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23화
LK 갤럭시가 1부 리그를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요즘 LK 쪽 윤 사장이 이상하게 판온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었고.
-회장님. 유성 게임단 운영 노하우에 대해서 좀 듣고 싶은데 혹시 그쪽 단장과 만날 수 없겠습니까?
-회장님. 유성 게임단 선수들이 그렇게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사회에 환원을 한다는데 참 기특합니다. 제가 만나서 뭐라도 선물해 주고 싶은데… 으흠. 딱히 만나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닙니다.
-회장님. 김태현 선수와 친하다고 들으셨는데 그게 정말입니까? 아니죠?
…등등!
‘하긴 홍보 효과가 탐이 날 수도 있겠군.’
유성 그룹은 유성 게임단으로 북미부터 유럽까지 톡톡히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었다.
E스포츠라고 우습게 보고 있던 다른 그룹 입장에서는 배가 아파 죽을 노릇일 것이다.
유 회장은 설마 윤 사장이 판온에 푹 빠졌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상대가 대답 없이 침묵하자, LK 갤럭시에서 나온 스카우트는 웃으며 말했다.
“망설이시는 이유는 압니다.”
“정말 아나?”
알 리가 없을 텐데?
“예. 나이 때문이겠죠.”
“…….”
아니야 이놈아!
유 회장은 한 대 때리려다가 말았다.
“물론 나이는 불리한 요소긴 합니다.”
가상현실게임이라지만 완전히 제약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 기본적으로 반사신경이나 반응 속도가 떨어지고 두뇌 회전이 느려지는 것이다.
팔팔한 젊은 선수들이 차고 넘치는데 굳이 나이 많은 플레이어들을 선수로 데리고 오려는 팀은 없었다.
“하지만 판온의 매력은 한 가지 불리한 요소를 다른 것들로 상쇄시킬 수 있다는 것 아닙니까? 저희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아예 중년 이상으로 구성된 팀도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건 대체 어떤 미친놈이 만든 기획인가??”
유 회장은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뭔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하고 있어?
“그런 기획을 만들었다가는 대번에 회사에서 쫓겨나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그럴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유 회장은 그 자신만만한 모습에 무언가 깨달았다.
저건 아주 강력한 뒷배를 끼고 있을 때 보여주는 회사원의 모습이었다.
단장… 아니, 모기업이 있는 게임단의 단장은 파리 목숨이나 마찬가지. 단장으로는 안 됐다.
사장?!
‘아니. 사장 선에서 저런 기획이 내려왔다고? 말이… 안 되는 건 아니군.’
사장이나 임원들은 다 나이 지긋할 테니, 뭐가 잘 먹히고 안 먹히는지 모를 것이다.
그러니 저런 어처구니없는 중년 선수들 계획에 도장을 찍어준 거겠지.
‘쯧쯧. LK 그룹이 저래서야….’
“제안은 고맙지만 난 지금으로 만족하네. 대회는 나갈 생각이 없어.”
솔직히 지금도 아슬아슬했다.
판온을 하는 게 부끄럽진 않았지만, 판온을 한다고 공개하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이 나이에 부끄럽다 좀!
“낚시왕님! 낚시왕님!”
“돌아가게. …그리고 그 별명으로 부르지 말고!”
유 회장은 싫어해도 이미 별명은 낚시왕으로 굳혀져 있었다.
“저희 불타는 청춘 프로젝트에는 낚시왕님이 필요합니다!!”
‘책임자들이 시말서 쓰겠군.’
* * *
“가레티아! 원수의 목을 가지고 왔다!”
-!!!
가루다 왕족이자 아키서스 성기사단장의 후예, 가레티아는 태현의 말에 벌떡 일어섰다.
[아키서스 교단의 원수, 1왕자 존의 목을 가지고 왔습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아키서스 교단의 평판이 하늘섬에서 빠르게 퍼져나갑니다!]
[신성 스탯이…]
[……]
[<아키서스 성기사단장의 고대 신전>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훌륭해. 난 역시 교황을 믿고 있었어! 교황이라면 왕국 왕자 모가지 정도는 쉽게 따올 거라고!
“…믿어줘서 고맙다?”
[카르바노그가 좀 기분 나쁜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태현은 가레티아와 함께 이동했다.
<아키서스 성기사단장의 고대 신전>은 드넓은 하늘섬에서도 꼭꼭 숨겨져 있었다.
온갖 구름을 뚫고 장애물들을 지난 뒤 덤비는 비행 몬스터들까지 처리해야 도착할 수 있는 곳!
-헉, 헉헉… 주인이여. 흑흑이와 교대해야 할 것 같다.
“알겠어. 흑흑아. 교대해라.”
-주… 주인님. 용용이와 교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너 지금 탄 지 5분도 안 됐잖아… 꾀부리지 마라.”
-캬오오.
불불이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흑흑이는 속으로 불불이를 욕했다.
너 크기만 해봐라!
이 탈것 노릇은 네가 해야 할 테니까!
[탄력 있는 구름이 흑흑이와 부딪힙니다!]
[흑흑이의 지구력이 깎여 나갑니다!]
[칼날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흑흑이의 방어력이 낮아집니다!]
-…주인님. 원하시는 걸 얻으면 이 개같은 곳에는 다시 안 오시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흑흑이는 하늘섬을 저주했다.
아니, 하늘섬 중에서도 여기가 유난히 개같은 편!
[숨겨진 신전의 영역에 들어섭니다.]
[비가 멈춥니다!]
[구름이 사라집니다!]
[<아키서스 성기사단장의 고대 신전>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파아앗!
구름과 비가 사라지고 몬스터들도 없어졌다.
마치 태풍의 눈 안으로 들어온 것처럼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아키서스 성기사단장의 고대 신전-아키서스의 화신 퀘스트>
몇 번의 멸망과 몰락을 겪은 아키서스 교단은 수많은 스킬들을 잃어버렸습니다.
그중 하나는 성기사단장에게만 내려오는 성기사들의 비전 스킬입니다.
성기사단장의 고대 신전에 들어가 사라진 스킬들을 복원하십시오!
아키서스의 화신도 쉽게 해내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과업이지만, 믿음이 있다면 해낼 수 있을 겁니다.
보상: ?, ???
‘…느낌이 안 좋은데.’
태현은 낌새를 맡았다.
아키서스 직업 퀘스트에서 ‘어렵다’라고 말하면 그건 진짜 어려운 거였다.
살벌한 난이도!
‘신전 안에 드래곤이라도 있는 건 아니겠지.’
-목을 신전 앞에 바쳐.
“알겠어.”
그러나 퀘스트를 깨기 위해 이렇게 고생했는데 진행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태현은 1왕자의 목을 꺼내 신전 문 앞에 놓았다.
그 순간 굉음과 함께 신전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원수의 피로 인해 <아키서스 성기사단장의 고대 신전>의 문이 열립니다!!]
[봉인되어 있던 <아키서스 성기사단장의 고대 신전>의 문이 열렸습니다. 아키서스 성기사단장의 영혼을 후계자가 이어받습니다.]
[가레티아가 <아키서스 성기사단장>으로 고대 신전의 관리인 역할을 맡습니다.]
파아아앗!
“!”
태현은 깜짝 놀라 가레티아를 쳐다보았다.
-힘이…! 힘이…!
“괜찮나???”
-힘이 들어오는데 당연히 좋지 그걸 말이라고 해!?
“…그, 그렇군. 물어봐서 미안하게 됐다.”
번쩍!
눈부신 빛과 함께 가레티아의 모습이 변했다.
처음 보는 특이한 형태의 갑옷과 무기를 들고서 오만하게 태현을 내려다보는 모습.
[카르바노그가 초대 아키서스 성기사단장의 영혼이 가레티아에게 깃든 것 같다고 말합니다!]
‘나도 그런 거 같다.’
딱 봐도 방금까지와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초대 아키서스 성기사단장이라면….
‘어떤 성격이지?’
-…한심하기 그지없구나!
“?!”
갑작스러운 비난!
-아무리 아키서스의 화신이라지만, 교단을 보필하는 성기사단장으로서 말해야겠도다. 한심하기 그지없어!
“…….”
죽일까?
-죽일까요?
[참으라고 카르바노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가레티아는 눈에서 금빛 기운을 뿜어내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살아 있을 때에는 드래곤도 아키서스 교단을 두려워했다.
‘그건 사기 쳐서잖아….’
정확히 말하자면 무서워서 두려워한 게 아니라, ‘야 아키서스 놈들은 드래곤한테도 사기 친대 골드 드래곤 놈들이 단체로 속았다더라’ 같은 소문에 가까웠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에 가까운 것!
-그런데 이 꼴이라니!
“아. 그럼 진작 살아서 도와주던가.”
태현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무것도 없는 교단 혼자 멱살 잡고 다 키워놨더니 옛날 초대 성기사단장이 나타나서 저러니 어이가 없었다.
니가 해보던가!
-시끄럽구나!
말과 함께 가레티아는 태현에게 손을 휘둘렀다. 태현은 깜짝 놀라 반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건 공격이 아니었다.
[권능 스킬, <고대 아키서스 성기사단장의 검> 스킬을 이어받습니다.]
[권능 스킬, <고대 아키서스 성기사단장의 각성> 스킬을 이어받습니다.]
[신성 스탯이 크게 오릅니다!]
[……]
<고대 아키서스 성기사단장의 검>
고대 성기사단장이 교단의 원수를 처치하기 위해 쓰던 검술입니다. 평상시에는 쓸 수 없습니다.
<고대 아키서스 성기사단장의 각성>
고대 성기사단장이 빌려준 힘을 불러와 일시적으로 각성합니다. 성기사단장의 검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태현은 경악한 표정으로 가레티아를 쳐다보았다.
아키서스 교단 NPC인데 이렇게 쉽게 권능 스킬을 2개나 준다고???
아키서스 교단이 맞나??
“이… 이걸 나한테 그냥?”
-화신은 아직 갈 길이 멀구나. 내가 갈고 닦았던 검술 스킬들을 물려줄 테니, 그 힘으로 적들을 물리치거라!
“…생각해 보니 제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태현은 곧바로 존댓말로 돌아섰다.
생각해 보니 교단의 웃어른을 존중하는 건 바람직한 풍습 같았다.
비록 태현이 화신이라지만 교단을 위해 인생을 바친 윗세대 영웅들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카르바노그가 생각보다 제대로 된 인물에 깜짝 놀랍니다!]
초대 성기사단장은 입만 살아 있는 NPC가 아니었다.
목표가 높은 대신 그만큼 지원도 팍팍 해주는 NPC!
-네가 받은 검술 스킬은 이 내가 평생을 갈고 닦았던 검술 스킬. 아무리 화신이더라도 쉽게 쓸 수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고대 신전에 힘의 비밀이 있느니. 신전의 다음 영역으로 나아가야 한다!
“폭탄으로 부숴도 됩니까?”
-…….
가레티아가 경멸 섞인 시선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카르바노그가 그건 좀 아니라고 말합니다.]
‘아니 왜….’
폭탄으로 부수면 안 돼?
하지만 초대 성기사단장, 가레티아는 평생 검만 믿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폭탄 같은 잡기술은 사양!
가레티아는 단호하게 외쳤다.
-검! 오로지 검에 집중해라! 검에만 집중해야 길이 열릴 것이니!
‘내가 다른 스킬 최고급, 고급 찍은 거 알면 뒷목 잡겠군.’
만약 말하면 ‘화신! 네가 그러니까 아직도 이렇게 약한 거다!’라고 분노할 것 같았다.
-검으로! 순수한 검의 힘으로!
“아. 알겠습니다. 알겠다고요.”
-다음 영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건 간단하다.
“뭡니까?”
-교단의 다른 원수들의 목을 바쳐라. 바칠수록 길이 열릴 테니.
“…….”
태현은 정색했다.
아니….
이건 진짜 좀 아니지 않나?
하다못해 봉인된 신전 문 개방이야 원수 갚는다 쳐도, 그 다음도 계속 원수 목을 바쳐야 한다니….
‘이게 아키서스 교단이야 아니면 피를 숭배하는 악신 교단이야?’
[하지만 원수를 갚고 복수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교단의 원수는 누가 있습니까?”
-그건 화신 네가 알아서 해야 하지 않겠느냐!
‘어? 내가 마음대로 원수라고 우겨도 되나?’
생각보다 기준이 널널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아무나 목 잘라서 바치면 신전 문 안 열릴 거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그 정도야 당연히 알지.’
태현은 숙적을 생각해 봤다.
여러 사악한 교단 놈들, 마계의 악마들, 굶주린 혼돈, 기타 등등….
처음에는 뜨악했지만, 잘 생각해 보니 별로 어려운 퀘스트가 아니었다.
태현이 다른 퀘스트를 깬다면 자연스럽게 깨질 업적인 것이다.
‘그렇군. 퀘스트 깨질 때마다 추가로 주어지는 보너스 같은 건가.’
이 정도면 할 만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