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37화
다른 랭커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희생정신!
케인을 욕하던 사람들도 그거 하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케인 저거 그냥 맨날 속아서 희생하는 거 아님? 보통 할 때 보면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놀라던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셈. 그런 것도 한두 번이지. 사람이 계속 속냐??
-맞는 말이다. 케인이 계속 속는다는 게 말이 되냐.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지.
-놀란 표정은 뭐임 그럼?
-원래 표정이 그랬겠지.
-아니면 팬서비스거나.
-멍, 멍청해 보이는 팬서비스를 한다고? 대체 왜?
* * *
“그나저나 프리카 대륙에도 돈 될 게 있지 않을까?”
“아주 좋은 생각이에요, 태현 님! 찾아볼까요?”
이다비가 감탄하는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태현은 움찔했다. 가벼운 생각으로 말했는데 이다비가 너무 좋아하는 것이다.
“그, 그렇게 깊게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닌데.”
“앗. 그런가요.”
이다비는 살짝 시무룩해졌다.
돈 되는 이야기라면 그녀가 활약할 기회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분명 있을 테니 이번 기회에 찾아보자.”
“!”
케인이 옆에 있었다면 ‘와 사람 차별하냐!?’ 하며 억울해했을 것이다.
케인이 ‘돈 될 게 있지 않을까?’라고 이야기 꺼냈으면 ‘넌 지금 그럴 시간에 네 스킬이나 올려라’라고 잔소리가 나왔을 터!
“잘됐네요! 새로운 재료 아이템 같은 거 발견했으면 좋겠어요.”
“상인 직업은 역시 그런 거 발견해서 교역 루트 뚫는 게 경험치 많이 들어오나?”
“그렇죠.”
이다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료 아이템을 찾아서 잔뜩 채집한 다음 파는 것만으로도 상인 직업은 경험치를 받을 수 있었다.
상인 직업의 특권!
보통 여유가 있는 파티는 상인 플레이어 한 명 정도는 뒀다. 그만큼 편리했기 때문이었다.
각종 잡템으로 인한 무게 제한을 받지 않고, 소모품 아이템도 바로 보급이 가능하며, 상인으로 인한 파티의 각종 추가 보너스 버프까지.
태현 파티도 이다비의 도움을 톡톡히 받고 있었다. 특히 이다비는 상인 중에서도 손꼽히는 랭커 아닌가.
태현 일행을 같이 따라다니면서 온갖 희귀 아이템들을 처리하니 레벨이 안 오를 수가 없었다.
“똑같은 재료 아이템 같아 보여도 성능이 다 조금씩 다르잖아요? 좋은 거나 유행 타는 거 선점해서 최대한 많이 팔면 이득이 껑충 뛰니까….”
<하급>, <중급>, <뛰어난>, <희귀한>, <놀라운>, <매우 보기 드문>, <아키서스가 무릎을 칠 정도> 등등.
이런 수많은 수식어들에 따라 아이템의 성능이 달라졌다.
상인은 감정 스킬 특화로 인해 남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볼 수 있었고, 더 좋은 아이템들을 선점할 수 있었다.
“난 거의 자급자족했던 데다가, 상인으로 안 뛰어서 잘 모르겠군.”
“상인 아니면 잘 모르긴 해요. 알 필요 없는 일이기도 하고요.”
요즘 인기 있는 재료 아이템들은 무엇인가?
어떤 길드, 어떤 플레이어가 어떤 아이템을 대량으로 원하는가?
이런 걸 미리 알아채고 준비해놨다가 파는 것이 일류 상인 플레이어!
‘…주식이잖아?!’
어쩐지 상인 플레이어들 눈빛이 다 번쩍이더라!
“보통 고렙 플레이어들은 희귀한 장비 같은 걸 발견해서 비싸게 파는 걸 선호하던데, 사실 상인 플레이어들은 물량을 대량확보한 다음 대량으로 판매하는 걸 선호하거든요.
“그렇다면 재료 아이템이군.”
“네. 그렇죠.”
전투 직업 플레이어들은 길가에 재료 아이템이 널려 있어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상인은 여기서 돈을 본다!
‘흠. 카르바노그. 여기 뭐 쓸 만한 재료 아이템 없을까?’
[카르바노그가 자기를 무슨 신이라도 되냐며 황당해합니다.]
‘너 신 맞잖아.’
[…앗! 그랬었지! 하며 카르바노그가 당황해합니다.]
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떠올린 카르바노그는 제안을 했다.
[<토끼 지배> 스킬들을 써서 근처의 토끼들을 부리자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어, 의외로 괜찮은데?’
[…….]
카르바노그의 제안은 의외로 그럴듯한 제안이었다. 태현은 바로 토끼 지배 스킬을 사용했다.
카르바노그가 빌려준 권능 중 하나인, 토끼 조종!
파파파팍-
근처에 있던 토끼들이 튀어나와 태현의 명령을 따르기 시작했다.
‘언데드 군대보다 토끼가 낫나?’
[카르바노그가 당연하다며 화를 냅니다. 죽은 시체 놈들이 무슨 재료가 좋은지 어떻게 알겠냐고 말합니다.]
‘하긴 그것도 그렇군.’
언데드가 토끼보다 싸움은 잘하더라도 재료 찾는 건 불리할 거 같다!
사방으로 토끼들을 흩어 보내고, 태현은 이다비와 다시 움직였다.
화산지대에서 불사조를 찾으려면 인근을 계속 뒤져야 할 테니까!
‘신의 예지를 써도 길이 여러 개 나오고… 상당히 멀리 있나 본데.’
“태현 님. 방송 보니까 태현 님이 집안일을 다 하시던데요….”
“응?”
“나누는 게 낫지 않나요?”
이다비가 봐도 좀 아니었던 수준!
이다비가 매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자, 태현은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아냐. 이 정도는 별로 방해 안 돼. 충분히 할 만하고.”
“하지만….”
“그리고 케인한테 집안일 시키면 솔직히 불안하다고.”
“…!”
그런 이유 때문이었어!?
그러는 사이 태현은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이다비. 나는 그렇다 치고… 너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
“저는 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이다비는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보였다.
판온 수익+방송 수익+길드 운영 수익+선수 수익=떼부자!
“…돈 말고… 다른 거 있잖아.”
“더 많은 돈이요?”
“…하루에 어떻게 지내냐는 뜻이었어.”
“일어나서 동생들 학교 보내고, 집안 정리하고, 파워 워리어 길드 보고서 확인하고 캡슐 들어가고, 간단하게 운동하고….”
이다비가 손가락을 꼽으며 하는 말에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게임만 하고 사냐?!
“아니. 게임만 하지 말고 다른 것도 좀 해야지! 친구 만나!”
“…태현 님이 할 소리는 아닌….”
“…….”
“그리고 제 친구들 게임 속에 있거든요.”
이다비는 태현을 가리키며 말했다. 태현은 할 말이 없었다.
“다른 친구들은 없… 아냐. 내가 괜한 걸 물었다.”
태현도 딱히 밖의 다른 친구들이 많은 편은 아니었던 것!
태현이 걱정하는 것 같자 이다비는 급히 말을 이었다.
“그, 그렇지만 다른 플레이어들하고도 연락하고 지내니까요. 그 정도면 충분하죠!”
“어라? 누구랑?”
“어… 일단 에반젤린 씨요.”
“!?”
태현은 깜짝 놀랐다.
“걔랑 왜?!”
“가끔 판온 관련해서 물어보거나 하던데요?”
“그, 그렇군… 하긴 물어볼 수 있겠지.”
이다비는 <파워 워리어> 길마였고, 그쯤 되면 일반 플레이어보다 아는 정보가 많았다.
에반젤린 같은 아싸가 물어보기에는 딱 맞는 사람!
“그리고 가끔 이세연 씨한테도 연락 오던데요.”
“!??!?!?!?”
아까보다 몇 배는 더 놀라는 태현!
“걔가 너한테 왜 연락을 해?!”
“아. 이세연 씨는 게임 외적으로 따로 오는 건 아니고요, 길드 쪽 계정으로 익명의 메시지를 달던데, 영상 재밌는데 더 올려달라고….”
“…….”
“나름 아이디 숨기려고 하신 것 같은데 다 티가 나던데요.”
태현 퀘스트를 다룬 영상에 ‘재미있네요^^ 더 올려주세요 ^^’ 같은 리플을 달았던 것!
이세연 본인은 철저하게 숨겼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관리자 계정에서는 다 보였다.
“그… 그래. 친구들은 그 정도면 충분한 것 같아….”
사실 친구가 그렇게 필요할까 싶기도 해!
“그리고 사실 밖에 나가면 알아보시는 분들이 좀 많이 생겨서….”
“윽.”
태현은 찔리는 목소리를 냈다. 유명해진 다음부터 밖에 나갈 때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었다.
“아, 아뇨! 불만인 건 아니고요. 팬들이 알아봐주시면 고맙죠.”
“그러고 보니 다시 놀러가기로 해놓고 나가질 못했네. 혹시 가고 싶은 곳 있어?”
“아. 그거 말인데요. 생각해 보니 더 좋은 방법이 있었어요.”
“?”
“판온에서 놀러나가면 되잖아요!”
이다비는 아주 좋은 생각을 했다는 듯이 외쳤다.
생각해 보니 판온 밖에 집착했던 건 다른 팀원들 때문이었다.
다른 팀원들만 없으면 판온 안이나 밖이나 별 차이 없잖아?
주변에서 쳐다볼 눈도 없고, 갈 곳도 많고, 남는 것도 많은 완벽한 대책!
“…이, 이다비. 그건 내가 봐도 좀….”
“아니 어째서요?!”
판온 폐인인 태현도 경악할 만한 발상!
-흑흑이여. 용암지대 길을 찾아왔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가?
-좀 더 기다리고 있어! 지금 나갔다가는 아무리 너라도 위험해!
* * *
[카프 화산지대에 입장했습니다!]
[열기로 인해 이동 속도가…]
[화염 공격에…]
[장비의 내구도가…]
[소비 아이템의 지속 시간이 줄어…]
[……]
“으윽. 나왔다. 찜질방.”
“찜질방이 뭐야?”
“그런 게 있어.”
플레이어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카프 화산지대로 입장했다.
들어오는 순간 후끈한 열기가 전신으로 느껴지는 이곳!
어지간해서는 잘 오지 않는 곳이었다. 누가 땀 흘리면서 헉헉대는 걸 좋아하겠는가.
“…잠깐만?? 뭐야? 저것들은?”
“왜? 뭔데?”
“저것들 아까 자리에 없던 놈들이잖아?”
플레이어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히 아까 파티 자리에 없던 플레이어들이 생겨나 있다!
어디서 온 놈들이지!?
“너희 뭐야?”
“뭐가? 시비 거는 거냐?”
“아니… 시비가 아니라. 어디서 온 거야? 카프 화산지대에 퀘스트 깨러 온 건가?”
그 질문에 상대방들은 씩 웃었다.
“퀘스트 깨러 온 거지. 그럼 왜 왔겠어?”
“!!!”
‘이 자식들…! 김태현이 퀘스트 걸었다는 거 들었구나!’
그 웃음에 플레이어들은 깨달았다.
소문이 벌써 퍼진 것이다!
“노드란체 개척단 입장권이라니. 그런 걸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있어야지.”
“대체 어디서 들은 거냐?!”
“사람이 몇 명인데 안 퍼져나갈 줄 알았어? 게다가 김태현이라고. 팀 KL 방송 꺼지자마자 사람들이 얼마나 여기로 왔는데.”
플레이어들은 경악했다.
새삼 놀라운 팀 KL의 인기!
팀 KL의 방송이 꺼지자마자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프리카 대륙으로 움직인 것이다.
-김태현이 뭐하는지만 찍어도 방송 대박이다!
-방송은 관심 없고 김태현이 뭐하는지 너무 궁금해!
-김태현이 포상을 걸었다니… 대체 그게 뭐냐?
어마어마한 인기였다.
물론 전부 다 그런 마음으로 온 건 아니었다.
-김태현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흥. 내 제물로 삼아주마.
-김태현을 한 번만 밟으면 위로 올라갈 수 있다!
인기가 많으면 자연스럽게 꼬이는 벌레들!
태현의 명성이 절대적일수록, 그 태현을 밟고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나오게 마련이었다.
아무리 무서워도 욕심을 내는 놈은 꼭 나오게 마련!
덕분에 카프 화산지대는 졸지에 인기 사냥터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모인 사람들이 수군거릴 정도!
“야, 이건 너무 많은데…?”
“이 분위기에서 김태현 퀘스트 스틸해도 되나? 맞아죽는 거 아냐?”
“까, 까짓거 하면 되지. 김태현하고 싸울 필요도 없어. 놈이 노리는 퀘스트 스틸만 해도 그걸로 몇 달은 유명해질 거다.”
꿍꿍이를 갖고 온 플레이어들은 서로 속삭이며 이야기를 나눴다.
김태현을 잡는 게 가장 대박이긴 했지만 그건 솔직히 좀 무리 같아 보였고….
김태현 퀘스트 스틸만 해도 충분해!
지나가던 플레이어 파티가 고개를 돌리더니 물었다.
“방금 김태현 퀘스트 스틸한다고 했냐?”
“…아니. 김태현 퀘스트 참가해도 되냐고 한 건데.”
“아. 그래? 내가 잘못 들었나 했네.”
‘휴.’
그러나 플레이어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들은 바로 시선을 교환했다.
-저것들 뭐냐?
-약탈꾼 놈들 맞지?
약탈꾼, 범죄 플레이어, 등등으로 불리는 악 성향 플레이어들!
악명이 매우 높고, PK나 각종 범죄를 신경 쓰지 않는 이들은 모두가 꺼려 했다.
-티는 안 나는데.
-아이템으로 숨겼겠지. 어떡하지?
-이거 고발하면 김태현이 포상해 주지 않을까?
-…너 천재냐!?
* * *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미친 듯이 달려서 화산지대로 들어가는 사이, 태현과 이다비는 느긋하게 들어왔다.
남이 보면 ‘데이트하세요?’ 소리가 나왔을 모습!
[카르바노그가 의아해합니다.]
‘뭐가?’
[예전에 봤을 때와 달리 화산이 좀 더 커진 것 같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