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66화
<대륙 퀘스트 시작됐는데 같이 참가하실 분? 저는 지금 올라곤 마을이고, 거대 멧돼지 괴수 노리고 있습니다.>
└그거 잡을 수 있는 놈 맞나?
-멧돼지가 커봤자 멧돼지 아닙니까? 레벨 100도 안 될 것 같은데.
└너 안 잡아봤지? 지금 그거 잡을 때가 아니다. 그냥 도망쳐라.
-네 레벨이 몇인지는 몰라도 난 레벨이 200이 넘는 고수니까 까불지 말고….
└난 경고했다. 쯧쯧.
대괴수 오르기돈.
처음에 대륙 퀘스트 메시지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예정대로의 반응을 보였다.
레벨 낮은 플레이어들은 깜짝 놀라거나 무서워하고, 더 레벨 높은 플레이어들은 기회다 싶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 대륙 퀘스트는 초반에 좀 만만해 보이는 감이 있었다.
다른 대륙 퀘스트는 악마 군단이다, 고대의 언데드 군단이다, 아니면 역병 군단이다 같은 식으로 위압감 넘치는 적들이 퍼지기 시작했는데, 대괴수 오르기돈은 기껏해야 야수들인 것이다.
늑대, 멧돼지, 곰 등등, 이런 야수들은 판온 고렙들한테 크게 위협적인 적이 아니었다.
레벨 낮은 초보자일 때나 무서웠지 조금만 지나도 가죽이나 고기를 안정적으로 지급해 주는 몬스터들인 것이다.
물론 그중에는 마력의 영향을 받아 강해진 놈들도 몇몇 있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판온에서 강한 적은 아니었다.
판온에서는 그보다 더 강한 NPC들이 우글거렸다.
그런 만큼 대괴수 오르기돈이 야수들을 불러오고 짐승 군단들을 모으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플레이어들은 크게 겁먹지 않고 사냥을 시도했다.
-저기 멧돼지 괴수다!
-…어? 한 시간 전보다 크기가 더 커진 것 같지 않아?? 두 배는 커진 것 같은데…??
-커져봤자 멧돼지지! 빨리 잡아!
[대괴수 오르기돈의 힘으로 인해 멧돼지가 더욱 더 커집니다!]
[멧돼지가 야생의 힘으로 성장합니다!]
[물리방어력이….]
[마법방어력이….]
[….]
[….]
-????
-저게 무슨 멧돼지야!? 미친 거 아니야?
* * *
“이거 보셨어요?”
레이드 영상을 본 태현은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짐승들이 엄청나게 강했던 것이다.
“괜히 대륙 퀘스트가 아니군.”
“네. 지금 파워 워리어 길드도 조심하라고 명령 내렸어요. 잘못 걸리면 여러모로….”
뚜렷한 목적을 갖고,자기가 원한 진 놈들부터 먼저 공격하는 NPC들과 달리, 이 야수 군단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탄이었다.
필드에서 잘못 만나도 피해가 막심하고, 파워 워리어가 진행하고 있는 건설 퀘스트에서 만나도 피해가 막심한 것이다.
일단 무조건 피해야 한다!
하지만 태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음. 어떻게 보면 오히려 좋군.”
“…왜!?”
케인은 믿기 힘들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영지 가진 사람들한테는 지금 퀘스트가 아주 악재였던 것이다.
건설 진행 중이던 것들이 몇 배로 느려지게 생겼는데….
“원래 보통 대륙 퀘스트 터지면 나만 두들겨 맞았는데 이번에는 다 같이 두들겨 맞잖아.”
“…….”
“…….”
그 슬픈 말에 팀 KL 선수들 중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까 정말 그랬던 것이다.
이데르고 교단, 사디크 교단, 악마 공작, 굶주린 혼돈 등등.
아키서스 교단을 싫어하는 놈들만 골라서 모은 수준이었다.
덕분에 태현은 이런 퀘스트가 터지면 가장 앞에서 적들과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됐고….
“축… 축하한다?”
“축하까지는 필요없고, 대비는 확실히 해둬야겠는데.”
태현은 유지수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아키서스의 활잡이>로 전직했고 탑이 가두고 있던 대괴수가 빠져나갔다는 정보들이 적혀 있었다.
‘앗. 교단에도 <아키서스의 활잡이> 직업이 새로 추가되겠군.’
교단의 직업들이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었다.
물론 영웅 직업쯤 되면 전직하고 싶어도 쉽게 전직하기 힘들 정도로 난이도가 까다롭고 운이 필요할 테지만, 그것만으로도 많은 플레이어들이 찾아올 테니까.
“아키서스의 활잡이로 전직했다니. 좀 걱정이 되긴 하지만 지수도 많은 고민을 하고 결정을 내렸겠지?”
“아키서스 들어간 직업 좋습니다.”
아키서스 마법사로 전직하고 나서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던 정수혁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교단에 가입해서 전직한 플레이어 분들도 그렇고, 아키서스 쪽으로 전직해서 후회한 사람들은 드문 편입니다.”
“수혁이 말이 맞아.”
최상윤도 동의했다.
교단이 이런저런 말들이 많긴 해도, 아키서스 관련 직업들은 의외로 호평이 많았던 것이다.
전직해서 손해 볼 일은 없는 직업들!
옆에서 듣고 있던 케인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아키서스의 노예도 좋은 직업에 들어가나? 성능은 좋은 거 같긴 한데, 이름은 너무 좀 그렇지 않나? 내가 너무 속이 좁나?’
“어… 그런데 지금 직업 이야기가 아니라 대괴수 퀘스트 생각해야 하지 않나요?”
“대괴수?”
태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이다비의 질문에 반문했다.
“물론 야수 군단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하니 대비는 해야겠지만, 대괴수 퀘스트까지 내가 생각할 이유는 없지 않아?”
“아. 죄송해요. 너무 자연스럽게 태현 님이 참가할 거라고 생각을….”
이제까지 나온 대륙 퀘스트들은 태현이 거의 필수적으로 참가해야 했었기에, 이다비는 당연히 이번 퀘스트도 참가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이번 퀘스트는 그렇게까지 참가할 이유가 없었다.
유지수도 퀘스트 다 깼고 전직 성공적으로 했고 비전 궁술 스킬을 얻었다.
대괴수를 잡는 데에 목숨 걸 이유 없으니 그냥 알아서 빠져나올 생각이라고 전해줬던 것이다.
유지수가 도와달라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잘츠 왕국 주변에는 힘 센 플레이어들이 여럿 있었다.
<화이트 나이트>를 이끄는 스미스부터 시작해서 오스턴 왕국을 점령한 길드 동맹. 거기에 언데드 국왕이 다스리고 있는 에랑스 왕국까지.
태현 대신 열심히 싸워줄 사람들이 매우 많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좀… 기쁜데요?”
“그렇지? 이렇게 대륙 퀘스트를 여유 있는 기분으로 맞이한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처음인가?”
태현은 이번에 접속하면 파워 워리어 특제 팝콘이라도 먹을 생각이었다.
매번 태현이 느꼈던 고통을 이제 다른 대형 길드들과 랭커들이 느끼게 된 셈 아닌가.
“그래도 대비는 해야지.”
“어. 대비할 생각이야. 너희들 다 영지로 모여라. 케인은 빼고.”
“왜, 왜 나만?”
케인은 자기가 따돌려지는 것 같자 당황했다.
설마 저번에 연습하라고 했을 때 투덜거린 것 때문에 찍힌 걸까?
그거 한마디 했다고….
“넌 네 영지 있잖아…?”
태현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케인을 쳐다보았다.
외진 섬이었지만 영지는 영지.
남아서 이번 사태를 대비해야 했다.
“아. 맞다. 그랬지?”
‘이 자식, 괜히 걱정되는군.’
태현은 걱정과 의심이 섞인 눈빛으로 케인을 쳐다보았다.
과연 이런 위기 상황에서 영주로서 잘해낼 수 있을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태현 님. 노드란체 섬에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도 많고, 플레이어들도 늘어서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교단 플레이어들 보내야겠다.”
태현의 마음 씀씀이에 이다비는 감동했다.
케인은 몰랐지만 이렇게 태현이 뒤에서 챙겨준 것만 해도 꽤 되는 것이다.
“저번에 재칼이란 플레이어 봤는데, 실력이 괜찮더라.”
“아, 네. 그 사람이요. 케인 씨 사칭했다는….”
“아마 뭘 모르고 했겠지. 그럴 필요 없는 실력이었거든.”
태현은 이다비와의 대화를 끝내고 다른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금 왕국에서 건설되고 있는 것들도 많고 해서, 한동안은 수비하면서 상황 봐야 할 것 같아. 하늘섬에서 내려올 수 있겠어?”
“물론이지.”
“가능합니다, 선배님.”
태현은 케인을 쳐다봤다.
“케인. 노드란체 잘 지키고… 그리고 왕자 특히 잘 관리해. 괜히 죽게 하지 말고. 사이는 괜찮지?”
“사이는 괜찮은데 겁을 많이 먹어서 문제지.”
에랑스 왕국의 국왕은 생전에는 성군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괜찮은 왕이었다.
하지만 믿었던 자식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나서 죽음을 겪은 뒤 성격이 바뀌었는지 매우 사납고 포악해져 있었다.
‘하긴 자식들이 자기 쓰러뜨리고 왕위 뺏으려고 했으면 사람 성질이 좀 변하긴 하겠지.’
1왕자는 쓰러졌지만 다른 왕자들은 아직 도망치고 있는 상황.
국왕은 암살자들을 풀고 현상금을 걸어 남은 이들을 잡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 탓에 4왕자는 케인의 영지에 숨어들었다. 2왕자 같은 경우는 자기 딸을 태현한테 맡겨놓고 동맹을 맺으려고 했고.
“자. 다들 접속하고, 괜히 이벤트에 크게 당하지 말고 조심해서 행동해. 알겠지.”
“걱정 마. 판온 한두 번 해?”
“우리 정도면 충분하지.”
* * *
“…….”
접속한 태현은 중앙 대륙의 달라진 분위기에 눈을 깜박였다.
남쪽 대륙에서 용용이를 타고 빠르게 날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필드에 거대한 황소가 질주하고 있었다.
-저 황소 잡아! 저 황소만 잡으면 우리 한 달은 놀고먹을 수 있다!
-헛소리하지 마세요! 저걸 어떻게 잡아요!
-사온 폭탄 설치해! 그걸 써서 같이 잡자!!
-미친 소리… 아니, 아닌가? 해볼게요!
필드 곳곳에서 흉포해진 짐승들을 사냥하는 플레이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다비가 옆에서 말했다.
“저 정도면 되게… 괜찮은 편이에요.”
“저게??”
“네. 지금 아탈리 왕국은 좀 거리가 있어서 야수 군단이 없는 편이고, 그래서 오히려 좋아요.”
대괴수 오르기돈이 풀려난 이후 일어난 변화들 중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평범한 짐승들이 매우 강력해지고 영리해졌다는 거였다.
특히 잘츠 왕국 주변은 그런 영향이 더욱 심했다.
평범하게 레벨 50쯤 되던 산의 흑곰이 갑자기 레벨 500으로 뛰더니 <영험한 지혜를 가진 불굴의 흑곰>이 되어 곰 군단을 이끌고 주변을 휩쓸고 다니는 걸 보면 황당하다 못해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장점이 있긴 했다.
레벨이 높은 만큼 몬스터 하나 잡으면 보상이 더 많이 나오는 것이다.
“…성기사들 다 불러들여서 치안 관리 빡세게 해야겠는데.”
태현은 혀를 찼다.
거리가 있는 왕국에도 저렇게 한두 마리씩 맛 간 놈들이 보이는 걸 보면 대비를 해둬야 했다.
골짜기는 일 년 중 건설이 없는 날이 없을 정도로 끊임없이 발전하는 곳이었고, 아키서스의 탑도 지금 지어지고 있었고, 고대 제국 전사들이 머무를 곳도 찾아서 마을을 만들어줘야 했고….
‘으윽. 건설해야 할 게 너무 많은데. 상황이 최악이군.’
“아, 왔어요?”
골짜기 가까이 접근하자 기다리고 있던 유지수가 손을 흔들었다.
뒤에 있는 건 넥돈과 처음 보는 NPC, 탑지기 앙콜라스였다.
“저 NPC가 그 NPC?”
“네. 실력이 좋은 궁수긴 한데, 자부심이 좀 있으니 주의하는 게 좋을걸요.”
유지수의 말에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레벨 높은 NPC들을 상대하는 데에는 이미 익숙한 태현이었다.
특히 비전 스킬들을 갖고 있을 정도면 그 직업 쪽에서는 달인이나 마찬가지.
자부심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교황 성하, 안녕하십니까? 저는 탑지기 앙콜라스라고 합니다!
“그렇군. 앙콜라스, 반갑다. 듣자 하니 아키서스 교단에 가입하겠다 했다고?”
-그렇습니다. 넥돈의 설득도 있고, 이 모험가와 같이 대륙을 위협하는 적들을 상대하다 보니 아키서스 교단에 가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군. 아키서스 교단은 모든 사람들을 다 환영하니….”
-원래 저는 아키서스 교단 같은 곳이 아닌, 좀 더 고고하고 순수한 신앙을 섬기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 이렇게 된 이상 아키서스 교단에라도 들어가서 싸우겠습니다.
“…….”
넥돈은 순간 태현이 화를 낼까 싶어 걱정했지만, 태현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야. 가서 펠마스 불러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