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15화
“길마님. 그게 뭔 말도 안 되는….”
“매우 논리적이군요!”
이다비는 이세연의 말에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논리정연 그 자체!
“????”
“아니… 이다비 씨… 그게 뭐가 논리적…?”
길드원들은 당황했다.
방금 길마님의 말 어디에서 논리가 있었지?
“시끄럽고, 준비해.”
“예!”
그러나 이세연의 길드원들은 충성스러웠다. 아무리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워도 이세연이 명령하면 그대로 따랐다.
길마에 대한 강한 신뢰!
‘부럽다…!’
이다비는 그걸 보고 부러워했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뭐만 시키면 투덜거리면서 하는데….
“길마님, 길마님. 역시 저건 김태현 님이 한 짓입니까?”
“아마 그렇지 않을까?”
양반은 못 된다고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재빨리 말을 걸어왔다.
“그러면 지금 바로 지원에 나서겠죠?”
“그렇겠지.”
“저기 온 사람들이나 NPC들한테 장사해도 됩니까?”
“…….”
이다비는 할 말을 잃었다.
야…!
지금 장사할 생각이 드냐?!
하지만 길드원들의 말에는 틀린 부분이 없었다.
파이토스 교단 성기사들은 지하 통로에서도 땀에 젖어 헐떡이고 있었다.
무지막지한 중갑옷을 입은 대가!
레벨과 버프로 버텨서 망정이었지, 아니었으면 진작 NPC들은 쓰러졌을 것이다.
“내 체면이 있는데 그래도 좀….”
“길마님, 길마님은 체면이 없어요!”
“언제부터 체면 신경 쓰셨다고…!?”
“체면보다는 돈이 중요하다고 하셨잖아요! 초심을 잃으신 겁니까?!”
길드원들의 말에 이다비는 부끄러워했다.
다 자기가 했던 업보!
하지만 이세연 앞에서는 왠지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저, 장사해도 괜찮은데요.”
“앗. 아니에요! 아니에요!”
보다 못한 이세연이 배려해 주자 이다비는 화들짝 놀라 말했다.
이세연이 보고 있었을 줄이야!
“쟤네들은 제 길드원들도 아니고, 솔직히 저도 많이 싫어하거든요.”
이세연은 파이토스 교단이나 다른 교단에 대한 악감정을 드러냈다.
이세연이 네크로맨서인데 교단들과 친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허, 아스비안 제국 황제 폐하께서 제안을 하니 이렇게 왔습니다만. 근데 흑마법을? 하. 그건 좀….
-흑마법은 좀 아닙니까? 이제라도 갈아타시죠.
-흑마법 오래 하면 사람이 사악해지고 난폭해진답니다.
-교단 통계 자료에 따르면 흑마법 익힌 놈들은 대체로 다 목숨이 짧다고….
싸가지는 어디다가 갖다 두고 온 듯한 교단 놈들!
이세연이 말 한 마디 할 때마다 [흑마법으로 인해 관계에 페널티가…]가 뜨며 온갖 성질 긁는 발언을 해댔다.
그런 놈들 상대로 이다비가 골드 좀 긁어간다고 말릴 생각은 없었다.
‘그나저나 파워 워리어 길드는 진짜 다들 친한가 보네.’
이세연은 파워 워리어 길드를 보며 신기해했다.
저 정도 규모가 되는데도 아직도 길드 분위기가 잘 돌아가는 게 신기했다.
이세연의 길드는 소수정예로 철저하게 조직화되어 있었지만, 이다비의 길드는 자유롭고 편안한(이세연이 보기에는) 분위기가 흘러넘쳤다.
저 자유로운 분위기가 바로 김태현을 영입할 수 있었던 비결인 걸까?
‘부럽다….’
‘왜 저렇게 보시지? 역시 우리 길드원들이 너무 한심해서…?’
이다비는 조마조마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장사는 좀 아니지 않을까?
* * *
“으음. 생각보다 틈이 없군.”
태현은 주변을 빈틈없이 돌아다니며 확인했다.
[느부캇네살의 흑마법이 언데드들을 강화시킵니다.]
[느부캇네살의 흑마법이 언데드들에게 이성을 되찾게…]
태현이 노리는 건 이 <사악한 흑마법의 요새> 주변을 지키고 있는 언데드 군단을 꼬시는 것이었다.
이 요새의 언데드 군단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수준!
기본 병사가 데스 나이트였으니, 그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본 드래곤 군단 몰고 다니는 저 혼돈의 기사만 꼬셔도 상당히 도움이 될 거 같은데.’
데스 나이트들 중에서도 굶주린 혼돈에게 총애를 받은 이들, 혼돈의 기사!
온몸에서 힘을 풀풀 풍겨내는 이들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이야, 골골이도 저러면 얼마나 좋을까!
-주인님….
하지만 태현의 계획은 틀어졌다. 통하지가 않았던 것이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언데드들을 지배합니다!]
[언데드들이 다시 이성을 잃습니다!]
‘젠장.’
굶주린 혼돈의 힘은 끈질기고 강력했다.
한 번 번호가 팔리면 계속해서 날아오는 보이스 피싱 문자처럼, 한 번 계약하고 나면 정말 거머리처럼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느부캇네살의 흑마법이 뿜어내는 힘으로도 언데드들을 뺏지 못하다니!
[그런데 이성 되찾는다고 걔네들이 화신 편을 들어준다는 보장이 있냐며 카르바노그가 의아해합니다.]
‘…그건 그렇긴 해.’
하도 언데드들을 설득하고 협박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사실 언데드들은 그렇게 설득하기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흑마법사들이 왜 괜히 마법을 써서 언데드들을 부리겠는가. 말 더럽게 안 들으니까 그러는 거지.
‘역시 느카넷살을 설득하는 게 답인가?’
태현은 고민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느카넷살을 설득하는 게 가장 빠르게 느껴졌다.
지금 몰래 악마 공작 풀어줬다가는 이 요새에 있는 흑마법사들한테 저주 몇백 방 맞고 즉사할 것 같고….
[카르바노그가 응원합니다!]
‘그렇지? 느카넷살 보니까 좀 호구 같은 게 잘 말하면 넘어올 거 같더라.’
[…자기 신도를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카르바노그가 화냅니다!]
‘아니. 네가 그렇게 해놓고… 어쨌든 다시 가보자. 느카넷살이 좋아할 만한 음식이라도 만들어서 찾아봐야겠군. 노래도 만들어야지.’
태현은 느카넷살이 다시 만나줄 때까지 기다리며 시간을 알뜰하게 사용했다.
주로 언데드 군단들과, 포로로 잡힌 이들에게 노래를 불러주면서!
“구시렉. 널 위한 노래를 준비해 왔다.”
-크아아악! 이 마력이나 멈춰 주지 못하겠느냐!
“그건 무리겠지만 이 노래가 네 고통을 좀 덜어줄 거다.”
-진짜 뒤지고 싶… 크아아악!
[위대한 명곡, <악마 공작의 굴욕>을 작곡하는 데 성공합니다!]
[믿을 수 없는 악마 공작의 추태를 직접 본 것처럼 생생히 묘사한 노래입니다! 아무도 지을 수 없는 위대한 노래를 지은 것으로 인해 노래 스킬이 추가로…]
[……]
[……]
태현이 노래 스킬을 빠르게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이제까지 쌓은 업적 때문이었다.
남들이 소문 듣고 상상할 때 직접 경험한 걸 따와서 부르는 태현!
태현의 노래에 흑마법사들은 감탄했다.
-과연 느부캇네살의 후손은 뭐가 달라도 좀 달라.
-붙잡힌 악마를 조롱하는 노래라니. 정말로 창의적으로 괴롭힐 줄 아는군.
그렇게 열심히 공적치 포인트 올리고 노래 스킬 올리고 있는 사이, 요새에 메시지창이 나왔다.
[<사악한 흑마법의 요새>에 굶주린 혼돈이 보낸 대전사, 파그로악이 찾아옵니다!]
“?”
태현은 갑작스러운 메시지창에 당황했다.
뭐지?
[카르바노그가 불길하다고 말합니다!]
‘나도 그래.’
느카넷살을 잘 요리하고 있는 태현이었다.
시간만 더 주면 어떻게든 좀 더 설득해서 갖고 놀 수 있었는데….
누가 찾아온 거지?
* * *
-감히 무슨 일로 찾아온 거냐?
느카넷살은 짜증을 냈다.
굶주린 혼돈의 수하들이라고 다 친한 건 아니었다.
애초에 성격 더럽고 탐욕스러운 놈들만 모아놨는데 친한 게 이상했다.
누가 더 강한지, 누가 더 굶주린 혼돈의 총애를 받는지 다투는 사이!
파그로악은 그 짜증에도 굴하지 않고 비웃었다.
-큭큭큭… 어리석은 놈 같으니.
-죽고 싶은 거냐? 여기가 누구의 요새인지 알고?
느카넷살은 지팡이를 겨누며 협박했다.
여기는 느카넷살의 요새.
여기에 있는 모든 언데드들이 느카넷살의 신하였고, 모든 흑마법사들이 느카넷살의 부하였다.
아무리 파그로악이 강력한 전사라도 해도 건방 떨고 살아 나갈 수는 없었다.
-죽고 싶은 게 누구인지 아느냐? 감히 굶주린 혼돈을 배신하려고 한 놈이겠지!
-!!
느카넷살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느카넷살도 만만치 않았다.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시치미 떼도 소용없다. 굶주린 혼돈을 우습게 보다니! 네놈이 수상쩍은 마음을 품은 걸 이미 눈치채셨다!
-…!!!
느카넷살은 자신이 가진 흑마법의 힘으로 굶주린 혼돈의 눈을 속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굶주린 혼돈은 그런 걸로 속일 수 없는 존재였다.
태현과 대화한 이후, 느카넷살이 카르바노그에게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 알아차린 것이다.
-얌전히 따라와라. 네놈을 데리고 가서 처벌할 테니.
-…알겠다. 굶주린 혼돈께서는 내 진심을 알아주실 것이다.
-헛소리하고 있군. 퍽이나 그러겠다.
파그로악은 낄낄 웃으며 느카넷살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 순간 느카넷살이 지팡이를 휘둘렀다.
-느부캇네살의 지옥창!
훅!
거대한 마력의 창이 생겨나더니 그대로 파그로악을 관통했다.
기습 당한 파그로악은 뒤로 튕겨났다.
-이… 같잖은 놈이? 아주 하찮은 반항을 하는구나.
-어, 어떻게?
-굶주린 혼돈께서 널 잡아오라고 하셨는데 아무 힘도 안 주셨을 것 같으냐? 봐라! 지금 나는 네놈 따위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다!
대마법을 맞았는데도 바로 회복하는 힘에 느카넷살은 경악했다.
차원이 다른 힘!
-요새의 모든 놈들은 들어라! 느카넷살은 굶주린 혼돈께 반역한 배반자다! 당장 이놈을 잡지 않는다면 너희 모두에게 영원한 처벌이 있을 것이다!
* * *
“…와. 이거 상황 왜 이렇게 됐냐?”
최대한 근접해서 상황 파악하고 있던 태현은 경악했다.
느카넷살 이 멍청한 놈!
카르바노그로 고민할 거면 좀 안 들키게 고민할 것이지 그걸 또 들키고 있냐!
[카르바노그가 도와달라고 외칩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군.’
태현은 한숨을 쉬었다.
좀 더 준비하고 들어가려고 했었지만….
원래 세상일이 다 이렇지!
차라리 잘 된 걸 수도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느카넷살이 확실히 태현의 편에 설 것 아닌가.
…상대가 좀 더럽게 강해 보이긴 하지만….
‘쟤 드래곤보다 세 보이는데.’
[기분 탓이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아키서스의 돌격!
팟!
태현은 튀어나갔다.
손에는 카르바노그의 힘이 담긴 창이 들려 있었다.
<많이 깨어난 카르바노그의 무딘 창>!
지금 저 파그로악이란 전사는 아무리 봐도 폭딜을 넣어서 잡을 상대가 아니었다.
‘굶주린 혼돈에게 힘을 빌려서 회복을 하는 데다가 스킬셋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도 모르니….’
스미스보다 몇십 배는 까다로운 상대!
레벨이 1000을 넘길지도 몰랐고, 넘기지 않더라도 굶주린 혼돈의 지원이 있으면 그만큼 까다로울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태현은 상대의 발목을 일단 묶으려고 했다.
가장 좋은 건 바로 이 카르바노그의 창!
푹!
[<카르바노그의 혼동>을 사용합니다!]
[<카르바노그의 발목 공격>을 사용합니다!]
[<카르바노그의 진심 저주>를 사용합니다!]
저주 삼종 세트 발동!
[혼돈의 대전사, 파그로악에게 처음으로 창을 찔러 넣었습니다!]
[이는 필멸자로서는 절대 해낼 수 없는 위대한 업적입니다! 칭호, <혼돈의 적수>를…]
[창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명성이…]
[……]
[굶주린 혼돈이 당신의 건방짐에 분노합니다. 혼돈의 저주가 당신을 타고 공격합니다!]
[신성 권능…]
[저항에 실패합니다!]
[데미지를…]
-저주 이동!
태현은 바로 혼돈의 저주를 파그로악에게 이동시켰다.
미친 듯이 HP 깎이는 속도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많이 깨어난 카르바노그의 무딘 창>이 더욱더 강화됩니다!]
[<깨어난 카르바노그의 날카로운 창>으로 변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