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500화
“사디크 교단이라고??”
“어… 응.”
플레이어의 말에 다른 파티원들도 수군대기 시작했다.
사디크 교단이라니.
“예전에 망한 거 아니었나?”
“정확히는 망한 게 아니라 아키서스 교단에 흡수됐지. 아키서스 교단 쪽에 가보면 사디크 신앙도 믿을 수 있던데.”
“굳이 사디크 믿는 놈이 있어??”
“화염 계열로 갈 거면 사디크 신앙도 쓸 만한 편이야….”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사디크 신앙이 뭐가 쓸 만해? 넌 어디서 이상한 정보를 듣고 온 거냐?”
“친, 친구가 그랬는데….”
“넌 속은 거야.”
“맞아. 사디크 신앙이 쓸 만하다니. 그거 분명 헛소문일걸.”
말을 꺼낸 플레이어는 다른 사람들의 구박에 움츠러들었다.
여기 있는 쟁쟁한 랭커들이 입을 모아서 ‘사디크 신앙은 구리다’라고 말하니 뭔가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런가?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화염 쪽에는 쓸 만하다고 그랬는데….’
“사디크 교단 스킬들이 쓸 만한지 안 쓸 만한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나타난 게 중요하잖아. 설마 아키서스 교단에 있을 사디크 성기사들이 여기까지 온 건 아니겠고.”
“잔당 아닌가? 교단이 망해도 잔당은 남아 있잖아.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튀어나왔어도 이상할 거 없지.”
플레이어들이 떠드는 소리에 태현은 눈썹을 찌푸렸다.
확실히 갑자기 사디크 교단이 나타난 게 좀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진짜 잔당이 있으면 귀찮아지는데.’
사디크 교단의 잔당이 있으면 누굴 가장 싫어하겠는가?
바로 태현이었다.
자다가도 태현의 이름을 들으면 벌떡 일어나서 죽이러 올 것이고, 악마들을 사냥하다가도 태현을 보면 악마와 손을 잡고 태현을 죽이러 올 정도의 증오!
“일단 사디크 교단의 잔당이 있다고 생각하고, 모두 싸울 준비 하도록.”
“걱정 마. 김태현. 다른 건 몰라도 싸움은 맡겨만 두라고.”
“맞습니다. 여기 인원이 몇 명인데.”
파티원들은 매우 자신만만했다.
태현을 믿어서가 아니었다. 태현을 제외하더라도 전력이 상당했던 것이다.
랭커들은 물론이고 파이토스 교단의 정예들까지 지원하고 있는 상황!
솔직히 사디크 교단의 잔당이 나타나면 오히려 좋았다. 경험치가 될 것 아닌가.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태현도 파티원들이 자신감을 갖는 건 이해했다.
든든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사디크 교단이 엮였다고 하니까 이상하게 불길하단 말이지.’
태현은 좀 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원래 악신 교단은 언제나 숨겨진 한 수를 갖고 있기 마련.
게다가 망한 교단이라면 단단히 독기가 올라 있을 것이다.
더욱더 조심해야지!
* * *
“너무 접근하는 거 아니야?”
“쉿. 조용히 해. 아직 안 들켰어.”
“아니. 들켰어. 멍청한 놈들아.”
“뭐!?”
“저쪽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는데, 김태현이 그냥 넘어가라고 했다더라.”
“…!”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다른 파티는 솔직히 감탄했다.
상위권 랭커들 중에 퀘스트 따라왔는데 이런 반응을 보여주는 사람은 정말 드물었던 것이다.
몇몇은 약간 미안했는지 시선을 돌렸다.
“괜히 쫓아왔나? 그냥 말하고 저쪽에 낄 거 그랬나….”
“뭔 마음 약한 소리야! 지금 퀘스트가 장난이야!?”
“맞아. 여기까지 따라온 이상 무조건 챙기고 나가야지.”
<백야숲 산맥>이란 위치를 발견한 이상, 태현 파티를 쫓아오던 다른 파티들은 속도를 높였다.
위치만 찾은 이상 일단 무조건 먼저 찾는 쪽이 유리한 것이다.
“저거 탐험가 랭커 호마 아니야? 파이토스 교단 놈도 아닌 놈이 왜 낀 거야?”
“다른 놈이 고용했겠지.”
“야. 저거 길드 동맹 소속 놈 아니야? 앨콧이잖아?”
길드 동맹 랭커 중 한 명인 암살자 앨콧!
암살자 랭커가 교단 퀘스트를 깨고 있는 게 좀 특이하게 보일 수 있었지만, 앨콧의 직업은 파이토스 교단 쪽 암살자였다.
소문에 따르면 <대주교의 검은 손>이나 <교단의 그림자 자객> 같은 직업이 아니냐는 추측들이 많았다.
“저놈은 왜 저기 있어?? 아. 오스턴 왕국에나 있을 것이지.”
“저 자식 에랑스 왕국에 영지도 받았다면서? 재수 없어.”
다른 랭커들은 짜증 섞인 눈빛으로 앨콧을 쳐다보았다.
원래 대형 길드들은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비호감이기 마련.
그중에서도 초대형 길드이자 판온에서 가장 많은 사건사고를 저지른 길드 동맹은 적이 많았다.
길드 동맹한테 던전 뺏기거나 퀘스트 뺏기지 않은 랭커가 없을 정도로.
그런 만큼 길드 동맹 소속 랭커가 파티 이끌고 나타난 건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저 자식은 무조건 견제하자고.”
“아니… 그런데 여기 온 파티들이 왜 이렇게 많아??”
부스럭-
하나둘씩 계속 나타나는 파티들.
야만전사 랭커 요한손에, 화염술사 랭커 크로포드.
미다스 길드 랭커 리우쑹에 오한구.
이름 한번씩은 다 들어본 랭커들이 각자 파티 끌고 나타나자 사람들은 당황스러워했다.
이거…?
“생각보다 너무 사람이 많지 않냐??”
“…김태현 정보를 보고 온 거구나!”
“!”
그제야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었다.
원래 이렇게 난이도 높고 연계 퀘스트 많은 퀘스트들은 참가자가 의외로 많지 않았다.
레벨 높은 랭커들은 퀘스트에 참가했다가 실패라도 하면 손해가 꽤 큰 것이다.
그럴 바에는 안전한 던전 깨기나 사냥, 혹은 확실한 방법이 있는 퀘스트를 깨는 게 나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태현이 직접 나서서 파티원들을 모으고, 그 소식이 쫙 퍼진 것이다.
-김태현이 대신전 앞에서 플레이어들 모으고 바로 퀘스트 들어갔다더라.
-지금 안에서 소식 들었는데 김태현이 거의 확실하게 깰 방법 있나보던데? 아예 대주교 위치를 알고 있는 듯?
-뭐?? 김태현이 대주교 퀘스트를 확실하게 깼다고? 위치가 어디지??
…확실한 보증수표가 있는데 참가하지 않으면 그게 더 말도 안 되는 상황.
그 소식에 원래는 참가하지 않았을 랭커들도 파티 꾸려서 온 것이다.
“야. 비켜. 여긴 우리가 먼저 왔다.”
“이런 뻔뻔한 새끼들이…!? 가장 먼저 온 김태현도 꺼지란 소리는 안 했어! 니들은 양심이 없냐?!”
“없어. 양심은 저기 로그아웃하고 해서 찾아라.”
“김태현 불러서 시시비비 가려볼까?!”
“…김태현이 부른다고 오겠냐? 헛소리 하지 마라.”
몇몇 랭커들은 노골적으로 다른 파티들을 쫓아내려고 했다.
경쟁자들을 모두 없앨 수는 없었지만, 절반이라도 줄인다면 퀘스트 경험치를 꽤 많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호락호락 당할 리 없었다.
“절대 못 꺼진다! 야! 다들 모여! 저기 길드 동맹 랭커 놈이 우리를 쫓아내려고 한다!”
“뭔 개소리야!? 우리 아니야!”
다른 쪽에서 지나가던 앨콧이 황당하다는 듯이 외쳤다.
지금 쫓아내려고 하는 놈들은 그냥 다른 랭커였던 것이다.
“헉. 미안. 야! 그냥 랭커 놈들이 우리를 쫓아내려고 한다!”
“다들 모여!”
일반 플레이어들 연합 파티 VS 성질 더러운 랭커 파티.
갑자기 싸움이 벌어질 것 같자 다른 파티들은 흐뭇하게 쳐다봤다.
‘그래. 싸워라. 싸워.’
‘그 시간에 우린 더 찾으면 되겠군.’
[굶주린 혼돈의 하수인들이 나타납니다.]
[굶주린 혼돈을 숭배하는 도적들이 칼을 뽑아듭니다!]
“적이다!”
“굶주린 혼돈이 납치한 거였어!?”
굶주린 혼돈이 내린 힘을 풀풀 풍기면서 단검을 뽑아 드는 도적들.
원래 산에서 나타나는 도적 NPC들 치고 레벨 높은 NPC는 없었지만, 굶주린 혼돈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굶주린 혼돈 퀘스트를 깨본 적 있는 랭커들은 경계의 눈빛을 던졌다.
“도적이라고 만만하게 보지 마! 이상한 스킬 쓸 가능성이 높아!”
“최대한 안 맞게 싸워야… 야! 어디 가! 이 비겁한 자식들아!”
랭커들은 성질을 냈다.
앨콧을 비롯한 길드 동맹 파티부터 시작해서 다른 파티 여럿이 그냥 무시하고 산맥 위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너희 공격 안 하는 걸 감사하게 여겨라. 오스턴 왕국이었으면 너흰 뒤졌어.”
“맞는 말이야. 좀 때리려다가 불쌍해서 안 때리는 거니까 굶주린 혼돈 하수인 잘 잡고 와라.”
저런 치사한 새끼들 같으니!
…물론 그들도 상황이 똑같으면 그냥 버리고 갔을 것이다.
* * *
“저 멍청한 놈들 때문에 일이 쉬워졌어!”
“빨리 가자고!”
뒤에서 싸움 난 걸 무시하고 다른 파티들은 서둘러 산맥을 달렸다.
김태현 파티보다 더 빠르게, 더 넓게 수색을 해서 위치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최상급 냉기의 악마들이 나타납니다!]
[악마 부관, 폴리네르가 당신들을 막아섭니다!]
“!??”
“아니 뭔 산맥에 악마에 굶주린 혼돈에…???”
“미친 산맥 아냐!?”
랭커들은 깜짝 놀랐다.
<백야숲 산맥>은 그렇게까지 레벨 높은 곳이 아니었다.
몬스터들 숫자도 적고 지역은 더럽게 넓어서, 흰 눈 구경하러 온 초보들 아니면 굳이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대주교가 숨어들고 나서는 악마에 굶주린 혼돈에…?
[냉기의 악마들이 지옥의 냉기를 불러옵니다!]
[악마 부관 폴리네르가 백야숲의 냉기를 한 곳에 충전시킵니다!]
“방어!! 방어!!!”
“크로포드! 도와줘! <영원의 화염 방벽> 써줘!”
“양심 없는 새끼야! 그걸 그냥 써달라고 지껄이냐?!”
화염 마법사 랭커, 크로포드는 이를 갈았지만 마법을 준비했다.
지금 악마들이 쓰는 걸 보니 심상치가 않았던 것이다.
랭커들이라 하더라도 일단 살고 보자!
콰지직!
굉음과 함께 거대한 폭발이 시작됐다.
* * *
“굶주린 혼돈에 악마까지 나왔다고?”
“네….”
“…….”
태현의 눈빛에 말을 꺼낸 플레이어는 억울해했다.
하지만 정말인 걸 어떡하란 말인가.
“구라 아냐 저거? 김태현 님! 저 놈이 첩자일지도 모릅니다!”
“진짜라고!! 내 친구가 말해준 거라고!”
‘뭔 놈의 산맥에 굶주린 혼돈이 나오고 악마가 나오고 사디크 교단까지 나오냐…?’
[카르바노그가 다른 두 개와 비교하니 마지막은 솔직히 좀 약해 보인다고 말합니다.]
“김태현. 네 마음은 알겠지만 다른 놈들을 전부 쫓아내야 하지 않을까?”
“맞아. 그놈들이 먼저 찾아내기라도 한다면 절대 기다리지 않을걸. 그냥 날름 먹을 거야. 퀘스트 경험치 나눌 놈들이 아니라고.”
“우리보다 먼저 도착하면….”
플레이어들이 연신 떠들었지만, 태현은 별로 불안해하지 않았다.
이런 넓은 지역에서 NPC를 찾는 승부라면 태현이 지기가 더 힘들었던 것이다.
-신의 예지.
마력 소모가 심한 게 단점이긴 했지만, 이런 퀘스트에서 거의 절대적인 힘을 자랑하는 아키서스의 권능!
산맥 안까지 들어온 뒤부터, <신의 예지>는 거의 확실하게 대주교가 있는 은신처 위치를 가르쳐주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인가?’
태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있는 건 눈으로 뒤덮인 흰 바닥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나무들뿐이었다.
[카르바노그가 이 근처에 은신처 입구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터뜨려야 하나?’
1초도 고민하지 않고 폭탄을 꺼내려고 하는 태현의 모습에 카르바노그는 소름이 돋았다.
[대주교가 다칠 수도 있다고 카르바노그가 말립니다!]
‘으음. 그렇긴 하지. 다른 방법이라면….’
파이토스 교단 플레이어들도 못 찾는 걸 보면, 교단 관련 정보나 스킬들로 들어가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대주교만이 쓸 수 있는 아이템이나 스킬로 들어가는 입구인 게 분명했다.
‘역시 위치는 땅 아래인가? 폭탄 말고 부수는 방법은… 시끄러울 텐데. 대주교가 알고 도망이라도 치면….’
[카르바노그가 토끼로 변신해서 들어가는 건 어떠냐고 묻습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런 구멍이 있을 리가 없잖아.’
태현은 그렇게 대답하고 시선을 돌렸다.
놀랍게도 토끼가 들어갈 만한 구멍이 땅에 나 있었다.
‘…아니. 아니지. 저게 연결되어 있다는 보장도 없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