전설 화술+전설 검술의 연계기.
이 세 스킬들이 차츰 연계되고 끝나기도 전에 스택을 쌓아나가자 그 폭발이 더욱더 거세지고, 이제는 한 번 폭발할 때마다 주변의 언데드들까지 날아갈 정도였다.
“…이세연! 잠시 뒤로 피해!”
“그냥 공격하라니까!”
이세연은 외쳤다.
언데드 군단은 물론이고 이세연 본인마저 로그아웃을 각오하고 있는 싸움이었다.
지금 다른 원정대 랭커들이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데 혼자 뒤로 피하라니.
이세연은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우와아아아아악!”
“…….”
원정대 랭커 한 명이 가까이서 싸우다가 넓어진 폭발 범위에 휘말려서 날아가 버렸다.
온갖 버프를 받고 있어서 굶주린 혼돈의 공격을 받아도 한 번은 버틸 수 있는 랭커였는데 그냥 로그아웃을 당하다니.
이세연은 경악했다.
“이세연! 뒤로 피하라니까!”
“알겠어!”
이세연은 물론이고 랭커들까지 뒤로 빠졌다.
[폭발이 당신을 휩씁니다!]
[전설 기계공학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폭발에 면역됩니다!]
-더욱더! 더욱더 거세게 공격해라, 후배여!
-너는 제국 기계공학자의 자랑이다!
마검 안에 깃든 기계공학자들이 태현의 공격을 응원했다.
전설 기계공학 스킬의 경지에 도달하다니.
아무리 후배라고 하더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업적이었다.
[폭발이 더욱더 거세집니다.]
[차원이 쪼개집니다!]
* * *
“다 부쉈지? 가자! 돌아가자고!”
“야. 케인.”
“??”
“지금 돌아가면 위험한 거 아니냐?”
사원을 다 부수고 빠르게 돌아가려는 케인의 모습에,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물었다.
지금 굶주린 혼돈 레이드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서로가 서로를 위협하며 숨겨진 한 수를 꺼내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솔직히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이 보기에 굶주린 혼돈 레이드가 성공할 수 있는가는 회의적이었다.
현장에서 참가하고 있는 랭커들은 근거 없는 믿음으로 타오르고 있었지만 밖에서 보면 또 그 정도까진 아닌 것이다.
“멍청하긴. 케인 놈은 지금 돌아가면 무조건 주목받으니까 저러는 거지.”
“아하. 인기 때문이었군.”
“아니거든 이 자식들아?!”
케인은 울컥해서 반박했다.
케인은 정말로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돌아가면 케인이 자폭을 하거나 제물로 바쳐지거나 온갖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케인은 정말로 돌아가서 참가하고 싶었다.
팀 KL의 다른 선수들이 위험한 상황이라면 케인도 거기 같이 참가해야 한다!
“알겠냐? 이 우정을??”
“거짓말 같은데.”
“스포트라이트 좀 받아보려는 거 아니야?”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수군거렸다. 스미스가 대신 케인을 옹호해 줬다.
“저는 케인 선수가 진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케인 선수는 이런 걸 거짓말 할 사람이 아닙니다.”
“스미스. 넌 사람 보는 눈이 별로 없다고.”
“맞아. 케인은 애초에 약탈자 플레이어 출신이었는데.”
“아, 그게 언제 때 일인데!”
케인은 탈것 위에서 벌컥 화를 냈다.
전속력으로 날아온 덕분에 저 멀리 협곡에서 굶주린 혼돈이 펼친 장막이 보였다.
그리고 번쩍하는 폭발과 함께 장막이 찢어졌다.
[폭발로 인해 충격파가 터져 나옵니다!]
[뒤흔들립니다!]
[굶주린 혼돈이…]
[충격으로 인해 탈것이 추락합니다!]
[균형을 잃습니다!]
[……]
“으… 으아아아아악!”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도 단체로 추락할 뻔할 만큼 강렬한 충격파였다.
그 폭발 속에서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굶주린 혼돈을 본 뉴욕 라이온즈 선수들은 케인을 보며 말했다.
“너… 배짱 하나는 인정해 준다. 1초 만에 박살 낼 텐데 들어간다니….”
“…우리 조금만 더 있다가 들어갈래?”
“…….”
* * *
“살아나오셨다! 살아나오셨다고!”
차원을 뚫고 다시 돌아왔다.
[굶주린 혼돈의 HP가 20% 밑으로 떨어집니다.]
굶주린 혼돈의 체력도 이제 채 1/5가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현의 직감은 비명을 질렀다.
[굶주린 혼돈이 폭주합니다!]
“흩어져라!!!!!”
태현은 이제까지 터뜨렸던 명령 중 가장 다급하고 커다란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이제까지는 협곡 앞에서 각종 카드를 꺼내서 굶주린 혼돈의 발목을 묶었지만, 이제는 그런 카드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폭주한 굶주린 혼돈은 온몸의 형체를 뒤바꿔가며 플레이어들의 진형으로 뛰어든 것이다.
이제는 굶주린 혼돈이 먼저 쓰러지느냐, 플레이어들이 먼저 전멸하느냐의 싸움이었다.
“김태현 선수를 보호해!!!”
파티들은 흩어지는 대신 시간을 끌기 위해 각오하고 나섰다.
태현은 원정대 파티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사람이 적은 곳으로!’
“…야!”
쑤닝은 자신 쪽으로 오는 태현을 보고 경악했다.
지금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설마 쑤닝을 알아보고 탱커로 쓰려고??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저놈은 그게 가능한 놈이었다.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