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22화
“!”
태현은 움찔했다.
필립 3세가 언데드 되고 나서 성질이 더러워진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주변 귀족들은 ‘야 이거 좀 이상하지 않냐?’ 수군거리긴 했지만, 필립 3세가 그 뒤의 일을 잘 해내가자 그런 수군거림은 사라졌다.
무엇보다 필립 3세가 떠드는 귀족들 몇몇의 목을 손수 잡아서 비틀어버린 것이다.
그러자 귀족들은 ‘하하 사실 생각해 보니 폐하께서는 원래 이렇게 화끈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며 태도를 급히 바꿨다.
반란도 필립 3세가 진압해 나가는 것 같은데, 괜히 개겼다가 좋은 꼴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근데 여기서 더 나빠진다고?’
[카르바노그가 언데드가 된 이상 원래 성격을 잃고 점점 더 과격해져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으음. 좀 찜찜하긴 하군.’
일단 필립 3세는 태현에 대해서 매우 호의적이었다.
죽었던 사람 살려줬지, 반란 진압도 도와줬지, 왕자 목도 잘라서 가져다줬지….
지금 친밀도가 더 이상 올라가기 힘들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다.
필립 3세가 성질이 좀 더 더러워진다고 해서 태현한테 해가 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불안하다!
태현의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태현은 왜 불안한지 깨달았다.
‘그래. 이웃나라에 미친놈이 있으면 아무래도 위험하지.’
아무리 필립 3세가 태현한테 별 감정이 없다 하더라도, 필립 3세가 막 나가기 시작하면 아탈리 왕국도 휩쓸릴 가능성이 높은 것!
[하지만 지금 막을 방법도 없지 않냐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그것도 그렇긴 해.’
필립 3세의 성격을 바꿀 방법은 딱히 없었다.
성불시키는 건 그냥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뭐, 일단 그렇게 크게 영향을 끼치진 않겠지? 에랑스 왕국처럼 멀쩡하고 커다란 곳인데 별일 있겠어.’
[카르바노그가 기껏해야 언데드 관련 건물 몇 개 생기지 않겠냐고 말합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른 왕자들 목 가져가는 건 좀 미뤄야겠다.’
게다가 4왕자 같은 경우는 나름 케인과 친한 NPC였다.
목 잘라갈 수가 없는 것!
“알겠습니다. 반역자들을 쫓아서 목을 잘라오도록 하겠습니다.”
-믿고 있었다! 아. 그리고 단둘이서만 이야기할 게 있는데….
“?”
국왕은 귀족들을 물리치더니 태현에게 말했다.
-이건 정말 다른 이들이 맡을 수 없는 일이라서 말이다.
‘뭐지? 아내 목이라도 잘라오라고 시키려나?’
다행히 그런 건 아니었다.
<왕관과 검의 비밀을 찾아라-에랑스 왕국 죽음의 군주 퀘스트>
죽음에서 돌아온 군주, 필립 3세는 생전보다 더욱더 강해진 힘으로 왕국을 다스린다.
그게 왕국에 좋은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필립 3세에게는 최근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원래 갖고 있던 왕궁의 보물들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필립 3세는 당신이 왕궁의 보물들을 사용할 방법을 찾아내길 원한다.
보상: ?, ????, ??????
에랑스 왕궁에 내려오는 보물들은 신성한 기운을 갖고 있는 게 많아서, 죽은 언데드의 몸으로는 쓸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에랑스 왕국의 왕관과 검도 그런 경우에 들어갔다.
왕국을 되찾은 건 좋았지만, 정작 이런 왕가의 보물들을 쓸 수 없게 되자 상당히 곤란해진 것이다.
‘안 그래도 퀘스트 깰 거 많은데 좀 무리 아닌가?’
태현은 슬쩍 변명을 꺼내려 했다.
“이건 제가 아는 게 없어서 힘들 것 같습니다만….”
-찾아만 내주면 어떤 영지라도 내려주겠네!
“어. 그런 영지가 있습니까?”
-영지야 만들면 되지. 몇 놈 죽이면 그만이니.
“…….”
태현은 순간 ‘헉 그런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려다가 제정신을 차렸다.
‘아니… 그만두자. 귀족 기사단한테 습격받고 싶지는 않으니까.’
<영지를 잃은 기사단이 복수심에 미쳐서 왕국을 휩쓸고 있습니다!> 같은 메시지창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 * *
-크윽! 아키서스 교단 놈들! 이걸 풀지 못하겠느냐!
페르스메스는 거칠게 항의했지만, 잔인무도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아키서스 교단 사제들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놈을 신전 안에 가두도록.
-예!
-이것 놓지 못해! 내 동료들은 어디 갔느냐!
쾅-
버둥거리는 페르스메스를 안에 가둔 다음, 문이 닫히고 나서야 교단 사제들은 황당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교황님께서는 대체 저놈을 어떻게 잡아오신 거야?
-이데르고 교단 주교 후계자인 건 그렇다 쳐도 대체 뭔 짓을 했길래 교황님을 자기 동료로 믿고 있는 거지?
황당하기 그지없는 상황!
태현이 일단 데리고 와서 ‘얘 도망 못 치도록 잘 가둬놔’ 해서 가둬놓긴 했는데….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싶었다.
“고생 많았어.”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골짜기 위 하늘성.
태현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은 모두 찾아와 환영해 줬다.
“난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뭘.”
“한 게 없기는 무슨….”
이세연은 중얼거렸다.
이다비와 같이 탈출 영상 생중계를 본 것이다.
1초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이제까지 발견 안 된 미지의 섬도 섬이고, 이데르고 교단의 역병 함대도 그렇고, 거기에서 도망치는 것도 그렇고….
-저 나쁜 새끼들이 감히! 이세연 씨! 저 새끼들을 잡을 방법이 없을까요!?
-멀, 멀어서 무리지 않나요?
…이다비는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를 정도로 화를 냈다. 이다비가 이렇게 화를 낼 수도 있다는 걸 이세연은 처음 알았다.
“<고대 제국 대학>에서는 쓸 만한 거 있었어?”
“이것저것 찾아보고 있는데, 여기가 어지간한 도시보다 넓어서 일퀘 깨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걸리더라.”
드넓은 고대 제국 대학에서 자신이 원하는 걸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이세연같이 노련한 랭커들도 NPC들을 찾아 헤매는 데에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아무래도 이게 다른 플레이어들이 전혀 들어오지 않은 상태다 보니까 우리가 처음부터 열까지 다 찾아야 하는 것도 있어.”
“하긴 귀찮긴 하겠군. NPC들은 어때? 상대할 만해?”
“여러모로 다양해요. 유령, 언데드, 석상 등등. 일단 아직까지는 상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까다로운 NPC는 없었는데, 더 진행되면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어요.”
고대 제국 대학은 그 이름답게 온갖 특이한 NPC들이 여럿 있었다.
아직은 괜찮았지만 더 진행하면 이상한 NPC들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었다.
“지금 바로 갈래? 네가 있으면 많이 편할 것 같은데.”
이세연은 태현의 NPC 상대 실력에 매우 신뢰를 갖고 있었다.
원수 같던 NPC들도 홀라당 넘어오게 만드는 악마의 혓바닥!
“아니. 일단 직업 퀘스트 깨야 해서.”
“뭐 해야 하는데?”
“1왕자 목을 바쳐야 해.”
“…아키서스 교단 관련 직업 퀘스트 아니야???”
“맞는데?”
“????”
이세연은 혼란스러워했다.
“신전 갔다 올 동안만 기다리고 있어. 갔다 온 다음에….”
“바로 갈 거지?”
“아니. 갔다 온 다음에는 이번에 얻은 아이템 정리 좀 하고. 제작도 좀 하고. 공적치 포인트로 살 수 있는 거 없나 확인 좀 하고. 이데르고 교단 놈들 뭐하나 좀 둘러본 다음 영지 관리하고….”
“…….”
“…그 다음 들어가려고.”
“…너희 교단 NPC들은 아무것도 안 해줘??”
이세연은 근본적인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교황이 일을 다 하는 것 같은 교단이었던 것이다.
* * *
“그런데 <고대 제국 대학> 입장 관련으로 시비 붙지는 않았어?”
“에이. 태현 님. 무슨 말씀이세요. 여기 이세연 씨가 계신데.”
이다비는 웃으면서 말했다.
어지간히 간덩이가 부은 플레이어가 아닌 이상, ‘너희만 들어가냐!’ 하고 덤벼들지는 않는 것이다.
게다가 일행은 방송도 틀지 않고 주변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며 플레이했다.
태현을 따라다니며 이런 부분에는 이골이 난 이다비였다. 덕분에 일행이 감탄할 정도로 완벽하게 정체를 감추는 데 성공했다.
“공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몇 번 제안을 받긴 했어. 안의 영상 공개해달라, 같이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
“저도 받았습니다.”
“저도.”
고대 제국 대학에 대한 관심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냥 처음부터 열렸다면 모를까, 지금 몇몇 사람들 말고는 들어갈 수 없으니 그 관심은 더욱 크게 부풀었다.
덕분에 들어갈 수 있는 몇몇 사람에 대해 어마어마한 제안이 들어왔다.
-같이 들어가게 해주면 사례로….
-제가 구독자가 10만이 넘는데 방송에 출연시켜드리면 홍보가 되지 않을까요? 제발 한 번만….
-고대 제국 대학 내부 영상 공개하실 때 선공개 할 의사 있으신가요? 연락을….
“다 거절했어? 받아도 되는데.”
“별로 쓸 만한 제안들도 아니었어. 돈은 나도 있으니까.”
이세연의 말은 사실이었다.
일단 자기 개인 방송에 출연시켜서 홍보시켜준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누가 누굴!
그리고 돈이 급한 것도 아닌데 굳이 그런 기회를 팔 필요가 없었다.
남들이 들어가지 못할 때 독점으로 단물을 짜내야 하는 것이다.
“영상 선공개 같은 건 좀 고민되긴 해.”
“요즘 그런 제안 많이들 오더라고요.”
팀 KL이나 파워 워리어 쪽에도 제안이 많이 왔다.
방송사나 플랫폼 업체에서 ‘플레이 영상 공개하실 때 저희 쪽에 먼저 공개하게 해드리면 거액을 제공하겠습니다!’라고 애걸복걸하는 것이다.
이미 몇 번이고 증명되었던 것처럼 판온 영상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드래곤 레이드 하나로 다큐멘터리를 찍어서 대흥행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아무 영상이나 써서는 안 됐다.
영상이야 개나 소나 수천만 명이 넘게 찍어 올리니, 그중에 돋보이는 존재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팀 KL이나 파워 워리어는충분히 계약할 만한 상대였다.
전 세계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압도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는 곳!
“영상 조금 먼저 공개해 주는 걸로 받는 거면 나쁠 거 없으니까… 그렇지만 이건 유성 게임단의 의견을 따를 생각이야.”
‘어르신께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시겠군.’
주장이 게임단을 위해 ‘게임단이 원하는 곳에 선공개하겠다’라고 먼저 말하다니.
구단주 입장에서는 감동의 눈물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 한결 덜해질걸? 새로 입장 허락 받은 사람이 나왔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유 회장은 태현을 데려다준 것 덕분에 필립 3세한테서 입장을 허락 받았다.
아마 지금 새로운 관심은 유 회장에게 쏠리고 있을 것!
* * *
“입장 권리를 양도하신다면… 놀라지 마십시오. 이 액수를 즉시 양도하겠습니다. 작은 빌딩 하나는 그냥 살 수 있는 금액 아닙니까.”
“… 음! 정말 안 놀라운 금액이군.”
“!?!”
유 회장은 심드렁하다는 듯이 찾아온 사람들을 상대했다.
권리 양도해라, 죽고 싶냐, 네가 뭔데 김태현 데리고 갔냐, 영상 혹시 먼저 공개하실 생각 없으시냐 등등.
아란티스 왕국의 왕이라는 위치에도 불구하고 유 회장은 딱히 판온에서 유명한 편이 아니었다.
낚시꾼들은 판온의 굵직굵직한 퀘스트나 이벤트에 참가하기보다는 자기들끼리 좋은 명당 찾아서 낚시하는 데에 집중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퀘스트로 인해 유 회장의 얼굴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온갖 길드들과 플레이어들이 ‘저 늙은 놈 누구야!’ 하면서 이를 갈고 있었던 것이다.
<김태현 구출 퀘스트 종료…! 최종 승자는 아란티스의 낚시꾼들!>
<아란티스 낚시꾼들의 수장, 유성수의 정체는 누구인가?>
이런 관심은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유 회장은 감내하기로 했다.
유 회장은 비전 스킬들만 얻을 수 있다면 주주총회 자리에서 판온 캐릭 공개할 수 있을 정도로 판온에 진심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놀라지 마십시오. 저는 LK 갤럭시에서 나왔습니다. 이번에 보여준 실력과 화제성을 생각했을 때, 저희 게임단에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
유 회장은 입을 떡 벌렸다.
이건 정말 예상치도 못한 제안이었던 것!
‘이런 얼빠진 놈들이 누구를 스카우트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