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18화
“산책 좀 하는 거지. 좋은 공기 마시면서.”
-…?
니팅거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태현과 니팅거스가 싸운 덕분에 주변은 완전히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매캐한 연기가 곳곳에서 올라오는데 딱히 좋은 공기가…?
-딱히 좋은 공기가….
“앗. 저기 경치 좋군. 저기 좀 가보자고.”
-예. 예.
니팅거스는 태현의 심기를 거스르기 싫어서 얌전히 발을 옮겼다.
아키서스가 괜히 또 아키서스할라!
‘흠.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군.’
니팅거스 위에서 느긋하게 경치를 구경하며,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태현이 이러는 건 딱히 산책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나중을 위한 대비!
태현이 니팅거스와 친하다는 걸 다른 사람들한테 어필해서 나쁠 거 없었다.
누군가 태현을 공격하기 전에 한 번쯤은 생각해 보지 않겠는가.
‘아. 김태현 니팅거스하고 친한데 위험한 거 아냐?’ 하고 말이다.
‘머리가 좀 굴러가는 놈이면 그냥 타고 걷는 거라는 걸 눈치챌지도….’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가끔 태현의 생각보다 훨씬 더 멍청해질 때가 있었다.
집단의 광기!
태현이 니팅거스 위에서 산책하고 있는 사이 주변에서는 벌써 이야기가 다 끝나 있었다.
-김태현이 레드 드래곤 펫으로 잡았댄다!
-김태현이 레드 드래곤 끌고 오스턴 왕국으로 간다!
-길드 동맹 끝났다!
-지금 길드 동맹 탈퇴하면 보복 안 받나요?
-길드 동맹 길드원분들 계세요? 지금 탈퇴해야 할까요?
-오스턴 왕국 남쪽 플레이어는 그냥 빠지는 게 좋을까? 도시에 투자한 거 많은데….
그러는 동안 앨콧은 달콤한 꿈에 젖어 협상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후. 김태현이 니팅거스하고 협상하는 거 보니 <화산의 저주> 퀘스트는 깼다고 봐야겠군.’
김태현이 레드 드래곤을 펫으로 들였다는 건 솔직히 안 믿겨졌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화산의 저주>는 깼다!
‘김태현이 진짜 대단한 놈은 대단한 놈이란 말이지.’
솔직히 앨콧도 반쯤은 포기한 마음이었는데, 진짜 레드 드래곤을 제압하고 협상을 이끌어냈다!
니팅거스가 미쳐서 날뛸 때 누가 이런 상황을 예상했겠는가.
앨콧은 뿌듯했다.
김태현을 의심하지 않고 따라오길 잘했다!
‘역시 인생은 선택인가….’
-앨콧! 앨콧!
‘어. 뭐야.’
앨콧은 갑자기 길드 동맹 간부들에게서 연락이 날아오자 당황했다.
‘뭐지? 설마…?’
죄지은 게 많은 앨콧은 움찔했다.
설마?
‘내가 김태현하고 퀘스트 같이하는 걸 알아챘나? 너무 노골적이었나? 랭커들도 데리고 왔으니….’
이런저런 핑계가 있긴 했지만, 간부들이 보기에 안 좋은 짓이긴 했다.
김태현을 돕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앨콧이 온갖 생각을 하는 사이 이번에는 쑤닝이 직접 귓속말을 보냈다.
-앨콧! 너밖에 없다!
-????
-김태현을 말려라! 어떻게든 말려야 해!
-뭔… 소립니까?
-김태현이 레드 드래곤을 이끌고 오스턴 왕국을 멸망시키려고 하고 있어!
-?!
처음 듣는 소린데?!
* * *
“여기가 오스턴 왕국인가.”
“예.”
“하. 고대 제국의 영토를 이은 왕국 중 하나인데도 이 정도 수준이라니. 이래서야 원….”
고대 제국의 죄수들은 쯧쯧거리며 혀를 찼다.
그렇다.
전 세계를 돌며 황제에 적합한 재목을 찾기로 결정한 죄수들!
물론 태현이 압도적인 1위긴 했지만 평가는 언제나 공정해야 하는 법.
고대 제국의 키메라 죄수들은 다른 영웅들에게도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
오스턴 왕국의 국왕, 쑤닝도 그 대상 중 하나였다.
“힉. 저 사람 뭐야?”
“괴물인가 봐.”
“케인 아냐?”
“아냐. 팔 개수가 다르잖아. 그리고 케인이 여기에 미쳤다고 오겠어?”
“하긴….”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수군거렸지만 죄수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 우리가 너무 고귀해서 감히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나 보다!
전원 다 미쳐 있는 죄수들이었기에 가능한 사고방식!
“여봐라! 국왕을 불러오도록 해라.”
“…???”
성문을 지키고 있던 길드원은 웬 처음 보는 괴물 집단이 나타나서 쑤닝 불러오라고 하자 당황했다.
뭐지? 케인 친구들인가?
그렇다면 암살자??
“어, 어디서 오신 겁니까?”
“이 문장을 봐도 모르겠느냐?”
“모르겠는데요…?”
고대 제국 지식이 부족한 길드원은 문양을 봐도 뭔지 몰랐다. 죄수들은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우리는 바로 감옥에서 나온….”
“경, 경비병! 경비병! 여기 죄수들이 있는데 뭐하는 거야!”
길드원은 깜짝 놀라서 NPC들을 불렀다.
으악! 죄수들이었잖아!
“왜 경비병을 부르지? 우리를 대접하려는 건가?”
“붙잡아! 감옥에서 언제 빠져나온 거야!”
오스턴 왕국의 병사들은 레벨이 높았다.
쑤닝의 피, 땀, 눈물, 골드를 투자해서 만든 레벨!
군사 부분에 그만큼 투자했으니 당연한 결과기도 했다.
그러나….
-고대 제국의 힘!
-키메라의 울음!
고대 제국의 죄수들은 경비병 레벨로 비벼질 수준이 아니었다.
한 명 한 명이 어지간한 보스 몬스터 수준의 강함을 갖고 있는 것!
콰콰콰쾅!
죄수들은 순식간에 경비병들을 제압했다.
“이런 무례한 놈 같으니. 이게 뭐하는 짓이냐!”
“내, 내가 할 소리거든? 야! 도와줘! 미친 죄수 놈들이 날뛰고 있어!”
“감히 우리를 모욕해?!”
따지고 보면 미친 죄수가 맞긴 했지만, 원래 사람은 진실을 들으면 발끈하는 법.
죄수들은 더욱 분노해서 날뛰었다.
-비상! 비상! 성문에 상황 발생!
-뭐? 김태현인가?
-아냐! 김태현은 아냐!
-그러면 김태현이 보낸 놈들인가? 내가 그러니까 악마 보내지 말자고 했는데 왜 보내 가지고 이렇게….
-아, 아니. 김태현이 보낸 놈들 같지도 않아. 그냥 다른 곳에서 온 NPC 같아!
-진짜? 진짜 김태현이 보낸 놈들 아니라고?
-너 이 자식… 설마 김태현이 보낸 놈들이면 안 오려고 이러는 거냐?
-아, 아니거든. 사람을 뭘로 보고! 어떻게 생긴 놈들인데?
-어… 키메라 같기도 하고… 케인 비슷하게 생긴 놈들인데….
-…근데 김태현이 보낸 게 아니라고?
-아, 하는 말 보면 안다고! 김태현이 보낸 거 같지 않다고! 빨리 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하자 고대 제국의 죄수들도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나 강했는지, 고대 제국의 죄수들이 당당히 도망가는데도 길드원들은 쫓지 못했다.
“대체 뭔 놈들이지…?”
“진짜 케인 친구 아냐?”
“아니라니까. 지들이 뭐 감옥에서 나온 죄수랬어.”
“김태현이 감옥에 가둬서 키우던 죄수….”
“아. 미친놈아! 그만해! 모든 게 다 김태현과 관련된 거냐? 그거 피해망상이야!”
길드 동맹 길드원들 중 모든 걸 다 김태현과 엮어서 생각하는 피해망상에 빠진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게 말이 되는가!
* * *
밖으로 빠져나온 죄수들은 투덜거리며 쑤닝을 욕했다.
“저런 건방진 놈들 같으니!”
“감히 우리를 몰라보고 공격해?”
“오스턴 왕국의 국왕 놈은 바로 탈락시킵시다. 그런 근본 없는 놈이 무슨 국왕 자리에 앉아 있습니까?”
“으음. 하지만 우리는 공정해야 한다. 우리야말로 고대 제국의 진정한 계승자 아니더냐?”
“하지만 그런 재수 없고 근본 없는 잡놈을….”
“아니다. 감점은 많이 하겠지만 기회는 줘야지. 놈을 찾아가서 다시 한번 시험해 보자!”
쑤닝이 알게 되면 기겁할 소리를 하고 있는 죄수들!
말이 시험이었지 괴롭힘에 가까웠다.
“음. 그런 놈한테 이 <불의 시험>은 너무 아까운데….”
“<절벽의 시험>으로 해볼까요?”
“흠, <광기를 견디는 시험>부터 해볼까?”
“<광기를 견디는 시험> 같이 귀한 걸 저런 잡놈한테요?”
<광기를 견디는 시험>은 고대 제국 때부터 있었던 전통 있는 시험이었다.
시험 보는 사람의 소중한 재산을 다 박살 낸 다음 얼마나 잘 견디나 보는 시험!
재산을 다 박살 내야 하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는 시험이었다.
그런 귀한 시험을 저런 재수 없는 놈에게 해야 한다니…
죄수들은 투덜거렸다.
“어허! 공정하게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크읏. 알겠습니다. 그러면 <불의 시험>도 준비해 보겠습니다.”
“놈이 영광스러워서 눈물을 줄줄 흘리겠군!”
* * *
-이제 다 끝났으니 작별의 시간입니다. 아키서스 님.
니팅거스는 빨리 보내 달라고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앞발로 슥슥 방향을 지시하는 폼이, 마치 퇴근 직전의 직장인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빨리 집에 보내줘!
‘그냥 기다렸다가 몸 회복되면 날아가는 게 낫지 않나?’
굳이 바다를 헤엄쳐서 건너가려는 니팅거스를 보며 태현은 의아해했다.
[그만큼 빨리 떠나고 싶었던 게 분명하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주인이시여. 저희도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고맙다. 너희들이 아니었다면 니팅거스를 호구잡… 아니, 니팅거스를 설득하지 못했을 거다.”
태현은 진심을 담아 전투천사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니팅거스와의 싸움에서 이들의 역할은 정말로 컸던 것이다.
아! 아키서스 교단에도 이런 멀쩡한 놈들이 있었구나!
무엇보다 <아키서스의 결의>로 또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감히 충언을 드리자면, 주인께서는 너무 자비로우신 부분이 있습니다. 좀 더 냉정하게 하셔도 되지 않을까….
“으음!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긴 했었지.”
[???????]
-그러면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키서스의 전투천사들은 왔을 때처럼 쿨하게 하늘로 떠나갔다.
-자, 가자 악마 놈들아! 빨리 달리지 못할까!
붙잡은 악마들을 채찍질하며!
“니팅거스.”
-…설, 설마 또 시킬 일이 있는 건….
“아니. 이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려는 건데. 네가 박살 낸 도시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에랑스 왕국 남쪽 항구 도시 하나, 오스턴 왕국 남쪽 항구 도시 하나.
깔끔하게 태워 먹은 니팅거스!
니팅거스는 당황해서 말했다.
-제가 복구할 능력은 없….
“복구하란 게 아니라, 기껏 이렇게 얻은 땅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아깝지 않나 싶어서. 여기가 길만 보면 되게 괜찮은 곳이잖아.”
항구도시라 바로 바다로 나갈 수 있는 데다가, 이 두 도시는 에랑스 왕국, 오스턴 왕국, 아탈리 왕국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다.
그냥 버려두기는 아까운 땅!
“네가 직접 다스리는 게 어때?”
-오….
니팅거스는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드래곤 영주라는 게 얼핏 들으면 어색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드래곤도 땅을 다스리긴 했다.
드래곤이 사는 레어 근처는 드래곤이 지배하는 땅!
근처의 종족들은 드래곤을 왕처럼 섬기며 넙죽 엎드리는 게 보통이었다.
태현의 말을 들으니 욕심이 났다.
언제나 황금을 탐내는 게 드래곤!
-하지만 제 레어는 여기서 너무 멀리 있습니다만….
드래곤은 자신의 둥지를 매우 중요시했다.
둥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오래 머무르는 드래곤은 없었다. 니팅거스는 레어로 쓸 만한 곳도 없는 이 주변에 오래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흠. 그러면 내가 대신 관리해주고 세금만 보내줄까?”
-오. 그래주시겠습니까?
니팅거스는 반색했다.
귀찮은 걸 다 해주고 황금만 올려보낸다니.
이런 친절한 제안을 봤나!
[니팅거스의 친밀도가 오릅니다!]
[친밀도가 올라 니팅거스와의 관계가 변합니다! 니팅거스가 당신을 친구로 여깁니다.]
[니팅거스의 레어에 들어가도 공격받지 않습니다.]
[니팅거스의…]
“그러면 영지는 내가 알아서 관리한다?”
-아키서스 님. 감사합니다.
“그래그래. 조심해서 들어가라고.”
태현은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니팅거스를 배웅했다.
이야…!
세상에 이렇게 쉽게 땅을 먹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