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68화
<악마의 영혼이 갇혀 있는 사슬갑옷>, <카르바노그의 단검> 같은 판온에서 태현만이 만들 수 있는 특수 장비로 무장한 파워 워리어의 특수부대.
줄여서 단검단이라고 불리는 이들!
평소에는 레벨 1의 플레이어들로, 판온 레벨 경쟁에 관심이 없는 플레이어들로 보였다.
그러나 그 실체는 무시무시한 죽창이었다.
유사시 갑옷 능력으로 목숨을 사용해 미친 듯이 능력을 올리고, 단검으로 상대를 찔러 끝내버리는 흉악한 전투력!
기계공학 대장장이들과는 다른 방식의 폭탄이나 마찬가지였다.
태현도 처음에는 커다란 기대를 하지 않고 밀어줬지만, 점점 더 강력해지는 그들의 모습에 슬슬 기대가 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정말 나중에는 잘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검단은 너무 극단적인 카드니까 다른 전투 파티도 몇 개 있으면 좋긴 하겠지.’
단검단은 정말 필요할 때가 아니면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파워 워리어도 이제 대형 길드고 명성도 높다 보니 속아서 들어온 고렙 플레이어들도 꽤 됐다.
이들만 잘 꾸리고 조직해도 괜찮은 전력이 나오리라!
게다가 태현의 기계공학 아이템은 쓰기는 까다로워도 잘만 조합하면 몇 배가 되는 위력이 나왔으니….
‘보자. 어떤 아이템인가?’
에다오르의 머스킷:
내구력 30/30, 물리 공격력 0, 마법 공격력 0.
착용 시 <악마의 천칭> 발동. <악마의 시야> 발동.
착용 시 지속적으로 레벨 감소.
사거리 400% 증가.
악마 종족 제한. 에다오르에게 허락을 받아야 착용 가능.
악마의 원한은 모든 이치를 초월해 상대의 숨통을 끊는다.
(추가 옵션: 해제 불가. 착용 시 NPC들에게 악마 관련 페널티 있음)
또 극단적인 아이템!
좀 멀쩡하고 평범하게 성능이 좋은 아이템은 나와 주지 않는 걸까?
[카르바노그가 그럴 거면 아키서스의 화신이 되면 안 됐다고…]
‘내가 되고 싶어서 된 건 줄 아냐?’
‘어어’하는 사이에 갑자기 되어버린 아키서스의 화신!
생각해 보니 카르바노그도 ‘어어’ 하는 사이에 따라다니게 된 것 같은데….
[카르바노그가 못 들은 척 딴청을 피웁니다.]
‘쯧. 내구력 구리고, 물리 공격력, 마법 공격력 0이고… 거기에 제한도 빡세군. 악마 종족만 쓸 수 있고, 에다오르에게 허락을 받아야 쓸 수 있고. 거기에 착용하면 레벨이 계속 감소하고….’
대체 뭔 옵션이 있길래 이렇게 제한과 페널티가 빡빡한지 의문이 들었다.
일단 사거리 400% 증가는 매우 강력한 옵션이긴 했다.
궁수 플레이어들에게는 사거리가 생명.
사거리 200% 옵션 달린 아이템만 나와도 경매장이 불타오르는데 400%라는 건….
‘경매에 나오지도 않는 사기 수준이란 거지.’
몇몇 궁수 랭커들이 자기들만 몰래 쓸 수준!
그렇지만 워낙 페널티가 많다 보니 그것만으로는 상쇄가 안 되어 보였다.
착용하면 NPC한테 욕먹고 레벨 내려가고 악마 종족이 되어야 하고 에다오르한테 허락까지 받아야 하는데!
‘<악마의 시야>는 시야를 사거리에 맞게 늘려주는 평범한 패시브 스킬이고. <악마의 천칭>은… 헉.’
태현은 경악했다.
<악마의 천칭> 스킬을 봤기 때문이었다.
<악마의 천칭>
랜덤으로 HP의 일정 퍼센트를 깎아서 마탄을 발사합니다. 상대가 마탄을 맞으면 똑같이 HP에 일정 퍼센트의 데미지를 입힙니다.
‘미친!’
공격력이 왜 0인가 했더니 이런 스킬이 있을 줄이야.
이건 무조건 써먹어야 했다.
판온에서 레벨 1과 레벨 100이 싸우면 아무리 레벨 1의 숫자가 많더라도 다 쓸려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레벨 100에게 데미지를 줄 방법이 없는 것!
공격력이 방어력을 뚫지 못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몇몇 특수한 방법을 쓰지 않고서는 답이 없었는데, 이 머스킷은….
이론상 레벨 1의 HP 50%를 깎아서 발사하면, 맞은 랭커도 HP 50%가 깎이는 것!
물론 이론상의 이야기였고 랭커 정도 되면 저런 원거리 공격을 피할 방법을 갖고 있을 것이다. 회복기도 많을 것이고.
그렇지만 이론상만으로도 충분했다.
상황은 만들면 되니까!
게다가 이 무기는 사거리가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태현은 직감했다. 이 머스킷은 단검에 버금가는, 아니 뛰어넘는 죽창이 될지도 모른다고!
레벨 1 플레이어들도 랭커에게 이빨을 들이댈 수 있는 강력한 무기!
그런 걸 생각해 보니 저런 제한들과 페널티가 납득이 갔다. 아니, 오히려 적은 수준이었다.
‘미안하다. 에다오르! 넌 괜찮은 악마다!’
태현은 에다오르를 인정했다.
[에다오르도 기뻐할 거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하하. 쑥스럽게.’
태현은 제한을 고민했다.
‘일단 악마 종족은 내가 악마들을 데리고 있으니까 어떻게든 될 거 같아.’
한두 번 해본 게 아니었다.
케인도 우르크 지역에서 악마 관련 아이템을 잘못 먹었다가 악마로 오염되지 않았었던가.
게다가 태현은 싱싱한 악마들을 매우 많이 데리고 있었다.
영지에도 있고 지금 당장 우리에도 있고!
‘흠. 역시 에다오르 관련 장비니까 에다오르 부하한테서 뜯는 게 좋겠지?’
오싹!
주케넨은 갑자기 오한을 느꼈다.
-여기 무슨 얼음 마법사라도 있는 거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피는 주케넨한테서 뜯고… 아. 에다오르한테서 허락을 어떻게 받지?’
마계에 가서 에다오르한테 부탁하면 에다오르가 퍽이나 들어주겠다!
[에다오르의 뿔을 사용한 상태입니다.]
[에다오르의 무기를 뺏은 적이 있습니다.]
[에다오르 대신 허락할 수 있습니다.]
“…?”
아, 그러고 보니 그랬었지?
에다오르 레이드를 한 적이 있다 보니, 에다오르에게서 나온 뿔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해결!
‘이야. 악마들은 참 쿨한데?’
괜한 뒤끝 없이 이기면 이런 것도 허락해 주는구나!
가장 커다란 문제가 해결되자 남은 건 쉬웠다.
‘악마 피는 주케넨에게서 뽑아서 악마가 될 수 있는 약을 만들고, 사람만 모으면 되겠군. 얼마나 모이려나.’
태현은 이다비에게 부탁해 파워 워리어 길드에 공지를 올리게 했다.
“이런 장비들을 쓰게 하고 싶은데, 착용하는 순간 레벨이 쭉쭉 떨어지니까 이걸 꼭 말해줘야 해.”
“어디서 또 이런 무기를… 아차.”
“…….”
이다비는 웃으면서 말을 바꿨다.
“그렇게 올릴까요?”
“그렇게 이상한 무기 아니거든… 근데 애들이 좀 안 모이려나? 음. 단검단 애들한테 쥐어줘야 하나….”
확실히 레벨이 떨어지는 페널티는 컸다.
단검단이야 레벨업에 관심 없고, 레벨 1로 플레이하는 걸 즐기는 변태들이 모인 거였지만, 그 외 플레이어들은 레벨에 애착이 있을 터.
레벨 내려가는 걸 좋아할 리 없었다.
‘단검단은 이미 그런 식의 전투에 익숙해서 새 무기는 다른 사람들한테 익히게 하고 싶었는데.’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원거리 무기는 따로 주고 싶었다.
“네? 애들 많이 모일 걸요?”
“진짜?”
“이 제안이 얼마나 좋냐 안 좋냐를 떠나서 일단 태현 님이 뭔가 한다고 하면 안 읽고 신청할 사람들이 태반이라….”
“…….”
그건 그랬다.
이제 파워 워리어는 태현이 ‘게임 접을 사람 선착순 100명!’이라고 해도 우르르 달려들 것이다.
일단 뭔진 모르겠지만 태현이 모으는 거니까 해야지!
남들보다 늦으면 못 해! 선착순이야!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제안도 좋아요.”
“뭐? 악마 종족 되고 레벨 내려가도 상관없는 사람 모집이란 제안이?”
“네. 다들 레벨 내려가고 싶어하는 걸요.”
“!?”
태현이 모르는 사이에 그런 유행이 불었단 말인가?
사실 단검단 때문이었다.
단검단이 파워 워리어에서 점점 실적을 쌓아가자, 다른 길드원들 사이에서 말이 나왔다.
-아! 나는 왜 레벨이 이렇게 높아서! 내 레벨이 10인게 원망스럽다!
-이 자식! 네가 저번에 퀘스트를 깬 덕분에 나까지 경험치 들어와서 내 레벨이 3이잖아! 너 때문에 내 인생이 꼬였어!
-으아아아악! 나 어제 레벨업해서 레벨 2인데!! 왜 이제야!!
단검단에 들어가고 싶지만 들어가지 못하는, 불운한 고렙 플레이어들!
사망으로 줄어드는 경험치도 저렙 때에는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
레벨 1로 가는 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
결국 길드원들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획기적인 장비라니!
설명을 들은 태현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난 너희 길드 애들을 잘 모르겠어….”
“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 * *
“재료는 루비랑 혈석, 악마 관련 재료 몇 개 들어가긴 하는데 못 구할 정도는 아니고.”
루비와 혈석 같은 건 이번 영지를 탈탈 털어대면서 얻은 게 좀 됐다.
이렇게 알뜰하게 쓰게 될 줄이야!
“주케넨!”
-날 놓아줘라, 아키서스 놈! 내 주인께서 오신다면 너는 벌레처럼 짓밟힐 터이니! 조금이라도 자비를 구하려면 나를 놓아줘야….
“야. 얘 에너지 제대로 안 뽑았냐? 왜 이렇게 쌩쌩해?”
“죄송합니다!”
드워프들은 고개를 숙이더니 장치를 돌렸다.
우우우우웅!
-그아아아악! 그아아아아아악!
-크핫핫핫핫!
인생 최고의 시간을 보내는 구시온!
주케넨이 잠잠해지자 태현이 다가갔다.
“자. 피 좀 뽑자.”
-?!?!?
“어허. 가만히 있어. 움직이면 더 아파. 알콜솜 줄 테니까 끝나고 문질러라.”
-아니 이런 미친 놈이 칼을 휘두르면서 무슨…!
주사가 아니라 칼로 팔을 베는데 무슨 알콜솜으로 문질러!
뚝뚝뚝-
“폐하.”
“?”
“마르체티 백작님께서 뵙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데… 그게 대체…?”
성 안에서 백작의 기사가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려온 것이었다.
기사는 태현의 모습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국왕이 우리에 갇힌 악마한테 뭔가… 뭔가 하고 있다!
태현은 당당하게 말했다.
“왕국을 침범한 악마를 붙잡아서 심문하고 있네.”
“아… 역시 폐하! 대단하십니다! 대륙의 영웅!”
백작들과 달리 기사들 사이에서는 매우 호평인 태현!
괜히 에랑스 왕국의 기사단이 태현을 보고 졸졸 쫓아온 게 아니었다.
태현을 졸졸 쫓아다니던 에랑스 왕국의 <은빛 검 기사단> 기사들이 재빨리 나섰다.
“폐하께서는 대단한 영웅이시지!”
“악마만 보면 눈이 돌아가셔!”
“대륙에 악마가 소환되면 폐하부터 먼저 꺾으셔야 할 거다!”
“애들아. 오바는 하지 말자.”
태현은 기사들의 입을 닥치게 했다. 괜히 불길한 소리를 하고 있어!
“마르체티 백작이 보고 싶어 한다고? 왜?”
태현은 찔리는 게 많은 사람!
일단 의심부터 하고 봤다.
“왜냐뇨… 위대한 영웅이신 폐하를 뵙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기사는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 태현 뒤의 기사들은 맞는 말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백작보고 직접 나오라고 해라.”
“예. 그러실 겁니다.”
“뭐? 진짜?”
태현은 당황했다. 여기서 ‘주인님이 싫다는데요?’ 정도는 생각했던 것이다.
“볼로네 백작을 죽인 악마를 퇴치하기 위해 이렇게 달려와 주셨는데, 직접 나오지 않으실 리 없잖습니까?”
“그렇긴 한데….”
너무 순순히 감사하자 오히려 좀 당황스럽다!
다른 일행들은 태현에게 소곤거리며 물었다.
“왜 그래? 좋은 일이잖아.”
“아니, 멀쩡하게 감사해하니까 뭔가 좀 찜찜하네.”
“…….”
“…….”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왔길래…!
“뭐, 감사한다니 받아줘야지. 나오라고 해라.”
그 틈을 타 귀족 전사대들이 다가와 소곤거렸다.
“폐하. 나오는 순간 백작의 목을 치십시오! 그러면 놈들이 혼란에 빠질 테니 저희가 안으로 들어가 성을 점령하겠습니다!”
태현에게 푹 빠진 귀족 전사대!
누가 아스비안 제국 출신 아니랄까봐 아주 화끈한 방법을 속삭이고 있었다.
“아, 안 돼.”
“폐하. 방금 망설이신 거 아닙니까?”
“아, 아니거든.”
하고 싶지만 참아야 해!
태현은 악마의 속삭임을 참았다.
-구아아아아악!
물론 진짜 악마의 비명도 뒤에서 들리고 있긴 했다.