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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736화 (1,735/1,826)

§ 나는 될놈이다 1736화

황당했지만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일단 입을 다물었다.

태현이 나중에 죽이려고 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

‘나중에 죽이려나 보다.’

생각해 보니 태현이 꼭 적을 즉시 죽이는 사람은 아니었다.

가끔은 시간차를 두고 죽일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황금고릴라가 당신들을 발견합니다!]

“!!!”

“큰일 났다! 달려!”

빈체로는 기겁해서 외쳤다.

생각보다 해안가 캠프 정리가 빨리 끝나는 바람에 황금고릴라 놈들이 그들을 발견한 것이다.

“연막 쳐! 놈들이 못 쫓아오게!”

-후각 저하의 연막!

-흐림의 거울!

-혼동의 착란!

[<후각 저하의 연막>이…]

[<흐림의 거울>이…]

[……]

[……]

-크아아아아아아!

시야가 흐려지자 분노한 황금고릴라들은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가끔은 사기적인 스킬이나 복잡한 콤보 같은 게 별 의미가 없을 때가 있었다.

지금처럼 깡스탯으로만 밀어붙이는 몬스터를 만났을 때!

콰드드드득!

“…….”

“…….”

정글에 자리 잡은 거목들이 무슨 수수깡처럼 부러지는 모습에 튀고 있던 빈체로의 파티원들은 기겁했다.

해안가에 있을 때 캠프 재료가 필요해서 저 굵은 나무들을 직접 캐오려고 했던 파티원들이었다.

내구도가 너무 높아서 포기하고 다른 걸로 캠프를 만들었었는데….

저걸 그냥 저렇게 부순다고??

-크아! 크아! 크아아아!

“안, 안 되겠습니다! 흩어집시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라! 흩어지면 더 위험해!”

빈체로는 파티원들을 닦달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흩어졌다가는 다시 모이기도 힘들었다.

여긴 일반적인 필드나 던전이 아닌, 제대로 된 지도도 없는 원시의 섬 아닌가.

몇 명 로그아웃되는 한이 있더라도 뭉쳐서 행동해야했다.

한 번 흩어지는 순간 퀘스트는 끝….

“비켜! 비키라고!”

“꺼지지 못해!!”

“…….”

도망치는 놈들의 뒷모습에 빈체로는 할 말을 잃었다.

나름 신원 확실하고 쓸 만한 랭커들만 골라서 파티를 구성했는데 이렇게 도망칠 줄이야.

빈체로는 몰랐지만, 이미 대부분의 파티원들이 원시의 섬에 들어오면서 단단히 기가 죽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황금고릴라의 습격은 파티원들을 완전히 정신 나가게 만들었다.

콰콰콰콰콰쾅!

[나무가 부러지고 파편이 튀기 시작합니다!]

[바위가 날아옵니다!]

[흙이…]

[……]

[……]

숲에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사방이 뒤집히고 무너졌다.

분노한 황금고릴라들은 폭력의 화신이었다. 사방을 박살 내며 보이지도 않는 플레이어들을 쫓았다.

“잘, 잘못 쫓아온 거 아닙니까?”

“슬슬 죽일까요?”

태현 때문에 강제로 끌려온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눈치를 보며 물었다.

태현이 빈체로의 등을 찌르려고 파티에 참가한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맞긴 하지.’

태현이 굳이 빈체로 파티에 참가한 이유는 당연히 굶주린 혼돈 원정대를 방해하기 위해서였다.

원시의 섬 퀘스트가 어떻게 굴러가나 좀 보고, 혹시라도 잘 될 거 같으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방해하겠다!

당연히 지금 죽일 생각은 없었다.

“아니. 안 죽인다니까.”

“…….”

“…….”

태현의 말에도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전혀 안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저렇게 시간을 끄는 걸까’ 하며 두려워했다.

‘분명 빈체로를 최대한 고통 주면서 즐기려고…!’

“빈체로!”

“기, 기다려라! 지금 도망친 놈들은 그렇게 오래 있던 파티원들이 아니다. 그리고 곧 돌아올지도 모르는….”

빈체로의 변명에 별 관심 없었던 태현은 무시하고 말했다.

“괜히 움직이다가 더 공격받을 수 있으니, 차라리 땅을 파고 아래로 들어가서 숨어 있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빈체로는 황당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황금고릴라 놈들이 쫓아오는데 땅을 파고 아래로 들어가서 숨어 있자니.

그러다가 놈들에게 발견되기라도 하면 어떡한단 말인가?

“보니까 분노로 이성을 잃은 것 같은데, 안 보이면 다른 곳으로 움직여서 찾을 거다. 이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진 않겠지.”

“안 돼! 절대로 안 돼! 여기서 멈췄다가 괜히 포위라도 당한다면….”

팍팍팍팍팍-

그러나 빈체로가 뭐라고 말하든 간에, 태현이 데리고 온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미친 듯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다들 레벨이 높은 만큼 각종 마법과 스킬로 순식간에 숨을 만한 구덩이를 만들었다.

“다 팠습니다!”

“들어가면 됩니까?!”

“그래.”

“아니 뭐 이런 미친….”

빈체로는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잇지 못했다.

해안가에서 제법 괜찮은 놈들을 골랐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좀 맛이 간 것 같았다.

게다가 무슨 죄를 지은 것처럼 계속 태현 눈치를 보는 게….

‘생각보다 성질 더러운 파티장인가본데.’

파티의 분위기는 파티장 따라가기 마련.

엄격하고 성질 더러운 파티장 밑의 파티원들은 숨도 쉬기 힘든 법이었다.

“빈, 빈체로. 우리도 일단 들어가자고.”

“맞아. 너무 위험해.”

“끙….”

빈체로는 불만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황금고릴라의 난동 때문에 남아 있던 다른 파티원들도 도망치는 것보다는 숨는 걸 원했던 것이다.

‘몬스터가 어떤 놈인지도 모르는데 다짜고짜 숨는 건 위험한데… 도망치는 게 차라리 안전한데….’

빈체로는 그렇게 생각하며 구덩이 밑으로 들어갔다.

만약에 들킨다면 다른 놈들을 버리고서라도 혼자 도망칠 생각이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쾅!

요란한 소리가 땅 위에서 미친듯이 울려퍼졌다. 파티원들은 공포로 벌벌 떨며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갔군.”

태현은 바로 일어나서 흙을 치워버렸다.

황금고릴라들은 찾는 걸 포기하고 가버렸는지 주변을 다 박살 내고 떠나버렸다. 태풍이라도 온 듯이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태현을 급히 따라나온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 속삭였다.

“그대로 묻어버릴까요?”

“뭘?”

“다른 사람들이요.”

“…….”

태현은 이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의 오해를 어떻게 풀어줘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 * *

[황금고릴라가 당신을 붙잡습니다!]

[포로 상태로 전환됩니다.]

[……]

[……]

해안가는 물론이고, 원시의 섬 곳곳에서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 하나둘씩 잡히기 시작했다.

단순 고렙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제법 이름이 있는 선수들도 붙잡혔다.

원시의 섬 몬스터는 그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던 것이다.

“굶, 굶주린 혼돈 믿으세요! 고릴라 님! 굶주린 혼돈에 관심 없으십니까!?”

[화술 스킬이 낮습니다.]

[설득에 실패합니다.]

[황금고릴라가 분노해서 당신을 흔듭니다!]

[HP가 크게…]

“으어어어어어!”

“살, 살려줘! 아무도 없어?! 살려줘! 도와줘! 같은 굶주린 혼돈 편이잖아!”

포로가 되어서 끌려가는 플레이어들은 애타게 외쳤다.

그 순간 그들이 아는 얼굴이 나타났다.

“펭… 펭귄팬더!! 펭귄팬더 선수!”

“펭귄팬더 선수잖아!!”

중국의 유명 선수이자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된 적도 있는 펭귄팬더!

유명 선수의 등장에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환호했다.

“야. 근데 펭귄팬더면 그래도 나름 유명한 선수인데 굶주린 혼돈에 가입해도 돼?”

“그러게?”

“조용히 하지 못해? 지금 그게 중요해? 도와주면 감사합니다 해야지!”

“그, 그렇지. 펭귄팬더 선수! 저희를 좀 도와주십시오!”

펭귄팬더 선수는 고개를 들었다. 차가운 표정으로 붙잡힌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을 노려보는 모습이 싸가지가 없긴 했지만, 플레이어들은 최대한 좋게 해석해 주려고 했다.

아, 역시 얼음 같은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 차가운 선수라….

“…나도 붙잡혔다.”

“…….”

“…….”

노려보는 게 아니라 창피해서 할 말이 없는 탓에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거였다.

붙잡힌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분노했다.

“야 이 머저리 같은 자식아!”

“니가 그러고도 선수냐!?”

“너희 중국 놈들이 그러니까 월드컵에서 예선탈락 하는 거야!!”

“너 이 새끼 선수가 굶주린 혼돈 가입은 왜 해!”

“…….”

“너, 너무한 거 아니냐?!”

펭귄팬더 선수의 파티원들이 변호하려고 했지만 붙잡힌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욕설을 퍼부었다.

쾅!!

[황금고릴라들이 시끄러움을 경고합니다!]

황금고릴라는 말로 하는 대신 몽둥이를 휘둘러 플레이어 한 명을 하늘로 날려 버렸다.

그 경고에 플레이어들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닥, 닥치겠습니다.”

“다들 조용히 하자!”

그렇게 붙잡힌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차곡차곡 매달려 끌려갔다.

[<황금고릴라의 사원>에 도착합니다!]

[황금고릴라들이 사원 축제를 엽니다!]

“!”

“오오…!”

플레이어들은 메시지창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위기는 곧 기회.

꼭 포로로 붙잡혔다고 해서 게임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포로로 붙잡힌 상태에서 시작하는 퀘스트도 있었다.

게다가 황금고릴라들이 축제를 열고 있다면 기분도 좋을 테니 설득하기 더 쉽지 않겠는가.

부글부글부글-

“?”

“뭘 끓이는 거지?”

“축제 음식 아닐까?”

우리 안에 들어간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사원 가운데에 위치한 거대한 솥을 보고 정체를 추측했다.

촤악!

그러는 사이 고릴라들은 항아리에 든 녹색 소스를 플레이어들에게 쏟아 부었다.

플레이어들은 그 냄새에 질색했다.

“뭐야 이거!?”

“뭘 뿌리는 거야?!”

[<황금고릴라의 미식 소스>를 먹었습니다!]

[당신이 조금 더 맛있어집니다!]

[……]

[……]

“?”

“???????!”

“미… 미친!! 미친!!!!”

뒤늦게 상황을 깨달은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혼비백산하기 시작했다.

뭘 끓이나 했더니 지금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을 끓여서 먹으려고 하고 있었다!

이런 미친 고릴라 놈들!

“이거 당장 풀지 못해!?”

“이 미친 고릴라 놈들아!!”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어떻게든 탈출하려고 발악했지만, 섬의 자재로 만든 우리는 절대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황금고릴라 요리사는 흐뭇한 표정으로 날뛰는 플레이어들을 쳐다보았다.

마치 싱싱하게 퍼덕이는 횟감을 보는 것 같았다.

-■. ■■.

-■■■■.

황금고릴라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눴다. 웬 황금고릴라 하나가 사원 안쪽을 가리키고, 우리 안쪽의 플레이어들을 가리켰다.

그러자 황금고릴라 요리사가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무슨 대화를 한 거지??”

[화술 스킬이 낮아서 알아들을 수 없…]

[……]

[……]

“우리를 풀어주려는 거 아닐까?”

“넌 지금 분위기 보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나도 알아, 이 자식아! 그냥 해본 소리야!”

“…산제물로 바치려는 거 같은데.”

눈치 빠른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가 입을 열었다.

사원의 조각상 쪽으로 끌고 가려는 걸 보니, 몇몇은 솥이 아니라 산제물로 바치려는 게 분명했다.

악신 교단 퀘스트에서 몇 번 본 적 있었던 것이다.

“…안 돼!! 안 돼!!!”

“이거 놓지 못해!”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창백해져서 도주하려고 했지만, 황금고릴라들의 힘 스탯은 상상을 초월했다.

황금고릴라들은 우리를 열고 몇몇 플레이어들을 꺼낸 뒤 앞으로 들고 갔다.

“이거 놔! 이거 놓….”

외치던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 한 명이 넋을 잃고 앞을 쳐다보았다. 옆에서 같이 발버둥치던 플레이어는 당황해서 고개를 돌렸다.

‘뭘 보고 저러는 거지?’

지금 더 놀랄 만한 게 있나?

“…….”

고개를 돌린 플레이어는 친구와 똑같이 넋을 잃고 앞을 쳐다보았다.

아키서스 교단의 조각상이 사원 한가운데에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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