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447화 (1,446/1,826)

§ 나는 될놈이다 1447화

생각보다 너무 신나 하는 골드 드래곤의 모습에, 태현은 당황했다.

‘허락받은 내가 물어볼 질문은 아니긴 한데, 이렇게 좋아할 이유가 있나?’

[카르바노그가 심심한 거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럴듯한데?’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들렸지만 심심함은 의외로 중요한 이유였다.

드래곤처럼 오래, 지루하게 사는 종족에게 심심함은 아주 커다란 적이었던 것이다.

괜히 드래곤들이 보물을 모으고 공주를 납치하는 게 아니었다.

-음. 잠시만 기다려 봐라. 어린 영웅아. 여기는 마법을 배우기 그리 좋은 환경이 아니니까 말이야.

“어… 저는 여기도 괜찮….”

[고이오노스가 용언을 사용합니다!]

[현재 마법 스킬이 낮아서 용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언령>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용언의 아주 일부를 이해합니다!]

[….]

[건물 안이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고이오노스의 마법은 놀라웠다.

태현은 <얼어라> <부서져라> <태워라> 같은 단순한 수준으로 쓰는 언령 마법을, 몇백 개의 단어가 붙은 문장으로 구사해 이 방 자체를 변화시킨 것이다.

어마어마한 수준!

너무 수준이 높아서 거의 이해를 하지 못할 정도였다.

쿠르르릉-

방 안의 모습이 변화하더니 마치 서재처럼 바뀌었다.

태현 앞에는 불꽃이 타닥거리며 타오르는 따뜻한 벽난로가 생기고, 그 뒤에는 푹신한 소파가 생겼다.

탁-

소파가 날아와서 태현을 강제로 앉혔다. 그 위로 두꺼운 이불들이 차례로 날아와서 덮어지고, 태현의 다리가 자동으로 펴졌다.

‘…편한데??’

생각보다 너무 편한 배움의 장에 태현은 당황했다.

준비를 끝낸 고이오노스가 물었다.

-괜찮니, 어린 영웅아? 다른 게 필요하니? 마실 걸 좀 내와 줄까?

태현이 대답하기도 전에 정령들이 나타나더니 찻주전자를 들고 나타났다.

‘향이 좋은데?’

[<꿀이 들어간 고이오노스의 달달한 홍차>를 마셨습니다!]

[매우 뛰어난 요리를 먹었습니다. 요리 스킬이 오릅니다.]

[지혜 스탯이 영구적으로 오릅니다.]

[요리법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합니다.]

“…!”

뜨끈하고 달달한 게 끝없이 들어가는 것과는 별개로 효과가 너무 뛰어났다.

태현은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좀 더 마셔도 될까요?”

-얼마든지 마시려무나.

‘와. 그냥 여기서 살아도 될 거 같은데?’

태현은 갑자기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이런 골드 드래곤과 싸워서 굳이 여기를 나가야 할 필요가 있나?

판온하면서 지금만큼 편안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카르바노그가 정신 차리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 * *

-그래. 마법을 익혀야 하는데 MP가 부족하다고?

“예.”

-레벨을 올려야 하지 않나?

“…….”

너무 당연한 말에 태현은 살짝 상처를 받았다.

고이오노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레벨을 올릴 수 없는 사정이 있으니까 그럴 수 있겠지. 아키서스의 영웅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왜 이해할 수 있는 거지?’

태현은 멈칫했다.

아키서스 교단 쪽 영웅들은 원래 이렇게 불합리한 제약 달고 살아왔었나?

-하지만 그런 제약이 있었기에 아키서스 교단의 젊은 인재들이 뛰어난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단다. 그래서 골드 드래곤들도 아키서스에게 힘을 빌려준 거고.

“아….”

태현은 ‘나중에 후손들이 왜 계약했냐고 욕하던데요’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고이오노스가 그걸 알 방법도 없었던 데다가, 무엇보다 골드 드래곤들도 좋은 뜻으로 한 일 아니겠는가.

한 번 잘못 맺은 계약이 나중까지 계속 흘러가서 그렇지….

-MP가 부족하다고 해서 마법을 쓰지 못하는 건 아니란다. 다 방법이 있게 마련이지.

고이오노스는 앞발을 휘둘렀다.

그러자 앞에 포션 더미들이 미친 듯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MP 회복 포션?’

태현은 고이오노스가 제안하는 방법에 살짝 당황했다.

너무….

단순한 해결책이었던 것이다.

“포션으로는 힘들지 않겠습니까?”

싸우다 보면 포션 먹는 타이밍 만드는 게 의외로 힘들었다.

꺼내고 열고 마시고 그동안 방해받으면 안 되고….

마법도 마찬가지였다.

마법 몇 방 쓰고 포션 꺼내서 먹고 또 마법 몇 방 쓰고 이런 식은 너무 불편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급하게 할수록 실패 페널티도 붙고.

고이오노스도 알고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문제점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어린 영웅아. 나도 예전부터 고민해 왔었지.

고이오노스의 취미는 영웅들을 길러내는 것.

그런 만큼 어떻게 영웅들을 길러내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레벨이 낮거나 HP가 낮거나 MP가 낮거나 방어력이 낮거나 공격력이 낮은 등 여러 약점들을 극복해 낼 수 있어야 영웅이 되지 않겠는가.

태현이 말한 문제점에 대한 고민은 고이오노스가 예전부터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드워프들과 고블린들을 시켜서 예전부터 만들게 하고 있었던 게 있지.

“…?”

태현은 순간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해졌다.

고이오노스가 직접 덮어준 담요가 있는데도 싸늘하게 느껴지는 감각.

‘고블린’이 들어간 순간부터 본능적으로 눈치를 챈 것이다.

“그게 뭡니까?”

-자동으로 포션을 공급해 주는 로브란다.

“…….”

<고이오노스의 마력 회복 로브-골드 드래곤 제작 퀘스트>

영웅을 길러내는 드래곤, 고이오노스는 예전부터 영웅들을 위한 장비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었다.

그중 하나는 포션을 직접 마시지 않아도 바로 몸에 주입할 수 있는 강력한 장비!

고이오노스는 휘하의 드워프들과 고블린들을 시켜 포션이 주입되는 장비를 만들도록 명령했다.

마침 장비의 완성이 끝나가고 있으니, 고이오노스의 호의를 받아들여 이 미완성된 로브를 착용해 보라.

만약 거절했다가는 고이오노스의 커다란 실망을 맛보게 되리라.

보상:?, ???, ????

‘…거절했다가는 죽인다는 거 같은데?’

[골드 드래곤 삐지면 무섭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드래곤들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성격 좋은 편이긴 했지만, 골드 드래곤도 드래곤은 드래곤이었다.

한 번 토라지면 그 뒷감당은 감당하기 어려울 게 분명했다.

문제는….

‘지금 느낌이 불길한 걸 보니 제대로 된 물건은 아니야.’

고블린부터 시작해서 미완성이라는 키워드까지.

제대로 된 물건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아직 완성은 덜 됐지만, 그래도 한번 착용해 보려무나. 만약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고쳐줄 테니.

고이오노스의 말에 태현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제가 직접 완성을 도와보겠습니다.”

-네가?

[최고급 기계공학 스킬을….]

[최고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재봉 스킬이 매우 낮습니다!]

[….]

[….]

재봉 스킬이 낮다는 페널티가 있긴 했지만 그 외의 나머지 스펙들이 너무 뛰어났다.

고이오노스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가 입을 장비인데 네가 완성을 돕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네가 원하는 대로 완성시켜 보렴.

“감사합니다!”

* * *

-미친 드래곤 놈. 미친 드래곤 놈.

-쉿. 조용히 해. 들으면 어쩌려고.

-대체 뭐 이딴 장비를 만들라는 거야!?

투기장 지하에는 고이오노스가 만들어 놓은 임시 대장간이 있었다.

엘프, 드워프, 고블린 장인들이 초대받고 (강제로) 작업하게 된 곳.

엘프는 재봉을.

드워프는 대장장이 기술을.

고블린은 기계공학을.

세 가지 제작 스킬을 써서 만들어야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고이오노스가 원하는 건 그만큼 괴랄한 물건이었으니까.

-내가 생각하기에 말이야, 영웅이 손을 쓰지 않아도 알아서 포션이 쭉쭉 주입되는 갑옷이나 로브가 있으면 참으로 좋을 것 같군.

-오오… 훌륭하십니다! 고이오노스 님!

-역시 고이오노스 님이십니다! 그런 훌륭한 생각을! 그 물건을 어떻게 만들면 될까요?

-그건 이제부터 너희들이 생각해내야지?

-…….

-…….

-…….

세 종족 장인들은 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윗사람들이 기술자 부려먹는 건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엘프 놈아, 좀 튼튼하게 만들지 못하겠느냐? 자꾸 로브가 찢어지잖냐!

-네놈이 힘 조절을 못 해서 찢어지는 거겠지! 세계수 근처에서 갖고 온 꽃으로 만든 실이다!

-이 장치를 달려면 더 튼튼해야 한단 말이다!

드워프들과 엘프들은 투닥거렸다.

지금 그들이 구상하고 있는 장치의 기본적인 원리는 다음과 같았다.

로브 뒤에 거대한 포션 가방을 달고, 로브를 입으면 로브 안에 내장된 바늘이 사람을 푹 찔러서 포션이 지속적으로 흘러가게 만드는 것이다.

태현이 봤다면 ‘…링거 맞냐?’라고 했을 구조였다.

문제는 이걸 구현하는 게 만만치 않다는 점이었다.

-둘 다 싸우지 마라.

고블린 장인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

-너희 둘 다 쓰레기니까.

-…이런 하찮은 고블린 놈이 뭐라고!?

-죽고 싶은 거냐!?

-내가 장치를 만들지 않으면 너희들이 아무리 물건을 만들어도 아무 곳에도 쓸모없을 텐데!?

-가장 커다란 면적을 담당하는 로브는 내가 만들고 있다!

-뒤에 포션을 담는 가방은 너희들이 만들고 있나? 포션이 부서지지 않게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느냐!

“…….”

뒤늦게 도착한 태현은 세 종족 장인들이 머리끄덩이 붙잡고 싸우는 모습에 황당해했다.

고이오노스의 용아병이 헛기침을 했다.

-!

-아… 아니.

-잠시 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세 장인들은 재빨리 입을 맞춰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드래곤은 무서웠던 것이다.

-여기 로브를 입을 아키서스의 영웅께서 오셨습니다.

-아키서스???

-아키서스?????

세 종족은 다른 부분이 아니라 아키서스라는 부분에 반응했다.

-왜 아키서스의 영웅을…?

-아하. 아키서스의 영웅이라면 이런 시제품을 입어도 절대 죽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아키서스의 영웅이면 괜히 우리한테 복수하는 거 아닌가? 아키서스를 적으로 돌리면 삼대가 골치 아파진다고.

-음. 엘프 탓으로 하는 건 어때?

-그거 좋은 생각이군.

-이런 뒤질 놈들이…!

용아병은 부끄럽다는 듯이 시선을 돌렸다.

-이 영웅께서 제작을 도와주실 겁니다.

-제작을?? 아니, 아키서스의 영웅이 아무리 대단해도 그렇지 제작에 대해서 뭘….

[최고급 기계공학 스킬을….]

[최고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

[….]

[….]

-…알긴 아는군!

-인간인데도 이렇게 기계공학에 능통하다니. 설마 성 몇 개 정도 날려버린 것 아닌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게. 아예 드래곤을 터뜨렸다고 하지?

드워프와 고블린 장인은 태현의 스킬 목록을 보고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저 정도면 제작에 참가할 능력이 충분했던 것이다.

둘은 대신 나서서 엘프 장인을 설득했다.

-잘 생각해 보게. 만약에 제작에 참가하면, 나중에 시험에 실패해도 자네한테 원한을 품지 않을 것 아닌가.

-맞아. 책임을 돌릴 수 있다.

-…환영하네!

“…….”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세 장인들을 쳐다보았다.

‘고이오노스는 어디서 이런 놈들을 모아왔대?’

[카르바노그가 그래도 실력은 뛰어난 것 같다고 위로합니다.]

* * *

고이오노스의 로브, 일명 포션 로브는 솔직히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링거잖아.”

그 특이한 구조에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포션 꽂고 싸우란 건가?

‘…그럴듯한데?’

처음에는 뭔 미친 장비인가 했는데 잘 생각해 보니 못 입을 것도 없어 보였다.

게다가 도와줄 NPC들도 있으니 한번 해볼….

<고이오노스의 마력 회복 로브-기계공학 장비 제작 퀘스트>

기계공학의 정수가 담긴….

‘퀘스트 창 보니까 다시 기분이 심란해지는군.’

시도하기도 전에 이 장비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알려주는 메시지 창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