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01화
-좋아 보이는 이야기네요.
-그렇죠? 다른 팀 KL 선수들한테도 들어온 이야기입니다.
태현 본인은 돈에 그렇게 욕심이 없었지만 다른 선수들은 아니었다.
특히 케인이나 케인 같은 선수는 광고 이야기만 들으면 솔깃해서 눈을 반짝였다.
* * *
-스포츠 용품 광고? 나 나갈 수 있어! 찍고 올게!
-커피 광고? 게임 속 캐릭터로 찍으면 되지 않나? 잘생겨지는 포션 먹으면 돼! 찍게 해줘!
-여성 속옷 광고? 나도 착용할 수 있으니까….
-그만해 미친놈아!
돈에 미친 플레이어!
물론 이런 욕심이 잘못된 건 아니었다. 선수의 수입 중 하나가 이런 것이었으니까.
태현도 들어오는 광고 제안은 최대한 다른 선수들이 나갈 수 있게 해줬다.
사실 광고주들이 가장 원하는 건 태현이었지만, 다른 선수들도 이제 충분히 유명한 상태였다.
꿩 대신 닭이라지만, 그 닭이 보통 닭들이 아닌 것!
-혹시 케인 선수, 영상에 김태현 선수 합성해 넣어도 됩니까?
-…저 혼자 나가면 뭐 안 돼요?
-아, 아니. 케인 선수가 문제라는 게 아니라…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
-으윽. 그럼 뭐… 김태현도 자기가 직접 출연하는 게 아니라 플레이 영상 수정해서 광고 찍는 건 괜찮다고 했으니까 추가로 요청하면 될 거 같은데요.
-잘됐네요! 저희가 생각한 컨셉은 김태현 선수와 친하게 어깨동무하고 같이 걸어가는 그런 컨셉인데… 저희 보험회사와 참 잘 어울리지 않습니까? 두 분의 우정은 유명하니 더더욱 화제가 될 겁니다.
-어, 김태현은 저한테 어깨동무 같은 거 안 하는데요?
아무리 돈에 미친 케인이라지만 뭔가 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보통 보험회사 광고는 든든함이나 안심감이 느껴져야 하지 않나?
김태현하고 케인이 나오면 한쪽이 한쪽을 버릴 것 같은 불안함만 느껴질 것 같았다.
그러나 보험회사 측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 가시죠!
-아니, 진짜 아닌 거 같은데. 허위광고로 욕먹을 거 같은데… 전 책임 안 집니다??
물론 광고는 대성공이었다.
케인은 더더욱 이해가 안 갔다.
[묵묵히. 당신의 곁을 지킵니다. XX보험.]
‘아니, 사람들은 왜 저기서 감동을 받는 거지?’
이렇게 케인은 돈만 주면 길드 동맹 광고도 나설 놈이었지만, 매번 광고를 찍으러 다니진 않았다.
들어오는 대로 광고를 찍었다가는 일주일 내내 돌아다녀도 몸이 모자랄 테니까.
-흑흑… 이번 광고는 서민들의 삶을 도와주는 곳에서 하는 광고라고 했단 말이야…!
-…너 거기 사채업 광고인 건 알고 있지?
-뭐?!?! 아니 이 자식들이…!?
-수혁아, 에이전트 안 통하고 저놈한테 접촉하는 놈 있으면 바로 보고해라. 저거 진짜 사고 칠 놈이네.
-아, 아니. 정말 친절하게 생긴 사람이었는데…!
광고도 좋았지만 게임 레벨 업이 느려지면 본말전도였다.
그래서 태현은 기존 영상을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나갈 수 있는 광고 위주로 찍었다.
당연히 기업 이미지도 신경을 썼고!
왜 비싼 돈 주고 에이전트를 고용했겠는가. 이런 거 관리하려고 하는 거지.
선수 관리도 에이전트의 일 중 하나였다.
* * *
-다른 선수들도 좋아하겠네요. 케인은 특히.
-하하하….
빈센트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웃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빈센트가 선수 관리에서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건 케인이었다.
얼핏 생각해 보면 가장 스타 선수인 태현한테 공을 들여야 하지 않나 싶겠지만….
태현은 정말 손이 안 들어가는 선수!
수많은 선수들을 봐온 빈센트가 감탄할 정도로 철저한 자기관리를 하는 게 태현이었던 것이다.
선수들 중에서도 저렇게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는 사람은 열 손가락에 꼽혔다.
인기가 많아지거나 성적이 좋아지면 좀 나태해지게 마련인데, 태현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생활 패턴을 유지했다.
어디 그뿐인가?
굳이 빈센트가 조언하지 않아도 팀 KL을 어떻게 끌고 나갈지 명확한 비전을 갖고 있었다.
빈센트와 계약하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바로 수십 가지의 지시 사항을 말한 것도 그중 하나!
거기에 에이전트에게 따로 시키는 것도 별로 없었다.
유명한 선수들은 자기가 갑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에이전트한테 온갖 불합리한 요구를 해왔다.
어처구니없었지만 이런 비위를 맞추는 것도 에이전트의 능력인 것이다.
희귀한 콘서트 티켓을 구해와라, 유명 경기의 입장권을 구해와라, 어디 브랜드의 차가 좋아 보이는데 받아와라 등등.
그런데 태현은 판온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까다로움이 전혀 없었다. 다른 방탕한 선수들한테 예시로 보여주고 싶을 정도였다.
다른 선수들도 태현만큼은 아니더라도 성실하고 괜찮은 선수들이었다. 멋대로 문제를 일으킬 선수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케인은 달랐다.
‘귀가 너무 얇아!’
뭔 놈의 제안만 들어오면 솔깃해하는 그 얇은 귀 때문에 에이전트인 빈센트는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빈센트가 봐온 수많은 선수들 중에서도 없던 특이한 골칫거리!
그나마 전권을 맡아놔서 다행이지…!
-장비에 로고 새기는 거 정도면 충분히 할 만한데요. 어디 쪽에서 제안이 왔습니까?
-한두 군데가 아니라서… 원하시는 곳이 있다면 저희 쪽에서 제안도 가능합니다. 김태현 선수라면 받는 쪽에서도 충분히 고려해 볼 겁니다.
* * *
“…이런 제안을 받았는데.”
“지금 당장 새기죠!”
이다비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장비에 기업 이름 하나 새기는 걸로 광고비를 받다니!
세상에 이렇게 좋은 일이 있을 줄이야.
“좌측부터 상단까지 공간을 더 확보하면 여러 개를….”
“그건 좀 아닌 거 같다.”
“선배, 유성생명은 어때요? 아니면 유성카드는?!”
태현은 잠시 생각해 봤다.
유성의 이름을 등에 달고 판온을 하는 모습을.
‘음. 어르신이 혈압 올라서 쓰러지지 않을까 싶은데.’
-저, 저놈이 유성 게임단을 조롱하려고…!
고민하는 사이 저 멀리서 플레이어 한 명이 달려왔다.
“헉헉헉….”
익숙한 얼굴이었다.
세계수 랭커 중 한 명인 콰드로!
“김… 김태현! 살려줘!”
“앗. 너희 아직도 살아 있었냐?”
태현은 놀란 표정으로 콰드로를 쳐다보았다.
“…….”
“…….”
“아니. 그렇게 약한 소리만 하길래 곧 잡힐 줄 알았지.”
태현의 냉정한 말에 콰드로는 속으로 울었다.
저 저 저 피도 눈물도 없는….
“그래서 골짜기로 온 건가? 좋은 생각이군. 골짜기에서는 길드 동맹이나 미다스 길드원들이 설칠 수 없을 테니까.”
“!”
콰드로는 눈을 크게 떴다.
생각해 보니 그런 좋은 방법이…!
“대신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잡으려고 하겠죠.”
“하긴 그러네.”
“????”
콰드로는 혼란스러워했다.
아니 둘이 적대 관계 아냐??
“파워 워리어하고 길드 동맹은 사이 안 좋지 않…나?”
“그건 그거고 돈은 돈이지. 길드 동맹한테서 돈 받을 수 있는데 굳이 기회를 날릴 필요는 없잖아.”
이 유연함이 바로 파워 워리어!
“그래서 왜 불렀냐? 여기 있게 해달라고? 그런 건 굳이 허락 안 받아도 괜찮은데. 앗. 혹시 땅을 살 생각이라면 남는 땅이….”
태현은 은근슬쩍 뱀파이어들이나 거인들이 사는 근처 땅을 팔려고 말을 걸었다.
지금 골짜기에 빈 땅들은 미친 듯이 팔려 나가고 있었다.
별생각 없이 미리 사둔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존버… 존버가 답이었다…!’ 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릴 정도!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사람들이 꺼려하는 땅은 있었다.
뱀파이어나 거인들이 머무는 구역!
뱀파이어들은 골짜기 외곽의 그늘지고 어두컴컴한 곳에 머물렀고, 거인들은 골짜기 뒤쪽 산맥에 올라가 움막을 짓고 살았다.
골짜기 안쪽의 잘 정비된 광장 구역 같은 곳이 엄청나게 인기 있는 것과 정반대였다.
‘미리 팔아치워야지.’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지금 잡혀 있다고!”
“결국 잡혔나. 뭐 어쩌겠냐. 부활해야지. 다음에는 안 잡히게 노력해 봐.”
“그게 아니라! 정령왕한테!”
“???”
태현은 의아해했다.
뭔 정령왕?
그러는 사이 콰드로는 횡설수설하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정령왕이 갑자기 내 부하라면서 너희들을 붙잡았는데, 너희하고 현상금 사냥꾼들 중 누가 더 나하고 친한지 싸움이 붙어서 정령왕이 둘 다 붙잡아놨다고?”
“그래! 방송 보면 알잖아!”
“내가 너희 방송을 왜 보냐?”
“…….”
콰드로의 눈가가 순간 촉촉해졌다.
맞는 말이지만 그렇게 말하니까 너무 아프잖아…!
“어쨌든 지금 당장 가서 우리를 도와줘! 현상금 사냥꾼 놈들을 한 번에 보내버릴 수 있다고!”
“흠… 잠깐만.”
“?!”
“저거 함정 아냐?”
태현은 곧바로 일행들과 쑥덕대기 시작했다.
이야기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정령왕이 왜 태현을 도와주려는 걸까?
어떻게든 태현을 불러오게 하려는 것 같은데….
함정 아닐까?
[카르바노그가 지극히 논리적이라며 감탄합니다.]
아키서스의 화신이란 걸 알고서도 부르려고 한다니.
이건 암살 시도가 분명하다!
카르바노그도 동의하자 태현의 의심은 한층 더 불을 질렀다.
다른 일행들도 말리지는 못할망정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함정 같아요.”
“저런 놈들을 뭐하러 살려뒀겠어요. 선배를 부르려고 한 거겠죠.”
“소름끼치는군. 정령왕. 역시 정령왕쯤 되면 책략도 장난이 아니네. 당할 뻔했어.”
아무것도 안 했는데 어느새 악당이 되어버린 정령왕!
“김태현! 가야 한다니까!?”
“콰드로. 넌 속았다.”
“…??”
“정령왕이 왜 널 안 잡았겠냐? 날 불러오려는 미끼로 쓰려고 한 게 분명해.”
“아, 아니. 그건 너무 많이 나간 것 같은….”
“네가 여기 어떻게 올 수 있었지?”
“정령왕한테 허락 받고 김태현 불러온다고 해서… 장비 다 맡기고… 헉!”
콰드로는 깨달았다.
정말 수상하다!
정령왕이 뭐가 아쉬워서 김태현을 그렇게 부르려고 한 거지?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여기 와서 생각해 보니 이상하게 수상했다.
“하, 하지만 안 가면 거기 놈들은…?”
“뭐 자기가 알아서 살아남아야지.”
“…그러면 되겠네!”
콰드로는 재빨리 마음을 굳혔다.
어차피 한 번 잃은 장비, 두 번 잃어도 큰 차이 없었다. 그렇게 귀한 장비도 아니고….
목숨이 우선이지!
습자지보다 얇은 세계수 랭커들의 우정이었다.
* * *
“케인 경, 정말 대단하십니다.”
“후후. 내가 좀 대단하지. …그런데 왜 갑자기?”
4왕자와 같이 에랑스 왕국으로 향하던 케인은, 갑작스러운 기사들의 칭찬에 멈칫했다.
“그렇게 적이 많으신데도 당당하게 대로로 가시다니. 명예가 없는 적 따위는 두렵지 않다는 거 아닙니까?”
“케인 경의 모습은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
그제야 케인은 자기가 뭔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당당하게 오스턴 왕국을 지나고 있는 것!
에랑스 왕국에 빨리 가려고 오스턴 왕국을 통해 가고 있다니. 생각해 보니 간이 부을 대로 부은 짓이었다.
케인에게 원한을 가진 길드원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을 텐데….
실제로 길에서 케인을 본 플레이어들은 깜짝 놀라면서 수군거렸다.
“진짜 케인이야?”
“팔 더 달린 거 보니까 케인 같은데?”
“와, 케인 진짜 대단하다. 길드 동맹은 신경도 안 쓰네. 상남자 그 자체 아니냐?”
“길드 동맹은 거들떠도 안 본다는 거지.”
“길드 동맹은 거들떠도 안 보는 케인!”
“케인이 길드 동맹은 거들떠도 안 본다고 했다고?”
“뭐? 케인이 길드 동맹은 다시 태어나도 안 된다고 했다고?”
“케인이 길드 동맹은 회귀해도 안 된다고 했다는 게 사실임?”
케인이 당당하게 오스턴 왕국을 지나 에랑스 왕국으로 가고 있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안 퍼지면 그게 이상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