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467화 (1,466/1,826)

§ 나는 될놈이다 1467화

독은 독으로 제압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펠마스는 가장 지독한 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교단에 심상찮은 꿍꿍이를 가지고 들어오는 악당이 있다 하더라도 펠마스를 만나면 수작이고 계략이고 뭐고 부리기 전에 충실한 노예가 되어 개처럼 부려지는 것이다.

“펠마스 불러오라니까?”

-저, 교황님.

“?”

-펠마스 님은 요즘 사람이 좀 많이 선해지셨습니다만….

“아.”

태현은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 태현이 과거로 올라가는 퀘스트를 깬 이후, 펠마스는 사람이 독기가 빠진 것처럼 신실하고 경건한 사람이 됐다.

교단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펠마스 안 하던 짓 하는데 죽는 거 아닌가요?’ ‘펠마스 죽으면 사망 관련 퀘스트 나오는 거 아님?’ 같은 의견이 나올 정도로.

‘펠마스는 정말 도움이 안 되는군.’

평소에 필요 없을 때는 지나치게 사악하더니 이제 필요하게 되자 사람이 착해지다니.

물론 태현 때문이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부르셨습니까?

“저 사람 펠마스 맞아요?? 아닌 것 같은데??”

유지수가 깜짝 놀라서 펠마스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펠마스가 아닌 것 같았다.

원래 펠마스는 눈만 봐도 욕망과 탐욕이 느껴지는 그런 NPC였다.

그런데 지금 펠마스는 순수한 열정과 신앙이 번쩍이는….

‘어…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가 있어?’

-새로운 신앙의 형제가 오시다니. 오늘은 정말 기쁜 날입니다.

“펠마스. 내가 좀 소름이 돋는데 평소 말하던 대로 해주면 안 되나?”

-평소 말하던 대로라니요. 저는 지금 평소처럼 말하고 있습니다만.

“…됐고, 여기 넥돈의 친구인 탑지기 앙콜라스다. 교단에 새로 가입해서 싸우려고 하는데, 좀 더 고고하고 순수한 신앙을 섬기고 싶었다는군.”

-저런.

펠마스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이 앙콜라스를 쳐다보았다.

-이 형제분께서 잘 모르셔서 그러는 것 같습니다만, 사실 아키서스의 신앙은 대륙의 어떤 신앙보다도 더 고고하고 순수한 신앙이랍니다.

-…처음 듣는 말인데?

앙콜라스는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친구인 넥돈한테서 교단의 사정을 예전부터 들어왔던 것이다.

한때 망했었고 부활한 다음에도 한동안 처지가 궁색해서 온갖 구질구질한 짓들을 다 했다고 들었는데…?

-아마 교단 밖이어서 자세한 사정을 듣지 못하셨겠지요.

-아니, 저기 넥돈은 교단의 인물인데….

-넥돈은 교단 밖을 오래 떠돌아다녀서 소문에 좀 어두웠을 겁니다. 자.

펠마스는 앙콜라스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아키서스의 신앙이 얼마나 고고하고 순수한지 알려드리기 위해 퀘스트를 드리겠습니다.

-…해야 할 일이라면 하겠다.

-예.

[탑지기, 앙콜라스가 교단의 퀘스트를 맡기 시작합니다!]

[교단의 플레이어들은 공적치 포인트를 사용해서 앙콜라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교단의 퀘스트에 앙콜라스의 도움이 추가됩니다.]

[……]

“!”

“오오…!”

골짜기 주변에서 퀘스트 하던 플레이어들은 메시지창을 보고 반색했다.

요즘 계속해서 늘어나는 아키서스 교단 관련 메시지창들.

예전에 교단 플레이어들은 게시판에 ‘아키서스 교단 정말 좋아요 ^^’ 하고 글을 올리곤 했다.

정말 좋아서 올리는 게 아니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교단 플레이어들이 너무 적어서 힘들었던 것이다.

-아키서스 교단 가입해서 같이 퀘스트 깨실 분? 같이 깨야 하는 퀘스트인데 사람이 너무 없네요.

-저 이제 뽑기도 그만해서 아키서스 교단 나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발 나가지 말아주세요 엉엉 님 나가면 교단 망해요….

-아니 저 한 명 나가는데….

하지만 이제는 과거와는 달랐다.

플레이어들을 지원하는 든든한 교단 성기사들과 사제들.

여러 능력을 가진 교단 NPC들.

다양하고 좋은 보상을 주는 퀘스트들까지.

이제 진지하게 ‘아키서스 교단 정말 좋아요 ^^’가 올라오는 시대인 것이다.

그런 만큼 새 NPC의 등장은 플레이어들의 기대를 받았다.

“탑지기 앙콜라스? 어떤 NPC지?”

“저번에 김태현이 새로 붙잡아 온 악마들처럼 쓸 만하면 좋겠다.”

“그 악마들? 퀘스트 같이 해본 적 없는데 어떻길래?”

“포병대 화력이 악마 한 마리 추가될 때마다 진짜 쭉쭉 늘더라. 김태현이 계속 악마 수집하면 이제 포병대하고 같이 드래곤 잡으러 가도 될 듯.”

“탑지기 앙콜라스는 궁수야. 잘츠 왕국 쪽 유명 궁수 NPC. 비전 궁수 스킬도 갖고 있는, 레벨 진짜 높은 NPC일걸?”

“와. 진짜? 근데 왜 이름을 못 들어봤지?”

“잘츠 왕국이라 그런 듯.”

“아. 잘츠 왕국이라….”

플레이어들은 모두 납득했다.

그 인기 많은 중앙 대륙의 왕국 중에서도 아직도 척박한 그곳!

심지어 가장 많은 싸움이 일어났던 오스턴 왕국과 아탈리 왕국도 그 피해를 극복하고 회복하고 있는데도 잘츠 왕국은 정말 인기가 없었다.

그런 곳의 NPC라면 모를 수도 있겠지.

“그래도 그 정도면 정말 대단한 거 아닌가?”

“맞아. 레벨만 높으면 그만이지.”

[고대 제국 전사들이 교단의 퀘스트를 맡기 시작합니다!]

[교단의 플레이어들은 공적치 포인트를 사용해서 고대 제국 전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교단의 퀘스트에 고대 제국 전사들의 도움이 추가됩니다.]

“!!!!”

“고대 제국 전사들까지!?”

“너… 너무 퍼주는 거 아닌가? 오히려 불안한데??”

교단에 가입한 지 오래된 플레이어들은 이런 혜택에 오히려 불안해했다.

교단에서 뭔가 퍼줄 때가 더 위험한 것이다.

무언가 위험이 닥치고 있다는 신호!

“아무래도 이번 대륙 퀘스트에 또 참가하는 모양이다.”

“하….”

“역시 그렇겠지?”

몇몇 눈치 빠른 플레이어들은 이미 대충 깨달은 듯 한숨을 쉬고 있었다.

“왜 우리 교단만 맨날 대륙 퀘스트에 첫 번째로 맞는 거 같지?”

“난이도 높은 퀘스트 깨면 좋은 거 아닌가요?”

새로 들어온 교단 플레이어가 의아하다는 듯이 묻자, 그들은 지친 목소리로 설명해 줬다.

“이게… 나쁜 건 아닌데, 한두 번 해야지.”

“대륙 퀘스트 나오는 것마다 다 교단 쪽 퀘스트 걸리면 사람이 지칠 수밖에 없다고!”

태현 같은 또ㄹ… 아니, 사람들은 난이도 높은 전설 퀘스트들이 연속으로 나오면 ‘오히려 좋지 않나?’ 하고 반응했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은 퀘스트 어려운 거 하나 깨면 좀 여유롭게 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주변에 산책도 가고, 풍경 좋은 곳에 가서 힐링도 하고….

그런데 아키서스 교단은 그런 것 하나 없이 강강강강 퀘스트만 계속해서 연속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금 분위기 보니까 또 전설 퀘스트 참가 뜨고 ‘아키서스 교단 플레이어들을 적들이 많이 싫어하네요! 상대하세요!’ 같은 게 뜰 것 같았다.

“이번에는 진짜 좀 다른 교단이 공격 받았으면 좋겠는데.”

“여러분!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목표가 아니랍니다!!”

“뭐?! 진짜?”

태현의 명령을 받은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플레이어들을 안심시켜주기 위해 곳곳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이번에 나온 대괴수는 놀랍게도 아키서스 교단의 적이 아니래요!”

“오오오…!”

“진짜?!?!”

“예! 게다가 거리도 머니까 우리는 그냥 느긋하게 퀘스트만 깨도 된답니다! 모두들 자기 일에 집중해 주세요!”

“와아아아아아아!!!”

플레이어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태현은 살짝 미안함을 느꼈다.

‘많이 힘들었구나….’

* * *

“저게 탑지기 앙콜라스야?”

“그렇다는데?”

플레이어들은 수군거리며 앙콜라스의 뒤에 서 있었다.

교단 NPC라 하더라도 플레이어들은 성큼 믿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펠마스를 겪으며 이미 쓴맛을 볼 대로 본 이들인 것이다.

자신들이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믿지 않는다!

“앙콜라스. 저기 지나가는 거대한 닭을 잡아보도록.”

그리고 태현은 유지수, 앙콜라스와 함께 있었다.

다른 일행들은 지금 각자 흩어져서 아탈리 왕국의 영지 곳곳을 커버하고 있는 상황.

사실 태현이 앙콜라스와 같이 있을 필요까진 없긴 했지만, 앙콜라스의 실력이 궁금한 것도 사실이었다.

과연 어느 정도일까?

앙콜라스는 자신감 있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화살을 꺼냈다.

-거꾸로 선 탑의 화살!

타오르는 황금색의 활에 걸린 화살이 눈부신 빛을 머금더니, 거대한 빛줄기로 변해 그대로 쏘아져 나갔다.

꽈르르르릉!

“와…!”

“대단하다!”

궁수 플레이어들은 그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저런 식의 위력을 내는 스킬이 흔치 않은 것이다.

-꼬끼오….

거대 닭은 구슬픈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옆에 있던 파워 워리어 길드원이 말했다.

“저 닭 하나면 일주일은 넉넉히 먹고 남겠군.”

“그런데 저런 식으로 거대화된 짐승들을 먹어도 별문제 없을까요?”

“해체하고 섞으면 되지 않을까?”

“과연 그런 방법이…!”

길드원들이 수상쩍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앙콜라스는 태현에게 말했다.

-이 정도면 실력 증명이 되었습니까?

“오. 그래.”

-그러면 돌아가서….

-아닙니다. 형제여.

-?

같이 지켜보고 있던 펠마스가 말을 끊자 앙콜라스는 의아해했다.

왜지?

-잡았는데….

-그런 퀘스트 하나로 어떻게 아키서스 님의 순수한 신앙을 느낀단 말입니까?

-아… 더 해야 하나?

앙콜라스는 살짝 당황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교단에 새로 온 신입인 만큼 퀘스트 몇 개 정도는….

뒤에 있던 플레이어들도 매우 기뻐했다.

“앙콜라스 님, 같이 가주시는 건가요?”

“기대됩니다!”

-자. 다음 퀘스트를 드리겠습니다.

앙콜라스는 알지 못했다.

펠마스의 퀘스트 지옥은 이제 막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새로 가입한 사람이 순수한 신앙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입에서 ‘신앙을 느낄 것 같습니다!’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퀘스트 뺑뺑이를 돌리는 게 바로 아키서스 교단이었던 것이다.

* * *

“자. 같이 사진 한 번 찍게 손을 잡아주시죠.”

“…….”

“…….”

쑤닝과 스미스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쑤닝은 혐오하는 감정을 가득 담아서.

스미스는 무표정하게.

지금 두 초거대 길드, 길드 동맹과 화이트 나이트는 결국 휴전을 맺고 있었다.

김태현의 미친 듯한 난동에도 한 뼘의 땅도 내주지 않았던 오스턴 왕국의 황금 같은 땅.

치사하게 길드 동맹이 정신이 없을 때 그 뒤를 노려서 점령해 버린 화이트 나이트 길드.

원한을 품지 않으려고 해도 안 품을 수가 없었다.

‘미다스 놈들보다, 김태현 놈보다, 저놈들이 더 얄밉단 말이지.’

그에 비해 스미스는 딱히 별다른 감정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뺏은 놈이었으니 뺏긴 놈처럼 원한을 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흥.”

그렇게 치열하게 치고받던 둘이 결국 임시 휴전을 하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대륙 퀘스트 때문이었다.

대괴수 오르기돈이 생각보다 너무….

위협적이었던 것이다.

-대괴수 오르기돈? 전설 퀘스트? 이름도 못 들어본 놈인데 그렇게까지 위험하겠어?

-…뭐? 요새가 야수 군단에게 점령당했다고? 창고가 파괴?? 그게 지금 말이 되는 소리야? 김태현 놈이 야수 군단 조종하고 있는 것 아닌가? 아니, 잘 확인해 봐. 김태현 놈이 그중에 하나로 숨어 있을 수도….

-성이 야수 군단에게 공격당했다고!? 랭커들이 거기 열 명 넘게 있었는데??? 대괴수 오르기돈이 직접 와서 다 두들겨 맞고 도망갔다고???

처음에는 얕보던 랭커들도 대괴수 오르기돈과 부딪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건 얕볼 상대가 아니다!

“대괴수 오르기돈을 같이 사냥하고….”

“…그 결과는 나눈다.”

두 길마는 악수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자식이 얄밉긴 해도… 이렇게 같이 하면 잡을 수는 있겠지.’

‘이 사람이 한심하고 여러모로 못 미더운, 도대체 어떻게 길마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사람이긴 하지만 길드 동맹의 능력이 있으니 같이 하면 잡을 수는 있곘지.’

두 길마는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설마 두 길드가 같이 힘을 합치는데 그걸 못 잡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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