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00화 [축전]
사람이 화가 났을 때는 옆에서 입조심해야 했다.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덤터기를 쓸 수 있었으니까.
그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2왕자와 3왕자!
안 그래도 해독제 사건으로 단단히 찍힌 상황에 태현을 욕하다가 추가로 찍힌 것이다.
그 때문에 원정대에 강제로 참가하게 된 것!
물론 선발대처럼 소규모로 가는 것도 아니고, 고렙 기사들부터 시작해서 성기사, 주교들까지 대규모로 같이 가는 데다가 심지어 요새까지 만들어져 있으니 그렇게 위험한 건 아니긴 했다.
4왕자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나은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귀하게 큰 왕자들이 그런 것에 만족할 리가 없는 법!
설명을 들은 4왕자와 케인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자업자득이잖아?”
“뭐… 뭐라고? 감히 이 천한 놈이…! 어디서 추한 겉모습을 하고서 입을 놀리는 거냐!”
“…이, 이 자식이 치사하게 사람 얼굴을 가지고 공격을 해?”
케인은 자기 등 뒤에 덜렁거리는 다른 팔들을 생각지 못하고 화를 냈다.
원래 찔리는 게 많은 얼굴!
“얼굴을 말하는 게 아닌 것 같… 형님들! 제 기사한테 그게 무슨 무례입니까!”
“시끄럽다! 다 너 때문이다!”
“눈치 없게 나선 것도 모자라서 거기서 공을 세우다니! 눈치 없는 놈!”
계속되는 폭언에 4왕자의 다른 기사들도 발끈한 모양이었다.
숫자는 적어도 4왕자를 충성으로 섬기고 있는 기사들!
저런 모욕을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됐어. 참아라.”
“케인 경! 하지만….”
“상대해 주는 것도 아까운 놈들이야!”
‘보상 아직 못 받았는데 괜히 에랑스 왕국 고위 NPC하고 싸울 필요 없겠지?’
케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기사들을 말렸다.
4왕자가 받은 모욕은 알 거 없고, 자기 보상 받기 전에 싸움만 안 만들려는 얄팍한 생각이었다.
[4왕자의 호위기사들이 당신의 말에 감격합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에랑스 왕국 내 평판이 오릅니다.]
“큭….”
“감히 천하고 추한 놈 주제에 멋진 척을 하다니… 두고 보자!”
2왕자와 3왕자는 씩씩대다가 가버렸다.
“저런 무례한 사람들 같으니! 케인 경. 아무리 왕자라 하더라도 이번 일은 선을 넘었습니다!”
“걱정 마라! 다 생각이 있으니까.”
“앗, 무슨 생각이신지…?”
“김태현한테 일러바치겠다!”
“…….”
“…….”
“왜, 왜?”
* * *
“고생 많았다. 둘 다.”
돌아온 케인과 흑흑이의 모습에, 일행 모두가 손뼉을 치며 축하를 해줬다.
그 모습에 케인은 쌓였던 원한도 사그라드는 걸 느꼈다.
“너희…!”
‘이럴 때 축하 안 해주면 케인은 오래 삐질 수도 있어.’
‘귀찮은 녀석 같으니.’
“요새는 잘 처리했나?”
“거기서 항의하던 놈들을 다 휘어잡았지! 그 자식들은 거기서 더 퀘스트 깨야 할걸?”
케인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단단히 코가 꿰인 (전) 대형 길드 공략 파티들!
생각만 해도 속이 시원했다.
그 모습에 태현은 살짝 불안해졌다.
‘이 자식 왜 이렇게 자신만만하지?’
[카르바노그도 괜히 불안해진다고 말합니다.]
케인이 자신만만해서 좋았던 일이 별로 없었던 것!
“이제 에랑스 왕국 가서 국왕 만나고 보상만 받아오면 돼. …그런데 뭐하고 있는 거야?”
“영지 관리.”
케인은 태현이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앉아 있다는 걸 깨달았다.
평소와는 다른 지적인 모습!
의자에 앉아 뭔가 끄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헉. 똑똑해 보이잖아?’
생각해 보니 태현은 실제로도 똑똑한 인물이긴 했다. 평소 하는 짓을 보면 전혀 연상할 수는 없었지만….
“뭔 관리?”
“이것저것 쌓인 퀘스트 관리하고 건설 목록하고 종족 관리하고 있다.”
태현이 영지에 없을 때에는 아키서스 교단 NPC들한테 관리를 맡겨 놓았다.
‘너무 멋대로 굴면 아키서스형에 처하겠다’라고 말했기에 폭주하는 놈들은 없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정리는 필요했다.
“…고블린 지하 요새와 지하 골렘 제작소는 뭐냐? 언제 이런 만들어졌지? …다 만들어졌으니 부술 수는 없겠군. 아니, 뭔 지하에 사교장을 만들어? 이놈들이 미쳤나?”
얼마 없는 골드도 빨아먹으려는 각 종족 놈들!
태현은 영지 건물 목록을 일일이 확인하고, 성능 확인하고, 골드 비교한 다음 필요한 건 쳐냈다.
가끔은 이런 메시지창이 날아왔다.
<뱀파이아 종족의 불만-수상쩍은 뱀파이어 과수원>
뱀파이어 종족이 관리하는 수상쩍은 뱀파이어 과수원은 질 좋은 포도가 나오는 것으로 유명한 과수원이다.
이런 과일이 없다는 건 뱀파이어들에게 커다란 불만!
뱀파이어들은….
‘설마 반란이라도 일으키나?’
태현은 긴장했다.
…자기 돈으로 영지의 땅을 사 과수원을 짓겠다고 한다. 이를 거절한다면 뱀파이어들은 크게 실망할 것이다.
“…이런 기특한 녀석들!”
태현은 바로 수긍했다.
그래!
좀 니네들 돈으로 지어!
이 얼마나 기특한 생각인가!
이게 다 태현이 여기 있는 종족들과 사이가 좋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사이가 나빴다면 ‘저 영주 놈이 우리를 무시한다!’며 정말 반란도 일어나는 게 영지 관리.
길드 동맹 쪽에서 반란이 왜 그렇게 잦았겠는가? 관리도 떨어지는데 세금은 더럽게 높으니까 그랬던 것이다.
그러나 태현의 영지는 기본적으로 태현을 좋아해서 모인 종족들이 대부분!
드워프, 고블린, 뱀파이어, 천사, 악마, 붙잡힌 악마 등.
어쨌든 골드에 쪼달리는 태현에게 이런 메시지창은 매우 반가웠다.
‘후. 아키서스 교단 NPC 놈들보다 몇 배는 더 기특한 놈들이야.’
원래는 교단의 영웅들을 새로 데리고 와서 아키서스 교단에 넣을 생각이었다.
나도 좀 유능한 NPC 가져보자!
그러나 교단의 영웅들은 알고 보니 생각보다 더 위험한 이들이었다.
영지 관리 맡겼다가는 정말 큰일이 날 수 있다는 걸 태현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놈의 영지는 가도 가도 아슬아슬한 게….’
“어, 그러면 에랑스 왕국은 나 혼자 가냐?”
“보상 받는 거잖아? 혼자 갔다 오면 되지.”
“그거야 그렇긴 한데….”
케인은 망설였다.
왠지 모르게 혼자 가면 무서워!
…라고 말하려니 이상하게 부끄러웠다. 사실 부끄러운 일 맞았다.
‘귀족 NPC들은 상대하기 무섭다고!’
“왜, 귀족 상대하기 껄끄러워? 걱정 마. 넌 명성도 높고 4왕자와 친해서 그렇게 안 까다로울 거야.”
“그, 그렇지? 하긴. 내 명성이 있는데.”
“잘 갔다 와라. 음… 다음 퀘스트로 어디를 갈지 고민인데.”
태현은 영지 관리를 하면서 동시에 다음 퀘스트를 고민했다.
악마 놈들이 눈에 불을 켜고 태현을 찾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퀘스트를 아예 안 할 수는 없는 법.
‘뭐, 어차피 아키서스 포병대를 끌고 가면 악마들도 데리고 가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날 쫓아오겠지.’
“펠마스, 갈락파드. 지금 알려진 권능의 위치가 어디 있지?”
중앙 대륙에서 아예 멀리 떨어진 곳보다, 중앙 대륙에서 가까운 곳부터 먼저 찾을 생각이었다.
“아스비안 제국에 하나 있다는 소문이 있고….”
“아스비안 제국은 넘어가자.”
“프리카 대륙 쪽 밀림에 잊혀진 신전이 있다는 소문이….”
“프리카 대륙도 넘어가자고.”
“…그렇게 다 거르시면 남는 게 없습니다만….”
“네가 가냐? 응? 이번 원정에는 같이 갈래?”
“아닙니다!”
펠마스는 재빨리 말을 바꿨다.
다른 건 몰라도 태현이 권능 하나 찾기 위해 얼마나 위험한 원정을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가끔 따라가는 에드안이 ‘아이고 화신님 따라다니다가는 제명에 못 죽겠다’ 같은 말을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좀 날로 먹는 권능 없냐? 매번 마계 가서 악마 공작 성 훔친 다음에 악마 공작한테 어그로 끌 수는 없잖아.”
태현의 말에 펠마스는 황당해했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태현의 방식이 잘못된 것 같은데….
“하지만 다 소문입니다만….”
“쯧. 어쩔 수 없지.”
어디어디에 뭘 하면 권능이 나온다! 처럼 쉬운 퀘스트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가서 조사하고 근처를 뒤지고 뒤져야 했다.
권능 퀘스트는 만만치 않았던 것!
“보자… 어. 여기는 괜찮아 보이는데.”
태현이 고른 건 자이언 산맥의 소문이었다.
자이언 산맥.
오스턴 왕국에서 동쪽으로 가야 나오는 우르크 지역에서, 더 동쪽으로 가야 나오는 거대한 산악 지역.
이제까지 알려진 중앙 대륙 영역의 동쪽 끝이나 다름없었기에 플레이어들도 거의 가지 않은 미개척지 중 하나였다.
프리카 대륙이나 아스비안 제국은 가더라도 자이언 산맥은 잘 가지 않을 정도.
이유는 간단했다.
별로 얻을 게 없어 보여서였다.
봐도 봐도 산과 바위투성이인 자이언 산맥에 들어서면 맞이해 주는 건 거기에 사는 거인 종족들!
일단 자리만 잡으면 나오는 자원들이 많은 프리카 대륙과, 아예 제국이 있는 아스비안 제국과 너무 비교됐다.
거기에 거인들은 쓸데없이 강하고 설득도 안 돼서 상대하는 플레이어들을 괴롭게 만들었다.
-아니 자이언 산맥에는 마을도 없냐??
-마을도 없어서 잡템 팔 곳도 없고 쉴 곳도 없는데 거인 놈들이 심심하면 덤벼 옴. 최악이다 여기.
-굳이 이런 곳을 탐험해야 하나? 그냥 다른 곳 갈란다.
그렇지만 태현은 이야기가 달랐다.
예전에 사디크 성기사단장을 추적하면서 거인 부족들과 친해진 인연!
거기에 거인 부족들의 위장을 사로잡은 <아키서스의 권능 요리>까지!
다른 플레이어와 달리 태현은 자이언 산맥에서 편하게 플레이 할 자신이 있었다.
일단 거인 부족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장점 아닌가.
* * *
“…김태현은 왜 안 오냐??”
“영지에 왔다고 나왔는데… 여기 영상에도….”
“지금 귓속말 보내고 있지??”
“친구가 아니라서 못 보낸다고….”
“…….”
정령왕한테 붙잡힌 현상금 사냥꾼들은 처음에는 김태현이 올까 무서웠지만, 나중에는 ‘김태현이 왜 안 오냐??’ 하며 당황스러워했다.
이 랭커 놈들 왜 안 부르지?
차라리 그냥 빨리 끝내줘!
-…왜 아키서스의 화신이 오지 않는 것이냐?
땅의 정령왕은 슬슬 의심이 된다는 눈빛으로 붙잡힌 인간들을 쳐다보았다.
사실 이놈들 다 부하 아닌 거 아냐?
리치, 자그가란은 의심쩍다는 듯이 말했다.
-저놈들 모두 다 안 친한 거 아닙니까? 자기가 키우던 강아지가 잡혀도 이쯤이면 왔을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 아닙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 * *
-요즘 뭐가 유행인지 아십니까?
-흠… 자폭?
-…아니… 그거 말고 말입니다… 그 현실에서 말입니다.
-현실에서도 자폭은 유행하지 않나? 잘 모르겠군요. 뭐가 유행합니까?
-판온 내에서 광고가 유행합니다.
-?
태현은 의아해했다.
기업의 후원을 받는 게임단이나 선수들은 당연히 그 기업의 로고나 광고를 사이트에 올려놓곤 했다.
방송에도 마찬가지.
이걸 왜 새삼스럽게?
-그건 이미 하던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판온 내에서 말입니다.
-…!
그랬다.
빈센트가 말한 것은 판온 안에서의 광고!
처음에는 기업들도 부정적이었다.
‘광고를 할 거면 현실에서 해야지 게임 안에서 하는 게 의미가 있냐?’, ‘그건 헛짓거리다’ 같은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한 번 시도한 기업이 나오고, 그 결과가 나오자 모두의 시선이 뒤바뀌었다.
광고계의 블루 오션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사람들의 플레이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길고,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데, 심지어 광고비용도 저렴한 편!
-이건… 이건 먼저 해야 해!
어느 도시의 어디가 효과가 좋을지 고민하던 기업들은 깨달았다.
가장 좋은 건 역시 사람이다!
특히 유명 랭커의 경우 온갖 방향으로 계속 미디어에 노출이 되니, 효과가 몇 배로 뛰었다.
-지금 착용하고 있는 망토에 로고를 새겨주십시오.
-아니, 그렇게 할 경우 장비 내구도가 내려가고 멀리서도 더 보이잖습니까. 아무리 그러셔도 제게도 원칙이 있습니다.
-이만큼을 더 지원해드리겠습니다.
-제 원칙은 바로 후원자분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빈센트의 설명을 들은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왜?
-당연히 김태현 선수에게 제안이 와서 하는 이야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