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99화
[파이토스 교단 대주교의 이중장부를 얻었습니다.]
파이토스 교단 대주교의 이중장부:
교단 대주교가 사용한 이중장부다. 고대로부터 내려 온 교묘한 암호를 사용한 이 장부는, 암호를 알지 못하는 자는 감히 확인하지도 못할 것이다.
“…….”
[…….]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지금…?
‘부정을 저지른 게 대주교였어??’
부정을 저지른 놈들이 나왔다고 해도, 보통 대주교의 호위나 대주교를 섬기는 성기사들이 저질렀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대주교 본인도 부정에 참가한 모양이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 참가하다니.’
태현은 갑자기 아키서스 교단에게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대주교가 직접 부정을 저지르다가 들켜서 사건을 일으키지는 않았잖은가.
[애초에 아키서스 교단에는 대주교가 없고 훔쳐먹을 재산도 없었…]
파이토스 교단에서 저런 부정부패가 가능한 건 교단의 역사가 오래되고 규모가 컸기 때문이었다.
아키서스 교단은 훔칠 것도 없고 대주교도 없었….
‘이게 장부군.’
카르바노그가 옆에서 진실을 말하는 걸 무시하고, 태현은 장부를 챙겼다.
복잡한 암호로 쓰여 있는 데다가 숨겨져 있는 장소도 암호를 알아야 찾을 수 있었기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아이템!
…과거에 가서 파이토스 교단의 부정부패 증거를 챙겨 온 태현만이 볼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파이토스 교단 협박하려고 갖고 온 걸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장부를 확인합니다!]
[정보가 추가됩니다.]
[지도가 추가됩니다.]
XX월 XX일.
-교단에 갑자기 소란이 일어났다! 이제 와서 뇌물을 받은 자를 찾아낸다니. 다른 대주교들이 전부 미친 게 분명하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멀쩡히 자리에 앉아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XX월 XX일.
-감히 날 의심하다니. 다른 대주교들을 용서할 수 없다. 물론 내가 조금 받긴 했지만 이 정도도 받지 않은 사람이 교단에 어디 있단 말인가!
XX월 XX일.
-아무래도 위험한 것 같다. 차라리 지금 교단을 빠져나가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소란스러울 때 빠져나간다면 내 흔적을 쫓지 못하겠지! 내가 알고 있는 은신처로 도망칠 생각이다. 하지만 그런 다음에는?
XX월 XX일.
-모처럼 행운이 찾아왔다. 내게 힘을 빌려주겠다는 자들이 찾아온 것이다. 수상쩍긴 하지만 지금 내 상황에 거절할 수는 없다. 은신처로 도망쳐서 이들과 접촉해 봐야겠다.
“…….”
대주교의 은신처 위치를 생각보다 빠르게 얻긴 했지만, 태현의 표정은 별로 밝지 못했다.
퀘스트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뭐하는 놈들이야?’
용의자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악신 교단, 굶주린 혼돈, 아키서스 교단, 악마 공작 등등.
[아키서스 교단은 왜 있냐고 카르바노그가 의아해합니다.]
‘아. 실수로 넣었군.’
[…….]
어쨌든 위치를 찾아냈으니 다행이긴 했다.
“김태현이 왜 계속 가만히 있는 거지?”
“생각보다 퀘스트가 안 풀리는 것 같은데.”
“그러니까 지금 바로 사라진 곳으로 가야 했다니까!”
아무리 태현이라고 하더라도 한시가 바쁜데 계속 한 곳에서, 그것도 대신전 안에서만 있으면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랭커들 중 성질 급한 몇 명이 투덜거리기 시작하자, 다른 사람들이 말했다.
“그러면 그냥 그쪽 하고 싶은 대로 하던가. 김태현도 떠나고 싶으면 떠나라고 했는데 왜 남아서 소란이야?”
“그렇게 말하면 못 떠날 거 같나? 알아서들 해보라고. 내가 보기에 이번에는 김태현이 실수한 거야.”
“맞아. 김태현도 사람인데 당연히 실수를 하지. 계속 붙잡고 있으면 너희들만 손해일걸.”
말을 꺼낸 랭커 몇 명은 결국 떠나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보아하니 김태현이 실수를 한 게 분명했다.
잘 모르는 초보들은 랭커들이 절대 실수하지 않는다고 착각하곤 했지만, 랭커들도 실수를 했다.
그럴 때 얼마나 빠르게 태세를 바꾸느냐가 승패를 좌우하는 것이다.
김태현이 아무리 대단하다지만 지금 여기서 삽질을 하고 있는 이상, 다른 파티에 가서 넣어달라고 요청을 하는 게….
“대주교 은신처 위치 찾았다. 이동하자.”
“!?!?!??”
“!??!?”
자리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기겁해서 고개를 돌렸다.
그냥 아이템 몇 개 줍고 뒤적거리더니 찾았다고?
“거… 거짓말 아니야??”
“김태현이 케인도 아니고 그런 걸로 허세 부릴 사람이냐!”
“야. 간다며. 꺼져.”
“맞아요. 간다면서.”
“…….”
“…….”
방금까지 떠나려고 하던 랭커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돌아섰다.
“왜 말이 없어? 김태현한테 말한다?”
“좀 닥쳐…!”
“무슨 일이지?”
태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파티원들을 쳐다보았다.
아이템 확인하고 있는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처럼 분위기가 묘했던 것이다.
“쟤네들이 너 욕했어!”
“맞아. 파티 탈퇴하고 그냥 다른 곳 가려고 하더라고!”
“김태현은 이제 퇴물이라고 하더라!”
“그런 말은 안 했어!!”
‘…뭔 꼬마들이야?’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무슨 유치원생도 아니고, 선생님한테 ‘쟤가 뭐 했어요’ 이르는 꼴이라니….
“됐고. 움직인다.”
태현이 말을 자르고 돌아서자 다들 아쉬워했다.
랭커 놈들 쫓겨나는 꼴을 보고 싶었는데!
* * *
“김태현한테 위치 정보 얻을 방법 없나?”
“너 같으면 그걸 알려주겠냐? 잠깐. 수상한데. 너 무슨 속셈으로 말을 하는 거냐? 먼저 가려고?”
“아. 아니. 절대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먼저 알고 있으면 덜 불안하니까 한 말이야!”
태현과 파티원들, 그리고 파이토스 교단 NPC들까지.
이 정도면 대규모 파티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목적지의 위치는 태현만이 아는 상황인 만큼 플레이어들 중 몇몇은 살짝 불안해했다.
‘제대로 가고 있는 건 맞겠지?’
‘정보 먼저 알아내면 팔 수 있나? 퀘스트보다 그걸로 가봐?’
‘다른 파티 놈들이 헤매고 있으면 좋겠는데….’
이동하는 사이 태현은 파이토스 교단 NPC들과 플레이어들한테서 정보를 모았다.
아무래도 파이토스 교단 내부 사정을 좀 파악해둬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니까 파이토스 교단에는 대주교가 여섯 명이나 있다고?”
“정확히는 세 명이고, 은퇴한 대주교가 세 명 따로 있어요. 이 은퇴한 대주교는 교단의 원로로 취급 받고 있습니다.”
‘와.’
태현은 감탄했다.
대주교가 여섯 명…?!
아키서스 교단은 지금 대주교는 커녕 주교 한 명 있었고 그 주교도 옛날 옛적에 죽은 유령 아닌가.
‘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대주교들이 여럿 있으면 또 그 작자들끼리 싸우겠지.’
[카르바노그가 감탄합니다!]
그래도 마음속 한편이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태현도 교단의 적이 나타나면 대주교들이 나타나서 듬직하게 지원을 해주는 경험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번에 사라진 게 대주교 펠로마레스 맞지?”
“예.”
“혹시 원래 조금이라도 의심을 받고 있었나?”
“아닐 걸요? 물론 저희가 교단 NPC들 대화를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딱히 의심하는 기색은 없었던 거 같아요.”
‘…그러면 왜 도망친 거야?’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설마 교단 내에서 그렇게 의심하지도 않았는데 혼자 피해망상에 빠져서 지레 겁먹고 도망쳤나?
부정부패를 거하게 저지른 것치고는 꽤나 겁이 많은 성격이었다.
“이봐. 김태현.”
“?”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정문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주디스가 탈것을 타고 가까이 와 있었다.
“아. 너는….”
태현의 말에 주디스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김태현 정도 되는 최상위권 랭커가 얼굴과 이름을 기억해 준다는 건 나름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위업!
“나보고 레벨 높다고 자랑하던 랭커군.”
“…….”
주디스는 얼굴을 붉혔다.
주변에서 다른 랭커들이 듣고 피식 비웃었다.
-왜? 무슨 일이야?
-주디스가 김태현한테 레벨 자랑했다는데.
-대체 왜? 정신이 나갔나?
-김태현이 변장하고 있어서 못 알아본 듯.
-미쳤나 봐. 나 같으면 판온 3일 쉰다.
수군거리는 소리에 주디스는 분노했지만 참았다. 그녀 스스로 저지른 업보였으니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미안하군. 무슨 일이지?”
“다른 파티들이 우리를 따라오고 있어.”
“!”
“이런 파렴치한 쓰레기들!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퀘스트를 그렇게 방해할 수가 있어!”
자리에 있던 랭커들이 분노해서 외쳤다.
물론 여기 있는 사람들도 남들이 퀘스트 앞서나가면 쫓아가서 방해하고 달려가서 주워먹을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자기가 당하는 건 이야기가 달랐다.
감히 그렇게 파렴치한 짓을 하다니!
마침 여기는 김태현도 있었고 파이토스 교단의 성기사들과 사제들도 있었다. PK를 전혀 두려워 할 이유가 없었다.
“김태현 씨! 본때를 보여줍시다!”
“아니. 시비 걸지도 않았는데 싸움을 하자고?”
“기분 나쁘게 쫓아오는데 그 정도는 패도 되죠!”
“너무한 거 아닌가? 게다가 퀘스트 경쟁 붙으면 그럴 수도 있지.”
“?!”
태현의 말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중 판온 1부터 해왔던 랭커 몇몇은 당황해서 외쳤다.
“김태현! 정신차려! 그게 무슨 소리야! 예전의 너로 돌아와!”
“난 예전에도 이랬는데.”
“예전에 너는 달랐어! 눈만 마주쳐도 기분 나쁘다고 죽이고 어깨만 부딪혀도 기분 나쁘다고 죽였잖아!”
“그건 나한테 죽은 놈들이 음해하려고 퍼뜨린 헛소문이고… 나는 그쪽에서 시비 걸지 않으면 굳이 싸움 안 걸었거든.”
태현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애초에 대장장이로서 장비 만드느라 바빴는데 그렇게 시비를 어떻게 걸고 다닌단 말인가.
보통 태현이 붙었던 싸움은 상대가 원인 제공을 먼저 한 게 대부분이었다.
태현의 냉정한 말에 랭커들과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와. 좀 놀랍네. 김태현이 가장 먼저 나서서 죽일 줄 알았는데.”
“이미지 관리인가요?”
“생각해보니 판온 1 때도 저랬던 거 같기도 하고… 그냥 우리끼리 칠까?”
“김태현이 하지 말라는데 무시하고 하자고? 파티장 말인데… 게다가 파이토스 교단 NPC들도 보고 있다고.”
랭커들은 투덜거렸다.
그들은 왕국 대신전 앞에서 줄을 서고 있었다는 뼈를 깎는 노력으로 태현의 파티에 참가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뒤늦게 온 놈들이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날로 먹으려고 하니 아주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어… 좀 치사한 거 아닌가요?”
“치사는 무슨! 원래 판온이 이런 건데!”
그러는 사이 태현은 목적지로 가는 흔적을 발견했다.
[<백야숲 산맥>에 입장합니다!]
[<대주교의 은신처>는 산맥 안에 숨어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움직이십시오! 상대가 눈치챌 경우 공격당할 수도 있습니다.]
‘음.’
태현은 무심코 고개를 뒤로 돌렸다.
모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
아무리 생각해도 은밀하게 움직이는 건 무리였다.
‘그냥 전면전 각오하고 들어가는 게 낫겠군.’
“여기서부터는 싸운다고 생각하고 가자.”
“!”
“여기인가 보구나!”
백야숲 산맥은 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는, 눈 내린 숲으로 가득 차 있는 산맥이었다.
그런 만큼 안에 숨어 있는 비밀들도 많았고 NPC들도 여럿이었다.
‘확실히 여기라면….’
“김태현! 여기 NPC 시체 있다!”
“?”
인원이 많으니 이런 점이 편했다.
각자 수색 스킬 키고 주변을 샅샅이 뒤지니 바로 단서가 들어오는 것이다.
“무슨 시체지?”
“어. 잠깐만. 갑옷 문양 좀 체크하고… 찾았다. 사디크 교단인데.”
“…응????”
태현은 귀를 의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