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701화 (1,700/1,826)

§ 나는 될놈이다 1701화

사실 별 것이 맞았다.

만약 플레이어가 조금만 더 예민했거나, 혹은 조금만 더 신경을 썼다면 ‘비행 몬스터가 저렇게 계속 커질 수가 있나?’ 같은 점을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느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지금 떨어지고 있는 하늘섬이 자기 머리 위로 오고 있다는 것을!

[에랑스 왕국 기사들이 <푸른 피의 각오>를 시전합니다!]

[목련꽃 기사단이 <문장 가호>를 시전합니다!]

[모든 기사들의…]

[……]

[……]

[……]

달려 나가는 굶주린 혼돈의 세력을 받아치기 위해, 에랑스 왕국 기사들도 맞서 나왔다.

그 박력 넘치는 기세는 굶주린 혼돈 세력에 비해 전혀 밀리지 않았다.

각종 버프란 버프는 다 걸고서 주변을 찢어발기듯 거세게 돌격하는 기사들!

그 모습에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유리한 걸 알면서도 무심코 멈칫하게 될 정도였다.

-에랑스 왕국 기사단 돌격합니다! 왕국의 기사란 기사들은 다 모여 있는 것 같습니다!

-굶주린 혼돈이 이기느냐, 에랑스 왕국이 이기느냐! 이 전투의 승패에 따라 향후 판온의 운명이 달라집니다!

싸움에 참가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도 이 전투는 지켜보고 있었다.

오스턴 왕국의 운명이 평원에서의 대전투 한 번에 결정되었듯이, 에랑스 왕국의 운명도 지금 이 왕관 평원 전투에서 결정될 거라는 게 느껴졌던 것이다.

“최대한 지원해 줘!”

“이렇게 빼도 될까요?”

“안 빼면 너무 중앙이 불리해! 가능한 지원은 해줘야 해!”

이세연은 원정대 파티들 중 자원자들을 중앙으로 보냈다.

그런 만큼 좌측이나 우측이 약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객관적인 전력을 비교했을 때 중앙이 너무 불리했던 것이다.

굶주린 혼돈 쪽에서는 계속해서 NPC들이 추가되고 전력이 추가되고 있는데 에랑스 왕국군은 더 이상 기사들이 모이지 않았다.

김태현이라면 국왕을 설득해서 뒤로 물러나게 만들 수 있었을 테지만, 이세연은 태현처럼 화술 스킬이 좋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태현의 설득도 먹힐 가능성이 없었다.

당장 에랑스 국왕이 태현을 잡아오라 길길이 날뛰었던 적이 있었으니….

‘최대한 버텨야 해.’

승리보다는 에랑스 왕국군을 도와서 얼마나 버티느냐.

상대한테 피해를 최대한 입혀서 무승부로 만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었고, 지더라도 잘 후퇴한다면 충분히 이득이었다.

“굶주린 혼돈의 기사들이 온다!”

두두두두두-

텅 열려 있는 평원을 질주하는 기사들.

안 그래도 탁 트여 있는 개활지에서 그 위력이 몇 배는 더 강해지는 기사인데, 굶주린 혼돈의 버프까지 받으며 달려오자 그 기세가 끔찍할 정도였다.

이쪽에 왕국 기사단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도 겁이 날 정도로.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겁 없는 사람들은 있었다.

“파워 워리어 앞으로! 기사들의 발목을 잡아라!”

파워 워리어의 전투단들은 레벨로 압도하지 않았다.

각종 특이하고 성가신 스킬과 장비로 상대방을 매우 성가시고 귀찮게 만들었다.

이미 몇몇 길드 동맹 랭커들 사이에서는 악명이 자자한 단검단이나 저격단이 바로 그랬다.

더 짜증 나는 건 파워 워리어에 랭커들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었다.

하도 규모가 커진 덕분에 이제 랭커들 숫자도 제법 됐고, 이 랭커들이 단검단이나 저격단을 보호하며 같이 싸웠다.

“대장장이들이 간다!”

“대장장이들 나왔다! 다들 길 비켜라!”

그리고 이 파워 워리어의 전투단들의 싸움에 정점을 찍어주는 것이 바로 골짜기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호쾌한 소리와 함께 평원 곳곳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평범한 폭탄으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거대한 폭발이었다.

[폭발로 인해 기사들의 이동 속도가 내려갑…]

[돌격력에 페널티…]

[……]

[……]

“미, 미친놈들! 뭘 터뜨린 거야!?”

“정신 나갔나?!”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경악했다.

김태현만 이러는 줄 알았더니, 기계공학 대장장이 놈들도 독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이 정도 되는 폭탄을 대체 어떻게?

“이 자식들 폭탄을 땅에 몰래 묻어뒀습니다!”

“!!”

“그것도 모자라서 길드원들한테 폭탄을 짊어지게 하고 있어요! 미친 놈들!”

이제 골짜기 기계공학 대장장이들도 다들 스킬이 올라서 불발탄이나 오발탄을 만드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의 폭발을 향한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더 강한 폭탄.

더 강한 폭발을 위해서.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각종 수단을 동원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폭탄을 세게 만들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물었지만,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그런 질문을 들으면 발끈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이래서 초짜들이란! 강해지고 싶다는 사람한테 레벨업하란 소리하고 똑같지! 시험 잘보고 싶다는 사람한테 국영수 중심으로 공부하란 소리하고 똑같단 말이야!

당연히 폭탄은 더 세게 만들겠지만….

지금 수준으로도 더 강하게 폭발시키고 싶다!

그 답이 지금 나오고 있었다.

‘질로 안 되면 양이다!’

[폭탄이 연쇄적으로 폭발합니다!]

[추가적으로 효과가 부가됩니다!]

[……]

[……]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을 동원한 대폭발!

[굶주린 혼돈의 기사가 쓰러집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

[공적치 포인트가 크게 오릅니다!]

[명성이…]

[……]

[……]

전투 초반에 흔히 펼쳐지는 잽 같은 것이었지만 굶주린 혼돈의 기사들은 의외로 피해를 입었다.

쓰러진 기사들은 얼마 안 되더라도 발이 묶인 기사들이 제법 나온 것이다.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말과 괴수들을 달래느라 시간을 끄는 기사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굶주린 혼돈의 기사들을 향해 에랑스 왕국 기사단이 돌진했다.

-돌진!!

-폐하를 위해! 왕국을 위해!

버프로 빛나는 기사들은 중갑으로 각종 원거리 공격을 튕겨내고 그대로 들이박았다.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공격에 혼비백산해서 흩어졌다.

[치명타를 입었습니다!]

[강력한 돌격으로 인해 추가 데미지…]

[어마어마한 무게가…]

[왕국의 가호가…]

[……]

[……]

쾅!!!

한 번 스치기라도 하면 랭커도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강력한 공격!

과연 에랑스 왕국의 자랑거리인 기사들이었다.

모두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전투 초반은 오히려 에랑스 왕국군이 밀어붙이는 꼴이었다.

-굶주린 혼돈이 밀리고 있습니다! 에랑스 왕국의 기사들이 생각보다 강해요!!

-역시 기사는 기사구나!

-굶, 굶주린 혼돈 설마 이대로 지는 건 아니겠지?

-호들갑 떨지 마라. 지금 싸움 시작도 안 했음.

기사들한테 두들겨 맞은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이야 얼이 빠졌지만, 다른 곳에 있는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의외로 냉정했다.

싸움은 이제 곧 시작되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굶주린 혼돈의 괴수가…]

[굶주린 혼돈의 괴수가…]

[굶주린 혼돈의 괴수가…]

평원 곳곳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한 거대 괴수들.

에랑스 왕국의 기사들은 창을 던져 괴수를 쓰러뜨리려고 했지만, 요새처럼 거대한 덩치와 맷집을 가진 괴수들은 묵직한 파괴력으로 오히려 기사들을 밀어냈다.

-돌격해서 저 하찮은 놈들을 밀어내라!

그러는 사이 굶주린 혼돈의 기사들도 다시 돌격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발이 묶인 에랑스 왕국의 기사들이 밀릴 때였다.

“공격 개시!!”

“우리도 나가자!”

평원에 굶주린 혼돈의 플레이어들이 가득히 몰려들기 시작했다.

괴수와 기사들이 나간 만큼 지금이 기회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 아득한 규모에 원정대 플레이어들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 이 자식들…!”

“빠져나갈까요??”

“안 돼! 조금만 더 진형을 유지해! 우리가 빠져나가면 다른 파티들도 위험해!”

“이 새끼들 그냥 이럴 거면 원정대 가입이나 하지! 저럴 힘이 있으면 굶주린 혼돈하고도 싸우겠네!”

원정대 파티원들은 불평하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무기를 휘둘렀다.

달려들던 플레이어들이 서로 부딪히고 충돌하며 나뒹굴었다.

[굶주린 혼돈의 군단장, 대전사 니테렐로가 나타납니다!]

[굶주린 혼돈의 군단장, 기사단장 젝스칼이 나타납니다!]

[굶주린 혼돈의 군단장, 대마법사 포르볼리오가 나타납니다!]

“…!”

“스미스다!”

쟁쟁한 굶주린 혼돈의 네임드들. 거기에 스미스까지.

노리는 목표는 누가 봐도 분명했다.

에랑스 왕국의 기사단장들과 국왕!

“스미스! 스미스! 스미스!”

“스미스! 난 널 믿고 있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불만이 많던 굶주린 혼돈의 플레이어들이었지만 이번에는 하나가 되어 스미스의 이름을 외쳤다.

지금 상황만 보면 80%는 이미 승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스미스 선수가 평원 중앙에 군단장들과 함께 나타났습니다! 에랑스 왕국 기사단장들을 노리려는 걸까요?

-스미스 양아치 새끼야! 양심 있으면 꺼져라!

-스미스 네가 그러고도 프로냐! 너한테 사인 받은 종이 다 찢어서 버렸다!

-스미스! 저딴 놈들은 무시하고 빨리 끝내버려! 너한테 돈 걸었다고!

굶주린 혼돈에 가입한 플레이어들은 예전부터 불만이 많았다.

전력만 보면 충분히 압도적으로 끝낼 수 있는 전력인데, 왜 자꾸 못 끝내고 이리 처맞고 저리 처맞으면서 시간을 끈단 말인가?

오죽하면 ‘스미스가 김태현하고 짜고 치는 거 아님?’ 같은 음모론이 나올 정도였다.

물론 저런 말들은 실전에서 싸워본 적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였다.

실전에서 직접 원정대와 맞서 싸운 굶주린 혼돈 플레이어들은 상대가 얼마나 독하고 강한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이겼다!

“전진!! 끝장내버려!!”

뒤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외침.

스미스는 그 외침을 무시하고 앞의 적들에게만 집중했다.

여기에도 군단장들이 있다지만, 왕국 기사단장 정도 되는 상대는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되는 상대.

최선을 다해서 쓰러뜨려야 했다.

“…?”

“?”

“뭐지?”

그때 하늘이 어두워졌다.

* * *

“굶주린 혼돈 놈들, 정말 용서치 않을 겁니다!!”

“엉엉엉! 경주장이! 경주장이!”

하늘섬 플레이어들은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고 대피하고 있었다.

아직 날아다니는 다른 섬 위로 대피하거나, 탈 것을 구해서 도망치거나.

하지만 그 모든 도시와 성들이 부서지게 된다는 건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이었다.

“동의한다. 굶주린 혼돈 이 자식들. 정말 비겁하고 비열하군!”

태현의 말에 자리에 모인 하늘섬 플레이어들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이번 하늘섬 추락으로 인해 굶주린 혼돈에게 별 관심 없던 하늘섬 플레이어들도 생각이 바뀌었다.

이건 선을 넘어도 몇 번을 넘은 것이다.

‘감히 섬을 떨어뜨려??’

‘굶주린 혼돈 개자식이 진짜…!’

‘굶주린 혼돈 가입한 새끼 만나면 무조건 로그아웃시킨다.’

“왜 김태현 선수께서 굶주린 혼돈에 가입하지 않고 끝까지 맞서 싸우신 건지 알겠습니다!”

“다 같이 굶주린 혼돈과 싸우자!”

“와아아아아아!”

그렇게 하늘섬 플레이어들을 모아서 공짜로 인력을 추가하고 있던 태현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지상의 풍경이 좀 낯익다는 걸 깨닫고 당황했다.

“야.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냐?”

“에랑스 왕국…인데, 사람들이 좀 많은…?”

“…설마 왕관 평원에 떨어지진 않겠지?”

태현의 질문에 다들 불길함을 느꼈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속도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어서 빨라지기 시작했다.

“어, 어어어….”

“모두 날아올라서 대피해라!”

[추락이 가속화됩니다.]

[추락이 가속화됩니다.]

[멈출 수 없습니다!]

[마찰로 불타기 시작합니다!]

[주의하십시오!]

[<아키서스의 천재지변> 퀘스트에 새로운 내용이 추가됩니다! (아키서스의 하늘섬 추락: 1/1)]

[하늘섬이 충돌합니다!]

[대륙이 포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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