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99화
그렇게 외친 둘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
“크흠.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으신데?”
태현은 의아해했다.
일단 매킨리 쪽 선수들이 대회에 참가하고 싶어 하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물론 선수들 입장에서는 어느 대회든 여러 대회 나가면 좋은 일이었다.
판온 리그가 가장 유명한 대회긴 하지만 아무나 나가는 게 아닌 것이다.
당장 뉴욕 라이온즈 같은 대형 게임단은 2군에서 3군까지 여럿 있는 상황.
후보 선수들은 나가고 싶어도 나가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 만큼 판온 리그가 아닌 다른 중, 소규모 대회에 출전하고 싶어 하는 것도 당연했지만….
‘하늘섬 경주 대회는 소규모 대회 수준이 아닌데?’
대회 규모는 소규모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였다.
애초에 팀 KL 쪽이 주최하고 있는 만큼 다른 대회와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보다 매킨리 씨. 대회 상금도 별로 크지 않은데 굳이 자기 나라도 아닌 대회에 선수들이 참가하고 싶어 하겠습니까?”
“참가하고 싶어 하던데요?”
“그렇다면 뭐 상관없긴 한데….”
참가하겠다는데 태현이 말릴 이유는 없었다. 태현이 허락하자 매킨리는 매우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고마울 게 있나요. 대회 참가는 자유인데.”
“…우리도 참가하고 싶습니다만.”
결국 에임스도 입을 열었다. 이쯤 되자 태현은 슬슬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대회에 꿀 발라놨나?’
둘 다 미국 쪽 대형 게임단이라 한국에서 열리는 작은 이벤트 대회에 참가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이러니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뭐지?
‘대회 출전 못하는 젊은 선수들한테 좋은 기회가 되겠군.’
‘상금보다는 인지도가 훨씬 더 이득일 테니까.’
오히려 태현보다 게임단 출신인 둘이 태현의 인기에 대해 더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상금? 필요 없었다. 물론 젊은 선수들에게는 그것도 꽤나 쏠쏠하겠지만, 그보다는 다른 게 더 중요했다.
태현이 아무리 한국에서 대회를 연다고 해도 관심을 가지는 건 전 세계의 사람들.
거기에 출전해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 막대한 인지도를 얻을 수 있었다.
선수에게 인기는 실력만큼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세 심사위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꽤나 집중해서 이야기를 나누자, 진행을 돕고 있던 길드 동맹 쪽 간부가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시는 걸 보니 저희가 다 기쁩니다. 다음 미션을 이야기하는 중이십니까?”
“어? 아니. 하늘섬 경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
김태현 이 나쁜 새끼야!
* * *
[<유령마 전차대장>이 나타납니다.]
다시 적이 나타났지만 태현 일행은 당황하지 않았다.
“덤벼오는 대로 공격한다. 준비됐지?”
“네.”
[<유령마 전차대장>이 유적의 힘을 빌립니다.]
[일시적으로 무적 상태가 됩니다.]
“…….”
“…….”
일행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니 이게 뭔 사기 스킬?
‘무슨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일시적으로 무적이 되는 스킬이 판온에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좀 더 강한 던전의 보스 몬스터들이나 한정적으로 가끔 쓰는 스킬이지, 이렇게 중간 보스 몬스터가 쓸 만한 스킬은 아닌 것이다.
[<유령마 전차대장>이 당신을 추격합니다!]
[추격에서 벗어날 경우 무적 상태에서 풀려납니다.]
-내 부하들이 신세를 졌구나, 침입자들아! 어디 한번 너희들의 속도를 보겠다!
“…이 던전 진짜 짜증 나는군.”
그냥 싸우면 더 빨리 끝날 텐데 꼭 이렇게 경주를 강요하다니!
콰르르릉!
“낭티오네. 달려라!”
-키이잇!
위에서 각종 경주로 단련된 낭티오네는 흔들리지 않고 속도를 냈다.
뒤에서 쫓아오던 유령마 전차대장은 그 속도에 감탄했다.
-사악한 바실리스크 주제에 이런 속도를 내다니. 제법이구나! 제국의 돌격대장으로서 질 수는 없다!
-키이이잇!
낭티오네는 뒤에서 욕하는 말에 화를 냈다.
그래도 에랑스 왕국의 공주인데 저런 사악하단 말을 듣다니.
“낭티오네. 저런 말에 넘어가지 마라. 네가 고귀한 핏줄을 갖고 있다는 건 여기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맞아요. 낭티오네 씨! 여기서 낭티오네 씨만큼 고귀한 분도 드물어요!”
태현과 이다비는 손을 잡고 낭티오네를 칭찬해 줬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데 바실리스크 정도는 당연히 춤추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듣고 있던 파렐은 속으로 생각했다.
‘고귀한 모습 같지는 않은데….’
강철로 뒤덮인 무시무시한 겉모습에서 불을 내뿜는 바실리스크는 공포 그 자체였다.
물론 이렇게 말했다가 바실리스크 뱃속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으니 입 닥치고 있었지만.
-키이잇.
[낭티오네의 기분이 좋아집니다!]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크게 올라갑니다!]
-크아악…! 이 내가 지다니! 용서하십시오. 전하!
[<유령마 전차대장>이 쓰러집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
경주에서 패배하자 전차대장은 싸우지도 않고 쓰러졌다.
정말로 황당한 던전이었다.
* * *
“그런데 파렐. 생각해 보니 신진 랭커라고 했었나?”
“네. 그런데요.”
“이번 퀘스트 방송하고 있나?”
“어… 안 하고 있습니다만.”
원래라면 ‘내가 김태현하고 퀘스트를 하고 있다!’고 전 세계에 알리려는 계획이었지만, 파렐은 아직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어느 부분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조금 폼나는 부분에서 시작하고 싶은데….’
이제까지 한 건 괴상망측한 레이싱에서 개망신당한 것밖에 없었다.
파렐은 김태현한테도 인정 받은 뛰어난 신진 랭커가 되고 싶은 거지, 개그맨 컨셉의 랭커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었던 것이다.
“저런. 파렐. 개인 방송의 중요성을 모르는군. 특히 아직 인지도가 부족할 때 개인 방송은 상당히 중요해.”
“맞아요. 파렐 씨. 저도 파워 워리어가 작을 때부터 길드 방송을 진행했는데, 방송은 정말 중요해요.”
“…….”
파렐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다비야 물론 저런 말을 해도 됐다. 맨주먹에서 파워 워리어를 키워낸 길마였으니까.
그런데 김태현은….
‘당신 개인 방송 하나도 안 하잖아!!’
김태현이 개인 방송 하나도 안 하는 거 뻔히 아는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사람들이 ‘제발 틀어달라고!! 제발 틀어달라고!!!’ 해도 ‘응~ 안 틀어~ 파워 워리어에서 가끔 얼굴 내밀 테니까 그거나 봐~’ 하는 게 김태현 아니었던가.
“예… 감사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하긴 뭐 안 하면 모를 수 있지. 내가 개인 방송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자. 이 판온 계정에서 방송을 연동할 수 있는데….”
‘아오. 한 대 치고 싶네.’
존경심과 별개로 매우 얄미웠다.
방송 시간만 따지면 파렐이 태현의 수십 배는 될 텐데.
“그리고 소통이 중요하지. 사람들이 요청하면 꾸준히 방송을 틀어주고.”
“그, 그렇군요.”
“그러면 지금 한 번 켜보지 그래?”
“예? 지금요?”
태현은 이해한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안 해봤으니 모르겠지. 개인 방송에서 중요한 건 꾸준함이야.”
“그… 그렇군요. 정말 많이 배웁니다….”
“근데 왜 안 켜나?”
“그게, 좀 중요한 장면을 보여주고 싶어서 말입니다.”
여기 던전에 들어와서 지금 만난 적들과 제대로 싸우기보다는 계속 쫓고 쫓기고 있었던 것 같았다.
“멋진 장면만 보여주려고 하면 안 되지. 기승전결이 있듯이 퀘스트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줘야 하는 거야. 그래야 사람들이 더 재밌게 볼 수 있으니까.”
‘그야 당신은 그렇게 다 보여줘도 멋있으니까 그렇겠지…!’
파렐은 울컥했다.
물론 김태현이야 저렇게 보여줘도 멋진 모습만 나온다지만 파렐은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면 망신이 절반을 넘는 것이다.
그 다음부터 별명이 대충 <유도미사일 파렐> <갈고리 파렐> 같은 게 되지 않겠는가.
“자.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키면 되지 않습니까.”
파렐이 불만에 찬 모습을 보여주자 태현은 이다비에게 속삭였다.
“방송하는 걸 싫어하는 거 보니까 인기 얻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치?”
“조금 더 성실해야 할 거 같긴 해요.”
“…….”
파렐이 약간 촉촉해진 목소리로 방송을 켜고 인사하는 동안, 태현과 이다비는 주변을 확인했다.
거대한 경주장 유적은 워낙 넓어 그렇게 돌아다녔는데도 아직 다 확인을 못 한 상태였다.
“여기가 관중석이었던 모양이군.”
“저쪽만 호화로운 걸 보니 귀빈들이 앉는 자리였을까요?”
[현재 고대 제국과 관련된 지식들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고대 제국과 관련된 칭호들을…]
[……]
[고대 제국 왕자의 옥좌를 발견합니다!]
“!”
그 순간 태현과 이다비 앞에 같은 환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왕자 전하께서 들어오십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번영한 고대 제국의 경주장 풍경 위로, 어마어마하게 모인 관중들.
그리고 그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들어오는 제국의 왕자.
-페르소텔턴 왕자 전하! 저희는 왕자 전하에게 전 재산을 걸었습니다!
-훌륭하구나, 나의 백성들아!
-아키서스 님께 물어보니 왕자 전하께서 이기신다고 하시더군요!
-정말 잘했다, 나의 백성들아!
“…….”
“…….”
태현과 이다비는 서로 쳐다보았다.
여기서 아키서스가?
그러나 둘의 황당함과 상관없이 환상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경주가 시작됩니다! 경주자 분들은 정렬해 주십시오!
왕자를 포함해서 다른 경주자들도 전차를 몰고 안으로 들어왔다.
가장 화려하고, 가장 멋들어지게 차려 입은 것은 왕자였지만 다른 이들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이대로 시작하나?’
-괴수를 풀어라!
촤르르륵!
거대한 경주장 안에 히드라가 풀려나오기 시작하자 태현은 순간 사고가 난 줄 알았다.
그러나 사고가 아니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이번에는 히드라다!
-흥! 내가 가장 먼저 잡고 나아가겠다.
-아니 내가 잡을 것이다!
고대 제국 사람들은 경주장에 히드라 정도는 가볍게 풀어 넣는 정신머리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경주가 시작되자 왕자는 무시무시한 힘을 보여줬다.
여덟 마리 페가수스가 이끄는 전차를 몰고 달리면서 히드라를 찢어발기고 다른 경주자들을 쳐내버린 것이다.
압도적인 우승을 거둔 다음 왕자는 외쳤다.
-신께서 내게 이 빠름을 주었으니, 나도 이 빠름을 후계자에게 물려주겠다. 먼 훗날 내가 쓰러진다면 가장 빠른 자가 내 유산을 이어 받으리라!
<페르소텔턴의 유산-고대 제국 퀘스트>
고대 제국의 왕자, 페르소텔턴은 가장 빠른 전사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굶주린 혼돈과 싸우다 쓰러진 그는, 자신의 시신을 경주장에 묻고 자신의 유산을 가장 빠른 자에게 물려주라고 유언을 남겼다.
왕자는 죽고 제국도 사라졌지만 왕자의 부하들은 충실히 그 유언을 지키고 있다.
왕자를 쓰러뜨리고 그 유산을 이어 받아라!
보상: ?, ???, ???
‘이런 퀘스트였군.’
태현은 이 고대 제국 유적이 무슨 이유로 여기 있던 건지 깨달았다.
하긴 고대 제국 시절 때부터 경주를 즐겼던 도시니 이렇게 광기 넘치는 도시가 되었으리라.
‘그렇군. 그러면 영주는 왕자에게 도전할 수 있는 권한이었던 건가?’
이 도시의 영주가 되면 왕자에게 도전할 수 있던 게 분명했다.
“물러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솔직히 왕자가 얼마나 빠를지 짐작이 잘 안 가.”
“그러면 물러설까요?”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랭커였다면 욕심 때문에 어떻게든 뭘 하려고 했었겠지만, 태현은 결승선 앞에서도 물러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옆에 케인이 있으면 모를까 이다비가 있는데 개짓거리 했다가 같이 죽기라도 하면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 없을 것 아닌가.
[굶주린 혼돈의 기운으로 인해 왕자의 시신이 오염되어 있습니다.]
[왕자가 깨어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