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65화
사육사를 잃은 탓에 덤비지는 않았지만, 괴수는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플레이어들은 ‘그냥 잡으면 안 돼요?’라고 연신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상태!
거대 괴수는 분명 레벨 높고 HP도 어마어마하게 높을 테지만, 뒤에서 지원하는 교단 NPC가 없으면 상대할 만했다.
“사디크 님의 힘으로! 놈을 정화시키겠습니다!”
“알겠어. 알겠으니까 한 번 해봐라.”
[사디크 교단이 이데르고 교단의 오염된 괴수를 정화시키려고 합니다!]
‘잠깐. 정화시킨다는 게 태워 죽이는 건 아니겠지.’
[카르바노그가 괴수가 난동 부릴 때를 대비해야 한다고 외칩니다!]
“애들아. 괴수 날뛰면 싸울 준비하자.”
“네? 사디크 교단이 지금 정화시키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싸울 준비 하라는 거잖아.”
“…그러네요!”
모두 납득했다.
사디크 교단이 정화하려고 하니 더더욱 싸울 준비 해야지!
“어? 다들 왜 싸울 준비 하는 거지?”
“몰라. 김태현이 하니까 일단 따라하는 게 좋지 않을까?”
“오케이. 버프 걸어줄게.”
순식간에 퍼져 나가는 불신!
뒤에서 그러고 있는 것도 모르는 채, 사디크 교단 사제들은 열심히 괴수에게 화염을 준비했다.
-사디크 정화의 화염!
-화염 괴수의 목걸이!
걸면 상태 이상을 회복시키고, 사디크 교단의 괴수한테 사용하면 조종할 수 있는 스킬들.
사디크 교단 사제들은 굳게 믿었다.
사디크 님의 힘이라면 저 괴수의 오염도 정화되리라고!
[아키서스의 행운이 추가로 적용됩니다!]
[사디크 정화의 화염이 증폭됩니다!]
[화염 괴수의 목걸이가 강화됩니다!]
[……]
[……]
화르르르륵!
“어?”
“저거 너무 불꽃 센 거 아냐?”
정화의 화염이 괴수를 건드리는 게 아니라 아예 덮어버리는 수준!
누가 보면 통구이를 만들어버리는 줄 알 것이다.
-꾸에에에에엑!?
[이데르고 교단의 오염된 괴수가 정화되기 시작합니다!]
[괴수가 날뛰기 시작합니다!]
“역시!”
“사디크 교단이 뭘 제대로 할 리가 없지!”
태현 일행은 바로 납득했다.
멀쩡하게 굴러가면 그게 더 이상하겠다!
“공격 준비해라! 바로 넘어뜨린 다음 총공격 들어간다! 폭탄 갖고 와!”
“스턴 상태 위주로 쏘면 됩니까?”
“그래! 일단 넘어뜨려….”
[이데르고 교단의 오염된 괴수가 정화되는 데 성공합니다!]
[사디크 교단의 신성력이 오릅니다!]
[사디크 교단의 명성이…]
[……]
[……]
파아아앗!
-꾸오오오….
괴수는 울부짖었던 게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얌전해졌다.
[사디크 교단이 괴수를 길들이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 거대 괴수는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화염 괴수의 목걸이가 사라질 경우 괴수의 조종력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
“으음.”
“해냈습니다! 해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디크 님의 힘!!”
“여러분! 사디크 믿으시고 화염의 천국 가십시오!”
사디크 사제들은 신이 나서 플레이어들한테 사디크를 홍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에게 한 번 박힌 불신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저거 진짜 안전한 거 맞아요?”
“목걸이 사라지면 날뛰는 거 아냐?”
“안 사라져도 날뛸 수 있어.”
“그냥 배불러서 저러는 거 아닌가?”
“…….”
그러나 몇몇 호구 같… 아니, 호기심 넘치는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저도 배울 수 있나요?”
“아키서스 교단 공적치 포인트로도 스킬 배울 수 있어요?”
“물론입니다! 당연히 호환됩니다!”
사제들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플레이어의 친구들은 옆에서 말리려고 했다.
“야. 그거 아깝잖아! 다른 곳에 써도 되는데…!”
“괜찮아. 포인트 좀 남는데 한 번 배워보지 뭐.”
“공적치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짓이라니까!”
“…….”
사디크 교단 NPC들은 생각했다.
이것들이 사디크 교단보다 훨씬 더 사악한 놈들이다!
* * *
-길마님! 이상한 놈들이 찾아왔습니다!
-???
이다비는 길드 채팅에 당황했다.
이상한 놈들이라니….
-혹시 거울을 봤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요!
길드원들은 매우 억울해했다.
그들이 예전에 이상한 놈이었던 건 사실이었다.
지금도… 좀 이상하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많이 멀쩡해진 편 아닌가!
-파워 워리어 영상을 돈 주고 사고 싶다는데요?
-…그건 진짜 이상한 놈들이 맞는데?
그러나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이다비 선수. 경기 잘 보고 있습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이다비는 상대의 복장을 훑어보았다. 보아하니 만든 지 얼마 안 된 초보자 계정 같았다.
‘협상하려고 새로 시작한 직원들인가?’
“저희는 이런 곳에서 나왔습니다.”
“아…!”
이다비는 명함을 보고 놀랐다.
저번에 팀 KL이 니팅거스 레이드로 영화를 찍는 걸 지원해 줬던 스트리밍 사이트 회사였다.
실질적인 투자를 다 맡았던 걸 생각해 보면 이쪽이 지원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그냥 공식적으로 접촉하셔도 되는데 왜 굳이 게임에서…?”
“…….”
“…….”
이다비의 말에 직원들은 매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자기들이 리그 집중한다고 차단해놓고….’
‘오죽하면 이런 제안도 이렇게 직접 찾아와서 하고 있겠어?’
“흠흠. 지금 리그 막바지라 그런지 제안에 대한 답장이 바로 안 오더군요.”
“아. 그건 그렇겠네요. 저희도 지금 바빠서 촬영에 따로 시간 쓰기는 무리거든요.”
이다비는 딱 선을 그었다.
케인이면 ‘네? 진짜요? 얼마 걸려요? 괜찮아요! 허락 받아보겠습니다!’ 했겠지만 이다비는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요! 촬영에 나서달라는 게 아닙니다. 이번에는 다른 이유로 왔습니다.”
“?”
“파워 워리어 영상에 대한 단독 사용권을 사고 싶습니다.”
“어….”
이다비는 당황했다.
‘확실히 이상한 사람들이 맞아!’
파워 워리어에 쌓인 영상들은 정말 온갖 종류의 영상들이었다.
특이한 업적 깨는 영상부터 시작해서 각종 실험, 길드 동맹 영지에 폭탄 놓고 튀기, 길드 동맹 영지에 몬스터 드랍하고 튀기, 직업 분석, 새로운 땅 탐험, 스킬 확인 등등.
파워 워리어 계정이 이제 워낙 유명해져서 온갖 사람들이 보고 있긴 했지만, 그걸 돈 내고 또 사용권을 사겠다니!
“그러면 계정에서 내려야 하나요?”
“아니요. 계정에서 내릴 필요는 없고, 저희가 편집해서 저희 사이트에 올릴 수 있도록 권한만 허락해 주시면 됩니다.”
“…….”
이다비는 고민했다.
이 사람들은 왜 이런 바보짓을 하려고 하는 걸까?
‘잠깐만. 내가 고민해 줄 이유가 없지 않아?’
태현이 했던 조언이 있었다.
-상대가 바보짓을 하면 그냥 감사히 받아먹자!
“음. 그러면… 고민 좀 해보고 연락드릴게요.”
“아. 액수는 여기….”
이다비는 별 기대 하지 않고 내민 종이를 받았다.
그리고 뒤로 넘어졌다.
“이다비 선수?! 이다비 선수?!!”
* * *
[역병 연못을 태웠습니다!]
[이데르고 교단의 진영이 파괴됩니다!]
[이데르고 교단의 적대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이데르고 교단이 최우선적으로 당신을 잡으려 할 것입니다!]
[이데르고 교단 암살자가…]
[이데르고 교단 역병 투사가…]
[……]
[……]
온갖 메시지창과 함께, 이데르고 교단 네임드 보스들이 태현을 쫓고 있다는 말이 날아왔다.
물론 태현은 이런 메시지창에 쫄지 않았다.
겁먹기에는 너무 많은 적을 만들어 왔던 사람!
“주의하긴 해야겠군. 이데르고 교단 암살자들은 어떤 느낌이지?”
태현의 질문에 사디크 사제들이 대답했다.
“음. 일단 변장에 뛰어납니다. 역병이나 그런 것도 다 감출 수 있고….”
“하긴 뭐, 신성력이 있으면 그런 것도 감출 수는 있겠지.”
“한 번 모습을 드러내면 이데르고의 역병을 주변에 뿌려서 오염시키고….”
신성 권능이나 행운 스탯, 아다만티움 갑옷으로 저항할 수 있다지만 저런 광역기는 언제나 주의해야 했다.
태현은 저런 거 몇 번 걸리면 HP가 훅 깎이는 것이다.
게다가 이데르고 교단은 성물도 몇 개 갖고 있었다.
그런 사기적인 신성 권능 스킬에 잘못 당하면….
[카르바노그가 어차피 화신은 목숨 여러 개 아니냐고 묻습니다.]
‘뭐 그렇긴 하지만.’
언제나 조심해서 나쁠 건 없는 법!
“저 아키서스의 노예도 암살자가 변장한 걸 수도 있습니다.”
사제의 말에 태현은 의아해했다.
굳이 케인으로 변장할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팔 여섯 개 달린 놈으로 변장을….
“이데르고 교단 요새 발견했습니다!”
“징글징글한 놈들이네 완전. 언제 저기다가 요새까지 지어놨대.”
산 중턱에 요새 박아놓고 역병 전사들과 괴수들을 뿌리고 있는 이데르고 교단!
“이것만 잡으면 일단 아탈리 왕국에서 보이는 놈들은 대충 다 처리한 건가?”
“네. 그런 거 같아요.”
하지만 태현의 대응은 더욱더 빨랐다.
사방을 돌면서 진영은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 괴수들은 잡아버렸던 것이다.
대륙의 다른 곳을 휩쓸고 있는 이데르고 교단도 여기서는 힘을 못 쓰고 있다!
“저놈들 또 저기 지하에 공간을 만든 게 분명합니다.”
“지하 더럽게 좋아하는군.”
태현은 투덜거렸다.
태현 입장에서는 지하는 별로 좋은 곳이 아니었다.
아키서스 포병대는 넓은 곳에서 쾅쾅 때려대야 화력이 제대로 나왔지, 좁은 지하로 가면 쓰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좁은 곳에서는 플레이어들 힘만 믿고 접근전을 해야 한다!
“그래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 같….”
-이데르고 님이시여! 사악한 자들이 이데르고 님의 신전을 부수러 오고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이데르고 교단의 사제들로 보이는 이들이 나와서 대규모 기도를 하기 시작하자, 사디크 교단 NPC들이 비웃었다.
“하하! 도와달라고 해서 바로 딱딱 도와줄 것 같냐! 세상이 그리 만만해 보여?!”
“그랬으면 사디크 교단이 망하지도 않았겠지!”
“…….”
스스로 번 이미지를 스스로 깎아먹는 사디크 교단!
태현은 뭐라고 말해주려다가 포기했다.
‘자업자득이지.’
그러나 이데르고는 사디크와 달랐다.
교단 사제들의 기도에 응답해 뭔가 화끈한 걸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데르고의 성물이 힘을 받아 움직입니다!]
“!”
태현은 메시지창에 경악했다.
“공격해! 스킬 쓰기 전에 막아야 해!”
“지금은 너무 늦었어요!”
[<이데르고의 추방> 스킬이 시전됩니다!]
[자리에 있는 모든 적들이 이데르고의 신성 영역으로 이동합니다!]
파아앗!!
대규모 순간이동!
요새에 있던 놈들부터 시작해서 태현 일행과 공격대까지 전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설마 이 정도 규모로 다 이동할 줄은 몰랐다!
[<이데르고의 역병 지대>에 입장합니다.]
[처음으로 던전에…]
[명성이…]
[……]
[……]
[던전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역병 지대의 적들을 전부 처치해야 합니다!]
던전 주변은 끝없이 늘어진 역병의 황무지였다.
강물 대신 독이 끓고 하늘에는 위협적인 비행 괴수가 날아다니는 곳!
‘이데르고의 신성 영역이라면 분명 만만치 않을 텐데.’
태현도 신성 영역 권능 스킬을 써본 사람으로서, 이런 권능 스킬이 얼마나 강력한지 잘 알고 있었다.
이데르고 교단 스킬이라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어. 김태현 님. 저기 다른 사람들 있는데요?”
“???”
“에랑스 왕국에서 온 거 같은데…?”
그러나 태현이 주변을 파악하기도 전에, 먼저 온 다른 사람들을 먼저 발견했다.
에랑스 왕국에서 이데르고 교단 토벌하다가 갑자기 여기로 날아온 이들!
태현 일행보다 훨씬 규모도 작아서 불안에 떨고 있던 그들은 태현 일행을 보고 뛸 듯이 기뻐했다.
“김… 김태현 선수!!!”
“역시 김태현 선수! 저희를 구하러 온 건가요?!”
“아니. 우리도 끌려 온 건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