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149화 (1,148/1,826)

§ 나는 될놈이다 1149화

‘후후.’

태현은 기자들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

이제 케인이란 구멍은 없었다.

아무리 기자들이 노린다고 해서 뭐가 나오지는 않으리라!

‘확실하게 훈련시켰지.’

-케인. 널 위해 인터뷰 대응법을 준비해 왔다.

-오오… 뭔데? 뭔데? 발성 훈련? 거울 보고 대화하는 그런 거?

-아니. 그냥 무조건 ‘감사합니다’랑 ‘열심히 하겠습니다’만 외쳐.

-…….

-이 두 개는 외울 수 있지?

-아니 그러면 인터뷰 사실상 금지….

-고기반찬 금지할까, 아니면 인터뷰 금지할까. 네가 골라라.

-외우면 되잖아…!

기자들은 태현을 노려보았다.

케인이 멀쩡해진 데에는 이유가 하나밖에 없었던 것이다.

‘크윽. 인기도 많으면서 쓸데없는 짓을…!’

‘솔직히 실언도 좀 해주고 그래야 인간적이고 재밌지 않냐?’

‘우리도 먹고살게 해줘야지!’

전 세계의 기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쳐다보았지만, 굳게 닫힌 케인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결국 기자들은 포기하고 태현에게 물었다.

“그러면 김태현 선수는 팀 순위를 어떻게 예상하시나요?”

기자들은 물으면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언제나 모범 답안을 내놓는 태현이었다.

이번에도 딱히 달라지진 않….

“흠. 베이징 파이터즈가 최하위권으로 내려가지 않을까요?”

“!”

“!!!”

“!!!!!!”

기껏해야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죠 하하’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엄청나게 흥미로운 대답이 나왔다!

기자들은 눈을 크게 떴다. 태현이 이 정도로 친절하게 대답해 줄 줄 몰랐던 것이다.

“방, 방금 하신 말씀, 좀 더 자세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흠. 그러고 보니 저번에 케인이 거품이라고 기사 쓰셨던 분이 아니십니까?”

“…?!”

기자는 깜짝 놀랐다. 설마 태현이 얼굴까지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이템 써서 외모라도 변경하고 올걸!’

“맞는 것 같은데?”

“아, 아니. 그때는 그게 그런 기사를 쓸 수밖에 없었던 상황….”

“갑자기 말할 생각이 사라지네요.”

“비키시라잖아! 김태현 선수가 너 꼴보기 싫대!”

“저리 꺼져! 너 하나 때문에 우리한테 피해 끼치지 말고!”

태현의 말에 다른 기자들이 우르르 달려와 그 기자를 끌어냈다.

힘 스탯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

“우… 우리는 동업자잖아!”

“동업자는 무슨! 너 때문에 기사 못 따내면 책임질 거냐!”

“저리 비켜!”

동업자 정신은 조금도 없는 동료 기자들!

태현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지금이야 어떻게든 벌어놓은 승점으로 버티고 있다지만 이대로 계속되면 힘들 거라고 봅니다.”

“하, 하지만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진들은 다 A급 이상인 선수들인데, 지금 혼란이 수습되면 다시 올라오지 않을까요?”

“이번 시즌 안에는 힘들지 않을까요? 보니까 완전히 팀워크가 무너져 있던데.”

태현은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잘 알았다.

보통은 원하는 대답을 안 주지만, 가끔은 이렇게 주기도 하는 것이 좋았다.

일종의 밀당!

벌써부터 올라갈 조회수가 상상되자, 기자들은 거의 입에서 침이 흐르기 직전이었다.

그 김태현이 이렇게 서비스를 해주다니!

“그렇게 되면 2부 리그로 갈 수도 있을까요?!”

“흠. 사실 2부 리그 상위권 팀들 보면 1부 리그와 그렇게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운이 없으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죠.”

태현의 인터뷰는 그 즉시 정리되어 기사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조금의 과장이 들어간 건 당연한 일!

-김태현, <베이징 파이터즈>의 팀워크는 무너져 있는 상태. 빨리 추스르지 못하면 위험하다고 말해….

-김태현, <베이징 파이터즈> 최하위권 확정 선언.

-김태현, <베이징 파이터즈>는 2부 리그가 딱이라고 밝혀….

-김태현, <베이징 파이터즈>처럼 돈 많이 쓰고 2부 리그 가는 팀은 가치가 없다고 밝혀… 꼭 그런 건 아니고 그렇지 않을까 기자가 추측함….

안 그래도 얄미워 죽겠는데 저런 말까지 하자 <베이징 파이터즈> 팬들은 뒷목을 잡았다.

<베이징 파이터즈>가 몰락한 이유가 무엇인가.

운영진과 모기업의 간섭이나 감독과의 불화도 있긴 했지만, 직접적으로 보면….

팀 KL과의 패배 때문!

팀 KL과의 1차전 이후로 갑자기 팀이 미쳐 날뛰기 시작하고, 2차전 이후로는 감독 사퇴와 불화설이 터져 나왔다.

<베이징 파이터즈> 팬들 입장에서는 지긋지긋한 악연일 수밖에 없었다.

-제발 팀 KL 1등 하는 꼴 안 보게 해주세요!

-믿을 건 유성 게임단밖에 없지 않냐? 실질적으로 1위 역전 가능한 게….

-나머지는? 나머지는??

-나머지는 전승해도 역전 무리일 듯.

-…….

-유성 게임단 파이팅!!

-<베이징 파이터즈> 팬이라면 제발 유성 게임단 응원합시다!

-중국인이라면 제발 유성 게임단 응원합시다!!

살다 살다 유성 게임단 응원하는 열풍이 불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 꽤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유성 게임단을 응원하고 있었다.

제발….

제발 팀 KL을 한 번만 무너뜨려줘!

-리그 일정 끝나면 판온 월드컵인데 그때는 다르지 않을까?

-판온 월드컵 나가면 김태현이 한 팔 뒤로 묶고 눈 가리고 싸우냐? 헛소리 좀 작작 해라.

-아니 이 자식이… 말도 못 해? 너 김태현 팬이냐?!

* * *

그러는 동안 한 명의 감독이 면담을 하고 있었다.

“…이상입니다.”

“흠. 그렇습니까. 사베트 씨는 프런트와 마찰이 좀 심했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자기 의견이 좀 심하다고 들었는데….”

“아, 아닙니다. 저 프런트와 잘 지냅니다.”

“그래요? 이런 기사들이 뜰 정도면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여기도 망했군.’

사베트는 한숨을 쉬고 걸어 나왔다.

베이징 파이터즈와 한 판 붙고 났을 때는 속이 시원했는데, 그 뒷감당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게임단을 운영하는 대기업들은 대부분 일의 속사정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대기업에게 중요한 건 이 사람이 사고를 친 적이 있느냐 없느냐!

그런 대기업 쪽 사람들에게 사베트는 매우 위험한 폭탄이었다.

게임단에 새 감독으로 부임했는데, 윗선에서 ‘야, 저 감독 저번에 뭐 마찰 일으켜서 쫓겨난 놈이라며? 그런데 왜 그런 놈을 써?’ 말이 나오면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게임단 쪽에서도 꺼릴 수밖에 없었다.

“그냥 한동안 쉬면서 노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한데….”

사베트는 한숨을 쉬며 다음 스케줄을 확인했다. 다음 면접은 유성 게임단이었다.

유성 게임단은 특이하게 판온 내에서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왔다.

그만큼 판온에 진지하단 뜻일까?

‘근데 여기도 반쯤 틀린 것 같은데.’

차라리 2부 리그 쪽에 대기업 안 낀 게임단 찾아서 성적을 낸 다음 올라오는 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유성 게임단도 모기업인 유성 그룹 입김이 장난 아니게 세다고 들었는데….

‘신기하긴 해. 어떻게 성적을 그렇게 잘 냈지? 역시 이세연 선수 때문일까?’

이세연은 영입만 하면 팀을 끌어올릴 수 있는 S급 선수였다.

실력 있지, 책임감 있지, 머리 좋지….

예전에 지원 하나 없이 처참하게 망했던 유성 게임단이 부활한 건 역시 이세연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르겠군.’

물론 유 회장이 들었다면 분노했을 소리였다.

-내가 얼마나 투자했는데 무슨…!

* * *

면접장에 들어온 사베트는 긴장했다.

이제까지 해왔던 면접과 달라도 너무 다른 면접!

빌딩 내 중후한 면접실에서 정장 입은 임원들과 하는 면접이 아닌, 경치 좋은 바다 위 유람선에서 화려한 갑옷 입은 플레이어들과 하는 면접!

‘누가 누구야?’

로브에 지팡이 들고 있는 엘프가 부장님인지 갑옷에 대검 들고 있는 오크가 이사님인지 전혀 구분 불가능!

사베트는 헛기침을 했다. 어쩌면 이런 것도 유성 게임단의 면접 전략일지 몰랐다.

압박 면접을 이은 새로운 면접 방식, 판온 면접!

‘…뭔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베트 님. 앉으시죠.”

“앗. 예. 감사합니다.”

“저희 유성 게임단에 관심이 많다고 하셨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예! 리그 상위권 팀인 유성 게임단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그러면 현재 유성 게임단의 성적을 분석해 주시고, 그 이유와, 장점, 단점,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질문이 날아오자 사베트는 막힘없이 대답하기 시작했다.

“역시 이세연 선수를 주장으로 해서 팀이 재건된 게 크다고 봅니다. 겉으로 보면 잘 모르지만, 판온 투기장은 매번 맵과 룰이 바뀌는지라 팀워크가 매우 중요한데 이런 부분에서 조금만 흔들려도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세연 선수는….”

“흠. 그렇군요. 이세연 선수 말고 다른 원인은요?”

“류태수 선수의 능수능란한 플레이도 강력한 장점이라고 봅니다. 광전사 직업치고 저렇게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많지 않습니다.”

“그거 말고는?”

“김현아 선수의….”

“…뭐 더 다른 외적인 건 없습니까?”

면접관 플레이어는 옆을 힐끗거리며 물었다. 이상하게 옆을 신경 쓰는 것 같았다.

사베트는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뭐 그런 게 있습니까?”

“크흠. 저희 유성 게임단은 유성 그룹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 사옥도 새로 신설했고 훈련장도 지었고… 이런 외적인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신다면 좀 실망스럽습니다.”

“아앗. 죄송합니다. 제가 아무래도 게임만 보다 보니까 그런 부분에서는 좀 어두웠던 모양입니다.”

사베트는 솔직하게 말했다.

맨날 게임에만 집중하다 보니 저런 부분을 놓치게 된 것이다.

정치를 좀만 더 잘했으면 <베이징 파이터즈>에서도 그러진 않았을 터!

“알아주시니 다행입니다.”

면접관은 사베트의 솔직한 태도가 만족스러웠는지 미소지었다.

“그런데 유성 그룹이 정말 그렇게 지원을 해줍니까? 예전에 유성 게임단이 지원 못 받아서 해체됐던….”

사베트는 판온 이전 시대의 프로게이머 출신 감독.

유성 게임단 관련 이슈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크흠! 크흠!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 아니겠습니까!”

“그때 팬들이 울며불며 반대했는데 그룹에서 냉정하게….”

“아 성적을 못 냈는데 어쩌라고! 성적을 냈어야지!”

“?!”

뒤에 앉아만 있던, 왜 있는지도 모르겠던 사람이 갑자기 화를 내자 사베트는 당황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성적을 냈으면 말이나 안 하겠네. 몇 년째 꼴찌를 해놓고 뭘 그리 뻔뻔하게… 내가 다 찾아봤어! 그때 사람들이 뭐라고 했는지는 아나? 유성 게임단은 게임을 못해요, 유성 게임단은 게임을 더럽게 못해요, 유성 게임단은 게임을 몇 년째 더럽게 못해요, 이러고 다녔네! 저런 거 들으려고 게임단 운영하는 줄 아나!”

“아, 아니… 제가 감독한 게 아닌데….”

사베트는 당황했다.

이런 격렬하고 감정적인 면접은 처음!

간신히 분위기가 가라앉고 나서야 면접은 계속되었다.

“지금 1위를 달리고 있는 팀은 팀 KL인데, 이 팀에 대한 공략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무조건 장비로 승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지금 투기장은 플레이어가 레벨을 올려도 그 효과가 적습니다. 더군다나 랭커들은 레벨을 올리기가 더 힘들고요. 남는 건 장비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다만티움 장비, 그게 아니면 최소한 레벨 제한이 350… 못해도 300은 넘어가는 장비 정도는 맞춰 와야 김태현 선수의 공격을 버티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레벨 300 넘는 플레이어가 몇 명이나 있다고요? 너무 비현실적인 거 아닙니까?”

“페널티 입더라도 입을 수 있는 스킬을 갖고 있거나, 얻게 훈련을 시켜야죠.”

사베트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유 회장은 매우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왠지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이렇게 장비를 얻은 다음에는….”

“다음에는?”

“김태현 선수가 아닌 팀 KL의 다른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노려야 합니다.”

“…….”

갑자기 현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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