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13화
카르바노그는 태현의 가차 없는 평가에 어이없어했다.
악마들이 멍청하고 근성 없어 보이는 건 네가….
‘부관이니까 악마 공작에게 접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느카넷살 님!”
-오. 그래. 부관. 뭘 하고 싶나?
[느카넷살이 당신에게 임무를 맡기려고 합니다!]
[어떤 임무를 해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집니다!]
[난이도가 쉬울수록 성공 확률은 높아지지만 평가는 약해집니다.]
[……]
[……]
태현 앞에 여러 퀘스트가 떴다.
<데스 나이트 훈련…>
<죽음의 영역 확대…>
<굶주린 혼돈의 부하 늘리기…>
<……>
<……>
각종 언데드 훈련부터 시작해서 죽음의 영역을 늘리거나 굶주린 혼돈의 부하를 더 만드는 퀘스트들!
그러나 태현이 노리는 건 이런 평범한 퀘스트들이 아니었다.
“저는 악마 공작을 굴복시키고 싶습니다!”
-!
-과연…! 패기 넘치는군!
흑마법사들이 뒤에서 감탄했다. 느카넷살은 저 작자들을 쫓아내야 하나 고민했다.
옆에서 추임새 넣는 게 영 거슬렸던 것이다.
“느카넷살 님! 저는 예전부터 악마 놈들이 대륙에서 까불고 다니는 게 매우 거슬렸습니다! 이런 놈들에게 흑마법의 따끔한 힘을 보여주는 것이 흑마법사의 역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언데드나 악마를 붙잡아서 부리는 건 예전부터 흑마법사가 잘 하는 일이었다.
얼마나 더 강한 놈을 붙잡아 부리느냐가 바로 능력의 증명!
하지만 느카넷살은 악마 공작을 굴복시키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현재 세력 내에서 평판이 낮습니다!]
[현재 세력 내에서 공적치 포인트가 낮습니다!]
[퀘스트를 받지 못합니다!]
바로 부관 자리를 받긴 했지만, 악마 공작 봉인에 끼기에는 평판과 공적치 포인트가 낮았던 것!
‘이런.’
태현은 입맛을 다셨다. 한시라도 빨리 악마 공작에게 접촉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막히다니.
‘퀘스트 몇 개 깨야 하나? 다 너무 오래 걸릴 거 같은데.’
무엇보다 여기 있는 퀘스트들은 깰 때마다 굶주린 혼돈 세력을 강화시켜주는 것이었다.
악마 공작한테 접촉하려고 깨다가 적 도와주는 일만 할 수 있었다.
-느카넷살 님,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재능 넘치는 젊은이인데!
-역시 사람이 나이 먹으면 변한다고….
-젊은 사람한테 기회 안 주는 거 봐. 자기도 젊었을 때 안 서러웠나.
흑마법사들의 외침에 느카넷살은 짜증을 폭발시켰다.
-저리 꺼지지 못해!? 이 제국의 망령 같은 놈들이!
-같이 늙어가는 입장에 이러지 마십시오. 느카넷살 님.
-흥흥.
흑마법사들은 투덜거리며 물러섰다.
느카넷살을 숭배하긴 하지만, 고대 제국 시절부터 살아온 흑마법사들은 그 성격이 보통이 아니었다.
은근히 할 말은 다 한다!
‘역시 설득해야 한다.’
태현은 느카넷살은 좀 더 구워삶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어떻게?
‘화술은 이미 충분히 썼고… 일단 노래랑 음식이라도 해봐야 하나?’
[<아키서스의 요리:언데드>을 사용합니다!]
[언데드에게 추가 보너스를…]
다행히 태현에게는 언데드 특화 요리 스킬이 있었다.
미식 없는 언데드도 맛을 느끼게 하는 영혼의 요리!
토왕이를 두고 온 탓에 재료는 없었지만 원래 태현은 흙으로도 요리를 만들 수 있었다.
[카르바노그가 느카넷살 안 보이는 곳에서 요리하자고 조언합니다.]
‘하긴 그것도 그래.’
아무리 여기 있는 흑마법사들이 대부분 다 예전에 죽은 리치라고 해도, 길바닥 흙을 썼다는 걸 알면 좋아하진 않을 것이다.
[<달달한 영혼의 진흙파이>가 완성됩니다!]
[……]
[……]
놀랍게도 따끈따끈한 파이가 완성되었다. 이름을 가리면 어느 누구도 진흙으로 만들었다고 예상하지 못할 것이다.
[굶주린 혼돈의 힘이 가득한 곳에서 요리를 시도했습니다! 요리에 굶주린 혼돈의 힘이 깃듭니다!]
[<달달한 영혼의 진흙파이>가 <달달한 혼돈의 진흙파이>로 변합니다!]
[……]
‘흠. 맛이 하나 더 들어갔군.’
[별로 신경 안 쓸 거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오히려 더 좋아하면 좋아했지…]
말하던 카르바노그가 멈칫하더니 한 가지 조언을 했다.
[파이 위에 토끼 모양을 새겨달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왜? 기분 나쁘라고?’
[…….]
카르바노그는 오랜만에 삐졌다. 태현은 당황해서 해명했다.
‘아니. 잘 생각해 봐. 상대가 카르바노그 신전에 다녔다지만 그건 까마득한 옛날의 일이잖아. 게다가 지금은 굶주린 혼돈의 부하가 되어 있고. 그런 놈한테 예전에 믿던 신을 보여줘봤자 불쾌하기만 하지 않겠어?’
[카르바노그가 납득합니다. 하지만 한 번 시도해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너 지금 네 신자라서 그러는 거지?’
태현은 그렇게 말했지만, 순순히 파이 위에 토끼 모양을 새겨 넣었다.
솔직히 이게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칠 것 같지는 않았고….
카르바노그가 짠하기도 했던 것이다.
“느카넷살 님. 여기 파이를 구워왔습니다!”
따끈따끈하고 달콤한 맛을 내는 진흙파이가 앞에 나오자, 느카넷살은 어이없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부관. 언데드가 요리를 안 먹는다는 걸 모를 리는 없을 것이고. 나를 능멸하는… 아니. 냄새가 좋군!
[<아키서스의 요리:언데드>로 인해 추가 효과를…]
[……]
[느카넷살이 만족합니다! 요리 스킬이 오릅니다!]
느카넷살은 말도 안 되는 요리 솜씨에 감탄했다.
언데드가 되고 나서 처음 느껴보는 즐거움!
-부관. 재주가 많군. 역시 느부캇네살 님의 후손답다. 나도 느부캇네살 님과 친했지.
[카르바노그가 개소리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쉿.’
“느부캇네살 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어, 그러니까, 풍채가 좋고, 기골이 장대하고, 성격 원만하시고, 인기 있고, 모두가 존경하시고… 하여튼 그랬지.
‘와. 정말 느부캇네살 안 만나본 티가 팍팍 나는군.’
부활한 느부캇네살과 맞닥뜨려 본 태현 입장에서는 황당한 소리였다.
‘살아 있는 놈들 모두 죽여서 내 부하로 삼겠다 크헷헷’ 하던 놈이 뭐가 성격이 원만하고 인기가 있어?
하지만 지금은 느카넷살에게 맞춰야 할 때였다.
“과연 느카넷살 님과 닮으셨군요!”
[최고급 화술 스킬을…]
[친밀도가…]
[……]
-무, 무슨 소리를. 흥.
‘이 자식 생각보다 쉽겠는데.’
태현은 느카넷살이 생각보다 만만하다는 걸 느꼈다.
물론 레벨이나 그 능력은 어마어마했지만, 알맹이는 조금….
케인 같다!
-어쨌든 잘 먹겠다. 흠… 엇.
느카넷살은 파이 위에 새겨진 토끼 모양을 보더니 멈칫했다.
“왜 그러십니까?”
-이 토끼는 뭐지?
“그냥 밖에서 유행하길래 새겨봤습니다.”
-으음. 저 밖에서 대기하고 있어라.
느카넷살은 갑자기 태현을 밖으로 쫓아냈다. 그 모습에 태현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뭐야. 실패했나?’
토끼 모양 하나 가지고 크게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왜 저러지?
[느카넷살이 토끼 모양에 감동합니다!]
[요리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
[친밀도가…]
“???????”
가끔 NPC의 취향을 정확히 맞춰서 요리해 주면, 몇 배의 효과를 발휘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카르바노그가 역시 한 번 신자는 영원한 신자라고…]
‘아니,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흑마법사에, 굶주린 혼돈으로 갈아탄 놈이라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널….’
-카르바노그 님…! 크흑흑!
“…….”
태현은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카르바노그 교단 의외로 대단하잖아?!
* * *
“느카넷살 님! 카르바노그 신앙은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사디크 신앙이나 아키서스 신앙에 비하면 매우 건전한 신앙이지요!”
쾅!
태현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간에 상대방이 카르바노그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 이걸 이용해야 한다!
-뭐… 뭐야! 나가 있으라고 하지 않았나!
느카넷살은 신경질을 냈다.
감히 부관 놈이 어디서!
“카르바노그를 믿고 계시는 거잖습니까!”
-내가 무슨! 나는 그런 하찮은 신 따위는 안 믿는다! 감히 그런 소리를 했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야!
[저 새끼가 누구 앞에서 막말이냐고 카르바노그가 발끈…]
“카르바노그 교단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대륙에서도 의외로 많은 놈들이 믿고 있단 말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교단이 사라진 지가 언젠데! 비밀 신전들도 다 사라진 지 오래다!
“아닙니다! 게다가 전 카르바노그 님의 성물도 직접 얻어 대화도 해봤습니다!”
태현은 증거를 보여주기로 했다.
카르바노그의 권능!
토끼로 변신할 수 있는 그 권능에 느카넷살은 깜짝 놀랐다.
-너는 왜 흑마법사 놈이 카르바노그를 믿는 거냐?
예리한 질문!
태현은 은근슬쩍 말을 돌렸다.
“느카넷살 님께서도 믿지 않으십니까!”
-아니… 나는 더 이상 카르바노그 님을 믿지 않는다. 나는 굶주린 혼돈의 수하야!
“우리가 이렇게 만난 건 카르바노그 님의 인도가 분명합니다! 왜 굶주린 혼돈을 따르는 겁니까!”
-그야 굶주린 혼돈은 어마어마한 힘을 내려줬지만 카르바노그 님께서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으니까….
“…….”
[거기서 말문이 막히면 어떡하냐고 카르바노그가 화냅니다!]
‘하지만 맞는 말인데.’
사실로 두들겨 맞은 태현은 반박하지 못했다.
저건 사실이잖아!
굶주린 혼돈은 가입만 해도 온갖 힘과 권능을 푸짐하게 주는데 카르바노그는 기껏해야….
뭐 토끼 관련해서 좀 보너스 주나?
태현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굶주린 혼돈께서 강력한 건 인정합니다. 그 내려주는 힘이 정말 대단하긴 하지만 그 힘에 대가가 없겠습니까?”
-크윽….
“하지만 카르바노그 님께서는 아무 대가 없이 우리를 사랑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에이! 듣기 싫다! 나가라!
[느카넷살이 흔들립니다!]
[더 이상 대화할 수 없습니다.]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느카넷살의 친밀도가 오릅니다.]
[……]
느카넷살은 태현을 쫓아냈다.
하지만 메시지창으로 알 수 있었다.
충분히 의미가 있는 대화였다는 것을!
‘이런 말도 안 되는 설득이 통할 줄은 몰랐는데.’
설마 피도 눈물도 없는, 굶주린 혼돈의 수하인 흑마법사한테 예전 신앙이 먹힐 줄이야!
[카르바노그가 그게 바로 자신이라며 우쭐해합니다.]
‘그래. 너 대단하다 카르바노그.’
태현은 만약 느카넷살이 아키서스 교단 신도였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음….
‘바로 무시했을 것 같은데….’
조금도 신뢰가 느껴지지 않는 삭막함!
* * *
“느카넷살 님!”
-듣기 싫다!
“느카넷살 님!!”
-듣기 싫다니까!
“느카넷살 님!!!!”
-누가 저놈 좀 데리고 가라!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하게 하고 날 좀 내버려 두라고 해!
느카넷살은 평소의 카리스마는 어디로 갔는지, 태현에게는 쩔쩔맸다.
원래라면 기어오르는 아랫사람은 가차 없이 처형했을 테지만, 태현은 카르바노그의 신자.
느카넷살에게 남은 일말의 양심이 건드리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허허. 젊은 친구의 패기가 역시….
-좋은 혈통이라 뭔가 다릅니다.
흑마법사들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느부캇네살 후손이라더니 역시 대단한데?
[악마 공작, 구시렉에 대한 접근 허락을 얻습니다!]
[……]
‘앗. 일단 구시렉한테 가봐야겠군.’
[카르바노그가 느카넷살 설득 좀 더 해달라고 말합니다!]
‘카르바노그. 일단 지금은 내버려 둬야 해. 설득은 치고 빠져야 한단 말이지.’
[아무리 봐도 악마 공작이 탐나서 빠지는 거 같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탐욕으로 반짝이는 눈동자!
아무리 봐도 악마 공작을 손에 넣고 싶어서 저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