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632화
그리고 이런 불길함은 언제나 맞아떨어지는 법이었다.
[아키서스의 힘이 담긴 화염 회오리가 시전됩니다!]
“…….”
태현의 앞에서 거세게 솟구치는 화염의 회오리를 보며 스미스는 경악했다.
저 모습을 보자 새삼스럽게 태현의 과거 행적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판온에서 도시하고 성 부수고 다닌 것만 따지면 따라올 사람이 없는 미치광이!
최근에는 기계공학 대장장이들 때문에 이미지가 좀 세탁이 되긴 했지만….
길드 동맹 간부들이 ‘김태현 그 새끼가 부순 것만 없어도 우리가 옛날에 대륙 통일했다!’라고 말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김태현 선수 진짜!! 수많은 플레이어들의 피와 땀으로 만든 도시를 부수시려는 겁니까!??!”
태현은 못 들은 척했다.
애초에 이런 파괴는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남의 거면 부수고 본다!!
“구시렉! 날 도와라!”
-알겠다. 아키서스!
굶주린 혼돈의 군단을 몰아내던 구시렉은 태현이 무언가 강력한 권능을 사용하려고 한다는 걸 깨닫고 지원에 들어갔다.
[음악공, 구시렉이 광시곡을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마계를 불태운 아키서스의 광시곡>이 연주되기 시작합니다!]
[악마 공작들이 불쾌감을 표합니다!]
-이런 정신 나간 놈 같으니! 연주할 게 없어서 그딴 노래를 연주해!?
-저놈이 돌아버려도 정도가 있지!
악마 공작들은 물론이고 다른 악마들까지 싸우다 말고 야유를 표했다.
지금 싸우는데 재수 없게 무슨 저딴 노래를 고른단 말인가.
하지만 구시렉에게도 이유가 있었다.
-시끄럽다, 멍청한 놈들아! 음악의 음자도 모르는 놈들이!
[<마계를 불태운 아키서스의 광시곡>은 악마들을 속여서 이끌고 다닌 아키서스의 행적을 묘사한 광시곡입니다!]
[아키서스 관련된 노래로 추가 버프를 받습니다!]
[역사적인 지식이 늘었습니다! 퀘스트 추가 확률이 늘어납니다!]
[……]
[……]
[……]
음악이란 건 그냥 아무 음악을 고른다고 효과가 좋은 게 아니었다.
때와 장소, 듣는 사람을 고려해야 최고의 효과가 나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아키서스의 후계자인 태현을 지원해 주려면 이 곡이 가장 적합한 것!
…물론 악마 공작들은 귀를 씻고 싶어하는 표정이었다.
에슬라 혼자 감탄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있을 뿐.
[광시곡의 힘으로 아키서스의 힘이 담긴 화염 회오리가 더욱 더 강력해집니다!]
‘역시 구시렉이군!’
태현은 만족스러워했다.
구시렉이 악마 공작들 사이에서 망신을 좀 당한 편이긴 했지만, 원래 구시렉은 정면에서 싸우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음유시인 같은 스타일인 만큼 버프/디버프 위주로 싸울 때 가장 효과적인 것이다.
-나도 도와주겠다. 아키서스!
“응?”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에슬라가 관문에서 쏟아져 내리는 군단과 싸우다 말고 태현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덕분에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은 다른 악마 공작들에게 개떼처럼 달라붙는 중이었다.
-에슬라 개자식아! 뭐하는 거냐!? 당장 돌아오지 못해!?
“아니 넌 안 불렀….”
[광기공, 에슬라가 <에슬라의 가호>를 시전합니다!]
[광기공의 힘으로 아키서스의 힘이 담긴 화염 회오리가 더욱더 강력해집니다!]
[……]
[……]
“아니. 잠깐….”
태현은 슬슬 위험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키서스의 화염 회오리>가 원래 통제 불가능한 화염 회오리를 전역에 흩뿌리는 강력한 광역 스킬이긴 했다.
하지만 지금 화염 회오리는 아무래도….
[카르바노그가 저거 괜찮은 거냐고 묻습니다.]
[관문에서 쏟아져 내리는 악마들이 화염 회오리로 인해 쓰러집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솟구치는 화염 회오리는 관문 근처까지 파고 올라가 주변의 악마들을 태워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키서스의 천재지변> 퀘스트가 갱신됩니다!]
[<아키서스의 화염 용오름>이 추가됩니다!]
[신성 스탯이 크게 오릅니다!]
[……]
[……]
<아키서스의 천재지변-아키서스 권능 스킬 퀘스트>
예로부터 아키서스의 권능을 이어 받은 교황들은 그 권능을 갈고닦아 후대에 넘겨주었다.
<아키서스의 천재지변>은 교단의 교황들이 일으킨 업적들이 모인 스킬.
<아키서스의 천재지변>이라는 업적을 이어받고 그 업적을 이어나가라!
(아키서스의 거대한 해일: 0/1)
(아키서스의 산맥을 무너뜨리는 지진: 0/1)
(아키서스의 근원 역병: 0/1)
(아키서스의 화염 용오름: 1/1)
(아키서스의 약탈 신성 대폭발: 1/1)
보상: <아키서스의 천재지변>
[카르바노그가 과거에 기록된 화염 용오름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고 기뻐합니다!]
‘카르바노그. 기뻐하는 건 좋은데 이게… 그… 기뻐하기만 할 상황은 아닌 거 같다.’
태현도 힘든 퀘스트가 갱신된 건 기쁘긴 했다.
하지만 기쁜 것과 별개로 지금 도시가 좀 심각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악마들과 태현의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폭탄이 폭발합니다!]
[사디크의 지옥 화염이…]
[폭탄이 더욱더 크게 폭발합니다!]
[연속으로 폭발합니다!]
[더더더 크게 폭발합니다!!]
[<아키서스의 화염 용오름>이 과거 기록된 것보다 더욱 더 크게 타오릅니다!]
[과거를 뛰어넘었습니다!]
[……]
[……]
태현도 카르바노그도 슬슬 등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거….
너무 세게 키웠다!!
-뭐지? 무슨 일이냐?
빙결공, 푸르네우스는 관문에서 쏟아져 내리는 적들을 쓸어내리다가 고개를 돌렸다.
뭔가 매우 거대한 화염 회오리가 주변을 폭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키서스! 화염 회오리를 내 옆에서 치워라! 냉기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 이쪽으로 오는 게 보이지 않느냐, 머저리 놈아! 이봐! 어디 가는 거냐!
푸르네우스는 태현이 도망치는 것을 보고 바로 눈치채지 못했다.
그 다음에는 구시렉이 도망치는 것을 보고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 그 다음에는 에슬라가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서….
[빙결공 푸르네우스가 극도로 분노합니다!]
[불만도가 크게 오릅니다!!]
[마계 대회의의 효과가 줄어듭니다!]
[……]
[……]
뒤늦게 상황 깨달은 푸르네우스가 매우 빡쳤지만 태현은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뛰어!! 토끼 수인족들, 도시를 탈출해라!!!”
-예!!!
태현은 호위하던 토끼 수인족들을 데리고 미친 듯이 달렸다.
화염 용오름이 언제 어디로 번질지 몰랐던 것이다.
‘아. 폭탄은 괜히 뿌렸나?’
[<제국 토끼 광선 장난감>이 작동합니다!!]
[……]
[……]
꽈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태현은 저 멀리서 거대한 버섯구름과 함께 구역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거기서 싸우던 악마들과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이 같이 날아가는 것도.
[카르바노그가 폭탄까지 설치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래. 진짜 그러네.’
[기계공학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 * *
처음에 스미스가 ‘김태현 선수 진짜!! 수많은 플레이어들의 피와 땀으로 만든 도시를 부수시려는 겁니까!’라고 말했을 때만 해도 보고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비웃었다.
-스미스 양심 없냐??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너무 추하네.
-길드 동맹도 저딴 변명은 안 할 듯.
당연한 반응이었다.
애초에 스미스가 세운 도시도 아닌 데다가 길드 동맹한테서 뺏은 도시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 저런 말을 하면 비웃음을 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스미스는 굶주린 혼돈으로 갈아탄 사람 아닌가.
-김태현! 저딴 개소리는 듣지 말고 그냥 도시를 불태워버려!
-김태현은 니가 말 안 해도 알아서 잘 할 듯….
-부수는 건 좋은데 적당히 부숴 미친놈아!! 우리가 만든 거라고!
-혹시 위에 길드 동맹 길드원인가?
보고 있던 사람들은 태현을 응원했다.
도시를 화끈하게 부숴버려라!
[아키서스의 힘이 담긴 화염 회오리가 시전됩니다!]
-…….
-…….
-…….
그렇게 떠들던 사람들도 정작 파괴가 시작되자 할 말을 잃어버렸다.
너무….
예상을 초월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뭐임? 도대체 뭐임??
-드래곤 수십 마리가 와서 브레스를 갈기고 있나??
-속보)지금 아레네 시 잿더미로 변하는 중….
-내 친구 지금 아레네 시에 있는데, 실시간으로 도시가 잿더미로 바뀌고 있다는데?
-와, 길드 동맹 놈들이 김태현 아니면 대륙 정벌했다고 떠들던 이유를 알 거 같다.
사람들은 태현이 예전에 뭘 하고 다녔는지 새삼 떠올렸다.
지금은 판온 리그에서 활약하는 것도 있고, 영주로서 잘 다스리는 것도 있어서 착각하기 쉬웠지만….
태현은 원래 저런 식으로 남의 영역 부수고 다니는 데에 스페셜리스트였다.
판온 1에서부터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폭파전문가!
꽈과과과과광!!!
[왕궁이 무너져 내립니다!!]
[호수의 탑이 무너져 내립니다!!]
[동쪽 이중 성벽이 무너져 내립니다!]
[……]
[……]
[……]
“멈추십시오!! 진짜 장난 아닙니다!! 멈추십시오!!”
스미스는 이를 갈며 태현의 등에 대고 외쳤지만, 이건 애초에 태현이 멈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활활 불타기 시작하는 도시를 보며 스미스는 깨달았다.
‘내 실수다…!’
애초에 목표를 하나만 잡았어야 했다.
도시가 불타든 말든 김태현을 잡거나, 김태현을 잡든 말든 도시를 지키거나.
둘 다 하려고 하니 이 꼴이 난 것!
그에 비해 태현은 스미스를 꼭 잡을 필요 없이 도시만 불태워도 이득이었다.
애초에 태현에게 유리한 판이었던 것이다.
“도시를 포기해라! 도시를 포기하고 저 인간을 쫓아라!”
[굶주린 혼돈의 군단이 명령을 받들고 움직입니다!]
불타고 폭발하는 도시 곳곳에서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이 같이 탈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이상 도시는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이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하겠다!
* * *
‘아니. 이 자식 멘탈 단단하네.’
간신히 도시 탈출해서 밖으로 달려 나가던 태현은, 메시지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스미스가 도시를 포기하고 굶주린 혼돈의 군단을 이끌기 시작한 것이다.
솔직히 머리로는 맞는 판단이었지만 저걸 할 수 있는 건 쉽지 않았다.
말이 포기지 도시 하나를 그냥 날리는 셈 아닌가.
아무나 할 수 있는 선택도 아니었고 바로 할 수 있는 선택도 아니었는데….
[카르바노그가 저 모험가가 화신 때문에 정신이 단련된 것 같다고 말합니다.]
‘…….’
태현은 할 말이 없었다.
하긴 스미스처럼 당했으면 멘탈이 단단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보다 멘탈이 약했으면 접었겠지!
“달려라! 무조건 따돌린다! 지금 저 자식 독기 잔뜩 올라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예!!
태현과 토끼 수인족들은 빠르게 질주하며 거리를 벌렸다.
태현은 용용이와 흑흑이를 꺼내서 속도를 올린 다음 뒤를 돌아보았다.
‘이건 따돌렸다!’
스미스가 그런 판단을 내린 건 훌륭했지만, 좀 더 빨리 도시를 포기하고 포위망을 짰어야 했다.
먼저 탈출한 태현을 이제 와서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다!
-아키서스! 큰일났다!
“?”
뒤에서 같이 빠져나가던 구시렉이 외치자 태현은 깜짝 놀랐다.
설마 스미스가 이걸 따라붙었단 말인가?
‘그게 말이 되나? 굶주린 혼돈의 권능으로 커버를 했나?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푸르네우스가 따라잡혔다!! 푸르네우스가 공격을 받고 있다!
“…아. 그, 그렇군.”
태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큰일이라고 한 것에 비해, 생각보다 별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 안심한 것 같은데…?
“오해다. 구시렉. 정말 큰일이군. 정말 큰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